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사령의 대군
자욱한 안개 속에서 여러 마리의 검은색 해수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라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냈다.
해수들은 체구가 당당했고 크기가 칠팔 장은 되어보였다. 머리는 두꺼비처럼 생겼고 피부는 거무칙칙했으며, 피부가 울퉁불퉁한 것이 상당히 흉하게 보였다.
“섬돈수(蟾豚兽)…….”
석목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섬돈수는 매우 희소한 해수였다. 석목도 야사를 모은 책에서나 그 기록을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기록에는 서하대륙 부근의 해역에서도 이미 멸종되었다고 했는데,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해수들은 비교적 보기 드물게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았는데, 성격이 매우 포악했다. 게다가 체내에 특수한 독주머니를 품고 있었는데 그 독성이 매우 강해서 오래 수련한 무인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견혈봉후(*见血封喉, 백 년 묵은 나무에서 나온다는 맹독)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석목은 신식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나서 이내 안색이 변했다.
눈앞에 가득한 섬돈수는 백여 마리는 되어 보였으며, 실력도 결코 약해보이지 않았다. 지계 경지만 해도 일고여덟 마리는 되는 듯했고, 선천 경지 역시 실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목은 눈을 깜박이더니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역력했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초록색 피풍을 꺼내 몸을 숨긴 채, 가까운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손을 내저으며 진법을 펼치는 법기를 꺼내 주문을 외웠다. 그가 손가락을 굽혀서 점을 찍자 여러 진기가 바위로 가득한 해역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그곳에서 한 차례 법력의 파동이 생겼다가 다시 사라졌다.
수면 위로 불쑥 올라온 섬돈수 한 마리가 무언가 감지한 듯 법력의 파동이 일어난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섬돈수는 천성이 무딘 편이었기에 그 해수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몸을 돌려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석목은 한시름 놓으며 새로운 법기를 꺼내 들고,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각 정도가 지나자 어느새 해역에 안개가 짙게 피어올랐고,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섬돈수가 서식하는 곳도 하얀 안개로 뒤덮였다.
자욱한 안개 속은 고요했고, 해수면도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했다.
그때 멀리서부터 한 갈래의 금빛이 빠르게 날아오는가 싶더니, 바로 근처에 도달했다.
반짝이는 금빛과 함께 오조가 나타났다.
지친 표정의 오조는 무언가 감지하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아래를 바라보았고, 곧 얼굴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
오조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팔을 힘껏 휘둘렀다.
풍덩!
물통 굵기의 금빛 기둥이 그의 손에서부터 발사되어 아래쪽의 하얀 안개를 향해 뻗어나갔다.
안개는 마치 영성이라도 있는 듯 출렁였고, 곧이어 하얀색 빛의 막이 그 속에서 나타났다.
금빛 기둥이 막을 내리치자, 빛의 막은 몇 번 번쩍이더니 이내 그대로 깨져버렸다.
빛의 막을 뚫고 들어간 금빛기둥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고, 곧장 하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쨍!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안개가 흩어지면서 바위들이 우뚝 서 있는 해수면이 나타났다.
그때 한줄기의 청색 그림자가 가까운 안개 속으로 날아갔다. 바로 석목이었다.
“어딜 도망치느냐!”
오조가 차갑게 웃으며 다시 팔을 휘둘렀다. 눈부신 금빛이 모이더니 몇 장은 되어보이는 달빛의 칼로 변해 석목의 팔을 자르려 했다.
동시에 오조도 한 갈래 빛이 되어 석목의 뒤를 쫓았다.
석목은 등 뒤로 불의 날개를 펼쳐서 안개 속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달빛의 칼도 그 뒤를 쫓아서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오조는 그걸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 굉음과 함께 눈부신 빛이 하얀 안개를 찢으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이어 공기가 격렬하게 넘실거리며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갈라진 안개도 산산조각이 나서 흩날렸다.
그때 분노에 찬 소리가 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크엉!”
이어서 몰골이 흉하고 덩치가 큰 해수 수십 마리가 물 위로 떠올랐다. 섬돈수였다.
하지만 석목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조는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수십 마리의 섬돈수가 오조를 노려보았고, 입에서 큰 소리를 내며 덮쳐오고 있었다.
검은 해일이 섬돈수들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왔고, 그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를 방불케 했다.
이어서 사람 머리만 한 파란 공이 물속에서 나오더니 오조를 향해 날아갔다. 파란빛이 감도는 그 공은 마치 번개가 튕겨 오르는 것 같았다.
“규수신뢰(葵水神雷)!”
오조가 미간을 더욱 깊게 찡그렸다.
파란 물빛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 범위는 주위를 뒤덮을 정도로 넓어서 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조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두 팔을 벌리더니 금색의 막을 펼쳐 자신의 앞을 막았다.
수많은 물의 공이 금색 막에 격렬하게 부딪혔다. 이어 파란 물빛이 터지면서 금빛과 어우러졌고, 금빛 막은 불안정한 듯 반짝거렸다.
오조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그가 소매를 흔들자 다시 눈부신 금빛 기둥이 발사되어 섬돈수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기둥은 섬돈수들의 머리 위에 멈춰서더니 이내 날카로운 금빛 칼들로 변해서 아래쪽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귀에 거슬리는 고통의 신음이 섬돈수 무리 사이에서 퍼져 나왔다.
오조를 향해 날아가던 파란 공들이 일제히 멈추더니 방향을 틀어서 허공 속의 금빛을 향해 날아갔다.
우르르! 쾅쾅!
