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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11화 (311/916)

311화. 돌파

한 시진은 족히 흘렀을 무렵, 석목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가슴에서 토템문양이 크게 빛을 내더니 다시 구렁이의 토템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섯 마리가 아닌 일곱 마리였다.

가장 늦게 나온 두 마리의 금색 머리는 뱀의 머리라기보다는 교룡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 마치 뱀의 왕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금색 머리 위에는 금빛 뿔이 나 있었고, 입술 주변에는 두 개의 금색 수염이 나부끼고 있었으며, 온 몸은 금색 비늘로 덮여 있었다.

강력한 토템의 파동이 석목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력해진 몸 안의 힘을 느끼며 기뻐했다.

토템의 힘이 가슴에서부터 솟아나와 몸 구석구석으로 흡수되었다.

우르르! 쾅쾅!

석목의 몸이 금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이어 금빛 비늘이 그의 온 몸을 뒤덮었다.

그의 몸이 바람을 불어넣은 듯 부풀어 오르면서 키가 이 척 이상은 더 커졌다. 온 몸을 덮은 금빛 비늘이 반짝이는 게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때 석목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이어 반 척 정도 되는 금색 뿔 하나가 그의 머리를 뚫고 나와서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그 뿔은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고, 때때로 금빛을 반짝였다.

석목은 눈을 감고 체내의 진기와 토템의 힘을 결합시켰다. 그러자 그의 경계가 급상승하더니 두 단계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지계 후기의 경계에 들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육체의 힘도 몇 배는 강해졌다.

석목은 몸속에서 넘쳐흐르는 힘을 느끼며, 흥분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공기 중에서 물결이 일어나면서 땅이 진동해 먼지가 들끓었다.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멈추었다. 뿌연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석목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금빛이 날아올라서 수십 장이나 떨어진 얕은 산봉우리에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주먹이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가 나더니 금색의 인영이 산봉우리를 사이를 날아다녔다. 이어 권영이 날아가서 작은 산봉우리와 땅을 가격했다.

우르르! 쾅쾅!

대지가 진동하며 산봉우리가 흔들렸다.

금빛을 반짝이며 권영이 땅을 때리자 큰 구덩이가 생겼고, 금빛이 산봉우리에 닿자 와르르 무너졌다.

명수호 부근에 있는 사령생물들은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본래 별 감흥이 없던 그들의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타오르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금색 인영은 일각의 시간 동안 산봉우리들을 오가며 난도질을 하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산맥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산봉우리가 무너지고 땅에는 큰 구덩이가 수없이 생겼다.

석목은 큰 구덩이 옆에 서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자 이마 위의 금빛 뿔이 엄지손가락만 한 두꺼운 금색 빛을 발사했다.

쿵! 쿵! 쿵!

금색 빛은 몇 개의 산봉우리를 연달아 뚫고는 먼 허공으로 사라지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얼굴에 기쁨을 드러냈다.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한 그는 어디론가 날아가더니 어느 산봉우리 앞에 닿았다.

산의 암벽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 있는 암석은 녹아내린 흔적이 있었지만, 조금의 균열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잠시 구멍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만족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 금색 광선의 위력은 운철흑도의 검광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 같았다.

이런 비장의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을 돌려서 방금 금색 교룡과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면서 금색 비늘과 이마 위의 뿔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석목의 얼굴색이 변했다.

가슴의 토템 문양이 강한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통제되어 있던 토템의 힘이 갑자기 솟구치면서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석목은 몸이 굳어지면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격하게 떨렸다.

“토템 반서!”

석목은 순간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조금 전에 흡수한 교룡의 영혼이 막강한 탓에, 토템의 힘은 곱절로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 본래의 힘을 훨씬 넘어선 데다, 오랜 시간 변신을 하느라 몸에 수혼의 반서가 일어난 것이었다.

토템의 힘이 솟구치자 금색 교룡의 영혼이 석목의 머리로 들어갔다. 그것은 붉은색의 소인으로 변신한 석목의 원신을 공격했다.

금색 교룡의 그림자는 악랄하고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발톱을 치켜세운 채 위로 날아올랐다.

붉은 소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두 손을 휘둘러서 붉은 빛을 내며 금색 교룡의 영혼과 맞섰다.

금색 교룡이 긴 발톱으로 붉은빛을 갈기갈기 찢으며 붉은 소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은빛이 반짝였다. 은빛 입자들이 갑자기 주위를 지나가더니 금색 교룡 앞을 막아섰다. 바로 탄월식이 흡수한 달빛이었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발톱을 휘두르며 은빛 입자들을 밀어내려 했다.

펑! 펑!

발톱이 달빛의 입자에 닿자 큰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은색의 보름달이 되었다.

은빛은 날아오르면서 금색 교룡의 영혼을 한 겹씩 묶더니 그것을 보름달 쪽으로 끌고 갔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그것은 마치 은색 보름달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빠르게 은색 보름달 안으로 흡수됐다. 은색 보름달은 동그란 입처럼 금빛 영혼을 집어삼켰다.

금색 교룡의 영혼은 비명을 질렀으나 곧 모습을 감추었다.

금색 교룡의 영혼을 삼킨 은빛 보름달은 잇따라 반짝이더니 두 배 정도 커졌다.

교룡의 영혼이 사라지자 격렬하게 떨리던 석목의 몸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석목은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우르르! 쾅쾅!

산산이 부서진 은빛 보름달이 정순한 법력이 되어서 석목의 몸에서 솟구쳤다.

