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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09화 (309/916)

309화. 굴복

갑자기 뼈 코끼리가 코를 흔들더니 입에서 덩어리진 새파란 안개 여러 개를 뿜어냈다. 안개는 주위로 퍼지면서 그중 일부가 석목이 있는 암석에까지 닿았다.

석목은 이를 보고 급히 뛰어서 도망쳤다.

팡!

푸른 안개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하마터면 석목에게 닿을 뻔했다.

푸른 안개가 퍼지자 암벽의 표면에 푸른색 막이 생겼다.

지지직!

그 막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상처가 난 것처럼 울퉁불퉁해졌다.

석목은 오른손에 운철흑도를 쥐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뼈 코끼리는 새파란 안개를 뿜어낸 이후 계속 좌우로 부딪치며 자신의 등 쪽을 물고 있었다.

석목은 자신의 존재가 들키지 않은 것을 알고 안심했다. 그는 더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 뼈 코끼리가 갑자기 머리를 푹 숙이더니 소리 없이 포효했다.

석목의 눈앞이 흐려지면서 갑자기 뼈 코끼리의 머리 위에서 왜소하고 투명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고, 그것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또다시 사라졌다.

코끼리의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자 석목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잠시 후, 석목은 뼈 코끼리의 눈가에 여러 개의 금이 생겨나 있는 것을 보았다.

석목이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살펴보니, 코끼리 꼬리의 아랫부분에 삐쩍 마른 해골 한 구가 엎드려 있었다.

그 해골은 두 눈에서 옅은 자줏빛 영혼의 화염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수련의 경지는 뼈 코끼리와 비슷한 정도였다. 다만 몸집이 일반 해골 병사의 반도 안될 정도로 왜소했고, 그 때문에 거대한 코끼리 앞에서는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석목을 놀라게 한 것은 이 작은 해골의 온 몸이 수정처럼 반투명하고, 양손에 뼈로 된 반투명의 단도가 쥐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정 해골은 이 뼈 칼을 거꾸로 쥔 채 몸을 구부리고 공격할 기회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뼈 코끼리가 잠시 틈을 보이자 수정 해골은 곧 뼈 코끼리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두 개의 단도를 휘둘러 코끼리의 눈가를 찔렀다.

석목은 뼈 코끼리의 눈가에 금이 몇 배 더 커지는 것을 보며 순간 얼어붙었다.

자신에게 영목(靈目)이 없었더라면, 그는 수정 해골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해골은 몸이 거의 투명에 가까워서 공격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 수정 해골은 한 번 공격을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았고, 다시 뛰어내려 몸을 감춘 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땅 위에 엎드려 다음 공격할 때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뼈 코끼리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몸 전체에 금이 갔다.

‘그야말로 타고난 자객이군!’

석목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해골은 몸을 숨기는데 뛰어난 데다 공격을 시작하면 인정사정없었다. 그야말로 자객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수정 해골은 뼈 코끼리가 다시 틈을 보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날아올라 공격해 중상을 입혔다. 그의 검광이 스친 자리에서 코끼리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 수정 해골은 다시 밑으로 숨지 않았다. 그는 몸을 반짝이더니 뼈 코끼리의 등 위에 올라가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쌍검으로 매섭게 내려찍었다.

뼈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 적의 괴롭힘에 거의 미칠 것처럼 보였고, 이성을 상실한 코끼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하자 칠팔 장 정도 되는 거대한 그림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이어서 그 그림자는 입을 크게 벌리며 끈적한 푸른 안개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림자는 곧 사라졌고, 안개를 발견한 수정 해골은 그것이 몸에 닿기 전에 재빨리 코끼리의 등 쪽으로 뛰어올라 피했다.

우지직!

그 끈적한 푸른 안개는 뼈 코끼리의 뼈까지 부식시켰다. 이미 금이 가 있던 뼈들이 부러지면서 조각나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수정 해골은 성공적으로 코끼리에게 공격을 가한 뒤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뼈 코끼리의 자줏빛 영혼의 화염이 흔들리며 어두워질 때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앞으로 한 걸음씩 움직였다.

어느덧 뼈 코끼리의 힘이 다 소진되자 수정 해골은 코끼리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쌍도를 꺼내 눈을 향해 마지막 치명타를 날리려 했다.

하지만 쌍도를 뻗으며 두 눈의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던 수정 해골이 다시 두 손을 거두었다. 한쪽으로 날아오른 그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정 해골은 몸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고, 갑자기 검은색 빛이 그의 머리 위로 와서 그를 휘감았다.

검은빛은 허공에 갑자기 떠오른 검은 벽돌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벽돌은 바로 추선대였다.

수정 해골은 검은빛 아래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두 다리는 힘겹게 버티고 있었지만, 굽히지는 않았다.

휙!

두 개의 불덩이가 멀리서 날아왔다. 그것은 수정 해골의 두 다리를 쳐서 무릎을 꿇게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추선대는 어두운 문양을 반짝이며 검은빛을 다시 회수했다. 그러자 수정 해골이 뼈 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석목은 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신식으로 빠르게 추선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는 곧 깜짝 놀랐다. 추선대 안에서 그 수정 해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고, 곧 뭔가를 깨달은 듯 빠르게 몸을 움직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투명의 왜소한 그림자가 조금 전 석목이 서 있던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양손에 들린 검이 석목이 있던 땅 위에 꽂혔다.

