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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39화 (339/916)

339화. 해상추살(海上追杀)

노인이 대경실색하여 얼어붙어 있을 때, 피구름 속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두 갈래의 핏빛 안개 화살이 먹구름 속에서 뻗어 나왔다. 그것은 벼락이 내리치듯 노인을 향했고 순식간에 그의 몸을 파고 들었다.

노인의 몸은 굳어버렸고 얼굴에는 붉은 색과 하얀색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묵 장로님!”

옆에 있던 청림관의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가……. 빨리 가…….”

묵 장로는 간신히 입을 열어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어 그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온몸이 부식되었다. 곧 핏덩어리로 변해버린 그의 몸이 옷깃 사이에서 빠져나와 허공의 피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백골만 남아 땅으로 떨어졌다.

이 장면은 주위에 있던 청림관의 젊은 도사들을 망연자실하게 했고,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그 노인은 평범해보였지만 실은 청림관의 세 지계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공법이 뛰어나고 악인을 극도로 증오해서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는데, 괴이한 피구름과의 싸움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이 거대한 피구름은 여러 성을 거치는 동안 세력이 강한 종문들과 계속 전투를 벌였으나, 그들은 모두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노인처럼 한 덩어리의 피와 살점이 되어 삼켜진 것이다.

초저녁이 되자 곡동성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생명체가 없었다. 성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백골 무덤이 있었고, 성 밖에서는 수십 개의 살덩어리가 피와 뒤엉킨 채로 삼켜져 버렸다.

그러자 핏덩어리와 피의 안개는 얼기설기 뒤엉켜서 가닥가닥 핏빛 끈이 되었고, 그것이 또 다시 꼬이고 꼬여서 더욱 굵은 피의 줄이 되었다.

굵은 핏줄들은 계속 휘감기고 뒤엉키면서, 마침내 물독만한 굵기에 십 장이 넘는 길이의 붉은 뱀으로 탈바꿈했다.

그 긴 뱀은 마치 갓 껍질을 벗은 왕구렁이 같았다. 몸에 응축된 검붉은 핏방울은 걸쭉한 선을 그리며 곧 바닥에 떨어질 듯했지만, 실제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핏빛의 뱀 머리에는 초롱 크기만 한 금색 눈알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금빛이 맴돌았지만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뱀이 살기 가득한 눈을 번쩍 뜨자 주위에 흩어져 있던 핏빛의 붉은 구름이 빠르게 돌았다. 뱀은 마치 고래가 물을 흡수하듯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흡수했다.

피의 안개들을 받아들인 뱀의 몸체가 조금씩 굳어졌고, 곧이어 배의 네 군데가 불룩 튀어나오더니 발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뱀의 눈빛은 더욱 짙어졌고, 이어 눈 주위의 핏덩어리가 금빛으로 물들더니 비늘로 변했다. 부채 모양의 금빛 비늘은 점점 범위가 넓어지더니 뱀의 꼬리 방향으로 줄줄이 뻗어갔다.

남겨진 피구름의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더니, 다시 실체화된 뱀의 몸을 감쌌다.

“윽…….”

한참이 지나서야 용의 신음소리가 낮게 들리더니, 곡동성 위의 피구름이 다시 흩어졌다. 그 자리에는 몸뚱이가 십 장이나 되는 금색 교룡이 있었다.

교룡은 공중에서 한참을 빙글빙글 돌더니 이어 주위에 금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자 금색 교룡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풍채가 남다른 금색 옷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황금색 눈썹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는 중년쯤으로 보였다.

그는 바로 금색 교룡 오조였다.

오조가 손뼉을 치자 거대한 금빛 손바닥의 그림자가 날아가서 곡동성의 성루를 가격했다.

쿵!

부서진 돌들에 의해 성문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어느새 성루의 절반 정도가 무너져 있었다.

“피와 살점의 정기로 육신을 다시 만들어도 이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는군.”

오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고, 그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알이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눈을 뜬 오조가 차갑게 말했다.

“흥, 강제로 체내의 정혈의 힘을 자극하다니.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작정이냐? 당분간은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말이 끝나기 바쁘게 남자는 한 갈래의 금빛으로 변하여 동해 쪽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폐허가 되어버린 동림성 상공에는 크고 푸른 조롱박이 유유히 떠 있었다.

푸른 조롱박 위에 백발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팔괘(八卦)가 그려진 도복만 바람에 휘날릴 뿐, 노인의 몸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의 수염과 하얀 눈썹은 바람의 영향마저 받지 않는 듯했다.

노인의 왼손에는 현광경(玄光镜)이 쥐여 있었는데, 거울 면이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간간이 보였다.

거울에 비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수일 전 동림성에서 펼쳐진 그 싸움의 광경이었다. 노인의 눈에서 정기가 돌았다.

거울 속에서 통천선교 도복을 입은 제자들이 한 명 한 명 목숨을 잃었다. 청목 도인은 자폭했고, 자옥 도인마저 금색 교룡의 뱃속으로 삼켜졌다. 그걸 보는 노인의 표정은 태연해보였지만 눈의 깊은 곳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이 노인은 바로 자옥 도인의 사부이자 통천선교의 수장인 무진 도인이었다.

