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골충(骨蟲)
사흘 후, 석목과 연나는 새를 쫓아서 끝없이 이어진 화산지대에 다다랐다.
그런데 회색 뼈 새가 거대한 화산 입구에 도달했을 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윙!
무언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화산 입구에서 무형의 흡입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산 전체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회색 뼈 새와 본래 화산 부근에 있던 사령생물들은 무형의 흡입력으로 인해 분화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를 보고 새에게 달려들려 했던 석목과 연나는 급히 멈춰 섰다.
우르르! 쾅쾅!
굉음이 들려오면서 조용하던 화산이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표면의 바위들이 무너져 내리고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고리 모양이 터지면서 갈라졌다.
훅!
화산의 안에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폭발한 것처럼 맹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석목이 이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꿈틀거리던 화산이 흔들거리면서, 마치 긴 뱀처럼 산 전체를 길게 늘어뜨리고 위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산이 길쭉해지면서 그 위의 큼지막한 암석들이 굴러 떨어지고, 투명하게 빛나는 뼈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두둑…….
뼈마디 사이사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산의 암석이 모두 다 떨어지고 나니 투명하게 빛나는 뼈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몸에는 열여덟 개의 거센 불꽃을 가진 거대한 뼈 벌레가 들러붙어 있었다.
뼈 벌레는 비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그러자 화산재 같은 안개가 불꽃을 일으키며, 그 몸만큼 큰 원형의 입구에서 뿜어져 나와서 수십 장 높이의 상공까지 올라갔다.
석목은 두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계속 거대한 뼈 벌레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입 안에는 금강석 같은 시커먼 날카로운 이빨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그 뼈 벌레의 거대한 입은 진짜 화산의 분화구 같았다. 그 안에서는 용암이 들끓고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회색 뼈 새의 유해가 용솟음치는 용암 속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용암에 스며든 새의 뼈는 이미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그걸 보고 속으로 놀랐다. 앞에 있던 화산은 뜻밖에도 산봉우리만 한 거대한 뼈 벌레였다.
별레의 몸집은 십여 장은 충분히 되어 보였고, 이목구비가 없고 얼굴에는 원형의 큰 입만 있었다. 그 안에는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이빨이 있었다.
몸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화산처럼 보였다.
또한 이 벌레는 움직이기 전까지는 어떤 기운도 뿜어내지 않았기에, 석목과 연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러나 깨어난 골충은 몸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시체화 된 유안의 위에 있었지만, 지능이 낮아 보였다.
연나는 눈앞에 있는 어마어마한 뼈 벌레를 보며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석목에게 돌려주려 했던 운철곤봉이 다시 그녀의 손으로 날아왔다.
“연나, 지금 뭐 하려고?”
석목은 연나의 행동을 보고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내 것을 다시 되찾으려는 거야.”
연나는 차갑게 말하며 석목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곧 걸음을 멈추었다.
연나가 이 뼈 새를 쫓은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속해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뼈 벌레에게 통째로 먹혀버렸다.
“저 벌레는 그리 똑똑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막강해서, 무작정 달려들었다가는 목숨만 겨우 건질 수 있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그 말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 속성에 대한 반응으로 볼 때, 이 벌레의 화염은 일반적인 게 아니고 신혼의 불을 녹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방금 뼈 새와 해골들이 저 입 안으로 들어갔는데 영혼의 화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렇지 않았다면 저 뼈 새의 힘 정도로는 저렇게 힘없이 먹히지는 않았을 거야.”
석목은 계속해서 그녀를 설득했다.
“어쨌든 나는 내 것을 되찾아와야겠어.”
연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좋아. 하지만 우리는 계획을 세워야 해. 무작정 달려들어서는 안 돼.”
석목은 연나의 확고한 의지를 보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나도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결국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한편 거대한 입을 움직이며 새와 해골들을 먹어치운 뼈 벌레는, 거대한 몸집을 땅에 움츠리더니 숨결을 감추고 결국 완전히 사라졌다.
그 커다란 몸은 화산처럼 고요하게 다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레가 잠복해 있는 동안 그 앞의 땅에서 노란 색의 검광이 뻔쩍였다. 동시에 손에 노란 뼈 칼을 쥔 커다란 해골이 땅을 뚫고 나왔다.
그 해골의 손에 있는 뼈 칼은 노랜 빛을 번쩍이며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벌레의 목덜미를 그대로 베어버렸다.
촤악!
벌레의 목 부분의 뼈에 금이 갔다. 그러나 해골의 뼈 칼도 힘이 다해서 곧 사라졌다.
뼈 벌레는 포효하며 거대한 머리를 치켜들고는 온 몸에서 불꽃을 발산했다.
하지만 커다란 해골은 일격을 가한 뒤 몸에서 빛을 내며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쾅! 쾅!
벌레의 거대한 머리가 해골이 사라진 곳을 번개처럼 빠르게 찧었다. 그러자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했고, 땅에 큰 구덩이가 생기면서 먼지가 자욱했다.
잠시 후 벌레는 머리를 들더니 크게 울부짖었다. 그대로 잠시 기다렸지만 해골은 감히 다시 나타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벌레는 낮은 소리로 울부짖더니 몸을 돌려서 원래 있던 곳으로 가서 누웠다.
그런데 뼈 벌레가 막 누웠을 때 눈앞의 공기가 파동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한 쌍의 반투명한 뼈 칼이 나타나더니 벌레를 공격했다. 이번에는 가슴 부분의 뼈에 금이 갔다.
발끈한 뼈 벌레의 몸에서 화염이 활활 치솟아 오르더니 수십 장 내의 범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반투명한 그림자가 불바다 속에서 날아올라서 빠르게 날아갔다. 그것은 바로 수정 해골인 비령이었다.
