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누란지세(累卵之勢)
흰색 불덩어리가 금색 교룡의 십여 장 앞까지 다가오자, 금색 교룡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한 눈빛으로 주위에 금빛을 발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금색 외뿔과 눈동자, 입에서 휘황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빠른 속도로 빙빙 돌더니 커다란 금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때 흰색 불덩어리가 금빛 소용돌이의 가운데 부분을 가격했다.
그러나 그 순간, 폭발음이 들리기는커녕 두 개의 기운은 소리 없이 합쳐졌고, 소용돌이는 가장자리에서 금색과 흰색의 두 가지 불꽃을 뿜어냈다.
금빛 소용돌이가 빠르게 돌자 그 가운데서 검은색이 떠오르며 순식간에 커졌고, 그것은 마치 커다란 검은 입처럼 무시무시한 무형의 흡입력을 뿜어냈다.
흰 화염이 갑자기 빙글빙글 돌더니 흰 불의 혀가 불덩어리에서 튀어나오더니 검은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덩어리가 어두워지면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흰 불덩어리는 몇 호흡 만에 마치 하늘개가 태양을 집어삼키듯 통째로 삼켜졌다.
그러자 곧 금빛의 소용돌이에서 검은색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 소용돌이는 금빛이 되어 금색 교룡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금색 교룡이 금빛을 크게 내뿜자 타버린 발톱에서 다시 금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타버린 비늘조각도 떨어지면서 새로운 것이 돋아났다. 잘려나간 두 개의 발톱도 다시 나왔다.
“하하! 감히 내 앞에서 이런 공격을 시도하다니! 내가 삼키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잊었나?”
금색 교룡은 크게 웃으며 찬란한 금빛을 번쩍였다. 그는 몸을 흔들면서 한층 더 빨라진 속도로 흰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흰 원숭이는 이를 보고 대노하여 울부짖었다. 그리고 손에 든 흰 화염 곤봉을 휘두르며 다시 금색 교룡과 맞붙어 싸웠다.
금색 교룡은 태양의 불을 삼키자 마치 보약을 먹은 듯 몸의 모든 상처가 회복되었고, 실력도 한 단계 향상되었다. 발톱 위에서는 길이가 수 척인 맑고 투명한 금빛이 흘러나왔다. 금색 교룡은 이제 더 이상 흰 원숭이의 불덩어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둘의 그림자가 부딪칠 때마다 천지를 울릴 듯한 빛이 솟구쳐 나왔고, 우레와 같은 굉음이 이따금 들려왔다.
금색 교룡은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점차 우위를 점했다. 그가 몇 번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흰 원숭이의 몸에는 이미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여러 군데 나 있었다.
흰 원숭이는 방금 전처럼 태양의 정수를 삼켜서 상처를 회복할 겨를도 없었다. 그의 몸 주위에서 나오던 은빛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으르렁!”
흰 원숭이가 포효했다. 순간 그의 눈에 사나운 핏빛이 반짝이더니 체내에서 정혈이 이동하는 속도가 열 배 정도 빨라졌다.
흰 원숭이의 안에 있는 석목은 이를 감지하고 놀랐다.
그 순간, 흰 원숭이의 몸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이글거리며 타던 흰 화염에 핏빛이 더해지면서, 원숭이의 거대한 몸집이 불꽃 속에서 빠르게 수축되었다. 하지만 몸집이 작아지자 핏빛 화염 속에서 몸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기운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흰 원숭이가 법술을 부리는 동안, 금색 교룡은 두 눈을 반짝이며 흰 원숭이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거대한 발톱으로 흰 원숭이의 가슴을 맹렬하게 찔렀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색 교룡의 발톱은 흰 원숭이의 피부를 할퀴지도 못하고 옅은 흔적만을 남겼다. 마치 철벽을 긁고 지나간 것 같았다.
금색 교룡은 매우 놀랐다. 흰 원숭이는 무슨 비술을 펼쳤는지 육신의 힘이 두 배는 강해져 있었다.
