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머리
마음을 진정시킨 석목은 상자를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나서야 교룡의 머리가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입가의 금빛 수염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는데, 목의 단면이 평평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예리한 검에 베인 듯했다.
그제야 석목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흑도를 등 뒤에 다시 꽂은 뒤 상자 쪽으로 내려갔다.
그는 나무상자 옆에 서서 안에 있는 교룡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교룡의 머리는 꿈속에서 흰 원숭이가 죽인, 머리가 아홉개 달린 교룡과 매우 흡사했다. 이 교룡의 머리가 담긴 나무상자가 창원왕에 의해 봉인되어 능천봉에 있었으니, 꿈속의 머리 아홉 개 달린 금빛 교룡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석목이 기억하기로는, 꿈속에서 흰 원숭이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그 교룡을 분명히 삼켜버렸었다.
‘설마 그 후에 꿈에서 흰 원숭이를 죽인 건 더 큰 교룡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 교룡은 생전에 매우 실력이 뛰어나서 천위를 훨씬 능가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교룡의 머리는 백원왕이 남긴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다. 황룡 도인은 온갖 수를 다 써서 이것을 찾으려 했는데, 혹시 그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석목은 고개를 젓고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다시 교룡의 머리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려 했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그 교룡이 두 눈을 번쩍 뜬 것이다.
교룡의 눈에서 눈부신 금빛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은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교룡이 갑자기 몸을 떨며 움직이자 마치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금색 비늘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눈앞에 있는 교룡이 금빛을 반짝이며 무형의 힘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듯 가볍게 날아올랐다.
놀란 석목은 수십 장 정도의 거리를 날아가고 나서야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하얀 구름이 떠올라서 그의 몸을 받쳤다.
멀리서 눈부신 금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거대한 교룡의 머리가 나무상자에서 천천히 날아올랐고, 교룡의 머리가 금빛이 반짝이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입을 벌리고 거대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거대한 소리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소리가 퍼져나간 곳은 거세게 진동하며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물결을 만들어냈다.
근처에 있던 사령생물들은 이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가루로 부서져버렸다. 명수호 옆에 있던 무야는 꽤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석목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진기의 보호막과 기령벽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소리의 파동이 몸 전체를 휘감자 진기의 보호막과 기령벽은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거대한 소리가 석목의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지?’
석목은 다시 십여 장을 뒤로 물러난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금빛 교룡의 머리에서 뿜어나오는 금빛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울부짖는 소리도 멈췄다. 이어 금빛 그림자가 교룡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마치 머리에서 영혼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금빛 교룡의 영혼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근처에 있는 사령생물들을 발견했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더니 입을 벌려서 그 생물들을 빨아들였다.
“후우웁!”
근처의 사령생물들이 유체 이탈을 일으켰다. 그들의 영혼은 일제히 금색 교룡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순간 금색 교룡의 영혼이 빛을 반짝였고, 몸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석목은 이를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우르르!
그때 사방에서 사령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금색 교룡의 머리로 모여들었고, 무수한 검은색 안개가 나타나 교룡의 머리를 감쌌다.
몇 호흡이 지난 후 교룡은 검은 안개로 된 몸통을 만들어냈다. 그 크기가 족히 이삼십 장은 되어보였다.
안개로 뭉쳐진 몸통은 진짜는 아니었지만 위압감을 드러냈는데, 이전의 유안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금색 교룡의 머리는 자신의 몸체를 보면서 희미하게 불만스러운 듯한 소리를 냈다.
그는 몸을 돌려 커다란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순간 오싹함을 느끼며 재빨리 벗어날 궁리를 했다. 교룡의 머리와 백원왕이 남긴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교룡의 온 몸은 매우 희귀한 영기의 자원으로 구성돼 있기도 했다.
“으르렁!”
교룡이 성난 포효와 함께 놀라운 속도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석목은 일찌감치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재빨리 움직여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며 교룡의 공격을 피했다.
교룡은 공격이 빗나가자 거대한 몸집을 유연하게 흔들더니, 꼬리를 들어 서 번개처럼 석목의 몸을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석목의 몸이 운석처럼 바닥으로 떨어져서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강철 같은 석목의 몸은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는 재빠르게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고, 붉은빛을 내뿜으며 머리 위에서 붉은 원숭이 법상을 만들었다.
법상이 두 손을 흔들자 빛이 반짝이며 거대한 화염의 검 그림자가 나타났고, 그 그림자에서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석목의 가슴에서 검은빛이 반짝이자 검은색 비늘이 돋아났다. 비늘 위에서는 검은빛이 감돌았다.
석목은 교룡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룡은 이제 막 깨어났기 때문에 기세는 엄청났으나 실력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룡의 일격을 맞고 단순히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흑도가 진동하며 반짝이더니 수 척의 길이 에 달하는 검은 빛을 만들어냈다.
“하앗!”
석목은 크게 소리치며 검은 그림자가 되어 교룡을 향해 돌진했다. 그가 손가 쥔 운철흑도를 휘두르는 동시에, 붉은 원숭이 법상도 화염의 검을 함께 내리쳤다.
촤악!
검은빛과 붉은빛의 검광이 동시에 교룡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금색 교룡은 눈과 입에서 금빛을 내뿜으며 석목의 흑도에 맞섰다.
