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경천일곤(擎天一棍)
동쪽 바다의 해저.
검푸른 바다 위의 검은 봉우리가 거대한 금색 곤봉으로 변해서 날아간 뒤, 바다 밑에는 동그랗고 큰 구멍과 검은 암초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해족들은 주변의 검은 암초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의기소침한 기색이 역력했다.
“몇 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끝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마무리를 했다면…….”
향주는 어두운 기색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늘의 뜻인 거지. 어쩌면 이 신물은 애초에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주아야, 너도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여인은 향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향주는 고개만 흔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해저에서 다시 한 번 격렬한 진동이 일어났고, 잠잠하던 바다에서 거센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이어 해면에서부터 물속 깊은 곳까지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백 장 깊이까지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해족 무리가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멀리서 한줄기 금빛이 다가왔다.
이어 눈 깜박할 사이에 서른 장 길이의 거대한 금색 곤봉이 번쩍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곧바로 그 큰 구멍으로 들어가서 묵직하게 바닥에 꽂혔다.
거대한 곤봉이 땅에 뿌리를 내리자 표면의 금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부신 금빛 아래의 거대한 곤봉은 계속해서 굵어지고 길어져서 거대한 구명을 온전히 메웠다. 그뿐만 아니라 바닷물을 사방으로 밀어내면서 계속해서 커졌다.
찬란한 금빛 곤봉은 해수면 위로 십 장 정도까지 올라온 뒤에야 커지는 것을 멈추었다.
이어 거대한 곤봉의 몸체에서 작은 파동이 생기더니 주위 수십 리의 해역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주변 해역의 거대한 검은 암석들이 바다 밑에서 질서정연하게 튕겨오르더니 금색의 거대한 곤봉을 향해 굴러갔다.
크고 작은 바위들은 자석에 이끌린 듯 거대한 곤봉에 차례로 달라붙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거대한 곤봉은 바위들로 빼곡하게 둘러 싸였다.
바위들에 덮인 거대한 곤봉의 빛이 점차 사라졌다. 이어 더 큰 바위들이 그 위에 겹겹이 쌓이자 마침내 거대한 곤봉은 전부 묻혀버렸다.
이어 해면 위에는 다시 한 번 이삼십 장 높이의 검은 바위가 우두커니 솟아올랐고, 그 위로 검은색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해족 무리는 다시 나타난 신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부님, 이것은…….”
다시 찾은 신기를 보며 향주도 어리둥절해졌다.
“예사롭지 못한 기이한 현상이구나. 하지만 신물이 다시 돌아왔으니 우리 해족에게는 좋은 일이지.”
여인이 말했다.
“사부님, 이 신물 안에 봉쇄된 거대한 금색 곤봉은 비범한 물건입니다. 허나 절영주만으로는 완벽하게 획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향주는 읊조리듯 말했다.
여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명을 내렸다.
“주아야, 네 말이 옳다. 주안(海晏), 사람을 데리고 속히 동극궁(东极宫)으로 가서 대장로에게 그간 발생한 일을 알리거라.”
“네.”
몸에 검은 비늘이 있는 덩치가 큰 남자가 명을 받고 열댓 명의 해족을 거느리고 떠났다.
“사부님, 대장로를 모실 계획이십니까?”
향주가 물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아마도 이 신물은 대장로의 해신정진(海神鼎镇)이 아니고서는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여인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향주, 명을 내리거라. 다시 절영진혼(绝灵镇魂) 대진을 만들거라!”
“네, 사부님.”
향주가 답했다.
* * *
한편 흑마문의 산봉우리 부근에 있는 큰 웅덩이에서는 흙먼지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안에 누워 있던 석목이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몸의 상처는 전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깨어난 그는 머리가 터질 듯 아파왔다. 마치 두통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석목은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주위를 급히 둘러보고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그 금색의 거대한 곤봉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석목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되새겨보았다. 흰 원숭이가 신물을 거머쥐고 소름 돋는 일격을 가한 것을 생각하니, 진심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곤봉은 어느 정도의 위력이 있기에 한 방에 천위 후기의 요수를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석목은 한숨을 내쉬며 진묘계에서 옷가지를 꺼내 몸에 걸쳤다. 그리고 웅덩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중급 영석을 손에 쥐고 기력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무척이나 심란했다.
백원왕이 남긴 정보에 의하면, 구수금교(九首金蛟)가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 반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개의 분신이 벌써 도착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를 볼 때 창원왕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구수금교의 본체가 실제로 나타날 경우 남해성은 파멸의 위기를 맞을 게 뻔했다. 그때가 되면 다시 흰 원숭이로 둔갑한다 해도 도망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석목은 더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체내의 진기를 회복한 후 다급하게 몸을 돌려 일어났고, 청익비차를 소환하여 동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곡동성(曲东城)은 육산왕조의 동부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성지로, 인구 수는 약 이십만 명이었다.
곡동성은 교통이 편리한 데다 강을 끼고 산을 등지고 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었다. 백성들은 이곳에서 줄곧 평안하게 살고 있고 있었고, 성은 항상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그 시끌벅적하던 곡동성의 거리는 지금 인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으며, 몇몇 가게만 조심스럽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성문 앞에는 문을 지키는 두 명의 노인이 긴 창을 손에 쥐고,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황 씨, 자네 들었는가? 근래에 연속으로 네 개의 성이 영문도 모른 채 텅 비어 버렸다는군. 성내 사람들이 하룻밤에 사라져버린 거지…….”
