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마열(马烈)
“석 도우, 청란성지와 대체 어떤 인연이 있는 겁니까? 성목령을 소지하고 계시다니요.”
황진은 잠깐 망설이더니 물었다.
“저는 한낱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저 따위가 청란성지와 연관이 있겠습니까? 이 영패는 천위 경지의 한 선배님이 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그 선배님이 청란성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겠지요.”
석목이 말했다.
“그렇군요.”
황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보증인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석목은 더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호연각에서 나오자 채아가 날아왔다.
“석두,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일은 잘 해결됐고?”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청익비차를 소환했다. 그리고 청란성의 더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성의 면적은 상당히 넓어서 동성에서 서성까지 걸어서 가려면 반나절이나 걸리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성내의 비행을 금지하지 않았다.
* * *
청란성 중앙에는 다섯 그루의 큰 나무를 이어 만든 대전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입문 선발의 참가 신청을 받는 곳이었다.
대전의 주위는 광장으로 둘러싸였고 다양한 사람이 촘촘하게 모여 있었다. 주변의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빛이 반짝이며 사람들이 날아왔다.
곧이어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우와, 사람 많다!”
채아가 광장을 둘러보더니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석목도 주위를 보았다. 광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모양이 기이한 이족 젊은이였고, 인족은 극히 드물었다. 가끔 인족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왜소해보이는 신체적 특징 때문에 인파 속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어느 정도는 수련을 한 사람들로, 대부분은 지계 중기의 경지였다. 다만 지계 초기나 후기에 속하는 사람의 수는 적은 편이었다.
주위의 요족들은 석목을 보자마자 경멸과 비웃는 기색을 드러냈다.
“하하, 다들 저 놈을 봐라. 인족 따위가 입문 선발에 참가하려 하다니. 정말 분수를 모르는군!”
“허허, 지계 초기 주제에 신청을 하다니, 일찍 죽고 싶은 모양이군.”
“뭐, 자기가 죽고 싶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겠지.”
비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들은 모두 석목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채아가 그들에게 화를 내려 했지만, 석목이 말렸다.
“괜찮아. 마음대로 지껄이라고 해.”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중앙에 있는 대전을 향해 걸어갔다.
대전 안쪽은 넓은 편이었는데, 이곳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 십 개가 되는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각 줄에 백 명 이상은 서 있는 듯했다. 줄의 가장 앞쪽에는 돌로 만들어진 탁자가 놓여 있었으며, 탁자 뒤에는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옷에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석목은 주위를 훑어보고는 가장 짧은 줄을 선택했다.
대전 밖의 광장과 안쪽에서는 사람들이 오고 가며 작은 소리로 무엇인가를 물어보거나, 말을 걸곤 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접인 영패를 거래할 의향이 있는지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접인 영패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바로 옆줄의 앞쪽에서 참가 신청을 받던 청란성지의 중년 남성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보증인 자격이 미달돼서 참가 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노란 옷을 입은 요족 청년에게 영패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요족 청년은 화가 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 보증인은 구공성(九孔星) 이은회(離隱會)의 목철(木喆) 장로님입니다. 이미 천위 초기의 경지까지 수련하신 분인데, 왜 자격이 안 된다는 겁니까?”
“목철 장로는 얼마 전 세상이 공분할 만한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이미 이은회에서 쫓겨난 데다 성지에서 말단인 정급(丁等)까지 떨어졌으니, 그분의 보증은 효력이 없습니다.”
중년 남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노란 옷을 입은 요족 청년은 그 말을 듣고도 할 말이 남은 듯 보였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한쪽으로 비켜주세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다음 분 오십시오!”
요족 청년이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중년 남자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대전의 근처에서 푸른 갑옷을 입은 호위병 두 사람이 걸어왔다.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은 지계의 막바지에 도달한 듯했다. 호위병들은 요족 남자를 포위하듯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가주시지요.”
요족 청년은 돌 탁자 뒤에 앉은 중년 남성을 노려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나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앞쪽 줄에서 사람들이 많이 떨어져나갔다. 그중 보증인 자격 미달로 쫓겨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느새 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붙으면서, 줄은 점점 더 길어졌다. 반 시진이나 줄을 선 뒤에야 석목의 앞으로 간신히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남았다.
“석두, 저기를 봐!”
그때 채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대전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석목이 채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를 한 네다섯 명의 요족이 대전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중 한 명은 그가 성문 밖에서 만났던 요족 청년이었다.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성문 밖에서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외에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한 명 더 있었다.
외모가 수려한 소녀는 붉은 머리가 한가득 뒤로 흘러내리고 있었고, 눈 속의 붉은 빛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두웠으며, 이마에는 눈물 모양의 푸른 수정이 붙어 있었다. 커다란 피풍을 두르고 있었지만, 매끈한 몸매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그 무리에서 소녀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녀는 이미 지계 후기까지 다다라 있었으며, 곧 지계의 정상에 도달할 듯했다.