안색이 변한 석목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어 온신술(藴神術)을 발동, 솟구치는 법력을 몸속으로 주입시켰다. 법력은 하늘을 돌다가 결국 단전에 있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석목의 머리 위에 일곱 개의 별빛이 떠올랐다. 별들은 모두 반짝일 뿐만 아니라 더욱 밝아져서 천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곱 개의 별이 하나로 뭉쳐져서 은색 초승달이 되어 은은한 빛을 냈다.

석목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단전 내 법력의 소용돌이는 족히 두 배는 커져 있었고, 강한 법력의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온신술의 15단계를 원만하게 돌파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그는 이미 성계의 범위를 넘어 월계에 진입한 것이었다.

석목은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주문을 외우면서 손을 휘둘렀다.

공중에 이삼십 장 정도 되는 크기의 붉은 불구름이 떠올랐고, 그 안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나더니 붉은빛이 계속해서 번득였다.

석목의 머리 위에 있는 은색 초승달이 빛을 내며 그 불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붉은 불구름은 즉시 끓어오르는 물처럼 용솟음쳤고,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이어 맷돌 크기의 화석(火石)이 구름 속에서 날아올라서 유성처럼 앞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를 공격했다.

쾅! 쾅!

붉은 화염의 비가 하늘을 가득 채우며 쏟아졌고, 그것은 귀가 찢어질 듯한 큰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순식간에 몇 개의 산봉우리를 잠기게 했다.

산봉우리들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두 붕괴되었다.

화염의 비는 그 여세를 몰아서 땅에 커다란 구멍을 낸 뒤에야 힘이 다했고, 하늘의 불구름도 사라졌다.

석목은 눈앞에 펼치진 광경을 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월계술사가 되어 이 유성 화우술법을 펼쳐 보였는데, 그 위력은 이전보다 몇 배 이상 증가한 것이었다.

* * *

금빛 교룡의 영혼을 빨아들인 석목은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한 것에 기뻐하고 있을 때,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산골짜기의 동굴 안에는 한 마리의 구수금교(九首金蛟)가 있었고, 그 몸길이는 이백여 장에 달했다.

아홉 개의 뱀 머리는 동그랗게 모여서 금빛을 반짝이고 있었고, 중간에 금색의 법진을 두고 무언가 비술을 펼치고 있는 듯했다.

그때 아홉 개의 머리 중 하나가 고개를 들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때문에 거의 완성되었던 금색 법진이 파괴되어버렸다.

나머지 여덟 개의 머리가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는 고통과 분노가 가득했다.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음의 파동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그 바람에 만 리 이내의 설산이 오랫동안 들썩거렸고, 눈덩어리가 자갈과 한데 엉켜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그때 석목은 어두운 구덩이 안에 있었다.

그곳에는 집채만 한 금색 교룡의 머리가 가로누워 있었는데, 절반은 구덩이에 묻혀 있었다.

앞서의 상황을 볼 때, 석목이 토템의 힘을 빌려서 삼킨 교룡의 영혼은 머리가 잘린 후 새로 소생한 영혼인 듯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석목이 이렇게 수월하게 그것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석목은 교룡의 머리 옆으로 가서 두 손으로 중간에 나 있는 뿔을 잡았다. 그리고 기합소리와 함께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우르릉!

석목의 힘에 의해 교룡의 머리가 구덩이에서 끌려 나왔고, 그와 함께 구덩이 안의 흙과 돌이 무너졌다.

잠시 후, 석목은 집채만 한 금색 교룡의 머리로 다가가서 그 주위를 돌며 살피고 있었다.

교룡의 비늘조각은 석목의 일격에 대부분 부서졌고, 머리에도 온통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이 교룡의 머리는 모든 것이 보물이었다.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진귀한 영기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석목은 그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야 계획이 떠올랐는지 멈춰 섰다.

그런 다음 그는 운철흑도를 이용해 교룡의 머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룡의 비늘과 뼈, 피까지도 남기지 않고 진묘계에 저장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의 시간이 지나갔다.

석목은 명수호 근처에 앉아서 붉은 색의 호수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연나는 호수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무야도 이전처럼 호숫가를 지키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물결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이 몸을 돌려보니 명수호 중앙의 핏빛 수면이 출렁이고 있었다.

뽀글뽀글…….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수면 위의 물결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호수 중앙에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그 안에서 순백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그 광경은 마치 한 송이 붉은 생화가 피어나는 모습 같았고, 그림자 안에서 순결한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에서 나온 연나는 고개를 돌려 석목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사하다는 걸 알리는 것 같았다.

석목은 연나의 온 몸이 은색 갑옷으로 뒤덮인 것을 보았다. 금이 가서 부서졌던 몸의 상처는 말끔하게 사라졌고, 뿜어내는 기운도 이전처럼 회복되었다.

연나는 핏빛 물결 위를 걸어 나오더니 주위를 둘러보았고, 무야는 이미 일어나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나는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다시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어디론가 향해 갔고, 무야는 연나의 뒤를 따랐다.

“연나, 여기를 떠나는 거야?”

석목이 물었다.

“너는 여기서 머무는 게 비교적 안전할 거야.”

연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말했다. 낭랑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은 그녀를 쫓아가며 물었다.

“너는 뭘 하러 가는 거야?”

연나는 듣지 못했다는 듯, 대답도 없이 계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연나의 반응에 이미 익숙해진 석목은 화를 내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그녀를 따라갔다.

연나는 석목에게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리고 따라오는 걸 말리지도 않고 그저 앞으로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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