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수천청산(水天青山)
석목은 빠르게 대전을 벗어난 뒤, 광장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갔다.
근처의 작은 거리로 나온 석목은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지만 순조롭게 신청을 마쳤다. 이제 시합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선발에 통과하기만 하면 청란성지에 들어가서 수련할 수 있었다.
백원왕의 영혼이 말한 구전현공의 뒷부분을 생각하며, 석목은 주먹을 힘껏 쥐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석두, 신청 끝났는데 어디로 갈 거야? 뭐 먹으러 갈까?”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우선 사야 할 물건이 있어. 그리고 머무를 곳을 찾아야 하니, 밥은 조금 있다가 다시 생각하자.”
석목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번 선발 참가자 중에는 실력이 막강한 인물이 많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붉은 머리의 지계 후기 소녀만 해도 진정한 실력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알았어.”
채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석목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번쩍이더니 붉은빛을 내는 무언가가 길을 막아섰다. 방금 전에 만났던 요족 청년 마열이었다.
“거기 잠시만 멈춰주시오.”
마열이 두 손을 모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게 아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석목은 그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죠?”
석목이 성목령을 꺼내든 것을 보고도 혼자서 쫓아온 걸 보니, 원하는 게 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아까는 제가 경솔했습니다. 부디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마열은 석목의 어깨 위에 있는 채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뭘 봐? 한 번만 더 쳐다보면 눈알을 파버릴 거야!”
채아가 마열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마열은 채아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석목이 마열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 말을 하려고 온 겁니까?”
“아, 사실은 그게… 당신과 상의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마열은 눈알을 몇 번 굴리더니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말하지 마십시오.”
석목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를 그대로 지나쳐서 가려고 했다.
마열은 당황하더니 곧바로 석목의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 새는 영성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영석 십만 개를 낼 테니 혹시 저에게 파실 수 있습니까?”
그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이런 악독한 놈! 나를 사겠다고? 날 뭘로 보고! 석두, 선발에서 이놈을 만나게 되면 절대 가만두지 마!”
채아가 깜짝 놀라서 화를 내며 날개를 퍼덕였다.
석목이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비켜주십시오. 이 새는 팔지 않습니다.”
그 순간 석목의 체내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그의 몸이 거대하게 커지더니 그대로 마열을 밀치고 걸어 나갔다.
마열은 안색이 굳었지만, 석목이 성목령을 꺼내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두 발쯤 뒤로 물러섰다.
석목은 야수처럼 그의 옆을 지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멀어져갔다.
마열은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어. 저 새는 상당한 물건일 거야! 꼭 갖고 말겠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해!”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서 보름이 훌쩍 지났다.
청란성지의 입문 선발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석목은 일정에 따라 아침 일찍 시험 장소에 도착했다. 모이는 장소는 청란성 밖에 있는 숲 속의 넓은 공터였다.
수천수만 명에 달하는 각 종족의 신청자가 이곳에 모여 들었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요족과 이족이 주를 이루었고, 인족은 드물었다. 가끔 외모가 인족과 비슷한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는데, 체형이나 피부, 모발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이족은 무리를 지어 이곳에 도착했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십여 명이나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홀로 서 있는 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들었어? 이번에 청란성지의 입문 선발에 참가한 사람이 삼만 명이 넘는대. 지난번보다 삼 할 정도는 많아졌어.”
석목의 뒤에서 표범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이족 청년이 옆사람에게 말했다.
“그게 뭐 이상해? 십 년에 한 번뿐인 행사인데, 실력 있는 세력이라면 모두 이곳에서 한 번쯤 겨루어보고 싶겠지. 경험을 얻어야 나중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그런데 매번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이 꼭 와서는 죽음을 당하더군.”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크크, 그러니까 말이야! 저기를 봐. 인족 놈이 또 요행을 바라고 와 있네.”
표범 머리를 한 이족이 뾰족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석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혹시 몰라 채아를 미리 허리춤의 영수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채아의 성격으로 보아 또 사고를 칠 게 뻔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복잡한 인파를 뚫고 공터의 중앙으로 갔고, 큰 나무와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주위에는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큰 나무 옆으로 거대한 공간이 있었고 이곳에는 원형의 높은 기둥이 있었는데, 아마도 특수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 나무는 주위의 나무들과 비교했을 때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사백 장 정도는 되어보였다. 전체가 자색으로 이루어졌는데 몸통이 기이할 정도로 굵어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자색의 높은 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가지에서부터 수많은 덩굴이 폭포처럼 떨어져서 바닥까지 닿았다,
석목은 그 나무가 기이하게 느껴져서 신식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서 금빛이 흐르더니 큰 자색 나무의 껍질 위에 촘촘하게 있는 무늬들이 뚜렷해졌다. 그 사이사이에서 영력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는데, 그것은 덩굴을 타고 흘러내려서 바닥에서 합쳐졌다.
