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12화 (312/916)

312화.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잠재우다

연나와 무야, 석목 셋은 그렇게 명수호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호수 주변에서 주둔하던 사령생물의 군대는 세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말없이 길을 터주었다.

연나는 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방향을 정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차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석목은 말없이 그저 묵묵히 따라가기만 했다. 그는 연나에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연나가 막지만 않는다면 석목은 계속 그녀를 따를 계획이었다. 우선 이 기회를 통해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고, 사령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선대의 효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제단은 자신의 힘으로는 쌓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전에 유안과 대결을 벌이며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연나를 겨우 다시 만났다. 만약 지금 그냥 떠나버린다면 다시 만나고 싶어도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추선대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사령의 기운은 석목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반 시진을 걸어갔다.

갑자기 가장 앞서 가던 연나가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뒤에 있던 무야와 그 뒤의 석목도 차례로 멈췄다.

연나는 석목을 보고 머릿속으로 말을 전했다.

“이전에 네가 나를 찾았을 때, 나는 한 마리의 뼈 새를 쫓고 있었어. 지금 그것을 다시 찾으려고 해.”

석목은 주저 없이 말했다.

“좋아! 나도 따라갈게!”

석목을 바라보는 연나의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반짝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대답도, 거절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 몸을 돌리더니 두 날개를 펼쳐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연나 뒤에 있던 무야도 몸을 날려 발끝에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면서 날아올랐다.

석목은 이룰 보고 웃으며 등 뒤에서 불의 날개를 반짝였다. 그리고 한 줄기의 붉은빛이 되어 연나를 좇았다.

* * *

사령계는 지형의 변화가 심했다.

연나를 따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석목은 빽빽이 들어선 산봉우리와 여기저기 펼쳐진 산골짜기, 그리고 작은 붉은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호수의 주변에는 대부분 사령생물이 있었다.

날아가는 도중에 연나는 잠시 멈추어서 방향을 확인하고는 다시 날아갔다.

하루가 지난 후, 셋은 구릉지대가 쭉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내려선 연나는 고개를 들어서 어디론가를 바라보았고, 석목도 그녀가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방에는 핏빛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몸 크기가 이십여 장쯤 되는 회색의 뼈 새 한 마리가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있었다.

호수 위에서는 핏빛 안개가 실오라기처럼 피어올라서 뼈 새의 몸속으로 연이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네가 찾는 게 이 새야?”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어 연나에게 물었다.

“맞아.”

연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연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석목을 돌아보았다.

석목이 말을 이었다.

“네가 이전에 계속 저 새를 쫓고 있었다고 했는데, 보아하니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 우리가 무턱대고 올라간다면 아마도 저 새는 바로 도망갈 거야. 그러니까 조용하게 움직이자.”

“어떻게?”

연나가 물었다.

“따라와.”

석목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며 말했다.

연나는 이를 보고 고개를 돌려 뼈 새가 있는 방향을 한 번 본 뒤, 석목의 뒤를 따라갔다.

* * *

일각 후, 두 사람은 뼈 새가 있는 핏빛 호수를 돌아서 수백 장 정도 떨어진 다른 호수로 갔다.

그곳에는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사령생물들이 있었는데, 연나를 보자 모두 눈치 빠르게 뿔뿔이 흩어졌다.

석목은 호숫가 앞에서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운철흑도를 손에 쥐고 한 손을 아래로 내리자 그 끝이 땅에 닿았다.

이어서 석목은 땅 위에 동그랗게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또다른 곡선을 그린 뒤, 이어서 다른 방향을 향해서도 그렸다.

얼마 지나자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는 않는 법진의 부문이 땅에 그려졌다.

흑도를 거둔 석목은 중급 영석 몇 개를 꺼내서 법진 여러 곳에 끼웠다. 그리고 색깔이 각각 다른 부적 세 장도 꺼냈다.

이어 석목은 그중에서 황토색 부적을 집어서 법진의 중앙에 두었다. 그러자 법진에서 노란 빛이 밝게 비치더니 부적이 곧 사라졌다.

그런 다음 석목은 나머지 두 장의 남색 부적을 각각 법진의 양쪽에 두었다. 그것들 역시 남색 빛을 내며 곧 사라졌다.

석목이 법진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자 여러 개의 법결이 순식간에 법진 안으로 들어갔고, 법진에 끼워두었던 영석이 순간 빛을 내면서 법진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것은 일종의 익령부진(匿靈符陣)으로, 석목이 <건천부경(乾天符經)>에서 배운 음(陰) 속성의 부진 중 하나였다. 이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부진이라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법기가 영력의 파동을 내뿜는 것을 숨길 수 있었다.

법진은 본래 부진에서 확장된 것이었고,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았기에 석목은 조금씩 변형시켜서 배치를 했다.

이어 석목은 핏빛 호수의 나머지 세 곳을 찾아가서 법진을 그렸다.

마지막 익령부진을 완성하고 부적 세 장을 놓은 석목은 일어서서 긴 숨을 내쉬었다.

석목이 손을 모으자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추선대의 표면에 있는 어두운 문양에서 검은빛이 환하게 떠올랐다. 이어 예전에 그가 복종시켰던 반투명의 수정 해골이 떠올랐다.

“비령(匕靈), 너는 여기에서 매복하고 있어.”

석목이 반투명의 수정 해골에게 분부했다.

