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끝까지 쫓아가다
상대가 실수를 저지른 틈을 타 석목은 동물로 변신, 바람 속성의 부적을 꺼내들고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였다. 한줄기의 빛이 바다에서부터 올라왔고, 그 뒤로 파도가 일렁이며 쫓아오는 오조와 다소 거리가 벌어졌다.
잡을 듯 말 듯하며 두 번이나 석목을 놓치자 오조는 순간 짜증이 났다.
그는 넓은 금색 소매를 뒤로 힘껏 젖히더니 다시 석목의 뒤를 쫓아갔다.
바람 속성 부적의 작용과 불의 날개에 힘입어 석목은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의 간격은 다시 좁혀지기 시작했다.
석목은 뒤쪽에서 바람이 거세지는 것을 느꼈고, 오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뒤를 돌아볼 새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로 잡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오조는 석목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금색의 눈썹을 치켜 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가슴 앞에서 원을 그리며 낮은 소리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눈을 번쩍이며 주변에 금빛을 뿜어내서 몸을 휘감았다.
오조의 몸 전체가 빛 속에서 점점 빠르게 늘어나더니 다시 한 번 금색 교룡으로 변신했다. 그의 몸에는 비늘이 빼곡히 돋아났고, 흉악하게 날뛰고 있었으며 몸뚱이 주변은 다시 금빛으로 번쩍였다.
이때 하늘을 찢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색 교룡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면서 번개처럼 석목의 뒤를 쫓았다.
석목은 뒤쫓아오는 엄청난 적의 파동을 직감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석목의 왼쪽 팔은 검게 변해 있었고, 표면에는 줄기줄기 붉은색 부문이 나타나며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어서 타오르던 하얀 연기가 왼쪽 팔로부터 빠르게 흘러내려 몸속으로 들어갔고, 등 뒤에 있는 불의 날개에 섞였다.
후룩!
순간 석목의 등 뒤에 펼쳐진 날개가 열 배 가까지 커졌고, 하얀 연기가 그 틈새로 뿜어져 나왔다. 한 번 날갯짓을 했을 뿐인데 그의 몸은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몸 전체가 붉은색의 갈매기 그림자로 바뀌어 있었다.
등 뒤의 큰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석목은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향했고, 오조와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 * *
일각이 지났다.
석목은 어렴풋이 교룡의 영기가 만들어내는 파동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편 등 뒤에 있는 불의 날개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석목은 체내의 진기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등 위의 날개를 거두며 다시 청익비차를 불러 올라탔고, 영석을 꺼내 영기를 충분히 흡입했다.
상급 영석에서 영기를 흡입하고 나자, 등 뒤에서 다시 들릴 듯 말듯 교룡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빠르게 머리를 돌리자 멀리서 교룡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 청익비차를 다급하게 거두고 다시 큰 불의 날개를 불러냈다. 날갯짓 한 번에 그의 몸이 멀리 사라지면서 허공에 희미한 잔영만 남았다.
“아오!”
하늘의 저쪽 끝에서 교룡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며 괴음을 냈다.
그는 석목이 기진맥진한 줄 알았는데, 다시 도망을 가버리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교룡은 빛을 뿌리며 다시 빠르게 석목을 쫓기 시작했다.
* * *
바다 위의 상공에서 적백색의 빛줄기가 빠른 속도로 앞장서 날고 있었고, 그 뒤를 황금빛 줄기가 바짝 쫓고 있었다. 마치 외로운 별이 달을 쫓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앞서가는 빛은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빠를 때는 순간이동을 하듯 뒤편의 금빛을 저 멀리 떨구어 놓았고, 느릴 때는 또 한없이 느렸다.
이렇게 둘은 어언 삼일 간 추격전을 펼쳤지만, 둘 사이의 간격은 변함이 없었다. 석목은 교룡을 뿌리칠 수 없었고, 교룡 또한 석목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석목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불의 날개와 청익비차를 교묘하게 바꿔가며 간신히 이 상황을 모면하고 있었지만, 이미 회복용 단약을 전부 먹어버렸고 상급 영석도 몇 개 남지 않았다.
게다가 한손으로 날개를 조종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흰 화염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도망 다니면서 법력을 보충하는 것은 무리였다. 때문에 상급 영석아 이난 중급 영석만으로, 그것도 청익비차를 타는 짧은 시간에 진기를 회복하는 건 무리였다.
서너 개 남은 상급 영석으로는 이제 반나절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석목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어 그는 청익비차의 비행속도를 늦추었다.
앞쪽 바다 위에서 풍랑이 점점 거세지더니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석목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수백 리 밖의 바다 위에 수많은 먹구름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벽은 그가 있는 쪽을 향해 밀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석목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더 이상 상급 영석을 아끼지 않고 재빨리 진기를 흡수했다.
영석이 회색빛으로 변하자 석목의 등 뒤에 다시 거대한 불의 날개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더니 쫙 펼쳐졌다.
청익비차를 거둔 석목은 한 줄기 붉은 빛으로 변해 먹구름이 만든 벽 속으로 날아갔다.
먹구름과 삼사 리 정도 가까워졌을 즈음 그의 귀에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먹구름들이 뭉쳐져서 하늘을 가릴 듯한 검은색 막을 이루고 있었다. 번쩍이는 빛은 거대한 붉은 가위처럼 그 막을 잘라냈다.
