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담보
“허허, 석 도우로군요. 저는 황진이라고 합니다. 이 상점의 점주지요. 천천히 둘러보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중년의 점주는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물건들이 전부 평범해서 저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물건이 좀 있는데, 혹시 사시겠습니까?”
석목은 가게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한 채 황진 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석 도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가게가 비록 큰 편은 아니지만 호연각(浩然阁) 산하의 가게입니다. 도우가 이곳에서 물건을 사고 팔거나, 아니면 어떤 정보를 얻고 싶으신 게 있다면 뭐든 가능합니다.”
황진은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호연각!”
석목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 년 동안 성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큰 규모의 세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호연각은 그 세력들 중 하나였다.
호연각은 미양성계에서도 거대하고 신비한 세력 중 하나이며, 많은 별에 분파가 있어서 술집, 정보 거래, 단약, 법기, 경매 등 손을 뻗치고 있는 분야가 많았다. 이 점은 남해성의 천오상회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즉, 호연각이 바로 미양성계의 천오상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밖에 전해진 말에 의하면, 호연각은 특수한 임무를 맡기도 했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면 암살 같은 일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군요. 참, 이것들은 제가 최근에 손에 넣은 영기인데, 점주님께서 한번 감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석목은 손을 흔들더니 검은색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것의 초승달 모양의 삽 같았고, 그것 외에 짧은 창과 뼈 부채도 있었다.
세 개의 물건 표면에는 전부 검은 부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사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중 초승달 삽이 가장 상태가 좋았다. 석목이 이 보물을 꺼내들 때마다 사악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마치 안에 악마가 살고 있는 듯했다.
“이것은 상급 영석이로군요. 하지만 어떤 사악하고 기이한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아마도 상고 마병의 제련법으로 만들어진 것일 겁니다. 이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같은 경지의 사람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지요. 석 도우, 정말 이걸 팔겠다는 겁니까?”
황진의 눈에 기이한 빛이 어렸다. 그는 곧 안색이 변하더니 세 가지 보물 위로 기운을 불어넣어 그것을 숨겨버렸다. 설사 누구에게 들킬까 겁이 난 듯 보였다.
“팔겠습니다.”
석목은 웃으며 말했다.
이 사악한 영기는 그가 사막을 지나다가 도적을 소탕했을 때, 지계의 경지에 있는 그들의 두령에게서 얻어낸 것이었다. 위력은 강하지만 그가 수련하고 있는 진기와는 속성이 달라서 가지고 다녀봐야 짐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청란성지의 선발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좋습니다. 이 영기는 기운이 강하고 진귀한 재료로 제련해서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나와 석 도우는 동족이니 가격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세 가지를 합해서 영석 총 삼십만 개입니다.”
황진이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머리를 숙이기만 했다.
“석 도우, 이 세 개에 영석 삼십만 개라면 이미 상당히 높은 가격입니다. 아마도 청란성 내에서 이 정도 가격에 구매해 줄 사람은 또 없을 겁니다.”
황진은 석목이 답을 하지 않자 다급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황진은 기쁜 기색으로 세 가지 영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영석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건넸다.
석목은 신식을 사용해 그것을 훑은 뒤 영석을 챙겼다.
“석 도우, 나중에 또 좋은 물건이 있으면 가져오십시오. 가격은 제가 섭섭하지 않게 쳐드리겠습니다.”
황진이 말했다.
석목은 담담하게 웃으며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이제 막 청란성에 오신 것이지요? 청란성지의 선발에 참가하려는 생각입니까?”
황진이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란성에 처음 와서 자세한 흐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점주님이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우리는 동족인데 당연하지요. 제가 아는 것은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황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상대의 눈빛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청란성지는 미양성역의 삼대 수련 성지 중 하나로, 십 년마다 한 번씩 제자 선발대회가 열리지요. 동성성의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별, 심지어 다른 성역의 사람들도 참가합니다. 선발에 참가하려면 우선 성 안에 있는 청란전에서 신청해야 합니다. 다만 신청하는 과정에서 조금 복잡한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 거지요.”
황진이 말했다.
“어떤 조건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우선 신청하는 사람의 나이는 백 살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수련은 최소 지계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황진이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는 흠칫 놀랐다. 백 살이 되기도 전에 지계까지 수련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성역의 세계에는 천재가 득시글거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 또한 이해가 되기는 했다.
“두 번째로 신청자는 접인 영패가 있어야 합니다. 그 영패가 없으면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신청할 수 없으니, 그 이후 시험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지요.”
황진이 말했다.
그 말에 석목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청원이 그에게 준 접인 영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우님의 모습을 보아하니 접인 영패는 가지고 있는 듯하네요. 그렇지만 영패만으로는 안 되고,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황진이 계속 말했다.
