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27화 (327/916)

327화. 천외(天外)의 방문객

* * *

하늘에서 푸른빛 한 줄기가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청익비차 위에 있는 석목의 안색은 어두웠다.

오늘 금소채를 통해 들은 바로는, 통천선교가 성역의 세력과 관련이 있는 건 분명했다. 서노자의 말로 미루어보면 종수를 데려간 신비의 여인도 아마 도 성역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남해성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석목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보름 후, 야만족의 황폐한 땅.

그곳에는 광활한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높고 낮은 구릉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게 마치 짙은 푸른빛의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는 듯 보였다.

갑자기 평지에 강풍이 불어 닥치더니 먼지가 수북하게 공중으로 휩쓸려 올라가 흩어졌다. 그 바람에 삽시간에 하늘과 땅이 어두워졌다.

짙은 먼지 속에서 푸른색 빛이 하늘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날아왔다.

그것은 청익비차(靑翼飛車)였다.

비차 위에는 삿갓을 쓴 청년이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 위에 앉은 앵무새는 날개로 황무지의 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그는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선천의 야만족으로 변신해 있었다. 게다가 삿갓을 눌러 쓰고 얼굴을 가린 채였다.

석목은 공중에서 황무지를 두루 살펴보았다.

십 년 전와 비교해 야만족의 황무지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고, 여전히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석목은 그 안의 영기가 이전보다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석목은 과거에 이곳을 지나면서 본, 버려진 광맥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석두, 여기는 달라진 게 없이 그대로네! 바람만 더 거세진 것 같아!”

채아가 입을 열자 그의 입으로 모래가 들어갔다.

비차를 타고 모래바람으로 침식된 무너진 담벽 몇 군데를 지나자, 그 아래 많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석목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방팔방에서 나와서 모인 사람들은 어디론가 한 방향으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야만족들은 무언가를 타고 움직였는데, 그것이 지나가는 곳마다 먼지가 자욱했다.

그들의 행색을 보아하니 야만족의 각 부락에서 온 토템용사들이었다. 평만부족과 흉만부족이 모두 있었는데, 대신 평만의 야만족들은 흉만족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였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의 두 야만족 사이는 그다지 좋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 급한 일이 없었다면 그들이 동행하는 모습은 더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두, 저 사람들은 저렇게 급하게 어디를 가는 걸까?”

옆에 있는 채아가 갸웃거리며 말했다.

“방향을 보니 야만족의 성지인 백마산으로 가는 중인 것 같아. 아마도 야만족에게 뭔가 큰 일이 생긴 것 같아.”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 * *

일각 후, 어느 황무지.

회색 갑옷을 입고 흉악하게 생긴 야만족 십여 명이 늑대를 타고 으르렁거리며 달려왔다. 그들이 다가오는 멀리서부터 사방에 모래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들 앞에 있던 한 야만족이 그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길 끝에 있는 모퉁이는 두 산이 만나는 산길이었다.

모퉁이를 도니 한 청년이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굵직한 두 팔을 가슴에 포갠 채, 등 뒤에 운철흑도를 메고 있었다.

늑대 위에 올라탄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그 청년을 보고 급하게 멈췄다. 그리고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너는 대체 누구길래 우리 천랑족(天狼族)의 길을 막는 것이냐?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총수님, 제가 대신 처리하겠습니다!”

우두머리의 옆에 있던 우람한 체구의 야만족이 고삐를 놓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두말없이 대검을 뽑아들고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석목이 고개를 살짝 들어 상대를 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 야만족은 눈앞에서 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옆을 보니 모든 이가 잇따라 석목 앞에 쓰러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두 눈이 뒤집어진 채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 * *

야만족의 우두머리와 그 뒤에 있던 이들은 석목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어……어르신, 어르신을 몰라 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게들 긴장할 것 없다. 나는 단지 길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너희가 굳이 싸우고 싶다면 기꺼이 상대해주겠지만.”

“아니, 어디 감히 그러겠습니까.”

석목이 담담하게 말하자,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야만족들은 석목이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보고 난 뒤라 자연스럽게 복종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석목이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몇 가지 좀 물어볼 것이 있다.”

석목은 야만족들의 상황에 대해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야만족 용사들은 역시 성지인 백마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대제사장 필력격의 소환을 받아서 대제사장의 지위를 승계하는 의식에 참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제사장의 새로운 후계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전까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몇몇 후보자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야만족 사이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따르면 이 후계자는 몇 년간 대륙을 돌아다니다가 최근에야 돌아왔으며, 그의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이각이 지난 뒤, 석목은 청익비차를 타고 동쪽으로 날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석두, 야만족 대제사장이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아. 정 그러면 우리도 가서 한번 보는 게 어때?”

채아가 말했다.

“뭔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긴 해. 하지만 나는 이런 일에 시간을 쓸 여유는 없어. 그들이나 가라고 해야지.”

석목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청익비차를 조종했다. 청익비차는 곧 푸른빛을 내며 먼 하늘 끝으로 날아갔다.

* * *

천우성에서 서쪽으로 구백 리 떨어진 곳.

지형의 기복은 점점 더 심해졌고, 산맥들이 쭉 이어져서 우뚝 솟아 있었다.

