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추선록(墜仙錄)
도안을 다 그리고 난 후 연나는 무야의 해골을 저장반지에서 꺼내 그 위에 가로눕혔다. 그리고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더니 두 손으로 계속해서 오묘한 수결을 펼쳤다.
위잉.
소리와 함께 땅 위의 도안이 빛났다. 그러더니 기이한 붉은빛이 무야의 해골을 빨갛게 비추었다.
그러자 고요하던 명수호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수면 위로 파문이 일었고, 이어 호수의 물이 교룡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급강하면서 붉은빛이 비치는 곳으로 떨어졌다.
호수의 물은 붉은빛의 안으로 들어간 후 조금씩 잠잠해지더니, 무야의 유해를 에워쌌다.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별빛 같은 점들이 반짝이며 무야의 눈가로 흘러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수는 그제야 평정을 되찾으며 흔들림도 멈췄다. 도안에서도 더 이상 붉은빛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무야의 눈가에 영혼의 화염이 모이더니 두 개의 남색 불꽃으로 변했다.
“주인님!”
부활한 무야가 곧바로 연나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너는 여기서 수련하면서 회복하도록 해라.”
연나는 그를 보고 분부했다.
“네, 알겠습니다.”
무야는 대답한 후 곧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수련에 들어갔다.
“연나, 나 말이야…….”
석목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수련을 하고 제단에서 멀리 떨어지지 마.”
연나는 석목이 뭔가 물어보려는 것을 눈치 챈 듯 그의 말을 끊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명수호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붉은빛 호수에 몸을 담갔다.
석목은 연나가 명수호 중앙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사령계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원래의 세계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다행히 추선대를 가지고 있고 연나의 사령 군대가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잠시 동안은 안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더니 빈 곳에서 가부좌를 틀어 눈을 감고 수련에 들어갔다.
반나절 후, 석목은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미 알던 대로 이 사령계에서는 근본적으로 천지의 영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호흡을 통해 법력을 회복하거나 수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중얼거리다가 저장반지에서 두 개의 중급 영석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그러자 영석에서 붉은빛이 나와서 그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 * *
보름 후, 석목은 두 눈을 떴다.
그는 하얗게 된 두 영석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금빛이 된 눈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본 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현재 그의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몸속의 진기와 법력은 다시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석목은 일어나서 몸을 푼 다음 다시 가부좌를 틀고, 한 손을 내저었다. 공중에 떠 있던 추선대가 검은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돌아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몸을 회복시키는 기간에도 계속해서 이 추선대를 조종해보려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시도와 연구를 한 끝에 석목은 명월교의 이 법보에 대해 많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을 완전히 파악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석목은 추선대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선도(仙道)의 영을 가지고 있고, 영은 모두 공허함으로 돌아가고 영상(永殤)으로 떨어진다. 생사는 되풀이되고 윤회에는 모두 인과가 있다. 온 세상의 기운이 살아 있고 만귀(万鬼)가 흥하며…….”
석목이 주문을 내뱉자 추선대 표면에 있는 어두운 무늬들이 빛을 발하더니, 잇따라 분리되어 주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석목은 수일 전 무의식중에 추선대가 아무 이유 없이 격렬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금빛의 눈으로 살핀 결과 그 안에 <추선록>이라는 경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읊은 주문은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그 경문은 곧바로 사라졌고, 그 주문의 내용이 옛스럽고 난해했기 때문에 석목은 그중 첫 단락만 기억할 수 있었다.
이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추선록>의 내용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석목은 기대 이상의 성과에 매우 기뻐했다.
일단 그가 주문을 외면 추선대가 위력을 발휘했는데, 이를 통해 추선대를 제련할 수 있었고 그것과 연결성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석목이 주문을 더 많이 외울수록 추선대가 더 큰 빛을 냈고, 표면에 떠오르는 주문도 더욱 선명해졌다.
그 상태에서 석목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추선대가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손을 거두면 다시 돌아왔다.
석목은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그가 주문을 읊조리며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검은빛이 손끝에서 날아가서 추선대 안으로 들어갔다.
추선대가 흔들리더니 석목의 머리 위로 날아와서 빙빙 돌았다.
잠시 후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주위 사방에서 사령의 기운이 모여서 추선대로 들어와 회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추선대가 뿜어내는 검은 빛이 그를 휘감았지만 여전히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놀라서 추선대를 멈추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면서 난폭하고 음산한 힘이 위에서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매우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만약 그의 심지가 견고하지 않았더라면, 게다가 유안의 실패를 되새기며 조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괴물로 전락했을 것이다.
석목은 공중에 떠 있는 추선대를 보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단전에 받아들인 진기를 정화한 후 다음 계획을 세웠다.
이후 십 여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연나는 여전히 명수호에서 나오지 않았고, 무야 역시 이전과 같이 호숫가에 앉아서 호수에서 나오는 붉은 안개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석목은 그 시간 동안 <추선록>을 계속 연구하면서, 숨겨져 있는 능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모든 육신은 이 추선대를 통해서 직접 사령계로 진입할 수 있으며, 또 추선대의 비호 아래 사령의 기운에 침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석목은 일찍이 그 덕을 톡톡히 본 바 있었다.
게다가 석목을 흥분시킨 것이 또 있었다. 이 방법으로 공간과 공간 사이의 통로를 열 수 있으며, 다시 그가 있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사용하려면 추선대를 철저히 정화해야만 가능했다.
