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62화 (362/916)

362화. 토규(土虬)

석목은 새로 나타난 거대한 요수를 바라보며 손에 쥐고 있는 칼을 더 꽉 잡았다.

‘토규왕이라고?’

요수가 내뿜는 기운으로 봐서는 보통이 아닌 듯했다. 그가 혼자 이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진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야 처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이 요수를 단독으로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은 몇 안 될 듯했다.

쿵!

토규왕은 악랄한 모습으로 허공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지계 중기는 되어 보였으며, 거기에 거대한 몸집이 더해진다면 같은 경지의 무인은 아마도 승산이 없을 것이었다.

주위의 다른 교룡들도 줄줄이 머리를 들고 소리를 질렀고, 거대한 몸집을 하늘 위로 튕겼다. 비린내가 위쪽을 향해 밀려왔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토규왕을 제외한 다른 토규는 일대일로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희강은 그렇게 소리치며 앞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번쩍이며 사라진 순간, 어느새 그는 이미 홀로 토규왕과 싸우고 있었다.

이제는 도망가도 늦었다. 낯선 돌숲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더욱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른 요수들의 표적이 될 게 뻔했다.

청란입문 선발에 참가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정도로 우둔하지는 않았다. 희강이 가장 무서운 토규왕과 맞붙는 걸 본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몸에서 각자 다양한 빛을 내뿜으며 토규 무리와 싸움을 벌였다.

그 순간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각종 법술이 번쩍였고, 칼날들이 날리며 사방이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토규는 몸집이 크고 수가 많았지만, 일행은 둥글게 진을 치고 연이은 방어태세를 취하여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석목과 자릉은 힘을 합쳐 두 마리의 규룡을 막아내고 있었다.

석목은 자릉의 측면에 서서 운철흑도를 휘두르며 층층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림자들은 큰 산처럼 한데 모여 규룡을 공격했다.

자릉의 손에서는 오색의 비단이 위아래로 펄럭였다. 그것은 그녀의 몸 주위에 오색의 보호막을 형성했고, 그 안에서는 다양한 색의 빛이 뿜어져 나갔다.

석목의 공격은 기세가 상당했다. 몸집이 큰 토규도 그의 공격을 받으면 멀찌감치 밀려났다. 그리고 자릉의 오색 빛은 날아가는 토규의 몸을 정확히 가격하면서 눈부신 번개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 요수들의 방어력은 매우 뛰어났고, 여러 번 공격을 받았음에도 그중 두 마리의 토규는 여전히 치명상을 입지 않은 듯, 몸을 한 번 구르더니 다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놀랐다.

그는 아직 자신의 힘을 삼분의 일도 쓰지 않았고, 어떤 공법에도 진기를 불어넣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한 육신과 운철흑도 자체의 무시무시한 힘을 고려해, 규룡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만약 남해성이었다면 이 정도의 지계 요수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도 몸이 갈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석목은 흔들리지 않고 눈앞의 토규들을 공격해 멀찌감치 날려 보냈다. 그가 좀 더 제대로 힘을 가해서 공격할지를 잠시 고만하던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쿵!

그것은 십여 개의 번개가 한꺼번에 내리치는 듯한 굉음이었다. 석목은 놀란 듯 그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희강과 외뿔의 토규왕이 하늘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토규왕의 거대한 몸집이 번쩍이며 노란빛을 뿜었다. 그가 입을 크게 벌리자 일고여덟 개의 노란 공이 튀어나와 희강을 향해 날아갔다.

공은 하나하나의 위력이 엄청났고, 노란 빛을 반짝이며 우레 같은 소리를 냈다.

“무토신뢰(戊土神雷)!”

석목은 곧바로 그 노란 공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흠칫 놀랐다.

희강은 긴 휘파람을 불더니 몸을 거꾸로 돌렸다.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지더니 왜소한 몸집에서 등 뒤로 날개가 길게 뻗어 나왔다.

번쩍이던 빛은 이내 사라졌고, 십여 장 길이의 푸른 요수가 나타났다.