챙!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원숭이 법상이 휘두른 화염의 검 그림자가 교룡의 금빛에 부서졌지만 석목의 검영은 기세등등하여 금빛을 쪼갰고, 그 뒤에 있는 교룡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교룡은 운철흑도의 위력을 깨닫자 머리를 낮추어서 거대한 뿔로 들이받았다. 뿔 위로 눈부신 금빛이 반짝이더니 엄지손가락만 한 짙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빛 광선이 지나간 곳마다 허공이 진동했다.
금빛 광선과 운철흑도가 서로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이어 금색 교룡의 몸이 흔들리더니 십여 장 거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운철흑도도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검은빛이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흑도에서 날카로운 힘이 전해지면서 석목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석목은 약간 놀랐으나, 공법을 발동시켜서 거리를 좁히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가 기합을 넣자 체내의 진기가 다시 흑도 속으로 주입됐다. 운철흑도가 다시 검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뒤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불의 날개가 돋아났다.
불의 날개를 펼친 석목은 한 줄기의 붉은빛이 되어 교룡을 향해 돌진했다.
교룡의 몸은 사령의 기운을 빌린 것이었기에 힘이 한참 부족했고, 움직이는 속도도 매우 느렸다.
붉은빛이 된 석목이 붉은 교룡의 위아래를 돌았고, 이어 한 줄기의 검은 검광이 날아와서 금색 교룡을 베었다. 검광은 교룡의 머리는 베지 못했지만, 사령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교룡의 몸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교룡의 머리 꼭대기에서 금빛이 반짝이면서 영혼이 다시 떠올랐고, 영혼은 낮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근처에서 사령의 기운이 소환당한 듯 다시 모여들어 교룡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중상을 입었던 교룡의 몸이 곧 회복되었고, 불과 몇 호흡 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석목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흥!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불의 날개가 반짝였다. 그러자 석목은 곧 붉은 그림자가 되어 교룡의 머리 위에 있는 영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교룡이 사령의 기운을 흡수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석목은 이미 교룡의 머리 위까지 날아와 있었다.
그러자 교룡의 영혼은 놀라서 몸을 움츠리며 머리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금색 교룡이 갑자기 머리를 들어 입을 크게 벌리더니, 석목을 향해 금빛을 뿜어냈다.
“네가 진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먼저 피했겠지! 달랑 머리 하나 가지고 말썽을 부릴 생각은 말고 얌전히 상자 안으로 들어가 있어라!”
석목이 분노에 차서 외쳤다. 동시에 그의 왼손 주먹이 붉은빛을 내며 날아갔다.
굵은 불기둥을 뿜어내는 석목의 주먹과 부딪히자, 금룡의 금빛이 곧바로 사라졌다.
석목의 왼손은 기세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맹렬하게 금룡의 머리를 공격했다. 동시에 뒤에서 검은빛을 내며 제각기 다른 뱀의 형상을 한 다섯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석목의 토템이었다.
번개처럼 날아간 다섯 개의 뱀 형상이 움츠려 있는 교룡의 영혼을 물었다.
이어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룡은 석목의 왼손에 붙들려 날아가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땅에 검은색의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땅 주위는 지진이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고, 검은 구덩이를 중심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며 많은 먼지를 일으켰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석목이 만들어낸 뱀에게 붙잡히자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계속해서 물어뜯길 뿐이었다.
교룡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영혼의 파동은 다섯 마리 뱀의 그림자를 초월했지만, 홀로 다섯을 상대해야 하니 불리했다.
한참이나 소리 없이 포효하면서 몸부림친 끝에, 금색 교룡의 영혼은 푸른색 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교룡이 두 눈의 금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두 개의 반투명한 금색 빛이 쏘아져 나가서 다른 검은 뱀을 공격했다.
검은 뱀의 그림자가 두 동강이 났다. 검은 뱀의 그림자는 비명을 질렀고, 몸을 둘러싼 빛이 어두워지면서 죽음을 맞았다.
두 마리의 뱀을 연이어 해치운 교룡의 영혼은 몸을 흔들어서 나머지 세 마리를 따돌리려 했다.
그때 검은 검광이 번쩍이며 날아왔다. 그것은 번개처럼 빠르게 금색 교룡의 영혼을 베어버렸다.
검은 검광의 공격으로 교룡의 영혼은 두 동강이 났고, 금색의 빛도 빠르게 희미해졌다.
검은 검광이 다시 번쩍이더니 교룡의 영혼을 산산조각을 내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석목이 운철흑도를 쥐고 있었다.
곧 교룡의 두 눈에서 금빛이 사라졌고, 다섯 마리의 뱀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위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금색 교룡의 영혼을 물고 뜯어서 그대로 삼켜버렸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분노하며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 마지막 남은 교룡의 영혼 조각이 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은 이를 보고 법결을 발동시켰다. 그의 가슴 쪽에서 토템 문양이 빛나자 다섯 마리의 뱀 그림자가 돌아왔고, 하나로 합쳐지더니 마치 큰 고래가 물을 집어삼키듯 가슴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강력한 수혼의 힘이 몸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약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토템 비술을 작동시켜 수혼의 힘을 가슴에 있는 뱀의 토템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