나무의 중심에는 영력이 모여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무를 정신없이 바라보던 석목은 누군가 신식으로 자신의 몸을 훑고 있는 것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급히 머리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자색 나무 앞쪽의 둥근 기둥 위에 있는, 푸른색 옷을 입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백발의 노인은 얼굴이 아이처럼 발그레했고, 몸에 두른 큼직한 피풍이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속세를 벗어난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노인은 주위를 쭉 훑어보고 있었는지 다시 다른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석목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늙은이가 시선을 거두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하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위엄이 있었고, 유난히 뚜렷하게 들려왔다. 시끌벅적하던 인파가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모두가 노인을 바라보았다.
광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져서 바늘 한 개만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듯했다.
석목은 이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인의 외모는 인족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진짜 기운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은한 요기가 느껴졌다.
그가 입고 있는 푸른 옷의 가슴 부위에 새겨진 그림은 한 그루의 큰 나무였다. 대부분 청란성지 제자들의 몸에는 나뭇잎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이 노인은 아마도 성지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듯했다.
그 사이에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저는 비골(悲骨)이라고 합니다. 이번 신입 제자 선발을 담당하는 장로이지요. 청란선조가 성지를 개설한 이후로 벌써 백만 년이나 흘렀습니다. 선조의 뜻에 따라 이곳에서 십 년마다 종문을 열고 있는데, 미양성역 전체에서 총 백팔 명의 제자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시험 결과에 따라 서른여섯 명을 뽑아 상위 제자로, 나머지 일흔 두 명을 하위 제자로 입문시킬 것입니다.”
모두가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들 노인이 말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고, 이의가 없는 눈치였다.
노인은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 보증인 자격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총 삼만 삼천 육백 삼십일 명입니다.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천수 혈맥을 가진 사람, 또는 혼돈(混沌)이나 심연(深淵) 등 갑 등급의 체질을 가진 자가 있으면 이쪽으로 나오십시오. 그들은 확인이 끝나면 시험을 생략하고 상위 제자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말이 나오자 조용했던 광장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천수 혈맥!”
석목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백원왕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천수인 백원왕의 정혈을 두 방울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진정한 천수 혈맥은 아니었다. 백원왕이 남긴 영혼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석후 폐맥이 미천거원의 핼맥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은 천수 혈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될 확률 또한 미미하다고 했다. 그러나 석목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오지 없으니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어 관례에 따라 여러분에게 제자 선발의 규칙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전혀 의외라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다.
“시험은 수천청산 비경(秘境)에서 한 달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수천옥패(水天玉佩)와 청산령(青山令)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경에 들어가서 그곳의 요수들을 사냥하고, 그들의 요핵(妖核)을 획득해야 합니다. 요핵은 청산령에 흡수되어 점수로 매겨질 것이고, 한 달 뒤 획득한 점수의 순위로 선발될 사람을 결정할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비경의 요수는 우리가 특별한 방식으로 키웠기 때문에 지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실력은 무시할 수 없지요. 만약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수천옥패를 바로 깨뜨리십시오. 그러면 비경을 벗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동으로 기권한 것으로 간주되고, 청산령은 비경 안에 남게 됩니다.”
노인이 말했다.
“비골 장로님, 비경 안에서 참가자들끼리 서로 죽이고 요핵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까?”
노인과 멀지 않은 곳에서 피부가 청자색을 띤, 키가 한 장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튀어나온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광장의 침묵이 다시 깨졌다. 비웃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조용히 하십시오! 청란성 내에서는 싸움을 금지하고 있지만, 수천청산 비경에서는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당연히 서로 싸워서 타인의 청산령을 빼앗고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청란성지는 결과만 보고 판단할 뿐 과정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으로 인한 죽음은 당연히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 말이 뱉어지자 청자색 피부의 남자는 성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이 되었고, 눈에 두려움이 어린 이도 있었다.
물론 석목은 이에 대해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했는데 서로 싸우지 못하게 한다면, 그게 오히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비경의 요수보다 선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전달할 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하자면, 나이가 백 세 이하의 지계 무인, 혹은 월계 술사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야 제자로 선발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 단약 비술이나 다른 수단으로 일시적으로 경지를 올리거나, 혹은 나이를 속이는 사람이 있다면 충고하겠습니다. 그건 모두 헛된 수고가 될 것입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말이 끝나자 인파 속에서 열댓 명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광장을 떠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 빨리 도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