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30화 (330/916)

330화. 현장제압

한편 두 가문은 대문 앞에서 서로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의 어깨에는 알록달록한 털을 가진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은 길모퉁이에서 한동안 상황을 살폈다. 그는 비록 금 씨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이모와 석옥환을 생각하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운을 감춘 뒤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싸우려 하다니, 모두 재미가 좋은가 봅니다? 보아하니 금 씨 가문의 노약자들은 당신들 왕 씨 가문의 적수가 될 수 없죠.”

그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귓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일순간 양가 사람들은 잇따라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네놈은 누구이기에 우리 금 씨 가문의 일이 끼어드는 것이냐?”

금 씨 가문의 한 소년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금 씨 가문의 어르신이 가장 잘 아실 텐데?”

석목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형형한 눈빛으로 금 씨 가문 어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

금 씨 가문의 어르신과 왕천호가 동시에 소리쳤다. 금 씨 가문 주인을 포함한 나머지 어른들도 뜨끔한 표정이 되었다.

석목을 보고 놀란 허숙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하하, 두 분께서 저를 기억하신다니 매우 영광입니다.”

석목은 금 씨 가문의 어르신과 왕천호가 있는 곳까지 다가오며 말했다.

“석목, 언제 돌아온 거야?”

왕천호는 기뻐하며 석목에게 말했다. 비록 그는 이미 두 차례 석목에게 패한 바 있지만, 그건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그는 정정당당하게 선천 중기의 무인이 되었다. 보아하니 석목도 선천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아서, 왕천호는 그와 다시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석목은 왕천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금 전 양가의 겨루기를 요구했던 왕 씨 가문의 제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결투를 해도 괜찮지만, 오늘이 아니라 나중에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음에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면 힘을 덜 써도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는 지금 금 씨 가문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이모는 저의 계모이고, 석옥환은 우리 석가의 자제입니다. 그러니 오빠 된 입장에서 어떻게든 여동생의 체면을 세워주어야겠습니다.”

그때 석목을 알고 있는 금 씨 가문의 자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석목, 자네 아버지는 우리 금 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왔어. 그런데 무슨 석가의 몫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자 석목은 금 씨 어르신을 보며 경멸스럽게 말했다.

“그래? 금 씨 어르신?”

금 씨 어르신은 화가 났지만 석목에게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수년 전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망신을 당한다 해도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장난을 칠 수는 없었다.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그럼 이렇게 된 이상, 결투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 여동생의 혼례일이니 어떤 식으로든 피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왕 형께서도 당연히 개의치 않으시겠죠?”

석목은 채아에게 높은 곳으로 날아가 있도록 한 뒤, 왕 씨 가문의 신부맞이 행렬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게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왕 씨 가문의 자제 몇 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일제히 석목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그들이 석목에게 다다르기도 전에,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돌연 그의 몸에서 놀랄 만큼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서 순식간에 파도처럼 주위를 휩쓸었다.

그 순간 방금 기세등등하게 덤비던 왕 씨 가문의 자제들이 갑자기 잇따라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거의 혼비백산해서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고 맥이 다 풀렸으며,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끊임없이 솟고 있었다.

왕 씨 가문의 자제 중 경지가 가장 높은 이는 후천 후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석목이 살짝 드러낸 기운만으로도 그들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그들은 결투니 풍성 제일이니 하는 것들은 금방 새까맣게 잊어버렸고, 그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마치 만 근 되는 바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지계!”

왕천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 중 석목의 기운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왕천호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계!’

나머지 무리는 왕천호의 말을 듣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허숙은 그중에서도 입을 유독 크게 벌리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지계의 무인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같은 무인인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금 씨 저택 앞은 이따금 들려오는 폭죽소리를 빼고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석목이 발산한 강력한 기운은 두세 호흡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수년 동안이나 지속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변의 공기가 사라진 듯 아예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호흡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경지가 낮은 두 명의 자제는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두 눈이 뒤집히며 고꾸라지더니 의식을 잃었다.

금 씨 가문의 어르신은 필사적으로 원기(元氣)를 촉진시켜서 석목의 강력한 기운에 버텨냈다. 그와 동시에 석목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 그리고 제발 살려달라는 듯한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만약 석목이 정말로 지계 경지에 올랐다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손쉽게 박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석목은 상황을 둘러보더니 씩 웃고는 기운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두 가문의 사람들은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었다. 그들 중 왕천호가 좀 전에 말한, 석목이 지계에 도달했다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더 이상 큰 소리로 떠들어댈 용기도 없었다.

