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동물의 몸속에서 적을 피하다
반나절 후 백 리 정도 떨어진 해역.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며 파도가 용솟음쳤다. 해수면 위로 몸이 커다란 해수들의 뼈가 파도에 여기저기 떠다니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훙!
어디선가 처참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해역의 다른 한 쪽에서 십여 장 크기의 청상어(青鲨兽)가 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그 자세는 마치 꼬리지느러미로 무언가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꼬리지느러미는 백골만 남아 있었다. 지느러미를 감싸고 있던 살점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이어서 몸뚱이마저 빠르게 벗겨지고 있었다.
푹!
끝내 청상어의 꼬리지느러미에서 피와 살점이 완전히 벗겨져 하늘 위로 서서히 올라갔다.
그 청상어의 주변에는 핏빛 안개가 자욱했다. 여기저기서 몸집이 커다란 수백 마리 해수들의 살이 벗겨져서 하늘 위로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위의 하늘은 거대한 피안개로 덮여 있었고, 그 속에서 금빛이 번쩍이며 커다란 교룡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교룡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핏빛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고, 교룡은 강력한 흡입력으로 그 아래 해면에서부터 떠오르는 피와 살점의 덩어리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교룡은 대량의 피와 살점을 삼키며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잠시 후 교룡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점점 밝아졌다.
교룡이 모든 피와 살점을 삼켜버리자 짙은 피안개가 빙빙 돌더니,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그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교룡의 몸은 반짝이더니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금색 옷을 두른 남자가 공중에 우뚝 서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불러낼지 두고 보겠다!”
금색 교룡 오조는 이를 갈며 혼잣말을 지껄이더니, 다시 한줄기 금빛이 되어 동북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동해의 해역 위 하늘에 한줄기의 파란빛이 그어졌다. 청익비차를 몰고 있는 석목이었다.
반나절을 쉴 틈 없이 날자 창원왕과 만나기로 약속한 섬이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석목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교룡이 다시 쫓아올까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석목은 앞쪽 해역에서부터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전해오지는 것을 느꼈고,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쿵!
굉음이 들려오더니 앞쪽의 해역에서 반경이 십 장은 되어 보이는 투명한 물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물기둥은 허공에서 잠시 멈추더니, 부서져서 물줄기가 되어 떨어졌다.
석목은 눈을 비비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물기둥 아래의 해역은 검푸른 색을 띠고 있는 게 주변의 색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가 감지한 강한 영력의 파동은 다름 아닌 그 검푸른 해역에서 전해진 것이었다.
“해경수(海鲸兽)…….”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해경수는 이 해역을 지배하고 있는 생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었다. 몸집이 크고 강한 대신 지능이 떨어졌기에, 먹이가 아닌 이상 주변의 생물을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목은 몸을 돌려서 다시 날아가려다가 멈춰 섰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에서 보일 듯 말듯 금빛이 어른거렸다.
석목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그 검푸른 해역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청익비차를 거둔 다음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석목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자 물속에 있는 수십 마리의 말미잘이 놀라 도망쳤다.
상반신은 해바라기처럼 생기고 하반신에는 수십 개의 촉수가 달린 이 해양 생물은 육식 동물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혈기를 두려워해서 먹이사슬의 맨 아래쪽에 있었지만 개체 수는 상당히 많았다. 지금 석목의 주위에만도 수만 마리는 있는 것 같았다.
말미잘들은 촉수를 수축하는 방식으로 바다 속을 떠다녔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어류들보다는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석목은 눈알을 굴리더니 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흑도를 들어 올려서 왼손을 살짝 그었다.
그의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피 냄새를 맡은 주변의 말미잘 수만 마리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반면 피를 좋아하는 낮은 경지의 해수 귀곡어(鬼泣鱼)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석목을 향해 다가왔다.
석목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빠르게 흔들었다. 그러자 무형의 쇠사슬이 몸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와서 한 방울 한 방울의 정혈을 끌어당겨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혈들은 석목이 신식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끌려가서 말미잘의 몸뚱이에 걸렸다.
석목의 정혈과 이어진 수백 개의 말미잘은 미친 듯이 촉수를 수축시켜서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목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뻗어서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살짝 쥐었다. 피 냄새를 맡은 귀곡어들은 푸른빛의 통제 하에 꼼짝하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미친 듯이 몸뚱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석목은 그대로 정혈을 귀곡어에 고정시킨 후에야 천천히 손바닥을 폈다.
몸이 자유로워진 귀곡어들은 즉시 꼬리를 흔들어 물줄기를 만들며 사방으로 도망갔고, 그 속도는 말미잘보다 몇 배나 빨랐다.
사전작업을 마친 석목은 바로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고, 검푸른 해역 쪽으로 빠르게 헤엄쳐갔다.
그는 그 검푸른 해역 자체가 바로 해경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그 크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해경수의 거대한 몸집은 길이가 수백 장은 되어 보였고, 검푸른 피부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마치 푸른색의 작은 산을 보는 듯했다.
거대한 몸뚱이 옆으로 늘어진 두 개의 지느러미만 해도 석목이 일전에 탔던 한해거주보다 컸다.
석목은 두 손으로 몸을 위로 띄워서 해경수의 입가로 빠르게 다가갔다.
