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성역을 여행하다
반 년이 지난 후 한없이 넓은 사막.
이곳의 모래는 노란색이 아닌 회색을 띄고 있었다. 모래 한 알의 크기는 엄지손가락 정도였고, 언뜻 보기에는 금속 같은 광택을 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세 개의 태양이 걸려서 사막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주위의 온도는 기이하게 높았고 지면에서는 파란 연기가 피어올라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회색 그림자 한 무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
그 무리는 몸집이 제각각이었지만, 전부 넓은 피풍을 온 몸에 두른 채였다. 그리고 소만한 크기의 갈색 쥐에 올라타 있었다.
큰 쥐의 발은 쇠로 만들어진 듯 보였으며, 기이할 만큼 크기가 컸다. 그 덕분에 사막에서 걷고 있으면서도 평지를 걷는 것 마냥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무리의 끝에 있는 큰 쥐의 등 위에는 회색 피풍을 두른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쥐의 등을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에서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주머니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진 이 청년은 석목이었다.
갑자기 앞서 가고 있던 사람이 큰 소리로 무언가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큰 쥐의 행렬이 빠르게 멈추었다.
“차크(查克) 어르신, 왜 갑자기 멈추십니까?”
무리의 한 늙은이가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언어는 방금 전에 외친 구호와 같은 것이었다. 이는 성역 전체에서 통용되는 언어였는데, 석목은 이제 이를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무리의 가장 앞에 있는 큰 쥐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초록색 피풍을 두른 남자가 머리를 돌렸다. 비늘이 잔뜩 돋아 있는 그의 흉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눈이 한 개뿐이었는데 동공은 두 개였다.
그는 뒤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멀리 앞쪽의 하늘을 가리켰다.
남자가 가리킨 쪽을 보자, 평온하던 곳에서 갑자기 가로로 누운 듯한 검은 줄이 생겼다. 그 줄은 점점 커졌는데, 바로 하늘과 땅을 잇는 모래폭풍이었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면서 모래와 돌을 휘날리는 폭풍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석목은 쥐 등에 앉아서 피곤한 듯 미간을 비비며, 눈을 반쯤 뜬 채 쉬고 있었다.
영기가 희박한 이 별에는 생령이 없었다. 또 도처가 사막인 탓에, 모래폭풍은 남해성에서 비가 오는 것보다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휘말리게 되면 천위의 강자라도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런 모래 폭풍은 자주 발생했지만 움직이는 범위는 크지 않았고, 지속되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었다.
석목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이 별에 있는 성역 전송진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른 별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 * *
일 년 뒤, 어느 밤의 깊은 숲속.
건장한 그림자 하나가 높은 나무 위에서 기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남해성과 매우 비슷했는데, 유일하게 다른 건 하늘에 걸린 여섯 개의 달이었다. 달은 전부 은색 쟁반처럼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석목이었다. 그는 지금 꿈을 통해 탄월식을 수련 중이었다.
윙!
하늘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쏟아지던 달빛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주위가 칠흑같이 까맣게 변했다.
석목은 꿈에서 깨어나 머리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검은 배 한 척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아래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거대한 배는 마치 북처럼 생겼는데, 날개 달린 세 마리의 커다란 짐승이 앞에서 끌고 있었다. 선체에는 크고 복잡한 부문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들이 간간이 희미한 빛을 발해서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석목이 대충 가늠해본 결과, 이 배는 물론 큰 편에 속하긴 했지만 그가 꿈에서 본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해성에서는 어느 종문도 이 정도 크기의 비행선조차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었다.
석목은 지난 일 년 동안 성역에서 이리저리 수많은 별들을 누비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기존에 살았던 남해성이 얼마나 자원이 부족한 곳이었는지도 깨달았다.
성역의 별들은 남해성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자연의 영기는 그보다 훨씬 짙었고, 다른 별로 가는 전송진 또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별에는 성역의 곳곳으로 갈 수 있는 전송진이 열 군데가 넘게 있었다.
다만 전송진을 사용할 때마다 손톱만한 크기의 성석이 필요했다. 물론 남해성만큼 성석이 희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성석이 비싸고 중요한 물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보통 영석 십만 개에서 이십만 개 정도였다.
석목이 전에 손에 넣은 주먹 크기의 성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 * *
이 년 뒤, 유난히 나무가 울창한 어느 숲.
이곳의 나무들은 기이하게 컸다. 가장 작은 것이 십여 장이었고, 큰 것은 칠팔십 장 정도나 되어서 파란 산봉우리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햇빛을 막고 있었고, 온통 생기가 넘쳤다.
녹색의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 한 성지가 있었고, 면적이 일이십 리 정도 되는, 작지 않은 곳이었다.
성지에는 녹색이 주를 이루었고, 건축물은 소박했다. 도처에 푸른 나무와 꽃들이 피어 있어서 유난히 깨끗하고 조용해보였다.
그곳은 번화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족이 아니었다.
성지의 중앙에는 하늘을 찌를 듯 무성한 나무가 자라 있었다. 하지만 나무는 지면으로부터 사오십 장 정도의 높이에서 잘려 있었는데, 잘려나간 단면이 이삼십 장은 되어 보이는 평평한 빈 땅 같았다.
