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14화 (314/916)

314화. 포위

종수가 사라진 후,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자는 연나뿐이었다.

잠시 감상에 젖었던 석목은 다시 냉정을 되찾으며 차가운 표정으로 뼈 벌레를 쏘아보았다.

웅웅-

그의 운철흑도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검은빛을 발산했고, 그 빛은 십여 장 길이가 되어서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뼈 벌레가 입을 크게 벌리자 하얀 불기둥이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붉은 원숭이 법상의 손에서 눈부신 빛이 났다. 그 빛은 곧 두 자루의 거대한 화염의 검이 되어 하얀 불기둥을 향해 교차하며 베어 들어갔다.

거대한 화염의 검과 하얀 불기둥이 닿는 순간, 붉은빛이 터져 나오면서 불길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쾅!

붉은 원숭이 법상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거대한 화염의 검이 하얀 화염 속에서 부서졌다. 그러자 온 하늘에 불꽃이 휘날렸다.

화염의 검을 파괴한 하얀 불기둥은 붉은 원숭이 법상을 그대로 내리치려 했다.

그때 붉은 원숭이 법상이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며 순도 높은 화염을 내뿜었다. 그러자 그 앞에 순식간에 불구름이 형성되었고, 주변의 공기가 뜨거운 불로 이글거리면서 숨 막히는 열기를 발산했다.

바로 혼원진화였다.

두 덩어리의 화염이 충돌하며 거대한 소리를 냈고, 붉은색과 흰색의 화염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혼원진화는 역시 마물과 영물을 상대하는데 적합한 것이었다. 비록 불구름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흰색의 화염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뼈 벌레가 내뿜은 흰색 화염을 점차 잠식하며 사그라지게 했다.

그것을 본 석목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붉은색이 번쩍이더니 한 쌍의 불의 날개가 생겨났다. 석목은 두 화염이 맞붙고 있는 곳을 우회해서 날아갔다.

순식간에 뼈 벌레의 머리 위에 나타난 석목이 나지막하게 소리를 지르며 운철흑도를 내리찍었다.

뼈 벌레는 비록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흑도의 위력은 느낄 수 있었다. 벌레는 몸에서 한 줄기의 흰색 화염을 내뿜더니, 수 장 크기의 화염 방패를 만들어서 급히 머리 위를 막았다.

그걸 본 석목이 차갑게 웃었다. 유안과의 사투를 통해 그는 운철흑도의 위력을 완전히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점에서는 심지어 연나보다도 한 수 위였다.

석목이 팔에 힘을 꽉 주자 흑도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쾅!

화염의 방패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운철흑도의 칼날 아래에서 두 동강이 났다.

흑도의 칼날은 방패를 뚫고 뼈 벌레의 머리를 힘껏 내리찍었다.

촤악!

뼈 벌레의 두개골은 거의 두 동강이 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상처의 깊숙한 곳에서 맷돌만 한 영혼의 화염이 희미하게 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빛은 강한 영혼의 파동을 일으켰다.

석목은 크게 기뻐했고, 내리찍은 칼에 더욱 힘을 주어 은빛 화염을 그대로 베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뼈 벌레의 머리는 거의 두 동강이 났는데도 그다지 타격을 입지는 않은 듯했고, 벌레의 은빛 영혼의 화염은 심장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전신으로 퍼졌다.

위잉!

허공에서 갑자기 옅은 은색 파동이 솟아오르더니, 은빛 영혼의 화염이 뿜어져 나와서 석목의 몸을 가격했다.

석목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날카로운 힘 몇 가닥이 그의 방어를 무시하고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신혼(神魂) 공격!”

무수한 망치로 세게 맞은 것처럼, 석목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의 손에 들린 칼날도 잠시 주춤했다.

석목은 순식간에 불의 날개를 활짝 펼쳐서 은빛이 일렁이는 파동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머리의 통증도 마치 썰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석목은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겨우 머리가 맑아졌다.

그동안 거대한 뼈 벌레의 머리에 난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곧 흰색 화염이 반짝이더니 상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회복된 뼈 벌레는 석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벌레의 머리 위에는 하얀 화염이 이글거리며 솟구쳐 올라서 두 개의 화염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화염 덩어리는 마치 뼈 벌레의 두 눈처럼 석목을 악랄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앞서 몸을 감싼 채 들끓고 있던 화염은 자취를 감추었다.

석목은 예민한 감각으로 그 화염이 모두 뼈 벌레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뭉쳐져서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등 뒤의 날개를 펼쳐서 수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바로 그때, 뼈 벌레가 입을 쩍 벌리더니 사람 크기만 한 하얀 불덩어리를 뿜어냈다.

하얀 화염의 불덩이는 매우 정순해서 마치 순결한 백옥 같았다. 그 어떤 불순물이나 눈부신 빛, 심지어 열기도 없었다.

하얀 불덩이를 본 석목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두려움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하얀 화염은 하마터면 그를 잿더미로 만들 뻔했던 과거 천봉진염의 위력 못지않았다.

하얀 화염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그것은 마치 흰 유성처럼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석목이 휘파람을 길게 불자 등 뒤의 불 날개가 더욱 커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서 반대 방향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하얀 불덩이는 빠르게 날아왔지만 석목의 움직임보다는 느렸다. 불덩이는 십여 장을 석목을 쫓아가다가 이내 멈추었다.

뼈 벌레가 낮게 울부짖자 하얀 불덩이가 방향을 틀더니 돌연 반대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쪽에서 달려오고 있던 연나는 하얀 불덩이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그녀는 몸에서 은빛을 발산하며 운철흑곤으로 불덩이를 막아내려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석목이 안색이 크게 변하며 소리쳤다.

“어서 피해!”

