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분쟁
보름이 지난 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연나의 사령 군단이 또 다른 사령 군단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상대의 수는 연나의 군단보다 적었고, 연나의 군단에는 이미 대여섯이나 되는 지계의 존재가 있었기에 확실히 연나에게 유리한 싸움이었다.
싸움이 벌어진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황사가 몰아치며 굉음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자욱한 황사 속에서 두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하나는 거대한 뼈 도마뱀이었고, 다른 하나는 은색 갑옷을 입은 그림자였다.
황사 속의 격전은 이 각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때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밖으로 튕겨 나오며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것은 거대한 뼈 도마뱀이었다.
그 도마뱀의 머리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었고, 영혼의 화염은 곧 꺼질 것 같이 힘없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어 뼈 도마뱀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한줄기 은빛이 날아왔고, 은빛은 신속하게 도마뱀 머리의 상처를 찌르고 들어가서 영혼의 화염을 관통했다. 그러자 영혼의 화염이 이내 꺼진 도마뱀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연나가 입을 벌리자 흩날리던 뼈 도마뱀의 영혼의 화염이 연나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몸에서 발산하는 은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잠시 후, 다른 한쪽에서도 전투가 끝났다.
연나는 오륙만 명은 족히 되는 사령 대군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초반에 비해 연나가 이끄는 군단의 숫자와 전력은 모두 크게 늘어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사령계의 다른 강력한 사령들을 공격해 자신의 군단을 확장할 작정이었다.
* * *
서하대륙의 북방에 위치한 봉서성은 야만족이 사는 성이었다.
이곳은 규모가 꽤 큰 성이었고, 야만족과 요족의 접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얼굴을 바꾼 요족들이 넘나들었다. 그들은 특유의 진품을 가지고 와서 팔곤 했는데, 그 물건은 야만족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이라 성내는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저잣거리의 건너편에서는 푸른색 옷을 입고 갓을 쓴 사내가 어슬렁거리며 한가로이 거니는 중이었다.
청년의 어깨 위에는 화려한 색의 털을 가진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앵무새는 날렵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낯을 전혀 가리지 않는 눈치였다.
“석두, 날 능천봉에 혼자 두다니 너도 참 독해. 내가 그동안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요족들한테 잡힐 뻔한 적도 있고, 선천 경지에 오른 노란 매의 발톱에 죽을 뻔한 적도 있단 말이야. 내가 똑똑해서 잘 피해 다녔으니 망정이지, 다시는 날 못 볼 뻔 했다고…….”
채아는 석목에게 그동안 능천봉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푸념을 작은 소리로 늘어놓고 있었다.
석목이 사령계를 떠난 지도 벌써 이십여 일이 지났다.
“그래, 알았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해봐. 다 사줄게.”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날 능천봉에 잠입했을 때 채아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천봉 비밀창고에서의 격전도 그렇고 사령계에서 일어난 일들도 그렇고, 채아의 몸으로는 결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능천봉의 비밀창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것, 그리고 사령계에서의 경험은 석목으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심리적인 변화를 겪게 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서 북적이는 사람들과 재잘거리는 채아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껄껄, 아주 바람직한 태도야! 요새 계속 숨어 다니느라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고.”
채아가 환호성을 질렀다.
“저기로 가서 뭘 좀 먹자.”
석목은 근처에 있는 주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이층에 위치한 방에 자리를 잡고, 몇 가지 다과와 현지의 특산주를 주문했고, 채아는 음식이 올라오자마자 달려들어 마구 먹기 시작했다.
“채아, 천천히 먹어. 뺏어먹을 사람 없으니까. 참, 요새 능천봉 상황은 어때? 무슨 소동 같은 건 안 일어났어?”
석목은 채아가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먹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물었다.
“나도 요족들한테 잡힐까봐 가까이는 못 가고 계속 주변에서만 맴돌았어. 그런데 거기는 별일 없는 것 같던데? 화형대전도 무사히 끝난 것 같고……. 소동? 글쎄…….”
채아가 계속 먹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딸꾹질을 했다.
“그래?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날 창원왕은 탈출에 성공했고, 백원왕이 봉인한 물건은 석목이 챙겨서 나왔다. 황룡 도인이 삼백 년이나 고생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셈인데,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꽤나 수상한 상황이었다. 천위의 실력자인 두 사람이 그대로 포기했을 리가 없었다.
‘설마 다른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석목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눈빛을 반짝거렸다.
“참, 석두 너는 능천봉에 잠입했었잖아. 일은 잘 해결됐어?”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능천봉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사령계에서의 일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채아는 능천봉에서의 격전에 이어 사령계 이야기까지 듣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넋이 나가서 입에 물고 있던 과자가 떨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위험한 일들이 있었구나. 정말이지 안 따라가기를 잘했네.”
채아가 입 안의 음식을 삼키며 겁에 질린 듯이 말했다.
