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신부맞이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던 두 사제는 곧이어 금 씨 가문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지? 네 이복동생 석옥환이 모레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여창해가 말했다.
“옥환이 혼인을 하는 것이었군요! 이곳으로 오면서 금 씨 가문의 저택 앞을 지나다가 초롱과 오색 천으로 장식이 된 걸 봤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혼인을 하는 줄 알았지, 옥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석목은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네 누이동생은 좋은 데로 시집을 가게 됐다. 너의 매부가 될 사람은 왕 씨 가문의 공자로, 지금 대제국의 최연소 호국무인이야. 아마 너도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게 된다면 그보다 못하지 않을 거다.”
여창해가 이어서 말했다.
“왕 씨 가문이요? 설마 왕천호는 아니겠죠?”
석목은 여창해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다른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그가 맞단다. 이 일은 우리 풍성 전체의 큰 경사야. 요 며칠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것도 모두 이 혼사 때문에 그런 거지…….”
여창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석목은 이 모든 일의 전후를 대략 이해하게 되었다.
본래 왕천호는 개원무원에 들어간 직후부터 왕 씨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폭염혈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품의 중급 혈맥이라는 게 확인된 후, 그는 왕 씨 가문에서 천재로 손꼽히는 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성 전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왕천호와 석옥환 두 사람은 일찍이 왕천호가 금 씨 가문에 가서 선을 볼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만약 왕천호가 의기가 충천해서 금 씨 가문의 많은 제자를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석옥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렇지 않았다면 개원무원에서 석옥환의 마음을 얻고, 수차례의 만남 끝에 깊은 인연을 맺지도 못했을 것이다.
왕천호의 타고난 자질은 개원무원에서도 얕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그의 요화창법(燎火槍法)은 현재 입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무원을 떠난 뒤 왕천호는 대제국의 조정에서 최연소이자 가장 잠재력 있는 호국무인이 되었다. 그가 호국무인이 되던 날은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고, 그 후로 대제국의 국력은 크게 신장되었다.
그때부터 왕 씨 가문는 풍성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집안이 되었고, 그 일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그의 집에는 혼사를 청하는 명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석옥환과 왕천호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된 일은 많은 풍성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심지어 석옥환의 사촌 언니인 금옥진은 이 일로 죽느니 사느니 소란을 피워대는 바람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석목은 본래 진이모를 뵙고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누이동생의 혼인, 그것도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간다니, 어쩔 수 없이 축하주 한잔 정도는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여창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석목은 채아와 주막으로 가서 하루를 묵었다.
* * *
이틀 후, 왕 씨 가문은 일찍부터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현재 왕천호는 대제국은 말할 것도 없고 풍성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이었다. 조정에서 온 고관과 귀인, 전국의 명문대가에서 온 사람들, 풍성의 왕족 모두 아첨하느라 바빴다.
그 외의 손님들도 끊임없이 밀려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축하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날이 막 밝을 즈음에는 얼마나 많은 손님을 받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인들은 바빠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지만, 그들은 자부심과 기쁨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왕천호가 호국무사가 된 이후에 하인들의 지위도 동시에 상승했기 때문이다.
왕천호도 꼭두새벽부터 쉴 새 없이 바빴다. 차 한 모금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전장에서 한바탕 큰 전쟁을 치른 것보다 더 피곤했다.
하지만 이는 혼례의 시작에 불과했다.
길시(吉時)가 되자, 왕천호는 많은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색의 큰 말에 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미리 준비해둔 십리홍장(*十里红妆, 신부의 집에서부터 신랑의 집까지 긴 대열이 이어지는 중국의 결혼풍습 중 하나)을 따라서 금 씨 가문으로 향했다.
이제 왕천호는 예전의 앳된 티를 벗어버린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흰 옥관을 쓰고 수가 놓인 검붉은 비단옷을 입었으며, 검은색 가죽 장화를 신은 그는 매우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세 가지 일은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나는 것, 신혼 첫날밤을 보내는 것, 과거에서 급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벌써 두 가지를 이루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지금 왕천호의 머릿속에는 석옥환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무원에서 헤어진 이후 두 사람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양쪽 길가는 그의 혼인 행렬을 지켜보기 위한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풍성 내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최연소 호국무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거리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힘겹게 머리를 내밀어 왕천호라는 이 전설 같은 인물의 풍채를 보려고 소란을 피웠다. 그들에게 호국무인이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신선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계절은 봄이 아니었지만, 거리 양쪽에는 각양각색의 생화들이 가득 뿌려져 있어서 풍겨오는 꽃향기에 취할 것만 같았다. 나무 위에도 수많은 붉은 초롱이 달려서 산들바람에 흔들렸는데, 마치 이 기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왕천호의 신부 맞이 행렬은 북치고 나팔을 불며 금 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금 씨 가문의 원로들이 나와서 예를 갖추고 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 신랑이 오셨습니다!”
하인처럼 보이는 어린 사내가 급히 소리쳤다.
