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04화 (304/916)

304화. 격전재기

허공에 있는 통로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검은 벽돌만이 그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추선대였다.

추선대가 내뿜는 검은 빛이 광선이 되더니 유안이 있는 곳의 십여 장 주위를 휘감았다. 석목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석목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차디찬 냉기가 검은 광선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는 말없이 적원화경(赤猿火經)을 돌리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유안을 바라보고 안색이 변했다.

유안의 몸 주위를 핏빛 해골이 둘러싸더니, 곧 달걀 모양의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타다탁!

핏빛 해골이 부서지고 파편들이 타오르다가 빠르게 사라졌고, 천귀번의 법보는 완전히 소실되었다.

핏빛 불꽃이 사라지자 유안의 몸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옷은 다 해졌으며,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입에서는 선혈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게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유안도 비록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었지만, 신체의 강인함은 석목에 비해 약했다. 천귀번 법보의 보호를 받았음에도 전력을 다한 황룡도인의 공격에 극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유안은 석목의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석목은 힘겹게 손을 움직여 상급 화속성 영석을 꺼내 그것의 영력을 흡수하여 진기를 회복하자 몸에서 옅은 붉은 빛이 감돌았다.

유안도 영력을 흡수했고, 그의 몸에서 회색빛이 감돌았다.

한참 뒤 두 사람은 일어나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입은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몸속의 진기는 어느 정도 돌아와 있었다.

“유 형에게 이 사령계로 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끝내 석목이 침목을 깨고 입을 열었다.

“보통 육신이 사령계로 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곳에 있는 짙은 사령의 기운은 아마 천위에 오른 존재라도 오래 견딜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 추선대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죠.”

유안은 허공에 있는 추선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도 허공에 있는 검은 벽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유안은 이전에 이 추선대가 명월교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설마 이것이 허공을 갈라서 육신을 사령계로 이끌 뿐만 아니라, 사령 기운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한다는 말인가?

“석 형도 이 추선대에 관심이 있나 봅니다?”

유안은 손을 휘둘러 허공의 추선대를 바로 앞으로 끌어왔다.

추선대가 내뿜는 검은 빛은 순간 약해졌지만, 여전히 두 사람을 휘감고 있었다.

“유 형이 이전에 이 추선대가 명월교의 보물이라고 했죠. 흥미가 생기는군요.”

석목이 말했다.

“추선대는 과거에 명월동교와 서교 양쪽에서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던 보물이었죠. 하지만 이후 명월서교가 서하 대륙에서 힘을 키운 뒤 그것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명월서교도 결국 이것을 지키지 못해서 당시 백원요왕에 의해 두 동강이 났고, 그중 절반은 어디론가 떠돌았죠. 내가 그걸 우연히 얻게 된 겁니다. 그 나머지는 능천봉의 비밀 창고에 숨겨져 있었고, 이제 와서 그걸 되찾아오게 된 거죠. 이 추선대는 성석의 기운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는데, 그 대신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손짓을 해서 회색빛이 추선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자 추선대의 검은빛이 흔들렸지만,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동시에 유안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알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회색빛이 감돌았다.

“하하, 두 개의 추선대가 모두 유 형의 손에 들어왔으니 머지않아 더욱 빛을 발하겠군요.”

석목은 유안의 행동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심의 표정을 내비쳤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석 형 덕분이죠.”

유안은 묘한 눈빛으로 추선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유 형, 앞으로의 계획이 뭡니까?”

석목이 물었다.

“계획이요? 이 보물이 있으니 명월서교는 내 손 안에 있습니다. 먼저 강시 대군을 훈련시킨 다음, 추선대의 힘을 빌려서 사령계에 잠입해 많은 귀왕과 계약을 맺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동주대륙으로 가서 통천선교를 전부 멸하는 거죠. 그리고 명월동교를 부활시키는 겁니다!”

유안이 광기 어린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런 유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유안의 몸에서 회색빛이 나오더니 동공도 회색으로 변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눈동자의 빛은 더욱 강해졌다.

사령계 특유의 싸늘한 기운이 유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서 빠르게 위로 퍼져갔다.

유안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자 석목의 가슴이 뛰었다.

유안의 동공은 이미 회색으로 변했고, 두 개의 회색 소용돌이가 떠올라 있었다. 그 안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이 들끓었는데,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유안의 팔뚝에 녹색 피부가 돋아났다. 이어 그의 손에 있는 열 손가락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면서 길이가 수 촌이나 되는 청록색 손톱이 자라났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유안이 내뿜는 기운은 강력해졌고,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추선대가 원래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군요. 사령의 기운을 직접 빨아들이고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석목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석 형은 역시 안목이 대단합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깨달으니까요. 이 추선대는 본교의 보물로 비범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령의 기운을 순수한 영력으로 바꾸어서 몸에 흡수시키는 것 또한 그 능력 중 하나죠.”

유안은 석목을 보며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시간을 벌려고 그랬던 거겠죠?”

