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26화 (326/916)

326화. 의심

한편 마차를 습격한 무리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온 것 같았고, 실력 역시 호위대를 훨씬 능가했다. 게다가 기습을 한 덕분에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호위대는 짧은 시간에 모두 죽임을 당했고, 이제 그 청년만 남아서 여자와 쟁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 역시 이미 중상을 입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너희 같은 강도가 감히 통천선교의 호위대를 죽이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청년의 손에 있는 자주색 검이 반짝이며 굵직한 도광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큰 소리를 내면서 여인의 검은 채찍에 맞섰다.

그러자 검은 옷의 여인은 얼굴에 냉소를 떠올리더니,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 순간 붉은 비검이 청년의 뒤로 날아들었다.

청년은 놀라서 재빨리 몸을 돌려 자주색 군도를 머리 위로 들었고, 비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때 여인이 주문을 외우자 검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왔고, 붉은 비검이 살짝 흔들리는 듯했다.

곧 청년의 머리 위에서 붉은 검영이 떠올랐고, 그것은 비검보다 더 어두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빛을 내며 청년을 공격했다.

청년은 이를 미처 알아채지 못해서 붉은 검영에 그대로 꿰뚫렸고,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이 두 동강이 났으며 사방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여인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는데, 조금 전에 펼친 비술로 인해 많은 기운을 소진한 탓이었다.

그녀는 붉은 비검을 거두어들이고는 흰 병을 꺼내 단약을 복용했다.

여인의 뒤에는 마차를 덮친 오륙십 명의 무리가 공손히 서 있었다. 모두 여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을 정리해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마차에 실려 있는 영석은 모두 챙긴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명령했다.

“네, 알겠습니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검은 옷의 사내가 대답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 영석들은 나도 일찍이 점찍어놓은 것인데, 당신들이 도중에 전부 가로채겠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영석이 실린 마차의 옆에서 갑자기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

“넌 뭐냐!”

순간 마차 옆에 있던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장도로 그 남자를 공격했다.

그러나 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하니 붉은 빛이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쿵!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하고 있을 즈음,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갑자기 나가떨어졌다. 그는 입에서 선혈을 토하고 있었고, 손에 쥐고 있던 장도는 이삼 장을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무리는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랐다. 검은 옷의 여인도 놀라서 손을 휘저었다. 곧 붉은 비검이 다시 떠올라서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어떤 자가 여기서 농간을 부리는 것이냐?”

검은 옷의 여인은 푸른 옷의 남자에게 경계와 의심이 섞인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그런데 여인의 목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은 듯했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들어서 검은 옷의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커다란 붉은빛이 나타나서 다락방 크기만 한 붉은 손으로 변하더니 그 여인을 붙잡았다.

그 거대한 손은 여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강풍을 일으켰고, 그 바람에 여인의 주변에 있던 일당들은 전부 날아가 버렸다.

여인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머리 위로 비검의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이삼 장 크기의 거대한 붉은 검을 만들어서 자신을 잡으려는 붉은 손을 공격했다.

동시의 그녀의 손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며 긴 채찍이 나타났다. 채찍은 곧고 굵직한 검은 빛이 되어 검과 마찬가지로 허공의 붉은 손을 공격했다.

푸른 옷의 남자는 웃으며 붉은 손을 허공에 그대로 두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빛이 거대한 검을 날려버렸다.

탕!

거대한 검의 빛이 흩어지더니 본래의 비검이 되어 빙글빙글 돌며 여인에게 돌아갔다.

이어서 붉은 손은 검은 옷의 여인이 만들어낸 검은 빛을 마치 파리를 잡듯 공격했다.

그 속도는 너무 빨랐기에, 검은 옷의 여인이 알아차렸을 때 붉은 손은 이미 그녀의 머리 위에 도달해 있었다. 손을 살짝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붙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검은 옷의 여인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절망한 듯 눈을 감고 그대로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잠시 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있던 두건이 가볍게 벗겨지면서 아리따운 용모를 드러냈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금 사저는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어느새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여인 앞에 나타났다. 붉은 손은 이미 사라졌으며, 그의 손에는 검은 두건이 들려 있었다.

“너는…….”

여인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바로 금소채였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도 저를 잊지 않으셨군요.”

푸른 옷의 남자가 피풍의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쓰며 말했다.

“아!”

금소채는 놀라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가, 푸른 옷의 남자가 손사래를 치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어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이 마차를 끌고 산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해라.”

“허나…….”

검은 옷의 사내가 푸른 옷의 사내를 보고는 주저하며 말했다.

“괜찮으니 먼저 가도록 해라. 곧 뒤따라 갈 테니. 왜 그러지? 다시 말해줘야 하나?”

금소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하들은 그제야 빠르게 그 자리를 정리하고 시체들을 소각한 뒤, 마차를 끌고 산 입구에서 사라졌다.

부하들이 멀리 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푸른 옷의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웃었다. 그는 당연히 석목이었다.

“금 사저, 오랜만이에요!”