등 뒤에 있는 불의 날개가 강한 빛을 뿜어내면서, 석목은 연나를 향해 날아갔다.

하얀 불덩이가 연나의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붉은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석목이 고함을 지르자 새까만 왼손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했다. 이어 그 손에서 맹렬한 불꽃이 솟아올라서 붉은색 화염이 되었다.

석목은 화염에 휩싸인 손바닥을 흰색 불덩이를 향해 뻗었다.

그때 흰색 불덩이가 살짝 빛을 뿜었다. 흰색 화염의 표면에 흰색 불로 만들어진 혓바닥 여러 개가 나타났다.

날름거리는 불의 혀는 칼날처럼 인정사정없이 석목의 손바닥을 베었다. 석목의 손바닥은 순식간에 터지고 갈라져서 피범벅이 되었다.

하얀 불덩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석목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도 석목은 하얀 불덩이의 열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는 이런 기이한 현상에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석목이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더니 왼손을 향해 한 줄기의 정혈을 내뿜었다. 동시에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화악!

왼손 표면에서 다시 맹렬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러면서 그가 뿜어낸 정혈은 핏빛이 도는 부적으로 변했고, 그것은 빛을 번쩍이며 왼손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녹아들었다.

석목은 다시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을 감싼 붉은 화염은 곧 검붉은 색으로 바뀌었고, 그 속에서 몇 줄기 의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들은 한데 얽히고설켜 이내 검붉은 화염의 연꽃으로 변했다.

쾅!

하얀 불덩어리가 화염의 연꽃과 부딪쳤다.

그러자 연꽃은 꽃잎을 빠르게 오므리며 불덩이를 휘감았고, 하얀 불덩이는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 순간 하얀 불덩이가 갑자기 지독하게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 바람에 주위의 공기가 불에 타는 듯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석목의 머리카락과 옷자락도 순식간에 누렇게 그을려버렸다.

순간 석목의 얼굴이 갑자기 핏빛으로 변하더니 왼팔에서 핏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팔은 붉어지다 못해서 금방이라도 피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얀 불덩어리를 감싼 화염의 연꽃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불에 타는 듯했다. 이내 연기가 솟아나오면서 꽃이 빠르게 작아졌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석목은 다시 입을 벌려서 두 줄기의 정혈을 뿜어냈고, 이전과 같이 그것을 왼손에 주입 시키며 주문을 외웠다. 정혈의 힘을 받은 왼손의 화염은 강한 빛을 발하며 연꽃의 크기를 두 배로 키웠다.

다시 커진 검붉은 연꽃은 하얀 불덩이를 감싸며 더욱 강하게 조였다.

바로 그때, 하얀 불덩이가 갑자기 터지면서 흰 불꽃으로 변했다. 그것은 화염의 연꽃을 뚫고 석목의 왼손으로 침입했다.

흰 불꽃이 침입하자 그의 왼손이 다시 새까맣게 변했다. 그것은 팔을 타고 팔꿈치 아래까지 퍼진 뒤에야 비로소 멈추었다.

석목은 땅에 떨어지며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는 두어 번 비틀거리더니 다시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의 온 몸은 불이 붙은 듯 뜨거웠고, 마치 오장육부가 전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온 몸에서 혈기가 들끓었고 단전의 진기는 거의 소진되었다.

거대한 뼈 벌레는 석목이 하얀 불덩이를 흡수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벌레는 갑자기 소리 없이 울부짖더니 석목을 향해 거대한 몸뚱이를 날렸다.

석목은 그것을 보고 옆으로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비틀거리면서 결국 그 자리에 꿇어앉고 말았다.

그때 은빛이 반짝이더니 은색 갑옷을 입은 그림자가 뼈 벌레의 앞을 막아섰다.

그 그림자는 바로 연나였다.

연나는 석목을 힐끗 보더니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머리를 하늘 높이 쳐들었고, 뼈 벌레를 향해 소리 없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이어서 그녀의 몸에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은빛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을 본 뼈 벌레는 달려오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은빛으로 뒤덮인 연나를 본 벌레의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주저함이 서려 있었다.

연나의 몸에서 나는 은빛은 점점 강렬해졌다. 이어 갑자기 빛이 반짝이더니 그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은색의 법상이 생겨났다.

법상은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흐릿한 형상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흰색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은색 창을 든 채 흰 연꽃 위에 올라서 있었다.

갑옷으로 무장한 여인의 온 몸에서 맹렬한 은색 불길이 타올랐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전쟁의 여신 같은 묵직한 위압감이 몰아쳤다.

그 위압감은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주변의 모든 것으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도록 했다.

석목 역시 연나의 법상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휩싸이면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고, 마치 커다란 바위가 자신을 사납게 내리친 것 같았다.

뼈 벌레의 몸에서 화염이 한바탕 솟구치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눈앞의 존재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뼈 벌레는 지능은 떨어졌지만,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닫자 점차 흉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벌레는 포효하며 입을 쩍 벌리고, 하얀 불기둥을 내뿜으며 연나의 은빛 법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은색 여인 법상은 뼈 벌레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한 손을 올려서 은색 창을 내뻗었다. 그러자 수천 개의 은색 창이 생겨나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쾅!

은색 창의 그림자와 하얀 불기둥이 부딪쳤다. 이어 불기둥이 금세 터져 나가며 온 하늘이 하얀 불꽃으로 뒤덮였다.

석목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몸속의 뜨거운 열기를 참으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얀 불기둥의 위력은 방금 전의 하얀 불덩이보다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무시무시한 파동이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은색 갑옷을 입은 법상의 일격에 무너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불기둥을 한 방에 쓸어버린 법상의 창은 십여 장을 더 나아가서 순식간에 뼈 벌레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