왕천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석목의 눈빛을 바라보며 너무 놀란 나머지 마음이 또다시 어지러워졌다.

왕천호는 분명 보기 드문 희귀한 혈맥무인이었고, 젊은 나이에 이미 선천의 경지에 올라서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석목의 앞에서 그깟 선천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지계의 무인은 대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동주대륙 동부 전체를 가로질러 다닐 수 있는 존재였다. 삼국 칠대 종파의 대장로들도 이 같은 경지라고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왕천호는 전신에 무력감이 밀려왔다.

“보아하니 오늘의 대결은 취소하는 게 낫겠군요.”

석목은 양쪽을 둘러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쩔쩔매면서 감히 그의 말을 이어받지 못했다.

“그런데 몇 마디 더 하자면, 진이모와 석옥환은 우리 석가의 사람입니다. 아까도 말했듯 한 사람은 저의 계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동생이죠. 만약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 불경하게 대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석목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비록 크지 않았으나, 구구절절 얼음장처럼 차갑게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서 벌벌 떨게 만들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한 하인이 두리번거리며 문밖을 나오더니, 얼이 빠져 있던 집사의 귀에 몇 마디 귓속말을 했다. 집사는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맥없이 소리쳤다.

“길시가 되었습니다!”

한편 집 안에 있던 석옥환과 진이모는 석목이 나타난 사실, 그리고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을 이미 알고 깜짝 놀라고 있었다.

특히 진이모는 정말로 놀랐다. 크게 될 거라는 기대를 받지 못했던 의붓아들이 이렇게 급성장해서, 금 씨와 왕 씨 양가가 얻고자 했던 어마어마한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걸 보자, 진이모는 만감이 교차했다.

석옥환도 석목이 지계의 강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명목상의 오빠일 뿐인 그가 이런 중요한 때에 나타났고, 그녀를 난처한 상황에서 구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붉은 면사포를 쓴 석옥환이 희포의 도움을 받아서 대문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옆에서 따라 나온 진이모는 두 눈이 살짝 붉어진 채,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진이모, 이건 제가 옥환에게 주는 혼인 선물이에요. 급히 오느라 뭘 준비하지도 못했는데, 변변치 못하지만 기쁘게 받아주세요.”

석목은 앞으로 나가서 진이모에게 예를 표하고, 가지고 있던 고풍스러운 진묘계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석목, 너…….”

진이모는 감동헤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녀는 비록 풍성이라는 외진 곳에 있었지만,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래서 진묘계 위에 새겨진 부문을 보고 이것이 정말 진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다만 진묘계 안에 몇 개의 영기와 적지 않은 영석이 쌓여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왕 형, 제 여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이라도 고생시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석목은 이어서 왕천호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왕천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이가 뜨끔한 표정이 되었다.

“진이모, 옥환, 모두 건강하세요. 이후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올게요.”

석목은 두 손을 모아 진이모와 석옥환에게 이별을 고했다.

무리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가운데, 청익비차를 꺼낸 석목은 푸른빛이 되어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는 원래는 이곳에 좀 더 남아서 축하주라도 한잔 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경지를 내보이는 바람에, 더 이상 남아 있다가는 모두를 벌벌 떨게 만들 것 같았다.

“오라버니도 건강하세요!”

석옥환은 진이모가 그에게 건네준 진묘계를 한 손에 들고, 석목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바다가 있는 한 어촌.

해가 지면서 석양이 마을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수면 위에서는 어부들이 하루 동안 애써서 잡은 물고기를 가득 실은 어선들이 하나둘씩 귀항하고 있었다.

어촌의 아이들은 모두 해변으로 달려가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을 전체가 화목하고 평온한 것이, 마치 환상적인 꿈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삿갓을 쓰고 푸른색 옷을 입은 청년이 어촌 입구에 나타났다.

바로 석목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 보니 이전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 오자 번잡했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은 여전했다.

석목은 발걸음을 옮기며 소리 없이 마을을 거닐었다.

마을은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석목은 당시의 기억들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석목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마을의 가장자리에는 낡은 목조건물이 있었는데, 문과 창문은 이미 썩어 서 땅에 떨어져 있었고 방도 대부분 무너진 채였다. 집 주위에 잡초가 무성한 걸 보니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석목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집은 바로 그가 예전에 살던 곳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석목은 집을 수리할 마음은 없었다. 그는 그저 잠시 그곳에 있다가 몸을 번쩍이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