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17화 (317/916)

317화. 부활

연나의 몸 옆에서 보이지 않는 기류가 점점 실체를 드러내더니, 회색 안개가 수많은 줄기로 응집되었고, 안개는 순식간에 일렁이는 회색 소용돌이로 변했다.

연나는 양손을 맞대고 중지와 엄지손가락을 내려서 수인을 맺었다.

쾅!

회색 소용돌이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더니 호수 주변의 백 리 내에서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회색 안개는 매우 가느다란 줄기들로 변했고, 공중에서 한데 엉키며 더욱 굵고 거친 기류를 만들어냈다.

그 기류들은 마치 거대한 회색의 용처럼 몸을 뒤틀며 소용돌이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로 모여서 직경이 십 장이나 되는 회색 안개의 용이 되었고,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 속으로 휘몰아쳤다.

그 충격으로 회색빛 먹구름의 중간이 갈라져서 넓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칠흑같이 깜깜한 안쪽이 드러났다.

연나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고 갑옷에서는 눈부신 빛이 반짝였다.

지금 그녀는 마치 신선의 아내 같기도 했고, 하늘의 선녀 같기도 했다. 그 아름다움은 세상의 누구와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천지를 발아래 둔 듯 오만한 기세까지 갖추고 있었다.

연나가 팔을 올리고 두 손가락을 붙여 수백 리 떨어진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한 줄기의 눈부신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한 번 깜박이다 사라지더니, 갑자기 회색 안개의 소용돌이를 뚫고 순식간에 멀리 있는 산 앞에 나타났다.

우르릉!

굉음과 함께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돌더미로 변했다.

연나는 팔을 거두며 미간을 약간 찌푸렸고,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법결을 거두고 두 손을 몸 옆으로 늘어뜨린 채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연나가 법결을 멈추자 십 장 남짓한 회색 안개 회오리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호수 주위에 있던 천여 명의 해골병사가 잇달아 가운데로 모여 진형을 이루었고,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연나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연나의 얼굴 반쪽은 다시 은빛 가면으로 덮였다.

그녀는 해골병사들을 돌아보며 오른손 검지에 있는 반지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러자 옥처럼 투명한 해골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 해골은 바로 무야였다.

연나는 해골을 한번 보더니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러자 연한 빛이 도는 검은색 가루가 그 위에 나타났다.

그녀는 해골의 주위에 타원형 모양으로 검은 가루를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그 원은 무야의 유골을 통째로 감쌌다.

그 뒤 연나는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몇 줄기의 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며 야명주(*夜明珠, 밤에 빛나는 구슬) 같은 빛 덩어리로 응결되었고, 그것들은 무야의 유해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은색의 빛 덩어리가 유골 속으로 떨어지자, 원래부터 약간 광택이 나던 해골이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해골의 눈에서 한 줄기의 푸른빛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빛은 순식간에 은빛 속으로 묻혀 사라져버렸다.

연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자 추선대가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

연나는 수인을 맺으며 추선대를 손으로 짚었다.

추선대의 어두운 금빛 무늬가 반짝이더니 한 가닥의 회색 안개가 그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고, 그것은 공중에서 응결되어 흐릿한 얼굴로 변한 뒤, 다시 흩어져서 한 가닥의 안개로 변했다.

여러 가닥의 안개는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무야의 해골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던 백골이 갑자기 심하게 떨렸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다쳤을 때 맹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연나가 바닥에 뿌린 검은 가루가 폭발하면서 검은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고, 그 연기는 안개 덩어리로 변해서 해골을 감쌌다.

한참이 지나 검은 안개의 덩어리가 솟구쳐 오르며 부서졌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솟아오르더니 연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검은 그림자는 연나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검은 갑옷을 입은 해골무사였다.

무사의 손에는 먹물처럼 새까만 긴 칼이 들려 있었고, 검은 갑옷은 가슴과 배만 덮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해골의 머리는 반질반질한 윤기가 돌았다.

“기억해라. 네 이름은 무야다.”

연나는 눈앞의 검은 갑옷 무사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 * *

서하대륙의 인적이 드문 울창한 산림 속.

긴 털을 가진 원숭이 한 마리가 두 팔을 번갈아가며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유유히 이동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눈앞의 큰 나무를 향해 긴 팔을 휘둘러 몸을 앞으로 보냈다. 그런 뒤에 다른 한 팔을 앞으로 뻗어서 나뭇가지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으려는 찰나, 공중에서 갑자기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나타나며 주변에 물결 같은 공간의 파문을 일으켰다.

곧이어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검은 빛에서 떨어져서 원숭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사람은 땅으로 떨어지고 원숭이는 튕겨 날아갔다.

원숭이는 공중에서 몇 바퀴 곤두박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땅에 떨어졌다. 원숭이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화가 많이 난 듯 씩씩거리며 일어났고,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한참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원숭이와 부딪힌 사람도 몸에 묻은 나뭇가지들을 털며 곧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드디어 돌아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사령계에서 돌아온 석목이었다.

석목은 손발을 움직이며 공기 중에 있는 영기를 만끽했고, 그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이곳은 영기가 충만한 것으로 보아 서하대륙의 어디쯤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석목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지더니 곧이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온 몸의 피가 갑자기 뜨거워지며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얼굴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렸다. 마치 커다란 화로 속에 있는 듯, 온 몸이 맹렬한 화염에 타고 있는 듯했다. 그의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서 금방이라도 피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악!”