허리가 굽은 노인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말했다.
“어디 사라졌다 뿐인가? 이 씨, 내가 듣기로는 그 네 개 성의 사람들이 악마에 잡혀먹었다지 뭔가!”
황 씨라 불린 노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상쩍다는 듯이 말했다.
이를 듣고 있던 이 씨가 크게 놀라면서 되물었다.
“악마? 그……그게 사실인가? 이 여우같은 유(刘) 태수 같으니! 그걸 알고 어젯밤 첩들을 데리고 다급하게 성을 나갔다지. 성 안의 부자들 중에서도 오늘 떠난 자가 한둘이 아니야. 하루 전에 사고가 났던 정아성(定阿城)도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지 않나? 우리 둘이 여기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쉿, 불길한 소리 말게나.”
황 씨는 다급히 이 씨의 말을 끊었다.
“우리도 얼른 들어가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씨가 말했다.
“휴우. 이제 와서 말인데, 그 악마가 진짜로 온다 해도 숨을 곳이 없어. 사고가 난 성들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된 게 아닌 가? 그러니 여기저기 떠도는 것보다는 성에 머물면서 운명에 맡기는 게 낫지.”
황 씨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리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검은 먹구름이 밀려와서 곡동성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 먹구름은 기이할 만큼 컸는데, 한눈에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먹구름이 온 곡동성을 덮으니 마치 어두운 밤이 온 것 같았다.
“날씨 한번 거지같군. 변덕스럽기 짝이 없네.”
이 씨는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긴 창을 지팡이 삼아 밖으로 몇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려는 찰나, 너무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해져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곡동성의 하늘 위로 크게 자리 잡은 먹구름 사이에서 순간 여러 줄기의 기이한 핏빛이 떠오르며 들끓기 시작했다.
크나큰 먹구름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피처럼 붉어졌다. 마치 불에 활활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붉은 빛은 어두워졌던 곡동성을 다시 붉게 물들였다. 그 모습은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황 씨, 빠……빨리 보게나.”
이 씨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 황 씨를 부르려고 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먹구름의 중간 어딘가에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초롱 크기의 금색 빛덩이가 두 갈래의 금빛을 내뿜어서 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이어서 여러 덩어리의 핏빛 안개가 거대한 핏빛 먹구름을 뚫고 허공에 미미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곧바로 옅은 안개로 변하여 봄비처럼 곡동성의 곳곳에 흩뿌려졌다.
순간 한 줄기의 피 연기가 성문 앞에 있던 이 씨의 콧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굳어버리더니 피부가 순식간에 빨갛게 되었고, 살이 썩어서 몸통에서 벗겨져 나갔다. 벗겨진 살덩어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땅에는 하얀 뼈만 남겨졌다.
“이 씨…….”
허리가 굽은 황 씨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또 다른 한 줄기의 연기가 그의 콧구멍을 찔렀다. 황 씨의 몸도 이 씨처럼 빠르게 붉어지면서 뼈에서 분리됐고, 허공에 피와 살점이 둥둥 떠다녔다.
이렇게 핏빛의 옅은 안개들이 성에 뿌려지자 수많은 피와 살점이 성의 곳곳에 떠다녔고, 그 수는 수천 혹은 수만에 달해서 빽빽하게 성 안을 채웠다.
그때 곡동성을 뒤덮은 피의 안개 한가운데서 갑자기 거대한 핏빛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소용돌이의 가운데는 칠흑같이 어두웠는데, 보이지 않는 흡입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성 위에서 떠다니는 희미한 핏덩어리들은 이 보이지 않는 흡입력의 의해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우수수 빨려 들어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노발대발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요괴가 농간을 부리느냐?”
성과 머지않은 곳에서 서너 장정도 되어 보이는 붉은 배가 날아왔다. 그 위에는 갈색 도복을 입은 한 노인이 타고 있었다.
붉은 배에는 갈색 도복을 입은 일고여덟 명의 청년 도사가 있었다. 그들은 제각각 다른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곡동성 인근에서 최대의 종문인 청림관의 도사였다. 청림관은 통천선교에 속해 있었는데, 하늘에 기이한 현상이 생긴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쫓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같은 시각, 성 위에는 구역질이 나올 만큼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새하얀 해골들이 성의 곳곳에 산처럼 쌓였으며, 핏덩어리들은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핏빛 먹구름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요괴를 포위해라!”
갈색 도복의 노인이 노성을 지르며 붉은 비차에서 날아올랐다. 그의 두 손이 칼이 되더니 허공에 있는 피구름을 향해 휘둘려졌다.
그의 뒤로 한 줄기의 회색빛이 하늘을 향해 청량하고 긴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이어서 그것은 수십 개의 회색 검으로 변해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젊은 제자들도 노인의 지휘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고, 저마다 진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갈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발사한 수백 개의 회색 검광이 허공의 거대한 피구름에 닿는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 안쪽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구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흔적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