크게 벌리면 작은 섬도 삼킬 듯한 큰 입은 지금은 반 정도 닫혀 있었고,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이빨이 서로 엇갈려서 새하얀 가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빨 한 개의 크기는 석목의 몸만 했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녹색 피풍을 몸에 두르고 해경수의 이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크기가 제각각인 이빨의 틈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반각이 지나서야 그는 어렵사리 해경수의 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석목은 무릎을 구부려 앉은 뒤, 영석으로 진기를 회복하는 것을 멈추었다. 교룡 오조에게 조금의 기운이라도 잡힐까 싶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해경수의 입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머리 위에 한줄기의 금빛이 나타더니 멈춰 섰다. 금색 옷을 두른 오조였다.
오조는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음? 이건 뭐지?”
오조는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물속에서는 석목의 정혈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듯했다.
오조는 바로 두 눈을 감고 비술을 사용했다. 그의 두 눈동자가 눈꺼풀 밑에서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추었다.
“말도 안 돼!”
눈을 뜬 오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주위를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비술로 탐지해보아도 사방 곳곳에서 석목의 정혈 기운이 느껴졌다. 그 중 몇 개는 이곳에서 십 리 정도나 먼 곳에 있는 듯했다.
오조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더니, 그중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돌아왔고, 곧바로 또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 오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차가운 기색이 역력한 게 마치 얼음장 같았다.
오조는 갑자기 눈길을 돌리더니 검푸른 해역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거대한 물건은 아까부터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허탕을 치게 되자 이 해경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해경수의 몸에서는 석목의 정혈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수상했다.
오조는 몸을 흔들며 해경수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몸집이 거대한 해수를 바라보며 잠깐 망설였지만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 해수는 강하긴 했으나 교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해수와 대결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만에 하나 석목이 이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면 큰 손해였다.
그는 몸을 흔들며 조심스럽게 해경수의 등 뒤에 앉았고, 손을 뻗어서 살그머니 그 위에 놓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흐르더니 손에서부터 금빛 물결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해경수의 몸속에 숨어 있는 석목은 교룡의 영력을 감지하고 두려움을 억눌렀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쫘아악!
바로 그때 무엇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의 머리 위쪽 해경수의 입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으로 엄청난 흡입력이 밀려와서 그를 빨아들였다.
석목은 다급하게 두 손을 벌려서 죽을힘을 다해 해경수의 이빨을 붙잡았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려왔다.
해경수의 복부에서부터 엄청난 바닷물이 터져 나와서 목구멍을 거쳐 밀려 나왔다. 그 물에는 수많은 말미잘이 섞여 있었고, 그것들은 흡입력에 의해 입천장의 구멍을 거쳐 위로 뿜어져 나갔다.
오조는 해경수의 등 위에 서서 그 머리의 구멍에서 나오는 거대한 물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
그는 물속에 수많은 말미잘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손바닥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조는 몸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의심을 거둔 듯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물기둥은 부셔져서 사라졌고, 해경수의 입천장에 난 구멍도 천천히 닫혔다.
석목은 교룡의 기운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고, 해경수의 이빨을 잡고 있던 두 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는 다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앉아서 깊게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이다.’
바로 그때,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면서 석목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해면의 파도가 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산처럼 큰 해경수가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배를 방불케 하는 두 개의 지느러미를 물속에서 서서히 움직인 것이었다.
한 번 지느러미를 움직였을 뿐인데 해경수의 몸은 수십 장 거리까지 나아갔다.
이 거대한 해수가 향하는 곳은 바로 동북쪽이었다.
* * *
이튿날 아침, 어느 섬.
온통 황금빛 모래알로 이루어진 해변이 햇빛에 의해 영롱하게 빛났다.
섬의 깊숙한 곳은 지세의 변화가 크지 않았고, 섬 곳곳에는 낮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간혹 줄기가 높은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꼭대기에만 몇 장의 넓은 잎이 자라 있는 기이한 나무들이었다.
그때 멀리서 파란 빛줄기가 날아와서 해안에 착륙했다.
빛이 사라지자 푸른 옷을 두른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긴장을 풀었다.
이곳은 창원왕과 만나기로 약속한 그 섬이었다.
전날 그는 해경수의 몸에 숨어 동북 방향으로 천여 리를 질주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틈타 영석으로 체내의 진기를 회복했다.
그리고 야밤에 해경수가 잠든 사이 탈출해서 청익비차를 조종해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자신의 정혈을 삼킨 해수들 덕뿐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교룡이 다시 나타나지 않자 석목은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오는 길이 결코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석목이 도착하자 멀리서 화려한 그림자가 날렵하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석두, 드디어 왔구나!”
그림자가 다다르기도 전에 채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고, 빛깔이 고운 앵무새가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석두, 왜 이렇게 늦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걱정이 돼서 밥도 못 먹었잖아.”
채아는 원망하듯 말했다.
“밥을 먹지 못했다면서 왜 이렇게 살이 찐 거야?”
석목은 동글동글해진 채아의 몸을 보더니 놀리듯 말했다.
“늙은 원숭이 집에 있으면서 먹을 걸 꽤 많이 얻어먹었어. 영석, 해물 등 없는 게 없던 걸.”
채아는 그렇게 말하며 음미하듯 입맛을 다셨다.
“이곳이 그렇게 좋으면 아예 여기서 살지 그래?”
“아니야, 그래도 석두와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아. 저 늙은 원숭이는 늘 겉으로만 웃고 있어서 몹시 섬뜩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