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매복(埋伏)
일행은 반 시진 동안 앞을 향해 걸었다. 석목의 눈썹이 움직이더니 이내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머리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석 오라버니, 무슨 일이 있나요?”
자릉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까운 곳에서 요수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실력은 평범해보여. 다만 그 수가 많은 것 같으니 조심해야겠다.”
석목이 말했다.
자릉은 석목의 시선을 따라 먼 곳을 보았고, 큰 눈을 반짝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요수는 무슨! 한참을 걸었는데 고양이 두어 마리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잖아!”
석목과 자릉의 앞에서 걷던 한 이족 청년이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곳은 아직 외곽인데, 그렇게 많은 요수가 있을 리가 있어?”
두 개의 송곳니를 드러낸 푸른색 피부의 요족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석목은 그냥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가장 앞쪽에서 걷던 희강이 멈추더니 낮게 소리 질렀다.
“요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무언가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명도 울려 퍼졌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고, 보아하니 그 수가 적지 않은 듯했다.
사람들은 안색이 변하더니 전부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며 영기를 꺼내들었다.
“조심해요! 모두 경계해요!”
희강은 눈썹을 치켜뜨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앞쪽의 풀이 울렁이는 듯하더니 거대한 몸집의 요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모습은 점점 뚜렷해졌는데, 사람보다 네다섯 배는 커 보이는 푸른색의 거인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나무 같은 무늬가 있었고 초록색 눈에서 환한 빛을 뿜어냈다.
거인들의 수는 삼사십 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손에는 각각 나무로 만든 창과 도끼, 목검 등을 들고는 이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무 거인이다!”
“왜 저렇게 수가 많은 거야?”
“나무 거인은 강하지는 않지만 힘이 엄청나게 셉니다. 다들 뭉쳐서 공격하고 조심하십시오!”
희강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졌다.
그의 등 뒤로 날개뼈가 순식간에 펴졌는데, 크기가 몇 장은 되어 보였고 위에서는 눈부신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날개뼈가 마치 거대한 칼처럼 나무 거인들을 베어 두 동강을 냈다.
다른 사람들도 화염, 얼음, 회오리바람 등 각자 자신들의 수단을 사용해서 나무 거인들을 공격했다.
석목은 눈을 번쩍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한줄기의 금빛 도광이 날아갔는데, 마치 날아다니는 용 같았다. 그것은 양쪽에서 공격해오는 두 마리의 나무 거인을 산산조각 냈다.
곧이어 붉은 빛이 나무 거인의 시체를 스쳐 지나더니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녹색 요핵을 잡았다. 반짝이는 요핵은 곧 석목의 손에 들어왔다.
석목의 옆에서 자릉이 두 개의 자색 비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두 갈래의 자색 빛을 내뿜어서 한 마리의 나무 거인을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나무 거인들의 수는 엄청났지만, 석목 등 지계 무인들의 상대는 아니었기에 잠깐 사이에 전부 처치됐다. 사람들은 각자 요핵을 수집했다.
“이것이 바로 요핵이군.”
석목은 녹색의 요핵을 손에 들고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가는 도중 만난 요수가 많지 않아서 발견 즉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처리됐고, 규칙에 따라 요핵은 당연히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그래서 석목은 이제야 비로소 요핵을 보게 된 것이었다.
요핵은 강렬한 기운의 파동을 뿜어냈는데, 남해성의 요단과 비슷해보였다.
그는 요핵을 두어 번 쳐다보고는 영패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빛이 뻗어나가서 요핵을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러분, 지금까지 별 일이 없었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이 수천청산 비경은 청란성지 제자들의 시험지인 만큼, 그 위험의 정도가 말처럼 가볍지는 않을 겁니다. 전에 와보신 분들은 전부 잘 알고 계시겠지요. 방금 전의 상황만 해도 우리가 혼자였거나 소수였다면 얼마나 위험했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은 정확한 선택이었습니다.”
희강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싸움을 금방 마친 터라 사람들은 전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몸은 풀렸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지요!”
희강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어 앞쪽으로 향했다.
“석 오라버니, 대단하세요. 저렇게 멀리 있었던 요수들의 기운을 감지하다니요!”
자릉이 탄복하며 말했다.
석목은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 웃으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 * *
그 뒤로도 일행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초원의 면적은 놀랄 만큼 커서, 이삼일 동안이나 걸었는데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요수가 나타나는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 선천급이었고 지계 초기는 많지 않았다.
일행 중 지금까지 사망자는 없었고, 여정은 순조로웠다. 다들 적지 않은 요핵을 모았고 기세도 점점 높아졌다.
“자릉, 이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이렇게 며칠이나 걸었는데 끝이 없잖아?”
석목과 자릉은 여전히 일행의 가장 뒤편에 서 있었다. 석목이 입술을 살짝 움직여서 마치 전음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저도 이곳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해요. 다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을 잃어버린 초원이라 부른대요.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는 알지 못해요.”
자릉이 말했다.
“잃어버린 초원…….”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바로 그때, 무리의 앞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석목은 머리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고, 이내 안색이 변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뜬금없이 돌숲이 나타난 것이다. 숲은 멀리까지 뻗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돌숲 위의 하늘이었다. 회색 안개가 자욱했는데, 채아마저도 그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큰 돌숲이 나타난 거지?”
석목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들 의아해했다.