그 요수의 겉모습은 흉악하게 생긴 거대한 박쥐 같았다. 머리는 용의 머리 같고 목과 상반신에는 검은색 비늘이 덮여 있었다.

곧이어 희강이 낮은 소리를 내자 그의 몸에서 푸른색의 화염이 크게 번졌다. 그의 등 뒤로 한 쌍의 푸른 날개가 펼쳐지면서 푸른 화염이 밀려오더니, 곧 거대한 화염 덩어리로 변해 앞에서 날아오는 무토신뢰와 충돌했다.

쿵! 쿠쿵!

푸른색과 노란색이 주위를 눈부시게 비추었고,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있는 몇 마리의 토규와 요족이 거기에 말려 날아갔다.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칼을 꺼내들고 앞에 있는 수십 마리의 토규를 향해 휘둘렀다. 토규들이 물러나자 그는 긴 소매를 흔들더니 옆에 있던 자릉을 말아서 삼십 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두 마리의 토규가 싸우던 상대를 뿌리치고 그가 있는 곳으로 덮쳐왔다.

석목은 피식 웃더니 손목을 꺾으며 칼을 흔들었고, 크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토규들은 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다시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희강은 거센 바람에 의해 십 장이 넘는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는 이내 몸 주위에서 푸른빛을 반짝이더니 빠르게 자세를 안정시켰다.

갑자기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노란 빛기둥이 하늘을 가로질러서 희강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 기둥에서는 투명한 빛이 반짝였다.

희강은 크게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날개를 펼쳐서 옆으로 피했지만 한 발 늦었다. 그의 하반신이 빛의 기둥에 부딪혔다.

카악!

괴이한 소리가 들리더니 희강의 하반신에서 두꺼운 황토색 암석이 층층이 나타났다. 암석은 그의 상반신을 향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희강은 비명을 지르며 상반신에서 푸른빛을 크게 뿜어내서 암석이 몸 전체를 덮는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희강의 날개는 이미 암석에 묻혔고, 몸의 대부분이 한 덩어리의 돌이 된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외뿔 토규왕도 몸의 노란빛이 많이 흐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방금 전에 구사한 비술 때문에 힘이 많이 소진된 듯했다.

그는 희강을 쫓지 않고, 거대한 몸집을 흔들면서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곳에는 요족 세 명이 다섯 마리의 토규와 싸우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수염이 풍성한 남자였다. 그들은 기세가 한풀 꺾인 듯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비린내가 나는 바람이 불어오더니 토규왕의 거대한 몸집이 날아왔다.

토규왕의 출연에 요족 세 명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규룡 다섯 마리와 싸우는 것도 힘겨운데, 지계 중기의 토규왕이 합세하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릴 것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도망가려 했지만, 규룡들이 계속 뒤를 쫓고 있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토규왕은 눈 깜박할 사이에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한쪽 발로 푸른 눈의 청년을 잡으려 했다.

청년은 깜짝 놀라 푸른빛을 크게 뿜어내며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진짜 모습은 집채만 한 두꺼비 요수였다. 그는 입을 벌려 토규왕을 향해 푸른 빛기둥을 뱉어냈다.

토규왕이 머리를 숙이자 이마에 있는 외뿔이 자색 빛을 크게 뿜어냈고, 날카로운 자색 빛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자색 빛은 청년의 푸른 빛기둥을 단번에 찢어버렸고, 두꺼비 요수의 가슴을 그대로 찔러 구멍을 냈다. 그러자 두꺼비는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수염 남자, 그리고 옆에 있는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은 이 광경을 보고 상당히 놀란 듯했다.

푸른 눈의 청년은 실력이 약한 편이 아니었으며, 본래 모습인 두꺼비 요수 역시 상당히 강한 요수였지만 단번에 죽어버린 것이다.

수염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내고는 손을 흔들어 붉은 칼을 꺼내 들었다. 칼날에서 수십 장이 되는 빛이 뻗어 나와서 주위로 번져나갔다.