어느새 그는 언제인지 변신을 풀고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금소채는 멍한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석목도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대로라면 금소채의 불같은 성격으로 볼 때, 그녀가 석목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해도 진즉에 거리낌 없이 공격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금소채는 한마디 말이 없었고, 석목도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둘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에서 너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금소채는 석목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돌리며 말했다.

“저도 생각 못했어요. 금 사저, 무슨 연유로 통천선교의 호송단을 공격한 거죠? 지금 천마종과 통천선교는 동맹 관계가 아닌가요?”

석목이 물었다.

“동맹은 무슨. 겉으로는 동맹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지.”

금소채는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최근 몇 년간 어디에 있었기에 소식도 한 번 없었던 거야?”

금소채는 마음을 안정시킨 후 말머리를 돌렸다.

“금 사저도 알다시피, 동주대륙에 있을 때 통천선교에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래서 여기에 머물 수 없으니 서하대륙으로 갔었죠.”

석목은 지난 몇 년간의 일을 간단하게 추려 이야기했다. 물론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 명월교를 따라서 서하대륙으로 갔었구나……. 듣기로는 그곳은 자원이 풍부하고 동주대륙보다 훨씬 낫다고 하던데. 지금 네가 오른 경지도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겠지?”

금소채는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금 사저도 실력이 많이 향상된 걸요. 이미 선천 후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조금만 더 수련하면 지계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을 거예요.”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석목의 말에 금소채는 자조하는 듯 웃었다.

그때 석목의 소매 안에서 갑자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두, 금소채 누님이야? 나 좀 나가게 해줘!”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매를 흔들자 그곳에서 채아가 튀어나왔다.

채아는 허공을 맴돌더니 금소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누님,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요! 얼마나 보고 싶었다구요!”

채아는 재잘거리며 금소채의 볼에 머리를 부비며 친밀감을 표현했다.

“이런, 너는 여전히 입만 살아 있구나.”

금소채는 채아를 타박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이 되어 하얀 손가락으로 채아의 머리 위 깃털을 쓰다듬었다.

채아는 한바탕 떠들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너는 최근에야 동주대륙으로 돌아온 거야?”

금소채는 석목을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네, 한 달쯤 됐어요.”

석목이 말했다.

“그래? 그녀와는 정말 인연이 깊구나.”

금소채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라면 누구……?”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한 달 전, 서문설이 통천선교 본부에서 선계의 경지에 올랐어. 수백 년의 통천선교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라고 하더구나.”

금소채가 말했다.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랐으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에 금소채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선계의 경지에 올랐는데 괴롭지 않아? 상당히 침착해 보이는데?”

금소채가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나와 서문설은 금 사저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서문설이 큰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 남녀 간의 정에 계속 얽매일 수는 없으니까요.”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금소채는 그의 말을 듣고 의아해했고, 석목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선계에 올랐다는 말은 내막을 모르는 이를 기만하는 것일 뿐이에요. 사실은 남해성을 떠난 것이죠.”

창원왕을 통해 성역과 남해성에 대해, 그리고 백원왕과 구수금교 사이의 원한관계에 대해 알게 된 후, 석목은 통천선교가 선전해온 선계의 경지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다.

“남해성? 그게 무슨 뜻이야?”

금소채는 석목의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하여 물었다.

석목은 잠시 망설였지만, 창원왕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금소채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석목의 표정이 진지했기에, 그리고 그녀는 석목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통천선교가 말하는 선계의 경지라는 건 확실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 같아.”

금소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라니요?”

석목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사실 서문설이 선계의 경지에 오르기 전인 요 며칠 사이에, 잠겨 있는 장생전에 잠입해서 그녀를 만났어. 그때 뜻하지 않게 통천선교의 두 수장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지. 그들은 갑자기 영석 채굴량을 늘리고, 많은 영석을 서문설과 함께 어떤 전송진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어.”

금소채는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석목의 얼굴색이 변했다.

‘또 영석 채굴이라니!’

그제야 통천선교가 대륙 곳곳의 영석을 끊임없이 캐내는 목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값진 영석과 선계의 경지에 오른 제자를 전송진을 통해 어떤 곳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소위 선계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아마도 밝힐 수 없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것인지도 몰랐다.

“역시 그랬군요.”

석목은 가볍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금소채가 망설이며 물었다.

“원래는 육산왕조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이제 보니 갈 필요가 없겠어요.”

석목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려고? 설마 통천선교의 일에 관여하려는 건 아니겠지?”

금소채가 재차 물었다.

“통천선교의 일에는 여러 모로 연루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와 금 소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사저는 우선 이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금의 상황으로는 서문설의 안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만약 금 사저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천마종으로 돌아가서 마양대전(魔陽大典)에 대해 알아보세요.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떠나겠습니다. 이후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요.”

말을 마친 석목은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그의 몸을 떠받친 뒤 어딘가로 멀리 날아가 버렸고, 불과 몇 호흡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금소채는 석목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사라진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녀는 하늘에 남아 있는 푸른빛의 끝자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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