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영광(靈礦)의 의심
며칠 후, 세 사람은 서하고국의 변경에 있는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이곳은 바로 이전에 석목이 후새뢰를 만났던 백봉진(白豐鎭)이었다.
마을은 거의 파괴되어서 남아 있는 사람이 당시의 반도 안 되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낙담하여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가 어째서 이 모양이 된 거지?”
후새뢰는 마을의 상황을 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석목 일행을 보고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냈다. 그들은 멀리서 적대감이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가까이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지금 이곳의 주사(主事)가 누굽니까?”
후새뢰가 소리 높여 물었다.
그러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잠시 후 회색 옷에 초췌한 말상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제가 이 마을의 우두머리입니다만, 무인들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남자가 석목 일행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석목이 보아하니 그 중년 남자는 술사 같았다. 그러나 법력이 매우 약한 것이 견습생에 불과해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은 게 이전에 본 사람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 후새뢰가 그 말상을 한 중년 남자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그 남자가 이전에 백봉진의 청년 중 한 명이었던 걸 알아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전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 마을 내에 어떻게 젊은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거죠?”
후새뢰가 심각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예전에 이곳에 있을 때 변장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니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중년 남자는 일행을 훑어보더니 주저하며 물었다.
“당신들은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사람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문파 없이 떠도는 자들일 뿐입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아, 그랬군요. 이곳의 젊은이들은 모두 통천선교에 의해 오십 리 밖의 광산으로 끌려갔지요. 그래서 지금은 몇몇 노인과 아이밖에 없습니다.”
그 남자는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광산이요? 영석 광산을 말하는 건가요?”
후새뢰는 분노로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서하고국이 통천선교와 천마종의 연합에 의해 점령당한 뒤, 그들은 도처에서 마구잡이로 영석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잡혀갔던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은 조금씩 무너져갔고, 명월교가 통치하던 시절보다도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탄식하며 말했다.
“또 통천선교라니!”
후새뢰가 분노했다.
“달리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실력이 뛰어난 거대 종파이고, 우리 같은 보통 백성은 저항할 힘이 없으니 그저 마음대로 하게 둘 수밖에요.”
그 남자가 말했다.
석목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가 났다.
채광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전 흑마문에도 영맥 광산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일반인들을 고용했지만 보수도 제대로 지불했고,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적었다.
하지만 여기 백봉진의 사람들은 모두 강제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통천선교는 이곳 사람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의 사람들은 석목 일행이 통천선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적대감이 크게 사라진 눈치였다.
그때 마을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번개처럼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또 사람을 잡으러 왔다!”
“빨리 숨어!”
주위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은 말발굽 소리를 듣고 모두 대경실색했고, 각자 집안으로 재빠르게 숨었다.
마을 밖에서 몇몇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당신들도 얼른 숨어요! 저들은 통천선교에서 온 사람인데, 장정들을 모조리 잡아갑니다. 발각되면 타지 사람이라도 잡혀갈 테니 우리 집으로 와서 빨리 숨도록 하십시오.”
그 남자는 멀리 보이는 그림자들을 보며 석목 일행에게 재촉했다.
“괜찮으니 얼른 숨으세요.”
분노한 석목은 그 남자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남자가 다급하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석목은 손을 흔들어서 그를 부드럽게 제지하고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통천선교에서 온 무리는 이미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이삼십 명은 되어 보였고, 모두 자주색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마차 몇 대가 더 있었는데, 그 안에는 우리 같은 것이 있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젊은이였고, 건장한 중년 남자도 일부 있었다.
매우 탐욕스럽게 생긴 자주색 옷차림의 남자가 석목 일행을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 여기 백봉진에서는 이제 더 이상 건질 게 없을 줄 알았더니…….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가 세 마리나 있었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가와서 석목 일행을 둘러쌌다.
“너희 셋, 얌전히 마차에 올라타라.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다친다.”
손에 채찍을 든 남자가 말했다.
“석 선배님, 여기 백봉진은 제 고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다니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후새뢰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보며 말했다.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고맙습니다, 선배님.”
석목이 살짝 웃으며 말하자, 후새뢰는 얼굴이 화색이 돌아 석목에게 인사를 했다.
“네놈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우리가 통천선교라는 말을 듣지 못한 거냐?”
그 남자는 석목과 후새뢰의 대화를 듣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후새뢰는 냉소를 띠며 몸에서 회색빛을 뿜었다. 손에는 백옥으로 된 법장이 쥐여 있었다.
