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신병천강(神兵天降)
빛의 막은 파란 빛에 의해 다시 안정을 되찾는 듯 했고, 그 위로 다시 고문자들이 느릿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열음과 함께 검은 봉우리 위로 다시 아이 손목 굵기의 균열이 생겨버렸다.
처음엔 한 가닥이었던 균열은 점차 세 가닥, 다섯 가닥으로 늘어났고, 마치 거미줄처럼 주위로 빠르게 퍼졌다.
이어 검은색의 큰 바위들이 우수수 굴러 떨어졌고, 일부는 저 멀리 해족 무리 속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몸을 피하지 않고 각자의 신통력으로 그 바위들을 막아냈다.
쾅!
바로 그때, 검은 봉우리 속에서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한 굉음이 울렸다. 그 바람에 해족들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통증으로 휘청거렸다.
봉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향주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하마터면 허공에서 움찔하며 떨어질 뻔했다.
이 광경을 본 여인은 놀란 기색으로 한쪽 팔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색 비단이 그녀의 소매 속에서 뽑혀 나와 향주 주변을 감쌌고, 날아오는 검은 바위들을 막아냈다.
굉음과 함께 검은색 봉우리 위로 여러 갈래의 금색 빛이 틈을 비집고 뿜어져 나왔다. 그 파동으로 일어난 물결이 빠르게 솟구치며 빛기둥을 무너뜨렸고, 곧 절영주의 두루마리마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쾅쾅!
마침내 검은 봉우리 전체가 산산이 쪼개졌다. 수많은 검은 암석이 산 위의 석벽에서 무너져 굴러 떨어지자 그 속에 봉인되었던 것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높이가 백 장은 되어 보이는 금색의 거대한 곤봉이 해면 아래 절반 정도 박힌 채 꽂혀 있었다.
해족 무리는 떨어지는 돌들을 피하느라 분주하게 뒤로 물러났고, 성녀 향주는 법기의 보호를 받으며 다시 돌아왔다.
해족 무리가 어안이 벙벙해있는 사이에, 그 거대한 곤봉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바다 아래 깊게 묻혀 있던 부분이 굉음과 함께 조금씩 수면 위로 뽑혀 올라왔다.
순간 바다 주변에서 순식간에 거센 파도가 일었고, 수많은 암류(*暗流,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흐르는 물)가 금색의 곤봉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금색의 거대한 곤봉은 위로 치솟는 동안 눈에 띄는 속도로 작아졌다. 그것은 눈 깜박할 사이에 사발 굵기에 서른 장 길이로 줄어들어서 해면 위의 허공에서 금빛을 흩뿌렸다.
“이건…….”
여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 있던 향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바로 그때, 금색의 거대한 곤봉 표면에 은밀한 부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외부의 힘에 이끌리듯 붉게 빛나며 돌연 위로 솟아올랐다.
쿵!
순식간에 파란빛의 타원형 빛의 막에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막으로 인해 단절되어 있던 주위의 영기가 다시 해일처럼 휘감겨서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금색의 거대한 곤봉은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닥의 금빛 줄기로 변하더니 서남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그리고 두어 번 깜박이더니 하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 *
흑마문 종문 근처의 수많은 봉우리는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큼직한 돌덩이들이 전부 무너지는 바람에 온통 난장판이었다.
한편 허공에서는 흰 거대 원숭이와 금색의 교룡이 여전히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흰 원숭이의 몸뚱이는 처음보다 훨씬 홀쭉해졌고, 온몸에는 흰 연기가 자욱했다. 원숭이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방어하는 것에 급급한 것이 명백하게 불리해 보였다.
후우!
금색 교룡이 다시 꼬리를 좌우로 휘두르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흰 원숭이에게 다가갔다.
쿵!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된 흰 원숭이는 두 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하며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대로 수십 장 밖으로 떠밀려 날아가 버렸다. 간신히 멈춰선 원숭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드러냈다.
흰 원숭이의 체내에 있는 석목은 숨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정혈까지 거의 소진해버린 상황이었다. 그의 마음은 점점 급해졌다.
흰 원숭이가 미처 숨도 고르기 전에 금색 교룡이 다시 한 번 덮쳐들었다. 교룡은 적금색 불빛을 토해내며 원숭이를 향해 다가갔다.
흰 원숭이는 고민할 틈도 없이 두 발로 땅을 차며 다른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훅!
적금색 화염이 간발의 차이로 그의 어깨를 스쳤다.
흰 원숭이는 간신히 공격을 피해냈지만 어깨의 털이 까맣게 타버렸다. 한 발짝만 늦었어도 그 자리에서 한 줌의 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디까지 피하나 보자!”
교룡이 두 눈에서 금빛을 번뜩이며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멀리서부터 보일 듯 말듯한 희미한 빛이 날아왔다. 그 빛은 스치는 곳마다 바람을 일으켰고, 하늘의 구름들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구름들이 뭉쳐 소용돌이가 만들어지자 그 중심부에서 빛이 화려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의 속도는 순식간에 백 리를 이동할 만큼 빨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의 심장은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북받쳐 오르는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흰 원숭이도 무엇인가를 감지한 듯, 흐려졌던 눈이 반짝이였다.
금색 교룡도 그 소리를 듣자 순간 멈칫했고, 곧바로 머리를 들어 불에 타오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동공이 순식간에 축소되었다. 교룡의 눈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분명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
금색 교룡은 잽싸게 머리를 돌려서 분노의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원숭이를 보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다시 한 번 적금색 화염을 뿜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석목의 머리 위에서 천둥이 울려 퍼졌다.