석목은 희미하게 웃을 뿐 그는 이미 이와 같은 위험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기에, 이미 밥 먹듯 익숙해진 참이었다.
“석두, 이제 흰 원숭이의 정혈도 얻었는데, 앞으로는 어떡할 거야?”
채아가 물었다.
“당연히 수련을 해서 구전현공 첫 단계를 돌파해야지. 그러려면 우선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해.”
석목이 대답했다.
“그럼 다시 적염성으로 돌아가는 거야?”
채아의 물음에 석목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흰 원숭이 정혈을 정화하고 구전현공을 수련하기에 적염성의 용암지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가장 적합한 뜨거운 불 속성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월동이 적염성에 있는 한, 그곳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는 웬만하면 엮이는 걸 피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주점 아래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석목은 밖을 내다보더니 안색이 살짝 변했다.
상공에서 크기가 족히 이삼십 장이나 되는 거대한 배가 날아가고 있었다.
배 위에서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 거대한 배는 공기를 가르며 한바탕 거대한 굉음을 내더니 남서쪽으로 향했고, 곧 멀리 사라졌다.
사람들은 날아가는 배를 가리키면서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방금 그 배에 꽂힌 깃발들이 십대 야만족의 것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보았다.
석목은 일찍이 적염성에 있을 때부터 여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야만족과 요족은 예로부터 사이가 안 좋아서 충돌이 잦았다고 했다. 야만족이 저렇게 거대한 배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걸 보니 싸움의 규모가 한층 커진 것이 틀림없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하다가 주점의 점원을 불렀다. 그리고 방금 전에 지나간 배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손님은 모르고 계셨군요? 얼마 전에 야만족과 요족 간의 갈등이 다시 격화됐어요. 두 종족의 접경지대에서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죠. 방금 날아간 배는 십대 야만족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현웅족(玄熊族)이 파견한 병력이에요.”
석목은 직원의 설명에 살짝 놀랐다. 야만족과 요족의 마찰이 이렇게 큰 전쟁으로까지 번지다니,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물었다.
“저는 그동안 폐관 수련을 하느라 몰랐네요. 지금 최전선의 상황은 어떤가요? 이곳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겠죠?”
“요족 쪽은 몰라도 야만족에서는 이미 십대 야만족 중 세 부족이 대규모로 인원을 파견했다고 알고 있어요. 지금 전선에 주둔하는 인원의 수만 해도 수만 명에 달한다니까 그야말로 일촉즉발인 셈이죠.”
점원이 대답했다.
석목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점원에게 영석 몇 개를 주고 돌려보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의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채아는 석목이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묵묵히 과자를 먹었다.
“가자.”
잠시 후, 석목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석두,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채아는 남은 음식들을 급히 입 안에 쑤셔 넣은 뒤 석목의 어깨 위로 날아가 앉으며 물었다.
“전쟁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러 가야지.”
“그걸 어디서 확인하려고?”
석목의 말에 채아가 재차 물었다. 석목은 엷게 웃기만 할뿐 대답하지 않았다.
* * *
일각 후, 석목은 성 안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재 상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석두, 여기는 왜 왔어?”
채아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정보를 얻으러 왔지. 여기는 겉으로는 작아보여도 실은 천오상회의 거점이거든.”
석목이 말했다.
일전에 그는 창욱성에서 종수를 도와서 많은 일을 처리했다. 그때 종수로부터 천오상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중에는 각 거점의 위치와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채아가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는 일단 숨어 있어. 천오상회가 현상금을 내걸고 나를 찾고 있는 판인데, 네가 있으면 너무 눈에 띄어.”
석목이 말에 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소매로 들어갔다.
석목은 상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각이 지난 후, 상점을 나오는 석목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요족과 야만족 간의 전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야만족에서는 십대 야만족이 움직이고 있었고, 요족에서도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를 파견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전선에는 천위의 경지에 있는 요족까지 나타났다고 했다.
양쪽 모두 각자의 병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이라, 곧 커다란 전쟁이 일어날 기세였다.
“석두, 요족과 야만족이 이번에야말로 진짜 전면전을 펼칠 작정인가 봐.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자. 저들이 싸우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채아가 석목의 소매에서 나와서 그의 어깨 위에 앉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어차피 적염성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거기로 갈 수는 없어.”
석목이 말했다.
적염성이 조금 특별한 곳이긴 했지만, 두 종족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거기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석목은 방금 전 천오상회를 통해 여의와 후새뢰에게 전갈을 보냈다. 적염성에 남아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였다.
동시에 영월동에게는 유안이 죽었다는 소식도 알렸다. 물론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다.
그 외에 석목은 천오상회에서 요즘 명월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은 야만족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요족과 전쟁이 벌어지려는 상황인데도 아직까지도 원군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석목은 명월교의 이런 행보가 무척이나 수상쩍었다. 아마도 명월동교의 인물인 유안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 어디로 갈까?”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서 한 장의 지도를 꺼냈다.
채아는 그것을 보려고 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머리를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