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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22화 (322/916)

322화. 최대의 위기

석목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크게 놀라며 감탄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비밀도 아니야. 오래된 문파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석 도우가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정도의 실력자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준 사람이 설마 아무도 없었다는 건가?”

창원왕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해성에서 천위의 지위에 도달한 자는 아마도 아주 희귀한 실력자겠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일계술사는 더더욱 본 적이 없고요.”

석목이 말했다.

그는 오래 전 흑마문을 나와서 줄곧 혈혈단신으로 지내왔다. 그 후 어떠한 세력에도 가담하지 않았으니 창원왕이 말한 내용을 모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천마종에 들어가서 이런 이야기를 접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지금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허허, 천위의 존재는 남해성에서나 강자인 것이지. 강자가 즐비한 성해의 세계에서는 천위 정도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들었네.”

창원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문득 통천선교가 개최했던 영선대회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는 그곳에서 천위의 지위를 능가하는 실력자, 말로만 듣던 선인(仙人)을 본 적이 있었다.

석목은 생각 끝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선배님이 이런 신비한 것을 알려주셨으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백원왕의 대를 이어 구전현공을 익힌 것은 사실입니다.”

석목의 말에 창원왕은 미간을 활짝 펴며 푸른 눈동자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는 기쁨을 참지 못해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창원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석목이 갑자기 물었다.

“하지만 일부러 저에게 탈출을 권유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닐 테고……. 이제 말씀해주십시오. 여기까지 오신 진짜 이유가 뭐죠?”

석목의 물음에 창원왕의 안색이 갑자기 흐려졌다. 가뜩이나 늙어 보이는 흰 눈썹에 피곤한 기색이 더해졌다.

“솔직히 말하지. 본왕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네.”

그는 고개를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의 얼굴에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의심의 기색 또한 짙었다.

창원왕은 석목의 안색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자네도 그날 보지 않았나? 황룡, 그 늙은 도적놈이 능천봉의 비밀창고에 있는 보물을 빼앗기 위해 날 삼백 년이나 가두어두었지. 그놈은 요수를 속박하는 도구로 내 영혼을 옥죄고 용을 제압하는 말뚝으로 내 몸을 봉인했어. 뿐만 아니라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네. 여러 가지 독이 든 단약을 만들어서 그걸 나에게 먹여 효과를 실험하기도 했지.”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 창원왕의 얼굴에는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이 떠오른 듯,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백 년 전에 그 도적놈이 서골산(噬骨散)이라는 기이한 단약을 만들었는데, 그건 정신과 육체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아주 독한 약이였지. 그놈은 그걸 십 년에 한 번씩 나에게 먹이고 이어서 해독제를 먹였다네. 그렇게 계속 반복해서 고통을 겪게 하되, 당장 죽지는 못하게 했어. 그렇게 삼백 년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몸속의 생기도 서서히 꺼져갔고, 게다가 지난번에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터트리기까지 했으니, 이제 남은 기운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네.”

여기까지 말한 천원왕이 갑자기 포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 다시 기회가 온다면! 내 반드시 그 늙은 도적놈의 껍질을 벗기고 뼈를 부수어서 재를 만들어 날리고 말 것이야! 뿐만 아니라 놈의 영혼을 파멸시켜서 영원히 환생할 수 없게 할 걸세!”

석목은 창원왕의 표정을 보고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선배님과 황룡 도인 사이의 원한은 제가 잘 알지 못하고 솔직히 관심도 없습니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그러자 창원왕이 분노의 기색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본왕이 이 일을 자네에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자네만이 본왕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기 때문이네.”

“어떻게요?”

석목이 의아해하며 묻자, 창원왕이 희망에 찬 눈빛으로 급히 말했다.

“자네가 구전현공을 나에게 전수해준다면,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네.”

“네?”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보게. 노부가 설명해주지.”

창원왕이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백원 선조가 푸른 원숭이족에게 말하기를, 구전현공은 천하를 뒤흔들 수 있는 최고의 신공(神功)이라고 했지. 아홉 단계를 모두 연마하면 비로소 대성(大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네. 그렇게만 되면 하늘과 땅을 두루 거닐며 영생할 수 있지. 게다가 천지를 개벽할 수 있는 능력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얻게 되는데, 그 신통함은 이루 상상할 수 없는 경지라네.”

창원왕이 얼굴에 동경의 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지만, 그 공법을 익히려면 천수의 혈맥이 필요합니다. 또 몸속에 천수의 정혈도 녹아들어야 하죠. 만약 이 두 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익힌다면, 그건 자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석목이 말했다.