“으르렁!”
흰 원숭이가 눈에서 핏빛을 반짝이며 주먹을 쥐고 포효했다.
찰나의 순간에 주먹의 그림자가 허공에 떠올랐고, 그것은 하얗고 붉은 파도처럼 금색 교룡을 향해 휘둘렀다.
거대한 금속들이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금색 교룡은 수백 장을 날아가서야 멈추었고, 배 위에는 주먹 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그중 한 군데가 특히 두드러졌는데, 비늘조각이 부서진 곳에서 옅은 금색의 선혈이 줄줄 흘러나왔다.
흰 원숭이는 새까만 왼손을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조금 전에 그는 이 왼손의 힘으로 금색 교룡을 나가떨어지게 한 것이었다.
금색 교룡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흰 원숭이의 왼손을 보았는데,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흰 원숭이의 주먹에 남아 있는 힘은 언뜻 보기에는 대단했지만, 사실 금색 교룡에게는 어떤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대단한 기세로 마지막 한 방을 날렸고, 금색 교룡은 방어를 했음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어 흰 원숭이의 몸에서 핏빛과 흰색의 화염이 맹렬하게 타올랐고, 원숭이는 포효하며 몸을 흔들더니 더욱 빠른 속도로 잔영을 남기며 다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교룡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왼손에서 커다란 흰색 주먹의 그림자가 날아갔다.
금색 교룡은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면서 몸에서 금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했던 몸집이 줄어들면서, 빠른 움직임으로 주먹 그림자를 피했다.
우르르! 쾅쾅!
흰 원숭이의 권영은 이백여 장 높이의 산봉우리 위에서 하얀색의 뜨거운 빛을 분출했다. 그러자 산봉우리 전체가 무너지면서 돌들이 사방으로 떨어졌고, 산봉우리는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 순간 금색의 뱀이 머리를 돌렸다. 그는 머리 위의 외뿔에서 눈부신 금빛을 뿜으며 흰 원숭이를 공격했다.
흰 원숭이는 핏발이 선 눈으로 왼손을 뻗었고, 왼손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뱀의 공격을 받아쳤다.
우르르! 쾅쾅!
금색 빛이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러나 흰 원숭이의 왼손 피부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흰 원숭이는 입을 벌려 냉소를 짓더니, 잔영이 되어 금색 교룡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금색 교룡은 몸을 움직여서 깊고 넓은 금빛을 내뿜어 흰 원숭이를 거세게 공격했다.
그 기운은 흰 원숭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원숭이는 그 충격으로 인해 수백 장 정도 뒤로 밀려났다.
“으르렁!”
허공에서 몇 번 공중제비를 돌고 나서야 자리를 잡은 흰 원숭이는 분노의 포효를 질렀다. 그가 왼손에서 흰색 화염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조금 흔들리더니 수십 개의 흰 권영이 되었고, 다시 금빛 기운을 격파했다.
그 순간 석목은 흰 원숭이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의 싸움을 지켜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에 젖어 감탄하고 있었다.
구전현공 첫 단계의 막강한 힘은 흰 원숭이를 통해 입증되고 있었다.
이 힘은 오늘 같은 싸움, 그리고 흰 원숭이의 구전현공 운용, 또한 향후의 수련과 실전에 있어서 정말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줄 게 분명했다.
흰 원숭이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움직여서 다시 금색 교룡을 향해 날아갔다.
금색 교룡은 흰 원숭이의 압박에 몸을 피했다. 그는 외뿔에서 금빛을 내뿜거나 입에서 금빛을 분출하며 흰 원숭이가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각의 시간이 흘렀다.
흰 원숭이의 몸에서 나오는 핏빛은 아까보다 어두워졌고, 기운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다.
그걸 본 금색 교룡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너는 체내의 정혈을 태워서 육신의 힘을 억지로 끌어올린 것이었군. 어디 정혈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보자!”
