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07화 (307/916)

307화. 혼사(魂師)

연나와 유안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기에, 유안도 갑자기 날아온 운철흑곤을 피할 수 없었다.

검은 곤봉은 반투명의 보호막을 뚫고 유안의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유안의 피부에 있는 녹색 각질층 때문에 몸을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다.

갑자기 검은색 물결이 곤봉을 중심으로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 물결에 둘러싸인 유안의 눈빛과 몸이 흔들렸다. 마치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연나는 운철흑곤으로 물리적 공격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기인 신혼(神魂) 공격을 펼친 것이었다.

천위의 경지에 있는 실력자 유안도 그 공격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공격을 펼친 뒤 연나의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점차 어두워졌다. 연나는 몸의 기운이 급격히 쇠한 듯, 허공에서 몇 번 돌고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연나!”

석목은 눈앞에서 연나가 두 동강이 나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으아아!”

그는 격노하며 포효했다. 몸속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하더니, 갑자기 전신에서 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근육이 솟아나오면서 피부에서 은색의 털이 솟아났다. 이어 몸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순식간에 포악한 요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흰 원숭이가 되었다.

석목이 이번에 변신한 거대 원숭이는 이전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몸의 크기는 이삼 장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 원숭이가 뿜어내는 기운은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비록 지금의 유안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대등한 수준이었다.

거대 원숭이의 두 눈은 금색이 아닌 선홍색이었고, 그 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왼손은 여전히 새까만 그대로였다.

흰 거대 원숭이가 땅에서 솟아오르며 울부짖었다. 원숭이는 눈을 빛내며 앞발에는 운철흑도를 쥐고 있었는데, 몸이 커지니 검이 작아져서 마치 비수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검은 빛을 발하는 운철흑도는 마치 검은 태양 같았고, 거대한 위력이 뿜어져 나왔다. 연나의 운철흑곤이 지닌 위력보다 훨씬 강했다.

한 줄기 검은빛이 거대 원숭이의 손에서 날아갔다. 그것은 산과 같은 검은 도광으로 변해서 유안의 머리를 베려 했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유안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허공의 추선대가 빛을 발하며 내려왔고, 그것은 수십 배로 커지더니 검은 방패가 되어 운철흑도를 막아냈다.

운철흑도의 검은 도광과 방패로 변한 추선대의 검은 빛이 서로 부딪치며 천지를 흔드는 굉음을 냈다. 수십 장 내의 기류가 격하게 진동하며 칠흑 같이 어두운 균열이 나타났지만, 곧 다시 사라졌다.

추선대는 표면에서 검은빛을 반짝이며 거의 파괴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필사적으로 운철흑도를 막아냈다.

그때 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린 유안은 비로소 눈앞에 있는 흰 거대 원숭이를 똑바로 보았다. 그는 원숭이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란 듯했다.

유안은 곧 주문을 외우며 검은 빛을 움직였고, 그것을 추선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추선대의 표면에 무수한 흑색 부문이 떠올랐고, 그것이 뿜어내던 빛이 자리를 잡더니 운철흑도와 함께 허공에 떠 있었다.

유안은 발을 굴러 몸을 뒤로 돌리면서, 손을 뻗어서 가슴 쪽에 꽂힌 운철흑곤을 뽑으려 했다.

이는 보통사람에게는 치명상에 해당했지만, 이미 시체가 된 유안에게는 평범한 상처에 불과했다.

흰 거대 원숭이는 운철흑도가 저지당하는 것을 보면서 격렬하게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유안의 행동을 보다가 운철흑곤으로 시선이 향했다.

은빛 거대 원숭이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팔을 들어올렸다. 얼핏 보기에는 느려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우르르! 쾅쾅!

유안의 가슴에 꽂혀 있던 운철흑곤이 검은 태양처럼 빛을 내더니 갑자기 폭발했다.