또 만약 추선대를 통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자리를 정해서 제단을 쌓은 뒤 사용해야 했다. 함부로 추선대를 이용해서 통로를 지나다가는 공간의 난기류로 인해 길을 잃어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석목은 추선대를 정화시킬 방법이 없었다. 또 석목이 현재 사령계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는, 제단을 쌓기 위해 필요한 재료도 거의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연나가 명수호에서 나오기를 기다린 후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그 외에도 석목은 추선대 안에 작은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곳의 공간과 사령계는 매우 비슷해서 영력과 천지의 원기가 없으며, 사령의 기운만이 가득했다.
* * *
수 일이 지난 어느 날.
석목은 명수호에서 멀지 않는 골짜기에 서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추선대가 천천히 돌면서 검은빛을 뿜어냈다.
석목의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해골병사들이 있었으나 연나의 지령을 받아서인지, 이 해골들은 석목을 보고도 못 본체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구역에서 목적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석목은 잠시 지켜보다가 주문을 외며 한 손을 휘저었다.
추선대의 검은 무늬가 밝아지더니 부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반짝이면서 해골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쉬익!
추선대에서 검은빛이 날아오르더니 아래 있는 다섯 해골병사를 휘감았다.
해골병사들은 그 검은빛 속에서 모두 자신도 모르게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불타오르는 게 상당히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석목은 이를 보고 법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추선대의 어두운 무늬가 다시 밝아지면서 검은빛이 되돌아왔다. 검은빛에 휩싸여 있던 병사들은 빛과 함께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추선대를 자신의 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두 눈을 금색으로 빛내며 추선대 안을 들여다보았다.
석목은 다섯 해골병사들이 그 공간에서 허둥지둥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석목은 법결을 바꾸었다. 그리고 일전에 국 사숙이 그에게 가르쳐주었던 구령술에 따라, 신식을 빌려서 자신의 영혼의 인장을 해골병사들에게 주입했다.
비록 해골병사들의 실력이 후천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들은 전혀 저항하지 않고 석목의 충복이 되었다.
“역시 이런 것이었구나!”
석목의 마음에 갑자기 기쁨이 일었다.
석목은 멀리서 추선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추선대에서 검은빛이 날아오르며 멀지 않는 산골짜기에 떨어졌고, 그가 검은빛을 거두어들이니 방금 사라졌던 해골병사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는 <추선록>에 기록된 것과 일치했다. 추선대는 사령생물을 복종시킬 뿐 아니라 그것들을 저장해서 휴대할 수도 있었다.
만약 석목이 많은 사령생물을 복종시켜서 추선대에 넣으면 사령 군대를 데리고 다니다가 싸움이 일어났을 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석목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더 많은 사령생물들을 얻어서 자신의 힘을 키우고 싶어졌다.
* * *
이후 석목은 멀리 가지 않고 명수호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고, 며칠 후 석목은 제단을 떠나 바깥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연나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막무가내로 날아가지는 않았고,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갔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제단에서 하루가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산골짜기에 크지 않은 명수호가 있었다. 그곳에 몸집이 제법 큰 뼈 코끼리가 있었는데, 그 코끼리의 실력은 추측하건대 지계 초기 수준이었다.
석목은 오는 동안 이 코끼리가 선천 수준의 뼈 늑대 같은 사령생물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뼈 코끼리는 힘이 약하지 않아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으며, 곧 뼈 늑대를 패퇴시켰다.
석목은 그저 지나가는 길에 멀리서 본 것이었지만, 그 뼈 코끼리는 상당히 인상 깊었다.
며칠의 시도 끝에 그는 추선대가 흡수할 수 있는 사령생물의 경지는 그걸 소유한 자의 경지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계 초기의 실력을 가진 석목이 복종시킬 수 있는 대상은 자연히 지계 초기의 사령생물까지 가능했다.
석목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날아서 어두운 산들에 둘러싸인 골짜기 앞에 도착했다.
그는 주위를 살핀 후 녹색 피풍을 꺼내 입고 자신의 움직임을 숨겼다. 그리고 추선대를 조종해서 절벽을 따라 골짜기로 향했다.
그 산골짜기는 자갈로 뒤덮여 있었는데, 살기가 느껴졌다.
석목은 거대한 적갈색의 암석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격렬한 굉음이 들려왔다.
산비탈 쪽에서 작은 자갈들이 연이어 굴러 떨어지면서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켰다.
석목은 급히 뒤로 물러나 암석 뒤로 피한 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깊은 산골짜기 안에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동물이 있었다. 그리고 키가 오륙 장 정도에 몸 길이가 십여 장 정도 되는 뼈 코끼리가 왼쪽으로 몸을 들이받으며 위아래로 날뛰고 있었다.
그 코끼리는 자신의 등 쪽을 주위의 암벽에 부딪쳤고, 고개를 돌리서 뒤를 보더니 구부러진 커다란 상아로 등을 찔러댔다.
석목은 그 장면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마치 어렸을 때 동네에서 본 작고 검은 개가 떠올랐다. 그 개는 여름이 되면 그 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이를 잡곤 했다.
하지만 뼈 코끼리의 등 쪽에는 굵직한 뼈대가 있는 것 말고는 다른 특별한 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