금빛의 칼과 파란 물의 공들이 부딪치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두 갈래의 빛이 번갈아 번쩍였고, 서로 대치한 상태로 백 리 밖까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오조의 안색이 더욱 더 차가워졌다. 그 순간 금빛 기둥의 크기가 두 배나 더 커졌고, 금빛 칼의 본체도 불어나서 개수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파란 공들은 순식간에 힘없이 제압되었다. 이어 금색 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섬돈수들은 그 안에 갇혀버렸다.
비명 소리와 함께 검은 시체가 하나둘씩 해수면 위로 떠올라 바다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고작 해수 주제에 자신의 앞에서 날뛴 것에 대해 오조는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오조 바로 밑의 바다가 출렁이더니 굉음과 함께 일고여덟 개의 검은 그림자가 불숙 떠올랐다.
그들은 바로 지계의 실력을 가진 섬돈수였다.
그들의 몸에는 긁힌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섬돈수들은 빨갛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오조를 향해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오조는 미간을 찌푸리기만 할 뿐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이어 그의 왼손이 반짝이면서 금색 교룡의 발로 변신하더니 물기둥 쪽을 세차게 긁어댔다.
쩌억! 쩌억!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금색 발이 또다시 분리되면서 다섯 개의 조각달 모양의 칼날로 변신, 섬돈수 다섯 마리의 몸통을 잘라냈다.
다섯 개의 몸뚱이는 전부 단칼에 두 쪽으로 갈라졌고, 빨간 피와 내장을 뿜어내면서 숨을 거두었다.
“으르렁!”
남겨진 세 마리의 섬돈수 입에서 격노한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세 갈래의 검은 기둥을 뿜어내며 오조를 공격했다.
기둥이 오조에게 닿기도 전에 비린내가 먼저 몰려오기 시작했고, 오조는 처음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불쾌한 기둥에 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오조의 등 뒤에서 몸 전체가 은색 갑옷으로 둘러싸인 귀신같은 형상이 떠올랐고, 그것은 손에 검은색의 짧은 곤봉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나였다.
불시에 나타난 연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손에 쥐어진 짧은 곤봉을 휘둘렀다. 이어 한줄기의 굵고 투명한 곤봉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오조의 등 뒤를 강하게 내리쳤다.
오조는 몸을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방어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연나가 휘두른 곤봉에 맞았다.
펑!
그의 몸이 순식간에 튕겨져 날아갔고, 공격해오던 세 개의 검은 기둥에 그대로 부딪혔다.
검은 기둥은 순간 폭발해서 검은 구름이 되어 흩어졌고, 오조는 그 속에 묻혀버렸다.
“크엉!”
세 마리의 섬돈수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커다란 몽뚱이를 검은 구름 속으로 내던졌다.
울부짖는 소리와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 검은 구름 속에서 울려 퍼졌지만, 그 속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습격에 성공한 연나는 검은 구름 쪽을 바라보며 몸을 흔들더니 뒤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 검은 구름 속에서 금빛이 넓게 펼쳐졌고, 붉은 태양을 방불케 하는 그것은 순식간에 찢어져서 흩어졌다.
이어 검은 구름 속에서 처절하게 죽음을 당한 세 마리의 섬돈수 시체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떨어졌다.
오조는 눈부신 빛 속에서 또다시 교룡으로 변신했지만 몸뚱이는 군데군데 얼룩덜룩해졌고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섬돈수의 맹독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금색 교룡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며 연나를 노려보았다
이때 연나의 옆에는 한 청년이 서 있었는데, 바로 석목이었다.
그걸 본 금색 교룡은 마치 사람처럼 말을 했다.
“네놈 따위가 천위의 사령을 불러내다니!”
석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연나는 그가 애써 숨겨오다가 꺼내든 마지막 패였는데, 오조에게 고작 이 정도의 피해밖에 주지 못한 것이다.
“연나, 저 교룡을 이길 수 있겠어?”
그는 신식을 통해 연나에게 말했다.
“아니.”
연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석목은 그녀의 답을 듣자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자 연나는 머리를 돌려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검은 추선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추선대는 눈부신 검은 빛을 뿜어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태양 같았다.
강력한 사령의 기운이 추선대에서 피어올랐고, 석목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추선대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금빛으로 변한 오조는 다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연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석목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며 어느새 그는 몸에 금색 비늘이 뒤덮인 채 연나 앞에 서서 운철흑도를 손에 쥐고 교룡을 가로막고 있었다.
오조는 석목의 모습을 보자 또 다시 분노에 차서 빠르게 다가왔다.
“죽어라!”
석목을 바라보는 연나의 눈에서 빛이 감돌았다. 이어 그녀가 주문을 외우면서 한 손가락으로 추선대를 가리키자 추선대의 회색빛이 크게 번지더니 그 안에서 용솟음쳤다.
이어 수많은 사령생물들이 회색빛 속에서 튀어나와 오조의 앞을 촘촘하게 막아섰다.
그녀는 단번에 만 마리가 넘는 사령 생물들을 소환해냈다. 이는 유안 등이 천우성에서 보여주었던 것이긴 하지만, 그때는 성석의 힘을 빌려서 진법을 펼치고 나서야 겨우 해낸 일이었다.
그러나 연나는 지금 추선대를 통해 그것을 가볍게 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소환한 사령생물들은 하나같이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연나가 휘하에 두고 있는 주력 부대인 것 같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사령생물 외에 십여 마리의 지계 사령도 있었고, 예전에 굴복시킨 수정 해골도 그곳에 있었다.
수정 해골 옆에는 몸 전체가 검은색 갑옷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해골이 있었는데 손에 흑도를 쥐고 있는 이 거대한 해골은 바로 무야였다. 연나가 무슨 방법을 써서 그를 다시 부활시켰는지 수위도 회복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