이어서 그곳에서 날아오른 검은 빛이 거대 원숭이의 손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 원숭이의 손에 운철흑곤이 생겨났다.

한편 유안의 몸은 날아가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그의 가슴 부분이 갈라지더니 뼈가 드러났다.

그러나 이 상처는 보기에는 심각해보였지만, 지금의 유안에게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유안의 몸이 다시 일어나 눈에서 영혼의 화염을 불태우며 검은 낫을 휘둘렀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반월의 검은 빛이 흰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흰 거대 원숭이의 손에 있는 운철흑곤이 움직이더니, 검은색의 무지개가 되어 튀어나왔다.

쾅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운철흑곤과 반월의 검은 빛이 서로 부딪치며 검은 빛을 뿜어냈는데,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유안의 손에 있는 검은 낫이 흔들리며 다시 공격하려 할 때, 그의 앞에서 흰 그림자가 반짝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왼손 주먹을 쥐고 유안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 그림자는 새까만 왼손 주먹을 날리는 동시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고, 붉은 불꽃 속에 금색의 불빛이 섞여 있었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거센 불길이 타오르면서 유안에게 다가갔다.

유안은 기겁을 했지만 피할 곳이 없었고, 손에 들린 검은 낫으로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쾅!

검은 낫이 붉은 왼쪽 주먹의 일격에 부서지면서 붉은 불꽃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나 붉은 왼쪽 주먹의 힘은 약해지지 않고 유안의 머리를 맹렬하게 가격했다.

“안 돼!”

우지직!

유안의 애달픈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그의 머리가 곧바로 터져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몸뚱이도 강한 힘에 의해 불바다에서 튕겨져 날아갔다. 육신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더니 회색 안개를 뿜어내면서 추선대의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유안의 몸뚱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유안의 통제에서 벗어난 추선대도 운철흑도에 의해 날아갔다. 그것은 비틀거리며 수십 장 거리의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일부분이 그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흰 거대 원숭이는 일격을 날리고 나자 눈에서 포악함이 사라졌고, 거대한 몸집에서 은색 빛을 발했다. 그 뒤 은색 깃털이 빠르게 벗겨지고 몸이 급격히 작아지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석목의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어서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석목의 몸속에 있는 진기가 다 빠져나갔고, 특히 흰 원숭이의 마지막 공격 후 기혈도 모두 빠져나가서 몸을 감싸고 있던 붉은 진기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사방에서 사령의 기운이 계속 흘러나와 생기가 다 빠져나가는 듯해서,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었다.

석목은 근처에 있는 연나를 보았다. 그녀는 아주 느린 속도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서 석목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석목은 허공의 추선대를 본 뒤 깊이 숨을 내쉬고, 천천히 단약을 한 알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솟아나는 힘에 의지해 석목은 그곳으로 기어 올라갔다. 수십 장의 짧은 거리도 지금의 그에게는 아주 긴 여정과 같았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사령의 기운이 자신을 잠식하는 것을 힘겹게 견뎌냈고, 두 손을 번갈아가며 한 걸음씩 기어갔다.

그가 만약 탈태결(脫胎決)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 진즉에 견디지 못했을 것이었다.

족히 한 식경이 지난 후 석목은 마침내 추선대의 검은빛이 감싸고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감싸던 사령의 기운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고, 안도감에 몸의 힘이 빠졌다.

조금 전 먹었던 단약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석목은 기력을 조금 회복했다. 그는 몸을 돌려 앉아서 양손에 중급 영석을 들고 진기를 흡수했다.

붉은빛이 그의 몸속에 들어오면서 안색도 조금씩 호전되었다.

잠시 뒤 석목은 일어나서 오른손을 휘두르며 무형의 공혼법련(*控魂法鏈: 쇠사슬의 명칭)으로 조심스럽게 추선대를 묶었다.

석목은 추선대가 검은 빛을 발할 뿐 그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한 손으로 쇠사슬을 거두었다.