뼈 벌레는 눈이 없었지만 비령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즉시 몸을 돌렸다. 벌레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화염을 뿜어내려 했다.
바로 그때, 뼈 벌레의 옆에서 한 줄기의 노란빛이 반짝이더니 무야가 다시 나타났다. 무야가 손에 쥔 칼이 눈부신 빛을 발산하며 뼈 벌레를 베어 들어갔다.
물론 이런 공격은 뼈 벌레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능이 낮은 뼈 벌레에게 어느 쪽을 향해 반격해야 할지 혼란에 빠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뼈 벌레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는 듯, 멀리 도망가서 몸을 감춘 비령을 포기하고 무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야와 비령이 쉴 새 없이 뼈 벌레를 교란하는 동안, 벌레의 뒤에서 그림자가 살며시 다가왔다. 그 그림자 속에는 석목과 연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녹색 피풍 아래 숨어서 뼈 벌레의 뒤에서 접근하는 중이었다.
“별레의 위치가 느껴져?”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느껴져. 우리는 뼈 벌래의 배 아래에 있어.”
연나는 몸에서 옅은 은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눈에서는 영혼의 화염이 반짝거렸다.
바로 그때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석목과 연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비명은 무야의 것이었다.
무야는 뼈 벌레의 앞에서 마치 구름을 타는 것 마냥 허공을 날고 있었다. 손에 쥐었던 칼도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때 뼈 벌레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크게 벌려 하얀 화염을 내뿜었다. 솟구쳐 나온 화염은 공중에 있는 무야를 명중시켰다.
무야의 몸은 삽시간에 하얀 화염에 휩싸였고, 그의 두 눈에서 빛나던 영혼의 화염이 격렬하게 반짝하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그리고 영롱한 유해로 변해서 그대로 땅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다른 한쪽에서 기습하려던 비령은 그 광경을 보고 다시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고, 방향을 틀어서 달아났다.
뼈 벌레는 비령의 위치를 감지했다는 듯 잽싸게 머리를 돌려 입을 벌렸다. 그러자 강렬한 흰색 안개를 동반한 돌풍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돌풍은 수십 장이나 되는 거대한 흰 용으로 변해서 비령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휘몰아쳤다.
흰 용이 휩쓸고 간 땅에서 모래가 휘날리고 돌이 굴렀다. 마치 땅의 껍질 한 겹이 뜯겨나간 것 같았다.
비령은 몸을 숨겨 달아나려 했지만 돌풍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말려 올라갔다. 돌풍 속에서 여위고 작은 그의 몸이 마치 나뭇잎처럼 위아래로 힘없이 휘날렸다.
무수히 많은 돌멩이가 비령과 같이 휘날리면서 그의 몸을 마구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비령의 몸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날 것만 같았다.
결국 비령은 수백 장 멀리까지 날려가서 땅에 심하게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영혼의 화염이 어두워졌고, 꺼지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이 뼈 벌레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벌레는 생각보다 강해. 일단 철수한 다음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석목이 고개를 돌려 연나에게 말했다.
“안 돼.”
그러나 연나는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을 강렬하게 불태우며 몸에 덮인 녹색 피풍을 젖혔다. 그리고 수정 같은 검은빛을 뿜어내는 운철흑곤을 힘껏 휘둘렀다.
십여 장 길이의 검은 곤봉의 그림자가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펑!
검은 곤봉의 그림자가 뼈 벌레의 아랫배 어딘가를 매섭게 때렸다.
그러자 뼈 벌레의 단단한 뼈는 운철흑곤에 한 대 맞더니 이내 부서져서 큰 구멍이 났다.
연나는 곤봉의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은빛 환영으로 변해서 그 구멍으로 돌진했고, 통증을 느낀 뼈 벌레가 갑자기 땅에서 뒹굴면서 거대한 뱀 마냥 몸뚱이를 꼬았다. 그러더니 연나를 향해 굵은 꼬리를 휘둘렀다.
이미 날아오는 꼬리를 피하기는 늦어버린 연나는 온 몸에서 밝은 은빛을 발산했다. 그리고 검은빛을 내는 운철흑곤을 몸 앞으로 가져가서 검은 그림자를 형성했다. 그녀는 뼈 벌레의 꼬리에 정면으로 맞설 심산이었다.
“어서 뒤로 물러나!”
바로 그때, 석목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달려왔다. 그는 금색 비늘이 가득한 팔로 연나를 뒤로 끌어당기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석목은 고함을 지르며 뼈 벌레의 꼬리를 향해 강렬한 금빛을 발산하는 오른손 주먹을 힘껏 내리찍었다.
쾅!
굉음이 터지면서 석목과 연나는 강한 힘에 의해 뒤로 멀리 날아갔다. 그들은 공중에서 백여 장의 거리를 밀려난 뒤에야 비로소 땅에 내려섰다.
석목이 창백한 얼굴로 피를 내뱉었다. 오른손 주먹의 금빛 비늘은 반쯤 파손되어 있었다.
연나는 석목의 뒤에 있었던 덕분에 다치지 않았다. 그녀는 석목이 피를 내뱉는 것을 보고 영혼의 화염을 반짝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뼈 벌레는 소리 없이 표호하며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린 채 석목과 연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서 피해! 내가 상대할게!”
석목은 몸에서 금빛을 내뿜으며 운철흑도를 뽑아 뼈 벌레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몸에서 붉은색이 발산되더니 붉은 원숭이 법상이 만들어졌다.
연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영혼의 화염을 반짝거렸는데, 그 빛에는 복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석목의 뒤를 따라서 뼈 벌레를 향해 질주했다.
석목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달려오는 연나를 곁눈질로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에서 애틋한 감정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