303화. 경천일격
석목은 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백원요왕(*白猿妖王: 흰 원숭이 요괴왕)이 남긴 정혈을 흡수했다.
그곳은 높고 험한 산맥으로, 꼭대기 아래의 삼 분의 일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산 중에서 어떤 골짜기는 칼로 깎은 것처럼 어둡고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곳은 한산해서 짐승과 식물이 드물었고, 깊은 골짜기에서 가끔 퀴퀴한 냄새가 나는 흰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산골짜기의 깊은 심연에는 운무가 피어 있었는데, 금빛이 보일락 말락 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흰색 안개가 걷히면서 동시에 선명한 금빛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금빛 뱀이었다.
뱀은 몸 전체가 찬란한 금빛 비늘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산골짜기의 아랫부분을 다 뒤덮고 있었다.
뱀의 크기는 이백 여 장이었고, 목 위에는 아홉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금빛 머리들이 뻗어 있었다.
뱀은 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는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옅은 푸른색의 연기를 뿜어냈다.
갑자기 아홉 개 중에서 가장 큰 머리가 눈꺼풀을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것 같았다. 이어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리자 커다란 두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깩!”
청아한 울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그치지 않고 아득한 설산에 메아리쳤다.
중간에 있는 머리가 깨어나자 나머지 여덟 개의 머리도 동시에 깨어났다.
금빛 뱀의 거대한 몸집이 흔들거리고 꼬리가 움직였다. 그러자 허공에 물결이 일면서 강력한 파동이 엄청난 기세로 주위의 낭떠러지로 전해졌다.
쿵!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깊은 골짜기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리자 주위의 암벽에서 커다란 바위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이어 골짜기 양쪽의 암벽이 수없이 갈라지며 구멍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금빛 뱀은 골짜기에서 날아올라 하늘을 빙빙 돌았다.
금빛 비늘이 태양에 비치자 찬란하게 수놓아진 금빛이 사방에 반사되었고, 설산이 온통 금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온 세상에 이 금색 빛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고, 그 바람에 천지 만물이 생기를 잃어버린 듯했다.
그때 하늘에 떠 있는 구수금교(九首金蛟, 머리 아홉 개가 달린 금빛 뱀)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중간에 있는 머리가 가장 컸고, 그 양쪽에 각각 네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좌우에 있는 여덟 개의 머리 크기는 마치 틀에 찍어낸 듯 똑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중 왼쪽에 있는 머리 한 개의 생김새가 약간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머리의 표면은 비늘로 뒤덮여 있었지만 다른 머리보다 비늘이 다소 적었다.
금빛 뱀은 엄청나게 분노한 듯 거대한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금빛이 한 번 비추고 지나간 곳을 보니 수십 개의 산봉우리가 절반쯤 잘려나가 있었다.
금빛 뱀은 산봉우리 위에서 빙빙 돌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이어서 그중 한 개의 머리가 맹렬하게 흔들리면서 주위에 금빛을 발사했는데, 곧 나머지 머리들이 축 늘어졌다. 머리들의 두 눈동자가 어두워진 게 마치 혼이 나간 것 같았다.
* * *
석목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행성.
그 행성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니 구 할 이상이 망망대해였고, 육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해수는 매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무려 백 장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일파만파 이어져서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높은 하늘의 구름 사이로 어마어마한 우렛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곧이어 기세가 웅장한 바다의 수면 위로 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이는 더욱 맹렬해지면서 주변에 있는 해역에 무수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이런 소용돌이가 삽시간에 한데 얽히자 급기야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했다.
소용돌이의 중앙에서 갑자기 파도가 솟아오르더니, 그 속에서 거대한 검은색 관이 솟아올랐고, 바다 깊은 곳에서 무수한 바닷물이 날아올라서 하늘로 향했다.
검은 관은 공중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았다.
거대한 파도가 잠잠해질 때쯤 검은 관은 안정적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이어 관 뚜껑이 들썩들썩하더니 이음새 부분에서 금빛이 뚫고 나왔다.
쾅!
검은 관이 갑자기 터지면서 무수한 파편이 쏟아져 나와 하늘의 절반을 메웠다.
이어 관 속에서 금빛 한 줄기가 나왔는데, 빛 속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금발에 매 같은 눈과 코를 갖고, 금색 옷을 입고 있었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는 무언가 잠시 생각하더니, 주저 없이 어디론가 날아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 * *
사령계의 하늘은 언제나 어두침침했다. 새까만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고, 어쩌다 가끔 회색빛 하늘이 드러났다.
하늘에서 붉은 색의 달이 핏빛 달빛을 흩뿌렸다.
하늘 아래에는 구릉이 위아래로 솟아 있었고, 땅은 바싹 말라 있었으며, 지면 곳곳에는 백골이 널브러져 있었다.
구릉 중앙에는 거대한 녹색 불꽃이 활활 타고 있는 회색빛 제단이 우뚝 솟아 있었다.
제단 주위의 빈터에는 천 구 정도 되는 사령생물들이 빽빽하게 서서 제단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때 제단 위에 수면처럼 파동이 일더니, 파도 같은 잔잔한 물결이 퍼져나갔다.
제단 위의 녹색 불꽃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고, 주위에 있는 사령생물들의 눈에서 영혼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들은 놀란 듯 제단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간의 파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더니 결국 커다란 소리를 내며 허공이 갈라졌다. 이어 그곳에 검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슈욱!