“여러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이 돌숲은 보기에는 이상해도 그 안에 요수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아직 외곽이라 요수들의 실력이 아주 강하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분명 해지울 수 있습니다. 요 며칠간 아무 문제없이 이곳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희강이 나서서 희망적인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들자 다들 정신을 가다듬으며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며칠 동안이나 왔습니다. 이 정도의 돌숲이 나타났다고 해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희강이 계속해서 말하자 다들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새 일행 사이에서 불안한 기색이 줄어들었다.
“희 도우, 비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혹시 이곳이 왜 잃어버린 초원이라 불리는지 알고 있나요?”
석목이 물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곳을 두 번이나 들락거렸지만, 이 초원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여러분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희강이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며 침묵을 지켰다.
“갑시다. 출발하지요. 이 돌숲에 기이하고 진귀한 자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희강은 웃으면서 먼저 돌숲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말에 다들 한바탕 웃으면서 침울한 기분을 조금 떨쳐낸 것 같았다. 모두 희강을 따라 돌숲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희강이 말한 대로 돌숲에 들어가자 각종 자원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은 듯 수십 년이 된 영재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심지어 백 년 묵은, 심지어 수백 년 묵은 영초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다들 자원을 채집하기에 바빴고, 모두 적지 않은 수확으로 얼굴에 기쁨의 기색이 역력했다.
석목도 몇 개의 영초를 채집했다. 그러나 그는 크게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주위를 바라보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석 오라버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자릉이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다만 조금 불안할 뿐이야. 이 돌숲에 들어온 지 한 시진이 되었는데 요수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다니, 좀 의심스러워.”
석목이 말했다.
자릉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 석목이 말한 것처럼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혹시…….”
자릉이 입을 열어 무엇인가 말하려 할 때,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땅 속에서부터 굉음이 들렸다. 마치 흉악한 괴수가 그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지면은 점점 심하게 흔들렸다.
석목은 안색이 변하더니 몸을 일으켜 허공으로 날아가며 크게 소리쳤다.
“아래를 조심하세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자릉도 오색이 영롱한 비단을 밟고 석목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석 도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희강이 심각하게 물었다.
석목이 대답하려 할 때 땅에서 노란빛이 크게 번지더니, 주위 칠팔십 장을 온통 덮어버렸다.
우르릉!
땅 위의 돌숲이 노란빛에 의해 덮였다. 이어 돌들이 갑자기 땅에서 뽑혀 나오더니 한 바퀴 돌고는 허공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수백 개가 넘는 큰 돌이 비처럼 내리며 사람들을 향했다.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피할 수도 없었다.
“매복입니다!”
허공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다들 빠르게 실력을 펼치며 몸에서 빛을 내뿜었고, 보호 영기를 꺼내 각자 방어 태세를 취했다.
석목의 몸 위로 수많은 금색 비늘이 돋아나와 그의 온몸을 덮었다. 금빛이 크게 번진 그의 모습은 마치 금색 갑옷을 입은 신 같았다.
주위의 몇몇 요족 청년은 석목의 변화를 보며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자릉이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이어 그녀의 주변에서도 자색 구름 같은 무언가가 크게 번지더니, 그녀를 꼼꼼하게 감싸 안았다
수많은 돌이 사람들이 펼친 보호막 위에 부딪혔다.
허공에서 한참 동안 빛이 번쩍이면서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 모두 각 종족의 실력자인 만큼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적절하게 막아냈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어 날아오는 돌을 부수어버렸다. 그런데 다시 땅을 바라본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땅에서 빛이 여러 차례 번쩍이더니 거대한 노란색의 규룡 같은 요수들이 열 마리가 넘게 튀어나왔다. 전부 크기가 칠팔 장은 되어보였고 내뿜는 기운으로 보아 지계의 경지인 듯했다.
노란색의 거대한 규룡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입을 크게 벌리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더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토규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나타나다니!”
“이 토규는 칼로 찌를 수도 없고 물과 불에도 끄떡없어서 아주 골치 아픈 요수입니다!”
다들 놀란 기색을 드러냈고, 일부는 두리번거리며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 망설이는 듯했다.
석목은 앞에 있는 요수를 마주보며 눈을 반짝이더니, 등 뒤의 운철흑도를 천천히 꺼내들어 몸 앞을 가로로 막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릉을 향해 말했다.
“조심해! 나와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석 오라버니!”
자릉은 몰골이 흉악한 요수들을 바라보며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듯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각자 도망가면 더 많은 요수가 몰려올 뿐입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 이것들을 죽이는 게 살길이에요!”
다른 한쪽에서 희강이 아래의 요수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희강의 위상은 꽤나 높아져 있었다. 그래서 그가 말 하자 많은 사람이 머리를 끄덕이며 각자 무기를 꺼냈고, 요수들을 천천히 포위했다.
바로 그때, 앞쪽의 땅이 흔들리더니 근처의 나무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이어 가운데의 땅이 푹 꺼지더니 한 묘(*畝:넓이단위로 약30평) 정도나 되는 땅이 꺼져버렸다.
곧이어 십여 마리의 토규가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푹 패인 땅 가운데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부서진 돌들이 줄지어 튕겨 나오더니 또 한 마리의 거대한 노란 요수가 그 안에서 날아 올라왔다. 그 요수는 십오륙 장 정도 되는 크기에 몸에는 노란 비늘이 붙어 있었고, 머리에는 자색의 뿌리가 자라 있었다.
“큰일이다! 토규왕이다!”
누군가가 새로 나타난 요수를 보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 외곽인데 어떻게 이 정도 급의 요수가 나타나지?”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