“명월교도인가! 이놈들은 명월교의 잔당이다. 무엇하느냐? 어서 잡아 죽여라!”
그 남자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큰소리로 명령했다.
그러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석목 일행에게 공격을 가했다. 명령을 내린 남자는 고삐를 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때 후새뢰가 입으로 주문을 외며 법장을 휘둘렀다. 그러자 회색빛이 반짝이며 일고여덟 개의 거대한 해골이 나타났다.
해골들은 손에 뼈칼과 뼈창을 쥐고 있었고, 활을 든 해골도 둘 있었다.
후새뢰가 불러낸 해골들이 순식간에 돌진했다.
술사의 경지에서 불러낸 해골들의 실력은 이미 후천 중기나 후기에 도달해 어서, 후천 초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통천선교 무리를 압도했다. 해골과 맞닥뜨리기만 했는데도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 일고여덟 명이 상처를 입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휙! 휙!
이어 두 해골이 시위를 당기자 화살이 날아갔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스무 명 남짓하는 사람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그 탐욕스러운 남자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채찍질을 하며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다른 몇 명도 잇따라 줄행랑을 쳤다. 그들이 탄 말은 힘이 좋아서 순식간에 십여 장을 달아났고, 해골의 화살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러자 석목이 한 손을 휘두르니 금색 빛이 떠오르며 허공에 기다란 용이 나타났다. 그 용은 금빛으로 빛나는 그림자를 만들며 순식간에 몇 사람을 따라잡았다.
탐욕스러운 얼굴의 남자가 크게 놀랐다.
금전검이 떨리면서 몇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더니, 달아나는 사람들을 포위했다.
쉬익!
몇 개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피가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철퍼덕 소리를 내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이어 금색 검광은 반짝이며 날아가더니 사람들이 갇혀 있는 마차를 내리쳤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석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때 말상의 중년 남자가 집밖으로 나왔다. 그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석목 일행을 바라보았다.
“모두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후새뢰가 우렁차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통천선교의 포노대(捕奴隊, 노예를 체포하는 무리)를 죽였소. 통천선교가 다시 찾아올 텐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소?”
말상의 중년 남자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후새뢰는 그 점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한 일이니 당신들을 끌어들이지 않을 겁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모르는 셈 치십시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길게 늘어진 불덩이가 날아오르더니 시체들을 태워서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렸다.
“여러분도 도망가십시오. 다시는 통천천교에 붙잡히지 않게 조심하고요.”
석목은 호송차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석목 일행에게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흩어졌다.
“가자.”
석목은 후새뢰와 여의에게 말하고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세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고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석 선배님, 조금 전에는 제가 성급하게 행동한 게 아닌가 합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후새뢰가 괴로워하며 말했다.
“괜찮아.”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그러자 줄곧 말이 없던 여의의 얼굴색이 변했다.
“석 형, 설마…….”
* * *
반 시진 후, 백봉진 서북쪽에 있는 산맥.
석목 일행은 한 산봉우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봉우리 아래의 평지에는 몇 개의 갱도가 만들어져 있었고, 갱도 거점으로 사용된 허름한 건물도 있었다.
거점에서는 수백 명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무력이나 법력이 없는 일반인으로 모두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감시하는 통천선교가 무력으로 강요하고 있었기에 모두 죽기 살기로 일을 했다.
석목 일행은 신식으로 거점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했다.
갱도 옆에는 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보아하니 괴롭힘을 당해서 죽은 것이 분명했는데, 최소 수백 구 이상은 되어 보였다. 시체들은 이미 부패해서 악취가 나고 파리 떼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통천선교는 그야말로 마도사교(魔道邪教)보다 더 잔인한 놈들입니다!”
후새뢰는 격노하며 말했다.
여의의 얼굴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망설일 필요 없겠지. 어서 나가자.”
석목은 담담하게 말했으나, 그의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네!”
후새뢰는 대답을 하자마자 아래의 거점으로 날아갔다.
여의는 그보다는 약간 느렸지만 후새뢰를 따라서 내려갔다.
“석두, 너는 안 갈 거야?”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에서 말했다.
“여기는 하나의 거점일 뿐이야. 저들 둘만 가도 충분해. 채아, 너는 통천선교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석목이 물었다.
“이 세상은 본래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야. 만약 명월교가 육산왕조를 점령했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야. 너희는 인간이니까 선악에 대해 그렇게 이상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채아가 대답했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