큰 키에 마른 몸의 청년도 몸에서 빛을 번쩍였지만, 본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거대한 사자 모양의 법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주위를 향해 일고여덟 개의 하얀 빛기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 있는 토규는 피하지 못하고 빛기둥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그중 한 마리는 앞발이 잘려나갔다. 그 바람에 주위가 어수선해지면서 포위망에 작은 틈이 생겼다.

수염 남자는 손을 흔들어 칼을 거둔 뒤, 적색의 빛줄기가 되어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마르고 키가 큰 요족 청년이 그 뒤를 따라가려는 순간, 귀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두 번째 자색 빛이 반짝이며 다가왔고, 청년은 그 안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수염 남자는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그는 도망가면서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토규왕의 거대한 몸집에서 노란빛이 번지더니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쫓아왔다. 이어 그의 이마에 있는 외뿔에서 다시 한 번 자색 빛이 번졌다.

수염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가 별다른 대응을 하기도 전에 한줄기의 자색 빛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

수염 남자는 얼굴의 핏줄이 전부 터져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푸른 부문을 던졌다. 그러자 부문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의 몸 위로 푸른 막이 생겼다.

순간 번개가 번쩍였다.

빛으로 형성된 막은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표면에서 푸른빛과 자색 빛이 번갈아 번쩍이더니, 자색 빛을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토규왕이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다. 그의 날카로운 앞발이 차가운 빛을 뿜으며 수염 남자를 덥석 잡았다.

카악!

남자가 친 보호막은 균열로 뒤덮였고, 곧 깨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순간 수염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몸에 지니고 있던 수천옥패를 깨뜨렸다.

그러자 물빛이 수염 남자의 몸을 감쌌다. 그 빛은 허공에서 한참 동안 파동을 일으켰고, 곧 수염 남자의 몸은 사라져버렸다. 토규왕의 거대한 앞발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수염 남자의 청산영패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세 명의 지계 초기 요족 중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고, 한 명은 상처를 입은 채 비경에서 도망쳐버렸다.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놀란 기색으로 겁에 질려 도망가려 했다.

바로 그때, 귀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강렬한 푸른빛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회오리바람이 되었고, 토규왕의 뱃속으로 파고들어갔다.

토규왕은 격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거대한 몸집이 허공에서 몸부림쳤고, 피가 밑으로 흘러나와서 하반신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곧이어 푸른 그림자가 땅에서 날아올랐다. 그는 바로 본래 모습을 드러낸 희강이었다.

희강의 주위로 검푸른 빛의 화염이 크게 번졌다. 그것은 다섯 갈래로 갈라진 소용돌이 모양의 화염 기둥이 되어 다섯 마리의 토규를 향해 날아갔다.

불기둥의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다섯 마리의 토규는 피하지 못했다. 몸이 검푸른 화염으로 둘러싸인 그들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고, 화염을 뿌리치려고 발버둥을 쳤다.

이 광경을 본 주위의 다른 요족들의 얼굴에 기쁨의 기색이 어렸다. 그들은 손에 든 영기를 반짝이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공격을 가했다.

그때 희강이 앞발을 미친 듯이 휘갈기며 상처를 입은 토규왕과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토규왕은 연이은 외뿔 공격에 체력이 소진된 데다 몸에 상처를 입는 바람에 희강에게 밀리고 있었다.

“풍화구변(风火九变)!”

희강이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빠르게 퍼덕였다. 그리고 주위에 똑같이 생긴 아홉 개의 푸른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아홉 갈래의 그림자가 외뿔 토규를 공격했다. 그 속도는 마치 번개처럼 빨랐다.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울리더니 외뿔 토규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토규의 거대한 몸집은 곧 여러 개로 잘려서 땅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푸른빛이 연이어 번쩍이더니 아홉 개의 허영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

“대단한 비술이군! 한 번에 전투력을 여덟아홉 배까지 끌어올리다니!”

먼 곳에서 희강의 싸움을 지켜보던 석목은 상당히 놀랐다. 희강이라는 자는 지계 초기의 경지였지만, 실제로는 지계 후기의 무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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