갑자기 주위에서 귀를 찌를 듯한 폭죽소리가 터졌고, 타악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매우 경사스러운 풍경에 주위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금 씨 가문의 문 앞에 도착한 왕천호는 몸을 돌려 말에서 내리고는, 옷차림을 정돈한 후 모든 어른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덕담을 건넸다. 금 씨 가문의 어른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풍성에서 큰 인물이지만 손아랫사람인 왕천호가 이렇게 예를 갖추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허숙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말했다.
“아직 금 씨 가문의 어른이 나와서 영접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안의 공자가 먼저 인사를 청해야 한다는 건가?”
그러자 성격이 사납고 거친 금 씨 가문의 여덟째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큰소리를 쳤다.
“이보시오! 이 영감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 집 어르신이 당신들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입니까? 어디 이런 경우가 다 있소?”
그러나 허숙은 상대방의 눈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느 늙은이가 이를 모르며, 모르기를 원하겠소? 당신네 금 씨 가문의 어르신만이 우리 왕 씨 가문과 대화할 수 있소. 만약 그분께서 나와서 맞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혼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시오. 여긴 우리 금 씨 가문의 땅인데, 지금 어디서 유세를 부리는 거요?”
금 씨 가문의 여덟째가 화를 내며 쏘아댔다.
그 바람에 왕천호는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허숙 선생님, 저…….”
한쪽은 옥환 집안의 사람이라, 노여움을 사서 옥환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아버지와 같은 은사 허숙이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허숙이 그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금 씨 가문 주인 어르신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지만, 그는 억지로 참고 있었다. 어쨌든 왕 씨 가문는 지금 한창 잘나가는 가문이었으니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 석옥환이 시집을 가는 것은 금 씨 가문에 있어서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그들도 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멀리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금 씨 가문의 어르신이 문 앞으로 나왔다.
“왕 공자께서 오셨는데 이 노인네가 미처 마중을 나오지 못해서 죄송하군요. 왕 씨 가문에 이런 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관습에 따라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거 실례를 범했군요.”
금 씨 가문의 어르신이 말했다.
왕천호가 난처해하며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그의 사촌형이 입을 열었다.
“흥, 관습은 무슨 관습이오? 우리 왕 씨 가문의 신분은 생각도 않습니까? 금 씨 가문의 어른들은 정말 예의가 없군요.”
금 씨 가문의 어른들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손아랫사람이 어른은 안중에도 없는가?”
금 씨 가문의 주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 씨 가문에 가정교육이 없었다면 금 씨 가문이 어떻게 호국무인과 인척 관계를 맺을 수 있겠소? 우리 왕 씨 가문은 풍성에서 제일가는 명문가이니 마땅히 금 씨 가문 어르신이 나와서 영접해야지요. 잊지 마시오. 우리 도련님에게 시집오려는 아가씨들이 줄을 섰다는 걸. 당신네 금 씨 가문보다 좋은 집안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이오.”
“선생님, 이제 그만하십시오.”
옆에 있던 왕천호가 허숙을 살짝 잡아당기며 조급한 듯 말했다.
“공자, 이렇게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의 위신을 세우지 않으면, 금 씨 가문는 우리 왕 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겁니다!”
허숙이 말했다.
“허숙이 한 말이 맞습니다! 금 씨 가문이 풍성 제일의 명문가를 무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우리 왕 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는 겁니까?”
왕 씨 가문의 신부 맞이 행렬에 있던 사람 중 혈기왕성한 젊은이 몇 명이 덩달아서 소란을 피웠다.
“무슨 헛소리냐? 제일의 명문가라는 건 누가 정한 것이고? 자신들이 제일의 명문가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닌다니, 낯짝 한번 두껍군!”
금 씨 가문 사람들 중에서도 한 젊은이가 질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금 씨 가문의 어른들은 속으로 철렁했다. 그들은 건드리지 않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왕천호도 달갑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렸고, 왕 씨 가문의 모든 이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누가 풍성 제일의 명문가인지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자는 사람도 있었다.
일시에 주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 *
대문 앞에서 벌어진 떠들썩한 소란은 집안까지 빠르게 전해졌다. 이에 희파(*喜婆, 신부의 결혼을 돕는 여성)들은 옆에서 신부를 부채질해서 석옥환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했다.
오늘은 그녀의 혼례를 치르는 날인데, 만약 피를 보기라도 한다면 매우 불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 입장에서 함부로 얼굴을 내밀어 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침상 옆에 앉아 긴장해서 인상을 찌푸린 채, 손에 든 희말(*喜帕, 혼례를 치르는 날에 신부의 어머니가 신부에게 첫날밤에 사용하라고 주는 무명수건)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왕천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진이모도 밖의 소식을 듣고는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일개 아녀자일 뿐이었다. 비록 금 씨 가문이 요 몇 년간 석목을 두려워해서 그들 모녀를 여러 모로 공경해왔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가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석옥환은 그녀의 유일한 딸이었고, 딸의 행복은 곧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딸이 시집을 간 이후에 더 괴롭힘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이모는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석옥환은 어머니가 상심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왕천호가 자신을 연모한다는 걸 믿고 있었지만, 가족이 모욕을 당하는 것, 특히 어머니가 상심하는 것은 보기 싫었다. 마음이 심란해진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