“보증인이요?”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접인 영패를 가진 사람들은 그 자질과 실력이 천차만별일 터이니,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 나서서 보증할 필요가 있죠. 그것은 청란성지의 선발에 참여할 충분한 자질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청란성지는 일의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겁니다. 실력도 없이 운 좋게 영패만 얻어서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하는 것이죠.”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계속 어두웠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동성성에 도착한 터라 아는 사람도 없는데, 보증인을 어디서 찾는다는 말인가?
“석 도우, 보증인이 필요하면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황진은 석목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는 눈썹을 치켜들었다.
“허연각은 청란성지의 중요한 인물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석 도우가 영석을 어느 정도 지불한다면 제가 그 인물을 모셔서 보증을 서도록 하지요.”
황진이 말했다.
“정말입니까?”
석목은 다시 물었다.
번천곤에 있는 백원왕의 영혼 조각이 영패를 건넬 때, 그는 보증인이 필요하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이 기회에 그걸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허허, 석 도우님.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점주 황진은 석목을 안쪽으로 안내하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석목이 그 자리에서 일 각 정도를 기다리자,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황진은 공손한 자세로 흰 옷을 입은 인족 남자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그 남자의 나이는 석목보다 조금 많아보였다. 석목은 그를 신식으로 훑어보았지만, 수련의 경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석 도우, 이분은 호연각에서 청란성의 일을 책임지는 분이고, 고몽(古蒙) 존자라고 합니다. 존자님, 이분은 석목 도우입니다.”
황진이 말했다.
“석목이 고몽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석목이 일어서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오오, 당신이 청란성지의 입문 선발에 참가하겠다는 사람이군요. 보증인이 필요하신가요?”
“맞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보아하니 지계 초기로 보이는데, 체내의 혈맥이 두터운 걸 보니 몸을 강화하는 공법을 수련했나봅니다.”
고몽 존자는 석목을 위아래도 훑어보더니 말했다.
“네, 선배님의 눈이 아주 정확하시군요.”
석목은 그의 말에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호연각이 하는 일은 믿으셔도 됩니다. 대가를 지불할 능력만 있으면 선발에 꼭 참가할 수 있게 해드리지요. 허나 미리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당신의 실력은 같은 경지의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선발에 참가하는 사람 중에는 강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지계의 경지로 천위 경지의 강자를 이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 대회에서 선발될 가능성은 아주 미미합니다.”
고몽 존자는 석목을 보며 말했다.
“충고는 감사합니다. 다만 저에게는 이번 선발에 꼭 참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석목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확고하게 말씀하시니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신분과 출신을 말해주시지요. 그리고 접인 영패도 한번 보여주십시오.”
고몽 존자는 말을 길게 끌지 않고 석목의 맞은편에 앉았다.
“저는 남해성 출신으로, 아직 소속된 문파는 없어서 혼자의 몸입니다.”
석목은 출신을 말하며 청원이 준 접인 영패를 꺼냈다.
고몽 존자는 영패를 받아보고 흠칫 놀라더니 그것을 뒤집어보았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점주 황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접인 영패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석목이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다급하게 물었다.
고몽 존자는 석목을 바라보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영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석 도우,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겁니까? 성목령(圣木令)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성목령이요? 그건 또 무엇인가요? 제가 감히 고몽 선배님을 상대로 장난을 치다니요?”
석목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고몽 존자님. 석 도우는 이제 막 청란성에 온 분입니다. 청란성지의 입문 선발 과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패의 진정한 가치를 정말 모르고 있었을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 듯 보입니다.”
황진이 말했다.
“흐음, 그런가.”
고몽 존자는 놀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고몽 어르신이 허탕을 치게 했네요. 제 실수입니다.”
황진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됐네. 이 자리에는 내가 더 필요 없는 듯하니 알아서들 하게.”
고몽 존자는 손을 흔들며 석목을 더 쳐다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석목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석 도우, 성목령을 갖고 있었으면서 왜 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괜한 짓을 했군요.”
고몽 존자가 나가자 황진은 자리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점주님,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제 영패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황진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품에 넣더니, 푸른색 영패를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석목은 그것을 받더니 흠칫 놀랐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영패였다. 다만 그에게 있는 영패는 한 면에 나무가 그려져 있었고, 황진이 준 영패에는 나뭇잎 한 개가 새겨져 있었다.
“이 영패는…….”
석목은 황진이 건넨 영패를 들고 물었다.
“맞습니다. 이 영패는 평범한 접인 영패입니다. 석 도우의 손에 있는 것은 성목령이고요.”
황진이 말했다.
“무엇이 다른가요?”
석목은 영패를 황진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석 도우가 갖고 있는 성목령은 흔한 것이 아닌데, 청란성지는 성지와 깊은 관계를 맺은 세력에게만 이런 성목령을 나누어줍니다. 이 영패를 소지한 자는 입문 선발에서 어느 정도의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그 혜택 중 한 가지는 보증인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사실 이 보증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 게, 매번 수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보증인 때문에 참가를 거부당합니다. 평범한 접인 영패야 사고 팔 수도 있는 것이지만, 청란성지에서 인정하는 보증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황진이 말했다.
석목은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푸른색 영패를 바라보며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