원래 무진 도인은 대륙의 모처에서 중요한 폐관수련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교단에서 전갈을 받았을 때만 해도 밖으로 나올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 수련에서 진전이 없어서 몇 년을 애를 먹었고, 이제 겨우 한 가닥의 깨달음을 얻은 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교단에서 비보가 빗발쳤고, 급기야 그의 직속 제자들마저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듯했던 무진 도인의 심경에도 한 가닥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폐관수련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격노하여 황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무진 도인은 현광경을 다시 집어넣고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청동으로 된 나침반이 나타났다.

그는 오른손의 손가락을 여러 번 구부렸다 폈다 하더니 저 멀리 성 안의 폐허를 가리켰다. 그러자 하얀 백골의 더미 속에서 가느다란 금빛이 유유히 날아올랐다.

그 금빛은 마치 한 마리의 작은 교룡 같은 모양이었는데, 그것은 허공에서 두어 번 꿈틀거리더니 청동 나침반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청동 나침반에서 빛이 나더니 구부러졌던 뚜껑이 유유히 맴돌며 동북 방향을 가리켰다.

무진 도인은 손으로 청동 나침반을 받들고 손끝에서 청색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푸른 조롱박을 타고 속도를 냈고, 금세 파란빛이 되어 동북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몇 번의 반짝임 끝에 파란빛은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 * *

보름 뒤.

동주대륙의 동북쪽에 있는 어느 해변에 청익비차 한 대가 하늘을 가르며 착륙했다.

비차 위에는 푸른색 옷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까지 달려온 그는 파도가 바닷가의 검은 바위 위에 겹겹이 부딪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짠맛이 약간 섞인 공기를 맡으며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채아가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창원왕이 말한 그 섬은 몇 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동북 방향으로 일주일 남짓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석목이 손바닥을 펴자 두 개의 회백색 중급 영석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며칠간 그는 청익비차를 조종하며 계속해서 영력을 회복했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이동하는 시간까지 활용한 것이다. 그는 이제 겨우 체내의 진기를 칠팔 할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순간 석목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가까운 하늘에서 익숙한 기운의 파동이 은은하게 전해졌다. 그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법결로 청익비차를 소환, 동북 방향으로 다시 날아갔다.

석목은 비차를 조종하면서 계속 머리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아주 먼 곳에서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면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놈! 이번에는 어디로 도망갈 생각이냐!”

석목의 귀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금색 교룡 오조의 목소리였다.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전력을 다해 청익비차를 몰아 앞으로 날아갔다.

교룡이 흰 원숭이와의 싸움에서 육신을 잃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몸을 재생시켜서 이곳까지 쫓아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석목은 지계 초기인 자신의 실력으로 오조와 맞붙는다면, 결과는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쫓고 쫓기기를 계속했다. 수십 리를 날자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청익비차의 속도는 느린 편이 아니었지만, 천위의 강자 앞에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각도 안 되는 사이에 둘 사이의 거리는 몇 리밖에 되지 않을 만큼 좁혀졌다.

바로 그때, 뒤쪽 하늘에서 파동이 나타나며 거대한 금색 교룡의 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석목의 등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움찔했다. 그리고 손을 들고 부적을 손가락 사이에서부터 쏘아 올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거대한 붉은 불덩어리가 되어 줄줄이 그 금색 교룡의 허영으로 향했다.

쿠쿵!

연이어 큰 소리가 들렸다.

몇 개의 불덩어리가 허영에 부딪히자 부서지면서, 바퀴 크기의 거대한 불구름으로 변신해 근처의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금색 교룡의 허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표면의 빛이 조금 어두워졌으나, 곧이어 다시 작은 산처럼 밀려왔다.

바로 그 뒤로 열 개가 넘은 굵은 얼음 파편이 이어졌다.

이렇게 서너 번의 부적 공격을 받은 뒤에야 허영은 차차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채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사이 석목의 두 팔은 이미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토템 변신을 완성한 그가 운철흑도를 손에 거머쥐었다.

금색 교룡의 허영이 등 뒤 삼 장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오자, 석목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표면에 검고 투명한 빛이 도는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싸악!

열세 줄의 검은 도광이 번쩍였고, 한 줄기의 반짝이는 거대한 빛이 하늘을 가르며 교룡의 허영을 공격했다.

쿵!

투명한 빛이 허영을 깊숙이 찔러 두 갈래로 찢었고, 허영은 곧바로 부셔졌다.

석목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의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석목은 상대방이 가진 힘을 가늠해보았다. 무엇으로 다시 육신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천위 후기의 힘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껏해야 천위 중기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찢어진 허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시 거대한 발이 나타나서 차가운 발톱으로 석목의 등을 잡으려 했다.

석목은 깜짝 놀랐지만 침착하게 체내의 영기를 방출했고, 청익비차를 움직여 재빨리 그 공격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막 피하려던 찰나, 다섯 발가락의 허영이 이를 이미 알아차린 듯 비차의 위쪽에서 압박해 들어왔고, 날카로운 발톱이 금방이라도 청익비차를 꽉 쥐어짜버릴 듯했다.

그 순간 석목과 청익비차는 자취를 감추었다.

석목은 균형을 잃고 허공으로부터 바다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공을 헛잡은 금색 교룡의 발은 다시 방향을 틀었고, 아래로 쫓아가서 석목을 잡으려 했다.

순간 석목의 주위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등 뒤에서 불타는 빛과 함께 두 개의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가 생긴 석목은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퍼덕이더니 교룡의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금색 교룡의 발에 비하면 석목의 몸이 너무 작았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불의 날개의 속도는 청익비차보다 두 세배는 빠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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