앞을 내다보니 구름까지 높이 솟은 봉우리들이 많았고, 그 위로 구름과 안개가 감돌고 있었다. 때때로 누각이 어렴풋이 보였고 푸른 녹음이 보일 듯 말 듯했으며, 이따금 시냇물 소리와 새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이곳은 태화 산맥으로, 대륙에서 가장 큰 종파인 통천선교의 본거지였다.

태화 산맥의 주봉(主峯)은 높이가 일만 장이 넘는데다,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노을이 떠오르는 산봉우리였다. 이곳에는 우뚝 솟은 웅장한 주전(主殿)이 있었다.

이 주봉의 주위를 아홉 개의 높은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별들이 달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구련포주(九蓮抱柱)라고 불렸다.

산맥의 깊은 곳에는 주봉과 마주하고 있는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산세가 마치 칼로 깎아 내린 듯 험준했다. 그곳에는 일 년 내내 운무가 피어올라서 외부에서 안쪽의 상황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없었다.

통천선교의 제자 대부분도 이 봉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단지 그 이름이 비래봉(飛來峰)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비래봉은 통천선교 내에서도 제한구역이라 일반 제자들은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밤이 되자 푸른색 옷을 입은 청년이 멀리서 날아왔다. 그는 비래봉 꼭대기에 있는 유일한 대형 석조 건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의 내부는 굉장히 넓었고, 원형의 진법 제단이 그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단 주위에는 남색 팔괘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은 젊은 제자 예닐곱 명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들은 실력이 약해 보이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선천 초기나 중기의 경지에 있는 듯했다.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몇 명의 젊은 제자가 급히 일어나서 손을 모으며 예를 갖추었다.

“사형, 오셨습니까.”

“그래, 별다른 일은 없는가?”

“관심에 감사합니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바쁘신 중에 이곳을 찾아와주시니 과분할 따름입니다.”

제자 중 우두머리 격인 통통한 도인이 서둘러 말했다.

“사형께서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어 풍만한 몸을 가진 여자 도인이 덧붙였다.

두 사람이 사형이라 칭한 사람은 바로 봉마전(封魔殿)의 장로 자옥(紫玉) 도인의 수제자이며, 통천선교의 수장인 무진 진인의 직속 제자 손우성이었다. 그는 사 품 혈맥을 지녔고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서, 젊은 나이에 선천 후기의 경지에 올라 스승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너희는 모두 우리 문하에서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이곳에 배치된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연말에 너희의 공적을 치하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법진 제단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환해졌다.

그 법진은 매우 심오해 보였으며, 안팎으로 삼 층으로 되어 각각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밝은 빛을 내는 것은 그중 내부에 있는 법진이었다. 그 위에 있는 뱀 무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오르내리며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우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것이…….”

제자들도 서로를 바라보는 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어두웠던 두 번째 법진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누군가가 전송을 하려는 거다. 통보도 없이 전송하는 걸 보면 적들이 분명해. 오(吳) 사매는 상부에 빨리 보고하도록. 그리고 나머지는 속히 법진을 막는다.”

우성은 상당히 침착한 태도로 분부했다.

그러자 풍만한 몸의 도인이 대답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머지 제자는 우성의 지휘 아래 법전 주위에 섰다. 그들은 각자 진기를 꺼내들고 법진이 있는 쪽을 향해 법결을 펼쳤다.

그때 내부에서 갑자기 파동이 일어나더니 진법 가장자리에 있던 삼 층 법진의 부문이 밝아졌다. 이어 그 위에 새겨진 기문(夔紋)이 꿈틀거리며 노란 빛을 뿜어냈다.

“큰일이다. 서둘러!”

우성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소리쳤다.

그 말에 제자들이 크게 놀라며 빠르게 법결을 펼쳤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는 듯, 법진은 천천히 돌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삼 층 법진의 빛이 커지더니 본래 잠잠하던 진형이 움직였고, 그 안에서 눈부신 흰 빛이 떠올랐다. 그 빛이 격렬하게 반짝이는 통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눈부신 흰 빛이 나오면서 격렬한 공간의 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빛이든 파동이든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곧바로 다시 흩어졌다.

흰 빛이 사라지자 제자들의 시력도 회복됐다. 그들의 눈에 진법에서 나오는 큰 그림자가 들어왔고, 그것은 체구가 우람하고 머리털과 두 눈이 노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금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칼집에서 나온 노란 검처럼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당신은 누굽니까? 누구길래 감히 통천선교에서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침입한 것이오?”

통통한 도인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일개 문지기 주제에 감히 내가 누군지 묻는 거냐?”

노란 옷을 입은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가 오른손의 손톱을 세워 그 통통한 도인에게 향하자 손에서 금색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금색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면서 무형의 힘이 되었다.

통통한 도인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채고 도망치려 했으나, 도리어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광경을 보고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두 대경실색했다.

“역시 별 것 아니로군!”

그 금색 옷의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검진(劍陣)을 쳐서 저놈을 포위하라! 곧 상부에서 지원군이 올 것이다!”

우성이 분노하며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법기를 꺼내 그 남자를 가운데 두고 포위했다. 하지만 정작 지시를 내린 우성은 검을 거두고 문밖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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