비령이라는 이름은 손에 비수를 쥔 유령이라는 뜻으로, 찌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수정 해골에게 석목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비령은 석목의 명령을 듣고 말없이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가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자 반투명하던 몸이 조금씩 투명해졌고, 몸의 기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호흡 만에 비령은 석목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석목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석목이 일찍이 그의 신통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지금 자신의 앞에 이런 자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연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석목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의 화염이 때때로 떨렸는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석목은 점점 옅어지는 핏빛 호수를 보면서 연나에게 말했다.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 시진이 지날 즈음에 이 호수는 회복의 효력을 상실하게 될 거야. 그 뼈 새는 그전에 영력이 전부 소진되어서 근처의 명수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할 테지.”

연나가 석목을 보며 아무 말이 없자,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선 한 곳에 잠복해 있으면서 기회를 기다리자.”

“좋아.”

연나는 영혼의 화염을 몇 번 반짝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석목은 무야에게는 회색 뼈 새를 감시하라고 일러둔 뒤, 연나를 데리고 호수에서 수십 장 거리에 떨어진 큰 바위 뒤로 갔다.

두 사람은 녹색 망토를 꺼내 둘러쓰고 곧 모습을 감추었다. 자리에서 그저 조용히 있는 정도라면, 녹색 망토는 두 사람의 기척도 지울 수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흘렀다.

석목과 연나가 기운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호수 주변에는 다시 지계의 사령생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잇따라 핏빛 호수의 주변을 에워싸고 사령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반 시진 후, 몸집이 두 척쯤 되는 뼈 짐승이 튀어나오더니 핏빛 호수에 뛰어들었다.

이 짐승은 주위에 있는 지계의 사령생물들보다는 경지가 높은, 선천의 경지에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생물들은 이 짐승을 보더니 모두 길을 비켜주었다.

호수에 뛰어들자마자 짐승은 탐욕스럽게 그 안에 있는 사령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게 커다란 회색 그림자가 아래로 빠르게 내려왔다.

바로 그 회색의 뼈 새가 언제 나왔는지 그 호수에서 나온 것이었다.

뼈 새는 매우 빠른 속도로 급강하해서 그 짐승을 한입에 물었다. 그리고 지면에 내려올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하늘 높이 올라갔다.

뼈 새는 하늘에 오른 이후에야 위아래 턱에 힘을 주어서 몸부림치는 짐승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어서 회색 뼈 새는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다시 급강하했다.

지면에 내려온 새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자 거대한 회색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고, 명수호 구석에 있던 여러 지계의 사령생물은 그 회오리에 휩쓸려 하늘에 올라가서 조각조각 으스러졌다.

회색 뼈 새가 명수호에서 위아래로 몇 번 날고 나니 명수호 주변에 있던 거의 모든 사령생물이 섬멸되었다.

뼈 새는 허공에서 몇 번 돌다가 다시 급강하해서 명수호에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주위에서 노란색과 남색 등 네 가지 빛이 떠올랐다.

이어서 남색의 엄청난 한기가 주위에서 쏟아져 나와서 중간에 있는 회색 뼈 새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동시에 형체가 없는 흙 속성의 속박의 힘이 새의 양쪽 날개 위에서 작용해 주위를 노란 빛으로 둘러쌌다.

회색 뼈 새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남색 한기와 흙 속성의 법술에 묶여서 동작이 굼떴다.

회색 뼈 새의 양 날개 표면에서 핏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날개를 뒤덮은 황토색 빛이 진동하며 흩어졌다.

그 순간 반투명의 그림자가 회색 뼈 새 옆의 멀지 않은 곳에서 떠올랐고, 그 그림자는 두 손에 수정 뼈 칼을 들고 새를 재빠르게 찔렀다.

바로 비령이었다.

비령은 공격하기 전에 어떤 기운도 내비치지도 않았다. 게다가 뼈 새는 부진의 함정에 빠져 있었기에 알아채고 벗어나려 해도 이미 때가 늦었다.

촤아앗!

수정 뼈 칼이 섬뜩한 빛을 번쩍이며 회색 뼈 새의 날개 쪽으로 날아갔다. 곧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곧 들려왔다.

회색 뼈 새가 눈에서 영혼의 화염을 번쩍였다. 이어 눈부신 은색 빛이 새의 이마에서 번쩍이더니 비령을 향해 날아갔다.

퍽!

비령은 곧바로 물러나려 했지만, 은색 빛을 정통으로 맞고 거꾸로 나가떨어졌다.

회색 뼈 새는 바람을 타고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양 날개를 퍼덕였다. 곧 두 개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생겨났고, 새는 주위에 퍼져 있는 남색 한기의 힘을 빌려 다시 날아올랐다.

명수호 주변에서 부진이 발동된 것, 그리고 비령이 공격을 당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목과 연나는 부진이 발동되는 순간 달려들었다. 운철흑도와 운철흑곤이 동시에 회색 뼈 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회색 뼈 새는 퍼덕이던 날개를 멈추고 맹렬히 하강했다. 그리고 지면에 닿으려는 순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흑도와 흑곤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했다.

회색 뼈 새가 포위를 벗어나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연나는 날개를 펼쳐서 그것을 쫓아갔다.

석목도 불빛을 반짝이며 불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비령과 무야를 추선대로 불러들여서 함께 하늘로 올라 새를 쫓아갔다.

회색 뼈 새는 비령에 의해 한쪽 날개에 상처를 입었지만, 뛰어난 비행술을 펼치면서 은빛 날개를 빠르게 퍼덕여 날아갔다. 연나와 석목이 전력으로 쫓아갔지만, 추적은 무려 사흘이나 계속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상처를 입은 뼈 새의 속도가 점점 떨어졌고, 추적자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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