그는 추선대를 손에 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추선대의 겉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벽돌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금색의 눈으로 살펴본 후에야 추선대의 표면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심오한 부문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발견했다.

부문에 조예가 깊은 석목도 추선대의 부문들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무언가를 알아내지 못한 석목은 손바닥의 빛을 비추어 추선대에 영기가 스며들도록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석목이 영기를 스며들게 한 이후 추선대와 자신의 사이에 아주 약한 모종의 연결점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검은빛의 발산 범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석목은 검은빛이 자신에게 비추게 한 뒤, 일어나서 근처에 떨어져 있는 운철흑도와 곤봉을 거둬들였다.

그때 근처에 있는 연나가 휘청거리며 일어나더니 다른 쪽으로 불안하게 걸어갔다.

그녀의 뼈에는 여전히 많은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회복을 한 후에는 두 눈에 있는 영혼의 불꽃도 안정되었고, 일어서서 움직일 수도 있었다.

석목은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려 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 필요 없어.”

연나는 석목을 제지한 후 거리낌 없이 영롱한 해골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무야의 해골이었다. 유안에게 궤멸을 당한 무야의 두 눈에 있는 영혼의 불꽃은 이미 꺼졌고, 완전히 죽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연나는 오른손으로 그 해골을 저장반지에 담았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연나는 몸을 돌려서 석목에게 말했다.

“같이 가자.”

연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돌아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서 머리가 없는 해골을 본 뒤, 더 말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다.

* * *

석목은 연나를 따라서 한 시진 반을 걷고 나자, 사령계의 황량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황량한 사막을 지났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적갈색의 자갈뿐이었다.

한참을 간 후에야 석목은 산 속에 적지 않은 사령생물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 몇은 기운이 매우 강렬했으며 실력이 낮지 않았다.

석목은 쉬지 않고 연나를 따라갔는데, 가는 길에 우연히 자신들에게 접근해오는 사령생물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연나를 보자 예외 없이 도망갔다.

계속 걷던 연나는 마침내 높은 제단 옆에 멈춰 섰다.

그 제단은 사막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적갈색의 자갈을 쌓아 만든 것이라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제단을 돌아보며 상당히 큰 핏빛 호수를 보았다.

“여기에는 이런 호수가 많아. 파괴된 영혼의 화염들이 기류를 따라서 자주 이곳으로 와.”

연나가 말했다.

그제야 석목은 그 핏빛 호수 안에 약한 인광(磷光)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연나는 그대로 호숫가에 잠시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 있는 영혼의 화염이 반짝이며 고개를 들어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잠시 후 석목은 사방에서 적지 않은 해골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수는 천여 구는 족히 되어보였다.

석목은 그들이 연나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놀랐다.

“제단 주위를 지켜라. 백 리 이내에 어떤 것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

연나가 두 눈의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명령했다.

해골들은 대답도 않고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무리를 나눈 뒤 사방으로 흩어져 그곳을 지켰다.

석목은 이번에 처음으로 연나의 사령군대를 봤는데, 속으로 많이 놀랐다.

이 사령생물들의 실력은 후천과 선천의 사이에 있었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숫자라면 절대 약하지 않은 세력이었다.

석목은 이전에 천우성에서 유안이 끌어 모았던 사령 군대가 날뛰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 유안 등 명월교의 사람들이 왜 사령 군대를 모으기 위해 온갖 애를 썼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만약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령생물들이 일정한 규모가 되어 기동성을 갖춘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되어 어떤 패거리든, 심지어 종파까지도 상대할 수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혼사(魂師)가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군.’

사실 석목은 혼사로서는 다른 세계나 생물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했고, 연나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연나는 석목은 개의치 않고 명수호(冥水湖) 쪽으로 가서 땅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원형과 삼각형, 그밖에 기이한 곡선들로 이루어진 도안이 호숫가에 나타났다.

석목은 말없이 연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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