그중 몇몇 사람이 석목이 있는 줄로 걸어오더니, 그를 스쳐가서 앞쪽의 두 번째 자리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키가 큰 붉은 머리의 요족 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머리 요족 남자는 그들이 온 것을 보고는 기뻐하더니 낮은 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아마도 상당히 친밀한 사이 같았다.
그들이 끼어들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을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그들 무리의 명성 때문인지 모두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
“파렴치한 놈들이네.”
채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앞쪽에 있는 요족 청년의 귀가 움직였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돌려 석목과 그의 어깨 위에 있는 채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서 성난 빛이 감돌더니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 순간 푸른 갑옷을 입은 호위병이 몸을 번쩍이며 요족의 청년 앞에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성 안에서는 싸움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반자는 성 밖으로 쫓겨나서 백 년 동안 출입이 금지될 것입니다.”
그러자 요족 청년은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몸의 빛을 거두었다.
“미안합니다. 우리 제자가 난동을 부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알고 지내던 사람을 봐서 기분이 조금 들뜬 모양입니다. 요기를 풍겼다면 너그럽게 봐주시지요.”
붉은 머리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처음이니 넘어가겠습니다만, 다음에는 봐주지 않을 겁니다.”
푸른 갑옷을 입은 호위병은 소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요족 청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요족 청년의 목에서 힘줄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푸른 갑옷의 호위병은 다시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붉은 머리를 한 소녀가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번쩍였다.
석목은 그 무리 사람들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하지만 채아는 아무것도 꺼릴 것이 없다는 듯, 곁눈질로 그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온몸의 털들을 부들부들 떨면서 화가 잔뜩 난 채였다.
그걸 보는 요족 청년의 눈에서도 분노가 번졌고, 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붉은 머리의 소녀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그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참가 신청을 끝냈고, 드디어 석목의 차례가 되었다.
등록을 담당하는 사람은 푸른 옷을 입은 소녀였다. 그녀는 용모가 수려하고 입가에는 작은 점이 붙어 있어서 실로 귀여웠다.
그런데 푸른 옷을 입은 소녀는 석목을 한번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인족……?”
“석목이라고 합니다. 선발 참가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소녀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로 신청하시겠습니까? 입문 선발 과정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들은 탈락할 것이 뻔합니다. 올해는 포기하고 다음에 신청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맞아, 고작 저 정도의 실력에 약해빠진 인족이라니. 선발에 참가하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방금 전의 요족 청년 무리는 자리를 뜨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석목을 향해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온통 석목을 경시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석목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푸른 옷을 입은 소녀는 더는 만류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흥, 호의로 충고를 해도 따르지 않는다니. 요즘에는 멍청이가 너무 많아!”
요족 청년은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채아가 화가 나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석목이 그대로 눌러버렸다.
“흥분하지 마.”
석목은 한손으로 채아의 뒤통수를 만지며 말했다.
“석두, 네 말이 맞아. 내가 저런 미친개랑 싸우려 했다니. 스스로 품위를 떨어트릴 뻔했네. 네가 말해줘서 다행이야.”
채아는 눈알을 굴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 요족 청년은 채아의 말을 듣고 크게 화가 나서 코로 거친 숨을 내뱉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성난 숫소 같았다. 그는 석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열, 그 입 다물지 못하겠어?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 잊지 마라.”
붉은 머리를 한 소녀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차갑게 말했다.
마열은 붉은 머리의 소녀를 상당히 무서워하는 듯,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억지로 화를 누르고 이를 꽉 물며 말했다.
“누가 저 인족 놈의 보증인인지 두고 보겠어! 아마도 자격도 없는 놈일 테지!”
푸른 옷을 입은 소녀는 그들의 말싸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은 듯했다.
“접인 영패를 보여주세요.”
그녀는 석목을 향해 말했다.
석목은 푸른 영패를 꺼내 건넸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녀는 영패를 받고는 한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위로 법결이 나타났다.
윙!
영패의 표면에서 영기의 파동이 일어났고, 그 위로 이름 모를 노란색의 영문(灵文)이 나타났다.
“성목령!”
아무런 표정이 없던 소녀의 얼굴에서 의외라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주위의 시선이 집중됐다. 마열이라는 요족 남자와 붉은 머리 소녀 일행도 놀란 듯 보였다.
성목령은 흔하지 않기에 규모가 크고 강한 세력들만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머리 소녀는 석목을 슬쩍 바라보더니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마열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서 가자!”
마열은 달갑지 않다는 듯한 눈으로 채아를 쳐다보더니, 씩씩거리며 붉은 머리 소녀를 따라갔다.
“성목령을 갖고 계시니 보증인은 필요 없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탁상 위의 푸른 옥판에 석목의 이름을 적더니, 옥 그릇 같은 하얀색의 물건을 꺼냈다.
“이곳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세요.”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말했다.
이것은 신청 절차 중 일부분이었고, 석목은 앞서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그었다.
그의 피 한 방울이 순식간에 그릇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됐습니다. 신청은 끝났습니다. 보름 뒤 본격적인 입문 선발이 진행될 예정이니, 그 시일에 맞춰 관련 사항을 안내할 것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영패를 회수하며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