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원군
“아,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군요. 석 형도 술법이 약하지 않은 사령술사이고 사령 애완동물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방금 전의 그 상황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유안이 땅으로 내려와서 석목을 향해 말했다.
석목은 그 틈을 이용해 수십 장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그는 유안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어서 그의 등에서 불빛이 반짝이더니 불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붉은 그림자가 되어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유안은 이를 보고 검은빛을 반짝이더니 검은 날개를 펼쳤다.
그의 날개는 짙은 검은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표면에는 심오한 부적이 새겨져서 손에 든 장창처럼 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유안이 검은 날개를 움직이자 그의 몸도 검은 그림자가 되어 석목을 뒤쫓았다. 그리고 그가 날아가는 속도는 석목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빨랐다.
몇 호홉 만에 석목을 따라잡은 유안은 손에 있는 검은 장창을 석목을 향해 던졌다.
장창은 검은빛을 발하더니 귀신이 울부짖은 것 같은 소리를 은은하게 내지르며 검은 기운이 장창에서 뻗어 나와서 검은 마귀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마치 지옥의 마왕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석목은 검은 장창에서 거대한 기운이 뻗어 나와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마치 무언가에 갇힌 것 같았다.
흑색 장창이 석목의 몸을 찌르려는 순간 유안의 발밑에서 다시 노란색 빛이 반짝였다. 아까의 그 거대한 해골이 다시 땅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해골의 왼쪽 팔에는 크게 금이 가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검을 쥐고 유안의 발을 향해 휘둘렀다.
해골의 노란색 뼈 칼은 눈부신 노란 빛을 뿜어냈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안이 냉소를 띠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장창이 방향을 바꿔서 땅에서 나온 거대한 해골을 향해 내달렸다.
빠지직!
검은 장창과 거대한 해골의 뼈 칼이 서로 부딪혔다. 뼈 칼은 산산조각이 났고, 장창은 오히려 기세가 더해지면서 그대로 거대한 해골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해골의 눈에서 자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해골은 가슴이 찔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 검은 장창을 사납게 움켜쥐었다.
그때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유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곧바로 양손으로 쥔 검을 휘둘렀다.
운철흑도는 투명한 검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것에서 알 수 없는 차디찬 검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유안은 팔을 힘껏 휘둘러서 해골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순간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입을 벌려 검은빛을 토해냈다. 그 빛은 검은 방패가 되어 유안의 몸을 보호했다.
방패 위에 새겨진 검은 부적은 검은 장창, 그리고 검은 날개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챙!
운철흑도가 검은 방패를 내리치자 방패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유안이 재빨리 손을 휘두르자 검은 장창이 빛을 발하며 몇 개의 검은 날을 만들었고, 그 날들이 해골을 향해 내려치자 해골은 토막이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유안은 석목의 손에 있는 흑도를 보더니 몸에서 반짝이는 빛을 내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유안의 뒤쪽 허공에서 검은빛의 덩어리가 생기더니, 그 안에서 은빛의 그림자가 나타났고, 그 은빛 그림자는 검은 곤봉을 들고 있었다.
검은 곤봉이 검은 그림자를 만들더니 재빠르게 유안의 머리를 가격했다.
유안은 크게 놀라며 몸에서 검은빛을 내면서 옆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챙!
검은 곤봉이 유안의 어깨를 때리자 그의 몸에서 핏빛이 흘러나왔다. 그의 왼팔이 으스러지면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은빛 그림자는 바로 연나였다.
그녀는 일격에 유안을 죽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양 날개를 펼치더니 몸이 흐릿해지면서 그림자처럼 유안에게 달려들었다.
연나는 검은 빛을 발하는 곤봉을 손에 쥔 채 엄청난 기세로 유안을 공격했다.
“연나!”
석목은 은빛 그림자를 보고 얼굴에 안도의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붉은빛을 발해 붉은 원숭이 법상을 만들었고, 연나가 유안을 공격하는 것을 도우려 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처를 먼저 회복해. 괜히 와서 방해하지 마.”
석목은 순간 멍해졌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멀리서 연나와 유안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둘 모두 경지가 상당했기에 움직임이 번개처럼 빨랐고, 시시각각 현란한 잔상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굉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격렬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석목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연나의 말대로 지금 자신의 상태로 끼어들었다가는 도리어 방해만 될 것이었다.
석목의 몸에서 붉은빛이 사라졌고, 그는 지면에 내려와서 단약을 꺼내 복용하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두 개의 고급 화속성 영석을 손에 쥐고는 영기를 빨아들였다. 붉은 기운이 양쪽 어깨를 타고 몸속에 흡수되며 빠르게 진기가 회복됐다.
거대한 굉음이 석목의 귀에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몸의 상처를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단약과 영석 덕분에 고갈되었던 진기가 다시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몸의 상처는 상당부분 치유되었고, 진기도 절반 정도 회복되었다.
만약 순수한 영기를 품은 고급 영석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는 비쌌다. 고급 영석 두 개는 동주대륙에서 보통 지계 무인이 가진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서하대륙에서도 꽤나 진귀한 물건이었다.
고급 영석은 하급 영석 만 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값어치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석목 역시 명월교에서 운 좋게 십여 개를 얻었을 뿐이고, 일단 써버리고 나면 다시 얻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고, 지면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무언가가 지면을 강하게 내려치는 것 같았다.