그 땅에는 무수히 많은 복잡한 부문과 진문(阵纹)이 새겨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십여 개의 녹색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안쪽의 부문과 함께 거대한 전송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또한 성역의 전송 법진이었다.
법진 주위에는 녹색 갑옷을 입고 키가 일 장 정도 되는 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지계 경지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타오르는 태양이 걸려 있었지만 성지 안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그때 거대한 전송진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고, 빛이 사라지면서 그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푸른 옷을 입은 남자였는데, 차가운 표정에 등 뒤에는 칼과 곤봉 하나씩을 둘러메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다른 한 명은 키가 이 장 정도 되는 남자였고, 파란 눈에 고동색 피부를 가졌으며, 짙은 노란색 머리를 한 이족(異族)이었다. 석목의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거인 같았다.
옆에서 진을 지키던 사람이 앞으로 다가가 두 사람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진 위에서 내려왔다.
석목은 허공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 있었고, 시선이 닿는 끝에는 전부 울창한 숲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꼭대기가 흔들려서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후우, 이곳이 동성성이군. 들은 대로 범상치 않구나.”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탄했다.
이곳은 영기가 유난히 짙은 곳이었다. 남해성의 서하대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이렇게 짙은 영기만이 이처럼 거대한 나무와 울창한 숲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년 동안 석목은 무수히 많은 별을 돌아보았지만, 그 어느 곳도 이곳처럼 생기가 넘치지는 않았다.
“하하, 동성성은 청란성지 종문이 있는 곳인 만큼 근사한 게 당연하죠!”
옆에 있던 파란 눈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꽤 친밀한 사이인 듯했다.
“참, 괴(魁) 형. 청란성지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허허, 가본 적은 없어요. 다만 그곳을 지나친 적은 있습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나흘이나 닷새 정도면 도착할 텐데,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해 이 성에서 지도를 준비해서 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족 남자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손을 모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전에 석 형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그 성망수(星芒兽)에게 죽었을 테죠.”
이족 남자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언급하기도 부끄럽지요.”
석목이 손을 흔들었다.
“석 형, 그럼 나는 용무가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만약 욱일성(旭日城)에 올 일이 있으면 잊지 말고 찾아주시요.”
이족 남자가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족 남자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인사하고는, 노란 빛을 뿜으며 멀리 날아갔다.
석목은 떠나가는 이족 남자를 눈으로 쫒다가 이내 머리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색이 어렸다. 감개무량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이 년 동안, 그는 성역의 별들 사이를 오가며 우연히 청란성지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데, 그게 바로 이 별이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성석을 거의 다 썼을 즈음에야 찾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석목은 성역 여행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고생한 끝에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여행 도중에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별 전역에서 적지 않은 정보를 얻어서 성역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해성이 위치한 미양성역은 이미 알려진 수십 개의 성역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역 중 하나였다. 성역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있고 종류도 엄청나며, 세력 또한 무수히 많았다. 이 모든 정보는 창원왕에게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아지자 시야도 넓어졌다. 석목은 통천선교나 야만족 연맹 등 남해성의 세력은 성역의 세계에서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역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별 전체를 통치할 수 있거나, 또는 여러 개의 별을 거느릴 수도 있었다. 이는 성역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석목의 목적지인 청란성지는 미양성역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 중 하나로, 미양성역의 삼대 수련 성지라고 했다.
청란성지의 개산조사(开山祖師), 청란성조(青蘭聖祖)는 미양성역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였다. 전설에 의하면 선불(仙佛)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진정한 실력자라고 했다.
하지만 석목은 백원왕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아내지 못했다.
이밖에도 성역의 세계에는 강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남해성에서는 지계의 존재, 나아가 선천 무인들도 강자라 할 수 있지만, 성역의 세계에서는 무인은 천위, 술사는 일계 이상의 경지가 되어야만 강자로 불렸다.
그 이유는 남해성은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해 있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의 영기가 충분하지 못해서 미양성역에서도 가장 낮은 등급의 별에 속했다.
또 천위의 무인이나 일계술사가 한 단계 높은 수련을 하여 성배(圣胚)를 집중적으로 수련하게 되면 성계 강자라 불렸다. 성계 이상이 되면 말로만 듣던 선경의 경지에 다다른다고 했다.
성역의 세계에서는 성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만이 한 지역의 강자라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계의 경지에 진입 후에는 실력 상승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실력을 조금 올리기에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러나 실력이 조금이라도 늘게 되면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한 명의 성계 중기 강자는 수없이 많은 성계 초기를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계 초기만 되어도 별 하나 정도는 거뜬히 정복할 수 있었다.
성계 후기가 되면 절대적인 강자가 되었다. 성역의 큰 세력 중에서도 으뜸이며, 한 개의 종문 또는 대가족의 대물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성계 위의 단계인 신경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로 불렸다. 성역 세계에서도 알려진 이는 많지 않고, 거의 볼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또 신경의 강자로 불리는 자들은 어느 한 성역의 최강자인데, 청란성지의 개산조사가 이미 그 경지에 닿았다고 한다.
이 모든 사실은 석목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지계 초기의 무인에 불과했다. 남해성의 동주대륙에서나 실력자라 불릴 뿐, 성역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