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18화 (318/916)

318화. 회색 그림자

석목은 좌절하지 않고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해보았다. 그 결과 그는 눈을 통해 신식으로 공격할 수 있는 유효거리가 삼 장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 장을 벗어나면 아무 위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짧은 거리라 해도, 석목은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면 이 능력 또한 더 보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목은 예전보다 기혈도 훨씬 강해진 것을 느꼈다. 온 몸에 활기가 넘치는 듯했다. 흰 원숭이의 두 번째 정혈이 성공적으로 체내에 녹아들면서, 육신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보였다.

다만 정혈이 녹아드는 과정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처럼 십 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단번에 녹아들었다는 걸 감안하자, 억울했던 감정이 누그러들었다.

처음 흰 원숭이의 정혈을 손에 넣었을 때, 석목은 후천 무인의 단계에도 오르지 못했고 체질도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심지어 향주가 정혈을 몇 번에 나누어서 주입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즉에 폭발해 죽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탈태결을 함께 수련하고 첫 번째 피를 통해 개조된 덕분에, 그의 몸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흰 원숭이의 두 번째 정혈도 짧은 시간 안에 그의 몸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이다.

* * *

사령계.

연나는 은색 갑옷을 입고 얼굴을 반쯤 가리는 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녀의 몸은 눈을 제외하면 피부가 드러난 곳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손에 긴 은색 창을 들고 있었고, 수많은 은빛이 물이 흐르듯 창신에서 쉴 새 없이 일렁거렸다.

연나의 뒤에는 크고 작은 두 그림자가 서 있었다. 무야와 비령이었다.

저 멀리에는 사령생물들이 해골과 강시를 포함해서 산과 들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석목이 있을 때보다 그 수가 훨씬 늘어난 것 같았다.

같은 시각, 연나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 위에도 수없이 많은 사령 생물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연나의 사령생물 군단보다도 수가 훨씬 많아 보였다.

“으아아!”

하늘을 찌르는 듯한 포효가 맞은편의 산봉우리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거의 하늘의 반을 가리며 솟아올랐다. 그 그림자는 연나 못지않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몸길이가 칠팔십 장 정도 되는 검은 교룡이었다.

교룡은 몸의 반쯤이 썩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새까만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등에는 넓고 큰 한 쌍의 날개가 있었다.

검은 교룡은 허공에서 맴돌다가 산꼭대기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연나를 향해 위협적인 고함을 질렀다.

연나의 두 눈은 은빛으로 빛났고, 은빛 갑옷도 강한 빛을 발산했다. 손에 든 은창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눈부신 빛이 반짝였다.

연나는 은창을 휘둘러 검은 교룡이 있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연나의 뒤에 있던 사령생물 군단이 거대한 물줄기로 변하며 맞은편 산봉우리를 향해 돌진했고, 순식간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교룡이 자신의 영토를 향해 몰려오는 연나의 사령 대군을 보고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산봉우리에 있던 사령생물들도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며 산 아래의 군단을 향해 돌진했다.

최전방에서는 거대하고 검푸른 세 구의 강시가 무리를 이끌고 있었고, 그들은 키가 무려 서너 장이나 됐으며, 온 몸은 청동색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은 무쇠 빛깔이었고 두 눈에서는 핏빛이 돌았으며, 입술 가장자리에 네 개의 긴 송곳니가 돌출되어 흉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강시들은 전부 무야 못지않은 지계 경지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수정 해골 비령보다 경지가 훨씬 높았다.

강시들이 두 눈에 영혼의 화염을 번쩍이며 연나의 사령 군단을 향해 흉흉하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산 아래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며 불안의 기색이 일렁였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연나의 얼굴은 차가웠다. 그녀는 등에서 은빛을 뿜어내더니 한 쌍의 은색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갑자기 한줄기 은빛으로 변해 앞을 향해 날아갔다.

교룡은 그것을 보고 거대한 몸을 날려 연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은빛 환영은 속도를 급격히 높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강시의 몸을 꿰뚫고 날아갔고, 그 순간 눈부신 은빛이 반짝였다.

이어 가운데 있던 강시의 몸이 두 동강이 나더니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연나의 군단은 갑자기 사기가 고조되었고, 상대방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두 무리가 충돌하며 온갖 무기가 충돌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동시에 눈부신 빛살과 파동이 무수하게 일어났다.

무야의 두 눈에서 영혼의 화염이 반짝였고, 그는 손에 칠흑 같은 뼈칼을 들고 다른 강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한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거대한 강시의 곁을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촤악!

칼에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강시의 한쪽 팔이 땅에 떨어졌다.

한편 반대쪽에 있는 비령은 교룡의 사령생물 무리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돌진하고 있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목이 뚫리거나 몸이 두 동강이 난 사령생물들이 쓰러졌다.

비록 교룡 쪽의 수가 훨씬 많았지만, 지계의 존재 하나가 사라진 뒤라 싸움의 상황은 비등비등했다.

이어서 공중에서 연나와 교룡의 격전이 벌어졌다.

연나는 공중에서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손에 든 은색 창을 휘둘렀고, 창은 십여 장의 빛을 발산하며 줄기줄기 그림자를 내뿜었다. 이어 창의 그림자는 비가 쏟아지듯 교룡을 향해 떨어졌다.