어두운 통로에서 검은 빛에 뒤덮인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제단 위로 떨어졌다.
바로 석목과 유안이었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빛 하늘, 핏빛 달……. 비록 검은 빛으로 인해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었지만, 짙은 사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사령계잖아!”
석목은 깜짝 놀랐다.
유안이 굳은 얼굴로 그를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때 공중에서 공간의 파동이 다시 격렬하게 일어났다. 막 닫히려던 통로에서 노란색 빛이 나왔는데, 그것은 천지를 뒤흔들만한 영기의 파동을 발산했다. 그 바람에 주위의 검은 구름이 밀려나면서 수십 리에 달하는 진공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색 빛은 반짝이더니 백 장 정도 크기의 칼날로 변했다. 칼날이 섬뜩한 빛을 번쩍이며 석목과 유안을 내리쳤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검의 위력에 짓눌려서 견디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쿵! 쿵!
제단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제단 위에 있던 녹색 불꽃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제단 주위에 모여 있던 사령생물 중 약한 것들은 거대한 검이 뿜어내는 위력에 뼈가 으스러졌다. 그나마 강한 생물들도 몸이 부서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석목와 유안은 놀랐지만, 일단은 그 거대한 검에 맞서야 했다. 주위가 거대한 검이 내뿜는 기세에 완전히 뒤덮여 있었기에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쨌든 묘수를 짜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석목이 큰 소리를 내자 붉은 빛이 나오면서 붉은 원숭이의 법상이 떠올랐다. 법상의 손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붉은 검이 떠오르며 노란색 검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노란색 검에 비하면 붉은 검은 크기나 위력 면에서 한참 뒤떨어졌다.
석목이 검을 휘두르자 이삽십 장의 중급 부적이 떠오르면서 놀랄만한 영기를 뿜어냈다.
이어 빛이 반짝이더니 고급 부적들이 모두 모여들어서 수십 개의 술법이 되어 거대한 빛을 발했고, 노란색 검을 향해 솟아오른 그 빛의 위력은 붉은 원숭이 법상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때 유안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핏빛을 내뿜자 천귀번이 다시 나타났다.
그가 두 손을 계속 흔들자 천귀번의 빛이 그곳을 가득 메웠다.
유안은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주문을 외며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다. 그러자 천귀번이 갑자기 다시 활활 타오르더니 핏빛 불꽃을 만들었다.
핏빛 불꽃 속에서 금색의 해골 머리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곧 핏빛으로 변했다. 해골에 금이 간 부분은 이미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 해골은 두 눈에서 핏빛 광선을 포악하게 내뿜고 있었다.
핏빛 해골이 입을 벌려 포효했다. 핏빛 화염이 불타오르는 입 안에서 굵직한 핏빛 광선이 뻗어 나왔고, 광선은 물결치면서 노란색 검을 향해 날아갔다.
우르르! 쾅쾅!
두 사람의 공격과 노란색 검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천지를 진동하는 큰 소리가 났다.
백 리 이내의 모든 곳이 폭발하며 크게 흔들렸고, 마치 긴 용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폭발의 범위 내에 있던 사령생물은 모두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멀리 떨어져 있던 사령생물들도 잔뜩 겁을 먹고 멀찌감치 도망갔다. 마치 세상에 종말의 재앙이 도래한 것 같았다.
폭발이 일어난 중앙에서부터 일렁이는 먼지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주위로 퍼져나갔다.
* * *
사령계의 한 검은 산봉우리 위.
두 날개를 달고 있는 작은 그림자가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는 밝은 은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옷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이따금 은색의 광채를 뿜어냈다.
그는 얼굴에는 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전체 얼굴은 다 가려진 채 눈이 있는 곳만 짙은 자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등에는 검은 곤봉이 메여 있었다.
그 그림자는 바로 연나였다.
연나의 기운은 지계의 정상에 오른 듯했으며, 천위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연나의 하반신은 갑주처럼 딱딱한 껍질로 겹겹이 쌓여 있었고, 금속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하얀 두 다리가 보였다.
연나의 뒤에는 무수한 사령생물이 서 있었다. 최소 만 마리 이상은 되어 보였다. 대부분은 해골이었지만 뼈로 된 짐승도 많았으며, 강시도 있었다.
그들의 행렬은 산 정상에서 지면까지 이어져 있었다.
연나의 바로 옆에 있는 해골은 바로 무야였다.
무야는 손에 금색 뼈 칼을 들고 온몸에서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연나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나는 말없이 두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은빛 유성처럼 먼 곳으로 날아갔다.
무야는 낮은 소리를 내면서 노란빛을 반짝이며 연나를 따라갔다.
산의 위아래에 있던 사령생물들도 함성을 지르며 연나가 날아간 방향으로 향했다. 날개가 달린 이들은 바로 날아올랐고, 날 수 없는 해골이나 강시 등은 땅 위를 내달렸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사령생물의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오랜 시간이 흘렀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지면에는 수십 장 깊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주위의 땅은 무언가에 심하게 긁힌 듯 구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커다란 구덩이의 아래쪽에는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바로 석목과 유안이었다.
석목의 몸은 온통 검은 비늘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는데 그 비늘은 거의 대부분 부서져 있었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콜록…….”
석목이 눈을 뜨더니 기침을 몇 번 하고는 선혈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고, 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스며들면서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갔다.
그는 중상을 입어서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