교룡은 큰 입을 벌려서 금빛을 내뿜었고, 급강하한 흰 원숭이를 수십 장 밖으로 밀어냈다.
흰 원숭이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제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의 기운은 크게 떨어져서 몸의 핏빛 화염도 거의 사라질 듯 희미해져 있었다. 아마도 이제 이각도 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정말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 * *
같은 시각 동쪽 바다 모처의 해역.
이곳의 파도는 흉흉했고, 바다색은 짙어서 주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저 멀리 바다 한복판에 파란색의 거대한 알껍데기 하나가 홀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알껍데기는 한 겹으로 된 반투명의 빛의 막이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검은 회오리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파란색 알껍데기의 표면을 후려쳤지만, 알껍데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빛의 막 너머로 어둑한 섬이 보였는데, 그 위로는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형형색색 불빛이 여기저기서 번쩍이고 있었다.
그 섬은 해수면보다 이삼십 장 높았는데, 아래로는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백 장이나 뻗어 있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라서 멀리서 보면 거대한 현무암(玄武岩)의 봉우리 같았다.
검은 봉우리의 주변에는 수백 개의 비늘이 돋아 있는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바다 위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몸에서 푸르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엄지손가락 굵기의 푸른빛이 줄줄이 검은 봉우리를 향했다.
그 수백 개의 그림자 위의 허공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옅은 하늘색 옷자락을 흔드는 그녀의 몸에서 맑고 투명한 파란 빛다발이 흩어져 나와서 아래쪽의 파란빛과 어우러졌다.
만약 석목이었다면 이 아름다운 소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을 터였다. 그녀는 바로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해족의 성녀 향주였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이자 복잡한 주문이 청량한 목소리에 얹혀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녀 몸속의 빛이 더욱 풍성해져서 손바닥 위의 마름모꼴의 수정을 통과했고, 그것은 다시 검은색의 높이 솟은 산체(山體) 위에서 흩어졌다.
화려한 빛 속에서 옛스러운 고문(古文)들이 서서히 나타났다. 수많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게 다 합하면 천 자가 넘을 듯했다. 마치 글자가 적힌 방대한 두루마리 같았다.
그 앞부분에 ‘절영주(绝灵咒)’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때 알 모양으로 된 빛의 막 밖에서 하늘색 궁장(宫装)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검은 봉우리 아래로 와서 허공에 떠 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마주보았다.
“주아야, 어떻게 되었느냐?”
궁장을 입은 여인이 물었다.
향주는 주변의 파란빛을 서서히 거두고 휘날리던 두 팔도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가볍게 아래로 내려오더니 여인의 옆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사부님, 팔 할 정도는 끝난 것 같습니다.”
“몇 년간 고생이 많았다.”
여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곳은 영기가 짙어서 제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대로 사오 년쯤 지나면 신물(神物)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향주는 머리를 흔들며 웃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여인은 고개를 들어 검은색 봉우리 위에 있는 빛의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부분의 공백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머리를 돌려서 향주를 향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변이 생겼다.
그녀들의 귀 옆에서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려온 것이다.
이어 검은 봉우리가 통째로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그 위로 솟은 파란 빛기둥마저 같이 흔들리면서 절영주가 새겨진 빛의 막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 게냐?”
향주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급하게 옷자락을 흔들며 법결을 외워 상황을 진정시켜보려 했다.
주문이 울려 퍼지자 그녀 몸속의 파란빛이 순식간에 커졌다. 그것은 수정을 투과하여 다시 빛의 막에 비춰졌다.
“해족들은 듣거라. 법력을 다해서 성녀를 도와라!”
여인이 큰 소리로 명령했다.
“네!”
해족의 무리가 일제히 답했다. 이어 그들 몸의 파란 빛이 순식간에 크게 번지더니, 엄지손가락 정도의 굵기에서 어린아이 팔뚝만큼 커져서 전부 봉우리 위로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