순간 석목의 몸이 흔들리더니 십여 장 뒤로 물러났다. 추선대의 위력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그의 몸을 붉은 빛이 둘러쌌다.

“석 형, 사실 나는 지금까지 석 형을 좋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점이 많죠. 만약 우리가 수련자가 아니고 보통사람이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고 가끔 생각하곤 했습니다. 천부적 자질을 지닌 석 형이 만약 나의 오른팔이 된다면 우리 둘은 동주대륙과 서하대륙을 휩쓸 수 있을 거예요. 무진 도인나 사도호, 심지어 황룡도인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겁니다.”

유안이 말했다.

“아쉽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군요. 다시 말해서 내가 만약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추선대의 비밀이 알려지면 안 되겠죠.”

석목은 유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맞습니다. 추선대의 비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니 사부님의 숙원과 명월교의 미래를 위해서 석 형이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랍니다. 석 형이 죽으면 내 휘하의 가장 강력한 강시왕으로 만들어서 강시 군대를 통솔하게 해드리죠.”

유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가에는 웃음은커녕 싸늘함이 감돌았다.

유안이 소맷자락을 흔들자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이미 천위의 경지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영적 압력이 주위로 퍼져서 풍랑이 이는 듯했다.

그 바람에 석목의 옷자락이 거세게 휘말리며 나부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이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유안의 눈빛이 바뀌더니 의외라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가 왼쪽 팔을 들어올렸다. 상처는 이미 아물어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석 형은 역시 다르군요.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계속 석 형과 한판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는데, 오늘 드디어 소원을 이룰 수 있겠어요.”

유안은 얼굴에 냉소를 띄며 몸을 움직이더니, 도깨비처럼 갑자기 석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안이 다섯 손가락을 펴서 석목을 잡으려 했다. 눈부신 회색빛을 내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석목은 이미 유안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재빠르게 왼쪽으로 발을 움직여 유안의 공격을 피했다.

유안은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워 다시 석목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스윽!

오 척 정도 되는 반월 모양의 회색 검이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커지더니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며 석목을 향해 번개 같은 속도로 뻗어왔다.

석목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공격을 피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에, 그는 말없이 몸을 돌려서 등 뒤의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흑도는 붉은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함성을 지르며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쉬익!

삼십 개의 그림자가 종횡으로 교차되어 나타나더니, 반월의 회색 검과 맞부딪쳤다.

챙! 챙!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적회색의 밝은 빛을 만들어냈다.

수 척 밖으로 나가떨어진 석목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렀다. 하지만 유안의 회색검도 부러졌다.

“석 형, 이제 탐색전은 그만하고 제대로 한번 붙어봅시다!”

유안이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자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검은 장창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장창의 표면에는 심오한 주문이 새겨져 있었고, 창끝에는 검은 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검은 안개는 마치 요괴의 그림자 같았는데, 평범하지 않은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걸 보니 진귀한 보물이 틀림없었다.

유안이 장창을 몇 번 휘두르며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손에 있는 검은 장창이 흔들리더니 커다란 검은 광선이 되었고, 석목의 가슴 부분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그가 운철흑도를 휘두르자 붉은빛이 나타나면서 검은 장창이 만들어낸 광선을 그대로 받아쳤다.

탕! 탕! 탕!

쇠붙이들이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석목과 유안은 순간적으로 수십 차례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 순간 유안의 몸이 반인 강시로 변하더니 그 기운이 극도로 강해졌다.

석목의 힘이 강시로 변한 유안의 힘보다 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의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력으로 방어하기가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챙!

유안이 검은 장창을 밀어붙이니 석목의 운철흑도가 흔들렸고, 그 틈에 장창이 석목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죽어라!”

유안이 살기 가득한 얼굴로 고함을 쳤다.

석목의 팔은 이미 마비된 상황이었고, 안색은 창백해졌으며 입가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석목은 왼손에서 빛을 반짝이며 다음 동작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안의 뒤에서 노란색 빛이 반짝이더니 거대한 해골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 밑에서 나타난 해골은 손에 든 노란색 뼈 칼을 휘둘러 유안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유안은 미처 막아내지 못했고, 크게 놀라며 손에 든 검은 장창을 거두고는 옆쪽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해골의 검은 너무나 빨랐다. 유안은 재빠르게 피했지만 왼발을 베인 상태였다.

훅!

이어 유안의 왼쪽 옷자락이 베이면서 어두운 녹색 피부가 드러났다. 유안의 몸에 가벼운 상처가 생기며 노란 액체가 조금 흘러나왔다.

유안은 차가운 얼굴로 왼손에 회색빛을 내뿜으며 허공에서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이십여 장 크기의 거대한 회색 주먹이 해골을 향해 날아갔다.

해골의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반짝였고, 유안의 공격을 피할 곳이 없었던 해골은 몸에서 노란색 빛을 내며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다.

해골이 사라진 후 유안의 회색 주먹 그림자가 땅을 가격했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해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돌과 모래가 흩날리며 땅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유안의 공격은 정말 강력했지만, 그 거대한 해골은 땅 밑으로 용케 피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