수정 해골은 하늘로 날아올라서 그를 습격하려 했던 것이었다. 만약 석목이 제때 알아채고 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수정 해골에 의해 머리가 갈라졌을 것이다.

수정 해골은 일어서서 다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때 석목이 보일 듯 말 듯 한 푸른 그림자로 변해서 수정 해골을 향해 다가갔고, 운철흑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수정 해골은 놀라며 두 단도를 교차해 석목의 흑도를 막아냈다. 그러나 석목의 거대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땅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석목이 입을 벌리자 흰색 기류가 수정 해골의 머리 위로 올라갔고, 곧 그의 몸이 흔들리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수정 해골은 자신이 석목을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몸을 일으켜서 멀리 도망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그의 발밑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녹색 부적이 나타났고, 그 부적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터져버렸다.

푸른빛에서 녹색 덩굴이 나오더니 그 수정 해골을 단단하게 휘감았다.

석목의 금빛 눈이 반짝이자 덩굴은 수정 해골을 꽉 붙들었다. 이어 해골의 머리 위에서 추선대가 검은 빛을 뿜어내서 그를 휘감았다.

수정 해골은 이제 두 발이 묶여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고, 마침내 추선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석목은 눈을 금빛으로 반짝이며 추선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구령술(拘靈術)을 가동해서 수정 해골의 몸에 낙인을 찍고 강제적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 모든 것을 마치고 나서야 석목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본래 이곳에 온 것은 뼈 코끼리를 추선대에 집어넣어 부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이 왜소한 수정 해골을 발견한 것이다. 천부적인 자객의 기질이 다분한 이 해골을 잘만 이용하면, 향후 적을 만났을 때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석목은 이번에 얻은 성과에 기뻐하며, 그곳에 더 머무르지 않고 명수호로 빠르게 돌아왔다.

* * *

하루가 지난 후, 석목은 명수호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가 떠나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호수 주위에 있는 사령생물들은 연나의 지령에 따라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단, 그들은 석목만은 보고도 못 본 척했기 때문에, 그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석목은 명수호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나는 여전히 호수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고, 무야도 이전의 자세를 유지하며 호수 표면에서 떠오르는 붉은 안개를 마시고 있었다.

사령계의 하늘은 어두침침하고 땅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석목은 변함없는 주위 풍경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약간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 호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눈꼬리를 올렸다. 능천봉의 비밀창고에서 얻은 나무상자를 아직 열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소문에 의하면, 백원왕은 성계의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신비로운 물건을 능천봉 비밀창고에 남겨두었다고 했다.

‘설마 그것이 이 나무상자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석목은 흥분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비록 이미 흰 원숭이 요수의 정혈을 얻었고, 천위의 존재인 창원왕의 정혈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었다.

석목은 손을 휘둘러서 진묘계에서 나무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꽤나 묵직했다.

나무상자의 뚜껑은 상당히 견고해 보였고, 위쪽에 붙여진 몇 장의 은색 부적이 그 상자를 더 튼튼하게 봉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나무상자를 열려면 이 부적들을 먼저 떼어내야 할 것 같았다.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가 나무상자를 앞에 놓고 진기를 모아서 은색 부적의 한 귀퉁이를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그것은 의외로 손가락으로 살짝 뜯자마자 쉽게 벗겨졌다.

은색 부적이 희미하게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석목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은색 부적 위에 새겨진 부문은 매우 복잡해서, 석목이 그려낼 수 있는 상급 부적을 훨씬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너무나 쉽게 그것을 떼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너무 오래되어 부적이 효력을 잃은 건 아닐까?’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고,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석목이 마지막 부적을 떼어내자 나무상자에서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나무상자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갑자기 커졌고, 사람 머리만 했던 나무상자는 순식간에 집채만큼 커졌다.

석목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나무상자를 보며 깜짝 놀랐다.

다행히 나무상자가 커진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 몇 장의 은색 부적이 일종의 봉인 역할을 해서 나무상자의 크기를 줄여놓았던 것이었다.

석목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니 이 나무상자가 무슨 물건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망설이다가 기운술(氣雲術)을 가동해서 거대한 나무상자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상자의 위아래를 살펴보다가 두 손으로 뚜껑의 옆을 잡아서 열려고 했다.

그런데 뚜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나무상자의 뚜겅은 겉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았으나, 그 무게가 만 근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의 석목에게는 이 정도 무게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려라!”

석목은 낮은 목소리로 외치며 두 팔에 힘을 주어 뚜껑을 열고, 그것을 옆으로 던져놓았다.

그러자 석목의 눈앞으로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아래에서 엄습해 와서 오싹함이 느껴졌고, 곧 붉은빛이 주위를 감쌌다.

석목은 정신을 집중해 나무상자를 바라보다가 순간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숨기며 곧바로 운철흑도를 움켜쥐었다.

네모난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금빛 교룡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교룡의 머리 표면은 거대한 금색 비늘로 뒤덮여 있어서 눈부신 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구부러진 금색 뿔 하나가 나 있었고, 입가에는 두 개의 금색 수염이, 그리고 입 안에는 몇 개의 큼직한 이빨이 솟아 있었다.

교룡의 머리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풍스러운 기운을 곳곳에서 뿜어냈고,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했다. 감고 있는 두 눈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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