“백원 선조가 남해성을 주름잡던 시절, 푸른 원숭이족은 선조께서 가장 신뢰하는 종족으로서 곁에서 모시면서 큰 공을 세웠지. 선조께서는 정혈 한 방울을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하사하셨네. 그 한 방울의 정혈 덕분에 푸른 원숭이족은 삼대 요족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네.”

창원왕이 말했다.

석목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창원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내 분수를 잘 알고 있다네. 다만 몸속에 남아 있는 선조의 정혈로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수련해 수명을 연장하고 싶을 뿐이야. 다른 건 바라지도 않네.”

석목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대로 내려와서 몸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정혈로는 구전현공 수련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양지화(至陽之火)도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전현공이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제가 무슨 이유로 도와야 하죠?”

석목이 물었다.

“자네가 구전현공을 전수해준다면, 자네를 데리고 남해성을 떠나 다른 성해로 가서 백원 선조의 숙적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겠네.”

석목이 주저하는 기색을 본 창원왕은 계속 말을 이었다.

“성역을 넘나드는 전송진을 배치하는 방법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실현된 지 오래라네. 남해성에는 오직 세 개의 성역 전송진이 존재하는데, 그 중 두 개가 서하대륙과 동주대륙에 있어. 지금은 요족과 야만족이 아닌 통천교의 관할로 넘어갔다네.”

“그럼 세 번째는요?”

석목이 물었다.

“세 번째는 해족이 소유하고 있다네. 본왕은 해족의 고위층과 인연이 깊어서 그들의 전송진을 이용해 자네를 데리고 떠날 수 있지. 그 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네.”

창원왕이 말했다.

석목은 창원왕의 말을 믿었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창원왕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석목을 가만히 바라보며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석목이 입을 열었다.

“저에게도 큰일인 만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지요.”

“물론이네. 충분히 심사숙고를 해야지. 본왕도 신중한 사람과 거래하는 게 좋네.”

창원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머리를 돌려 갑자기 물었다.

“참, 아까 겨룰 때 보아하니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석목은 살짝 놀랐지만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맞습니다.”

“내 솔직히 말하지. 구전현공은 현묘한 공법이라 각 단계를 수련할 때마다 자연의 기운이 뒷받침되어야 하네. 이곳 남해성처럼 영기가 빈약한 곳에서는 평생을 가도 끝을 보기 어려울 것이야.”

창원왕이 말했다. 그는 석목이 놀라는 걸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단계가 높아질수록 천지의 영기와 엄청난 양의 희귀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아무리 재력이 대단하다 해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지.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게 되면 남해성 전체의 자원을 가지고도 성공하기 어려울 걸세.”

창원왕이 말하는 내용은 매우 분명했다. 석목은 창원왕의 말을 절반 정도만 믿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은 석목의 가슴속에 큰 파도를 일으켰다.

석목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말씀은 모두 이해했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 남해성을 떠나는 것은 큰일인 만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관없네. 자네에게는 아직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어. 백원 선조께서 남긴 유언에 의하면, 그 나무상자가 열린 뒤 숙적이 남해성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삼 년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일 년이 남았으니 도망갈 시간은 충분하네.”

창원왕이 말했다.

“고작 일 년이라구요?”

석목이 중얼거렸다.

“백원 선조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일 년은 안전하다는 거지. 다만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다른 변고가 생길지는 본왕도 장담하지 못하네.”

창원왕이 말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찾죠?”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이곳에 사흘 더 머물다가 서하대륙을 떠날 것이네.”

창원왕이 말했다.

“서하대륙을 떠나신다고요?”

석목은 약간 의아해서 재차 물었다.

“요족과 야만족 간의 싸움은 이미 활시위가 당겨졌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히 두 종족 간의 전쟁이 아니지……. 나 또한 이 많은 일에 신경을 쓸 힘이 없다네.”

창원왕은 가볍게 말했다.

“동주대륙 북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바다에 해령도라 불리는 곳이 있네. 향후 일 년 간 나는 그곳에 있을 거야. 만약 나와 함께 가려면 그곳으로 찾아오도록 하게. 하지만 그때는 나에게 반드시 구전현공 첫 단계의 전반부를 알려줘야 하네. 후반부는 우리가 무사히 남해성을 떠날 때 알려주면 되네. 이렇게 하면 공평한 것 같은데, 어떤가?”

석목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만약 일 년 후에 자네가 약속대로 오지 않는다면 하루도 더 기다리지 않을 걸세. 사실 내 몸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정혈이 흐르고 있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적들의 보복을 염려하고 있지. 그러니 그때가 되면 자네가 있든 없든 남해성을 떠나게 되겠지. 다른 성역으로 가면 목숨을 연명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창원왕은 석목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네, 선배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석목은 창원왕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지 않고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떠났다.

창원왕은 떠나는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얼굴이 창백해져서 허리를 구부리더니 심한 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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