높은 하늘 위의 구름숲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에서 수많은 금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사발의 입구만한 굵기에 길이가 서른 장 정도 되는 금색 곤봉이 화염 속에 휘감겨 한줄기의 번개마냥 빛 속을 뚫고 내려왔다.
거대한 교룡이 뿜어낸 적금색 화염은 흰 원숭이 코앞까지 빠르게 다가왔고, 곧 원숭이의 머리에 닿을 것만 같았다
쿵!
하지만 이어서 들린 소리는 적금색 화염이 원숭이를 덮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금색의 거대한 곤봉이 마치 뿌리를 내린 듯 원숭이 앞의 땅에 박혀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바람에 거친 파동이 몇 리 밖까지 일어나 돌멩이가 휘날렸고, 금색 교룡의 적금색 불빛도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금색 교룡은 보호막을 만들어 거센 바람을 막아내긴 했으나,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금색의 거대한 곤봉이 땅에 닿자 그것을 둘러싼 불길들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훨훨 타올랐다. 주위의 공기에서 간간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고, 마치 찌는 듯이 뜨거웠다.
눈앞의 거대한 곤봉을 응시하던 흰 원숭이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곤봉도 파르르 떨면서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냈다.
석목의 가슴에서 왠지 모를 감정이 또 한 번 북받쳤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이별했던 친구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흰 원숭이는 성큼 한걸음을 내딛으며 오른손을 뻗었고, 금색의 거대한 곤봉을 잡았다.
그러자 파멸의 기운이 그 중심에서 퍼졌고, 주위 백 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땅 위의 자갈들이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흰색의 기류가 모여들어 거대한 곤봉의 꼭대기를 휘감았다. 그것은 주위에 하얀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푸른 하늘의 구름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거대한 곤봉 위의 화염은 흰 원숭이의 손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휘감았다.
맹렬한 불꽃을 두른 흰 원숭이는 마치 금색 갑옷을 입은 듯, 그 기세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위풍당당한 모양새를 보니 기운이 한층 상승한 듯했다.
이어 등 뒤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길이가 스무 장은 되어 보이는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마치 금색의 피풍처럼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펄럭였다.
흰 원숭이의 두 눈에는 금빛이 이글거렸다. 마치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듯한 기세였다.
원숭이는 거대한 곤봉을 집어높이 들었다가 땅에 내리쳤다. 그러더니 큰 보폭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고, 다시 원을 그리며 곤봉을 몸 앞까지 이동시켰다. 이어 곤봉은 흰색 화염을 휘날리며 교룡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거대한 곤봉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흰 원숭이가 그것을 들어서 공격 자세를 취하기까지는, 실제로는 전부 눈 깜빡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금색 교룡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금빛 보호막이 둘러져 있었다. 거대한 곤봉의 공격으로 불어대는 바람을 다급하게 막아내느라 다른 동작을 취할 겨를이 없는 듯했다.
흰 원숭이가 하얀 기류와 타오르는 화염을 내뿜으며 다시 곤봉을 내리치려 하자, 금색 교룡의 두 눈에서 비로소 공포의 기색이 떠올랐다.
흰 원숭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금색 빛들이 밀물처럼 모여들어 그의 몸 앞에 금색 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흰 원숭이가 거머쥔 거대한 곤봉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거대한 곤봉이 닿는 순간, 그물은 그대로 찢어졌고, 곤봉은 곧바로 교룡을 향해 내리쳐졌다.
“악!”
금색 교룡은 분노로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굵고 거친 발로 곤봉을 붙잡았다
펑!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금빛이 부서졌다. 그러자 금색과 백색의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주위 공기와 구름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교룡의 거대한 몸통이 튕겨나갔고, 교룡의 금빛 비늘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교룡의 두 발에서부터 소름 돋는 균열이 생겨났고, 이어서 가슴과 배, 머리까지 균열이 퍼져 나갔다. 거대한 교룡의 몸이 마침내 허공에서 터지면서 자욱한 피안개가 만들어졌다.
흰 원숭이는 여전히 손에 거대한 곤봉을 쥔 채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를 중심으로 사방의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흑마문의 열세 번째 산봉우리도 윗부분이 깎여나갔다. 열두 번째와 열한 번째 봉우리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아서 산체에 균열이 생겼으며, 거대한 암석이 굴러 떨어져서 건물들이 붕괴되어버렸다.
흑마문 사람들은 대장로의 지휘로 이미 수라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먼 곳의 산봉우리 위에서 세상천지가 파괴될 듯한 일격을 목격하고는 다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그때, 한 줄기의 핏빛 그림자가 용솟음치는 붉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멀리 도망쳤다.
흰 원숭이는 그 광경을 보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거대한 곤봉을 휘두르며 그 안개를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흰 원숭이의 그림자는 허공에 잠깐 떠 있다가 이내 무겁게 내려앉았고, 큰 웅덩이에 빠지면서 다시 한 번 주위에 먼지를 휘날렸다.
원숭이는 힘없이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이어 흰 원숭이의 눈에서도 금빛이 서서히 사라졌고, 검은 동공 주변에는 금빛 동그라미가 생겼다. 거대한 몸뚱이는 겹겹이 쌓인 털을 흩날리더니 천천히 줄어들었고, 이내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금색의 거대한 곤봉도 흰 원숭이의 손을 벗어났고, 비명소리와 함께 다시 금빛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한참이 지났지만 주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흑마문 사람들은 여전히 먼 곳에서 현장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