석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름벽을 뚫고 그 속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마자 천둥번개가 기승을 부렸다. 휘날리는 빗물이 거센 바람에 날아와 석목의 얼굴을 때려댔고,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회오리바람이 여기저기서 휘몰아쳤다.
석목은 두 눈에 힘을 주고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날개가 접히면서 뒤로 밀려났다.
쾅!
엄청난 번개가 눈앞에서 내리쳤고, 그 빛에 의해 석목의 얼굴도 하얗게 번들거렸다. 온 몸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구름벽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구름은 중앙으로 갈수록 두텁게 쌓여 있었고 바람도 더 강했으며, 번개도 훨씬 빈번하게 쳤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약 이삼십 장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은 천둥은 물론이고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했다.
“폭풍의 눈!”
석목은 두 날개를 펼쳐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천둥번개를 조심스럽게 피해서 구름벽을 뚫고 중앙으로 향했다.
쾅!
또 다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번개가 이제 막 빗속을 뚫고 들어온 교룡의 등을 내리찍었다. 이어 그의 등 위에서 파란 연기가 새어나왔다.
물론 이 정도의 위력으로는 교룡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었고, 교룡은 비늘조차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구름벽 중심부로 갈수록 번개는 점점 굵어졌고, 이는 천위의 강자인 교룡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교룡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자 십 장이 넘는 몸이 줄어들었고, 금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로 변했다.
그는 앞을 힐끗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두 손으로 법결을 만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금색 빛이 몸 밖으로 쏟아져나와 반투명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곧 그는 다시 한줄기 빛이 되어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한참 후, 석목은 드디어 구름벽을 뚫고 중심부에 도착했다.
석목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옷이 군데군데 찢어져서 까만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미간에는 기쁨이 역력했다.
이곳은 밖과는 사뭇 다른 평온한 공간이었다.
사방에 있는 검은색 구름벽이 이곳을 이삼십 장 크기의 기둥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었고, 밑으로는 파도가 치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석목은 주변을 잠시 살펴보더니 품속에서 자색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빠르게 교차하여 볍결을 시전하면서, 손가락으로 다섯 개의 부적을 가리켰다.
다섯 개의 부적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다섯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바다 위에서 가볍게 떠다녔다.
석목은 자신이 거쳐 온 길을 잠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날개를 펼쳐서 앞쪽의 구름벽으로 날아갔다.
그가 그 자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조도 그곳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보호막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지는 않은 듯했지만,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흥, 어디까지 도망치나 보자!”
오조는 다시 앞으로 벽을 뚫고 나가려는 찰나, 미세한 영력을 감지한 듯 손바닥을 뻗었다.
펑!
크지 않은 소리가 울리면서, 석목이 남긴 자색 부적이 교룡의 손바닥에 의해 부셔져 반짝이며 사라졌다.
펑! 펑! 펑! 펑!
또 다시 네 번의 크지 않은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그러자 나머지 네 곳의 부적도 이리저리 찢겨서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이 부적의 이름은 인부적(引符箓)으로, 석목이 <건천부경>에서 배운 평범한 중급 부적이었다. 연습할 때 대충 다섯 장 정도를 만들어보았던 게 지금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사실 이 부적은 평상시에는 크게 쓸 일이 없는 부적이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씨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환되는 번개의 위력도 크지 않은 허술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 보잘것없는 부적이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구름벽을 뚫고 나간 석목은 뒤돌아서 벽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먹구름은 더 빠르게 뭉치더니 가늠할 수 없이 불어났다. 직경이 십 장 정도였던 공간은 급속도로 줄어들어서 이제 오 장도 채 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굵직한 번개들은 중심부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쾅!
드디어 한 갈래의 번개가 중심에서 찢어졌다.
연이어 두 갈래, 세 갈래……. 번개들은 미친 듯이 중심부를 향해 내리치며 막무가내로 터졌다.
석목은 뿌듯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 광경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날개를 펴서 멀리 날아갔다.
“악!”
석목이 떠난 후 일각이 지났을 때, 검은 먹구름으로 둘러싸인 바다 위에서 교룡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이어서 십여 장의 금색 교룡 한 마리가 구름벽의 중앙에서 튀어나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교룡의 비늘은 찢어진 채였고 보호막도 흔들리고 있었다.
* * *
이튿날, 동해의 이름 없는 해역.
그곳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붉은색과 흰색의 두 갈래 빛이 하늘을 그으며 가까워지더니, 바다 위의 바위에 안착했다. 바로 석목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석목은 등 뒤의 날개를 접고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이 거쳐 온 길을 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상급 영석을 꺼내들어 진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전날 바다 위의 폭풍으로 교룡을 저 멀리 뿌리칠 수 있었다. 다만 교룡에게 큰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쫓아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석목의 진기는 전부 고갈되어 마지막 상급 영석 한 개만 남아 있었는데, 이것마저도 써버린 것이었다.
창원왕과 약속한 섬에 도착하려면 아직 이삼 일은 더 날아가야 했다.
석목은 마음이 초조해지고 앞길이 막막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상대를 완벽하게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앞바다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파도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뚜렷하게 들렸다.
석목은 검은 그림자로 변해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바다 곳곳에는 크고 작은 검은색 바위가 즐비했는데, 크기가 일이십 장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의 작은 산처럼 보이기도 했다.
석목은 숨을 죽이고 그중 한 개의 뒤에 숨었다.
앞의 시야가 뚫리며 파도가 거세게 일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소용돌이들이 바다위에서 들끓으며 하얀 안개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