교룡은 화가 난 듯 울부짖었고, 교룡의 속도도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몸집이 워낙 크다보니 연나에 비하면 거북이 수준이었다. 그러니 창 그림자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창 그림자는 교룡의 몸에 큰 상처를 남겼다. 거대한 비늘들이 허공에서 떨어졌고, 상처에서 노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교룡이 포효하자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감돌더니, 주변에 세 줄기의 검은 회오리바람을 일으켰고, 주변의 기류가 갑자기 세차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나의 몸은 마치 바람 속의 낙엽처럼 휘둘렸다. 그 바람에 더 이상 교룡을 공격하거나 접근하는 게 어려워졌다.

순간 교룡은 그 틈을 타서 숨을 내쉬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입 안에서 검은 바람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둥은 검은빛을 번뜩이며 한 마리의 흑색 풍룡(風龍)으로 변했고, 흑룡은 발톱을 치켜세우며 연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풍룡과 마주한 연나는 두 눈에서 은빛을 반짝이며 갑자기 몸을 멈췄고, 그녀가 은색 창을 들어올리자 하얀 화염이 나타나서 활활 타올랐다.

그러자 하얀 화염의 주변이 일그러지며 파문을 일으켰고, 마치 주위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연나는 맑은 소리를 내지르며 손에 들었던 은창을 던졌다.

은창은 한줄기의 눈부신 빛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지나갔고, 그 빠른 속도에 온 세상이 번개가 내리치듯 밝게 번쩍였다.

순간 한줄기의 은빛이 검은 풍룡을 뚫고 지나가며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교룡의 머리까지 꿰뚫었다.

이에 교룡의 머리에 큰 구멍이 뚫리더니 그대로 터져버리며 무수한 피와 살점, 누런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교룡 주위에 있던 검은 기둥들이 사라지며 거대한 몸집이 아래로 추락했고, 그 밑에 있던 수백의 사령 생물은 피하지 못하고 교룡의 몸에 그대로 깔려죽었다.

교룡의 사령 군단은 그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때 연나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몸에서 발산하던 은빛은 어두워졌고, 갑옷도 거의 빛을 잃고 있었다.

연나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몸에서 다시 하늘을 찌르는 듯한 은빛이 발산되었고, 모든 이를 압도하는 위압감이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러자 교룡의 사령 군단이 잇달아 무릎을 꿇으며 연나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단지 지계의 강시만이 연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순간 연나가 강시를 바라보자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이 강시를 뒤덮었다.

강시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그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짓눌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강시의 발밑이 모래밭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조금씩 땅속으로 빠져 들었다.

강시는 포효하며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지만 반항하면 할수록 짓누르는 힘이 점점 더 강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시의 몸 절반이 땅속에 묻혔다.

드디어 지계 강시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그는 머리를 숙이며 연나에게 복종의 의사를 표했다.

연나가 그의 몸에서 힘을 거두자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손을 흔들어 추선대를 꺼냈다. 추선대에서 검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교룡의 몸을 비추자 교룡의 시체는 곧 거대한 회색 안개를 내뿜었다.

안개 속에서 영롱한 빛들이 은은하게 반짝이더니 연나의 몸으로 들어갔고, 이어 어두워졌던 연나의 몸은 빠르게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일 각이 지나자 교룡의 시체는 말라비틀어졌고, 연나의 몸은 다시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녀가 손짓하자 교룡의 시체에서 한줄기의 은빛이 날아올랐다. 바로 그녀의 은창이었다. 은창도 방금 전에 공격을 가하면서 손상을 입어 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연나가 두 눈에서 은빛을 발산해서 창에 주입시켰다. 그러자 은창은 빠르게 회복되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이어서 연나는 먼 곳을 바라보았고, 잠시 뒤 그녀는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쳐더니 이내 시선을 돌린 곳으로 날아갔다.

지상의 두 사령 군단은 한데 뭉쳐 더 큰 무리를 이루었고, 연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거대한 명수호 근처.

두 무리의 거대한 사령 군단이 서로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령 군단의 수는 각각 수만 명에 달했는데, 그중 한쪽은 연나가 거느린 대군이었다.

전투의 굉음이 멀리까지 퍼지며 땅이 흔들렸고, 호수의 수면도 그 파동에 의해 강한 물결이 일었다.

공중에서는 두 줄기의 희미한 그림자가 서로 쫓고 쫓기는 중이었다.

두 그림자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주변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 속에서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끔씩 움직임을 멈춘 순간에만 어렴풋하게나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은색 갑옷을 입은 연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온몸이 회색 화염에 휩싸여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형체인 건 틀림없었다.

둘은 다시 회색 화염과 은빛이 되어 불꽃을 튀기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바로 그때,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거대한 반투명의 물결이 일어났다.

곧이어 한줄기의 새하얀 빛이 찬란하게 번쩍이더니 싸움이 멈추었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두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났고, 연나의 손에 들린 은창에서 하얀 화염이 이글거렸다. 은창이 회색 그림자의 머리를 뚫은 것이었다.

드디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회색 그림자의 정체는 해골이었다. 몸집은 연나와 비슷했고, 전신에서 금속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손에는 회색의 커다란 도끼 두 자루를 들고 있었는데, 도끼날의 곳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회색 해골의 두 눈에서 화염이 번쩍이더니 곧바로 꺼졌고,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연나가 손을 흔들어 추선대를 꺼내더니 검은 빛을 발산해서 회색 해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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