석목은 머리를 치켜들며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산 속에 있던 새들이 놀라서 사방으로 날아갈 정도였다.

그의 이마에서 핏줄이 솟아올랐고 부릅뜬 눈에는 금빛이 어렸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의 금빛은 얇은 빛의 막이 아니라 실제 금박처럼 기괴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석목의 몸에 있는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튀어나왔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몸집도 더 커졌다.

펑!

석목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주변에 거대한 연기와 먼지가 피어올랐다.

연기와 먼지가 흩어진 자리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움푹 패여 있었다. 구덩이의 주변에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생겨서 사방으로 번져 있었다. 석목의 팔은 아직도 땅에 박힌 채였다.

그때 그의 두 팔에서부터 가늘고 긴 은백색의 솜털이 미친 듯이 자라나서 온 몸으로 퍼졌다. 동시에 몸집이 크게 불어나면서 갑자기 거대한 흰색 원숭이로 변했다.

“아우!”

흰 원숭이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굵은 두 팔뚝으로 자신의 앞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이때 그의 눈에서 발산된 금빛은 거의 실체화하기 시작했고, 그의 눈빛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흰 원숭이는 앞가슴을 한참 두들기고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바로 옆에 있는 굵은 나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성인 셋이서 둘러싸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십 장 높이의 큰 나무였다.

하지만 석목이 한 방 날리자 그 나무는 폭발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주먹을 내리친 흰 원숭이는 몸 안의 진기를 방출하면 체내의 통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음 나무를 향해 뛰어가더니 두말없이 주먹을 날렸다.

펑! 펑! 펑!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나더니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터지면서 파편이 흩어졌다.

잠시 후, 흰색 원숭이의 주변은 나무의 잔해와 땅이 뒤집히면서 나온 흙으로 가득했다.

나무들을 다 부순 흰 원숭이는 그제야 고통이 조금 사그라진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다.

“아우!”

원숭이는 괴성과 함께 몸을 일으키며 두 손으로 땅을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산이 온통 흔들리는 듯했다.

곧이어 거대한 원숭이는 방금 전에 일어난 진동의 반작용을 이용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집의 원숭이는 금세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들보다 훨씬 높이 올라갔고, 상공의 백 장 높이에 다다랐다.

휘잉, 휘잉…….

숲 속에 울려 퍼지는 바람소리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백 장 높이에서 마치 운석처럼 떨어졌다.

쾅!

흰 원숭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숲에서 격렬한 충돌음이 울렸고, 한 무더기의 나무가 떨어지는 기류에 의해 부스러졌다.

땅에 떨어진 뒤에도 원숭이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흰 원숭이는 반항하는 것처럼 땅에서 데굴데굴 구르더니 갑자기 벌떡 뛰어올랐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가지를 붙잡아 힘껏 뒤로 젖혔다.

나뭇가지가 최대한 젖혀지자 흰 원숭이는 손의 힘을 풀며 동시에 몸을 앞으로 날렸다. 나뭇가지가 튕겨나가면서 흰 원숭이의 몸도 같이 튕겨나갔다.

원숭이의 거대한 몸집이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며 산 너머로 날아갔다. 흰 원숭이는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더니 수십 장 높이의 폭포를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흰색 원숭이의 몸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마치 운석처럼 폭포 아래의 깊은 못에 처박혔고, 그 충격으로 물줄기가 십 장 높이까지 튀어 올랐다가 다시 폭우처럼 떨어졌다.

온 몸이 타는 듯했던 흰 원숭이는 차가운 물에 전신을 담그니 어느 정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편안함도 잠시, 갑자기 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흰 원숭이는 이내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기절해버렸다.

폭포 아래의 깊은 못이 물살을 일으키며 흰 원숭이의 몸을 휩쓸었다. 원숭이의 몸은 물 위로 떴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하류로 떠내려갔다.

* * *

며칠 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 사내가 골짜기 옆의 연못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젖은 채 옆의 큰 바위에 앉았다.

그 사내는 바로 석목이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 뒤 물살에 의해 하류의 한 계곡으로 밀려온 것이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은 뒤 진묘계에서 푸른색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다시 연못가로 걸어가서 얼굴을 씻고 흐트러진 머리를 잘 다듬어 묶었다.

그때 그는 수면에 거꾸로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까만 색이던 눈동자가 둘레에 금테를 두른 듯 은은한 금빛을 풍기고 있었다.

석목은 신식을 사용해서 다시 못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연두색 수면을 통과해서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한 물고기의 몸통에 자란 비늘도 선명히 보일뿐아니라, 꼬리의 미세한 무늬까지 똑똑히 보였다. 눈을 금색으로 바꾸는 영안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석목은 놀라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던 그의 몸에서 갑자기 영력이 솟구쳐 오르더니 두 눈에서 금빛이 감돌았다. 두 줄기의 번개 같은 금빛이 물속을 비추었다.

푸, 푸.

소리가 두 번 들리고 나서 수면 위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그 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사라져버렸다.

곧이어 검은 물고기 한 마리가 흰 배를 뒤집으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은 물고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조금 전의 금빛에 공격당해 죽은 것이다.

석목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십여 장의 높이에 마침 몇 마리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기러기들의 몸에 난 깃털과 부리,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다시 반짝이며 멀리서 날고 있는 새떼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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