이어 허공에서 유안의 광기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를 미처 돌볼 틈도 없이 두 눈을 뜨고 일어섰다.
유안은 공중에 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녹색 빛이 더욱 짙어져 있었고, 등 뒤의 검은 날개를 계속 퍼덕이고 있었다. 연나에게 잘려나갔던 왼팔은 어떤 수를 썼는지 다시 자라나 있었다. 그는 양 손에 검은 장창을 쥐고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어 은빛이 반짝이더니 연나의 그림자가 구덩이에서 날아올라 근처에서 멈췄다.
연나는 궁지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몸의 은색 갑옷은 여러 군데가 찢어져 상처가 나 있었고, 등 뒤의 날개도 상처를 입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연나, 괜찮은 거야?”
석목은 연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며 머릿속으로 물었다.
석목을 보자 연나의 눈에서 짙은 자줏빛 영혼의 화염이 일렁였다. 연나는 고개를 돌려서 공중의 유안을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검처럼 차가웠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났어. 그날 밤의 바로 그 해골이었군. 그때 뭔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만에 지계의 정상까지 오르다니, 정말 의외인 걸. 제법이야. 흥미로워지는데!”
유안이 연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석목은 검을 들고 연나의 옆에 서서 유안을 올려다보았다.
“석 형, 나에게 이런 놀랄 만한 선물을 준비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석 형의 애완동물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요. 석 형이 죽으면 아마도 나의 또 다른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번개처럼 날아갔다.
“꿈도 꾸지 마!”
석목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붉은 원숭이 법상이 나타났고, 법상의 손에서 거대한 붉은 화염의 검이 나오더니 유안을 향해 날아갔다.
유안은 그걸 보며 가소로운 듯 웃었다. 그의 손에 있는 검은 장창의 끝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며 섬뜩한 기운을 뿜어냈다.
두 개의 검은 장창은 독룡이 동굴을 빠져나오는 것처럼 날아가서, 하나는 거대한 화염의 검 위에 올라탔고, 다른 하나는 붉은 원숭이 법상의 가슴을 찔렀다.
굉음이 들리더니 거대한 붉은 화염의 검이 폭발하며 불꽃이 되었다.
푹!
다른 검은 장창이 붉은 원숭이 법상의 가슴을 뚫었다.
이어 검은색 번개가 뱀처럼 사방에서 모여 들어 순식간에 붉은 원숭이 법상의 절반을 덮었다.
붉은 원숭이 법상은 구슬픈 소리를 내더니 격렬하게 폭발하며 불꽃이 되었고, 사방에 흩어졌던 검은 번개는 잇따라 반짝이며 검은 장창으로 다시 들어갔다.
유안의 손에서 검은 털이 휘날리더니 광풍이 불면서 하늘에 가득한 불꽃을 쓸어냈다.
순간 불꽃 속에서 붉은 그림자가 뻗어나오더니 번개처럼 빠르게 유안에게 날아갔다. 그것은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의 손에 있는 운철흑도가 검은빛을 내뿜으며 투명하게 빛나는 수 척의 도광이 되어 날아갔다.
유안은 흠칫했다. 석목의 운철흑도의 위력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들린 검은 장창을 들어 방어하려고 했다.
그 순간 유안의 뒤에서 은색 빛이 비치더니 연나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주위의 공기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더니 보이지 않은 파동이 일어나 유안을 공격했다.
유안의 몸이 굳어버렸고,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고통을 호소했다.
순간 석목의 눈이 반짝이며 운철흑도가 유안을 베었다.
유안은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칼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포효하며 몸에서 검은 빛을 발산했고, 순간적으로 두 날개를 펼쳐서 검고 둥근 보호막을 쳤다.
그 보호막 위에 떠오른 부문은 유안의 흑색 방패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촤악!
운철흑도는 둥근 보호막을 서슴없이 쪼갰다. 흑도의 절반이 보호막을 갈랐지만 거기서 멈추었다.
석목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몸속의 진기가 조수가 밀려드는 것처럼 운철흑도로 주입되었지만, 그 위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인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석목의 어깨를 눌렀다.
“움직이지 마!”
연나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석목의 몸 안으로 전해졌고, 마치 전류처럼 그의 머리로 솟구쳤다.
그러자 석목의 눈빛이 반짝이며 동시에 마음이 맑아졌다. 마치 무언가 광명을 찾으면서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서 용처럼 길게 부르짖었고, 쩌렁쩌렁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운철흑도의 눈부신 검광이 수 척까지 뻗어나가면서 칠팔 장 길이의 영롱한 검은색 검이 만들어졌다.
차디찬 검의 기운이 뻗어나갔다.
촤아악!
검은 공 모양의 보호막이 운철흑도의 거대한 빛 앞에서 갈라지며 유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유안은 자신의 방어막이 이렇게 힘없이 벗겨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크게 놀란 듯했다.
그러나 석목은 개의치 않았고 손을 움직였다. 검은빛이 반짝이면서 유안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피가 쏟아져 나오며 잘려진 유안의 머리가 멀리 날아갔다. 온통 피로 범벅이 된 긴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머리는 곧 불덩이처럼 땅에 떨어졌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는 검은빛이 사라지더니 곧 바닥에 쓰러졌다.
“결국 그를 죽였다…….”
석목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지면으로 내려온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방금 그는 운철흑도의 힘을 발산했지만, 몸속의 진기도 대부분 흑도에 의해 빠져나갔기 때문에 숨이 가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