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63화 (363/916)

363화. 위험에 처하다

토규왕이 죽자 다른 토규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희강이 다가가자 더 당황한 듯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미소를 짓더니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며 좀 더 힘을 끌어올려서 남은 토규를 죽이기 시작했다.

“죽어라!”

사람들은 다시 기세가 등등해졌고, 일각 후에는 마지막 한 마리의 토규까지 쓰러졌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체내의 진기가 상당히 소모되어 땅에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 명의 목숨이라는 대가를 치른 것 외에는, 싸움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기력이 많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희강은 토규의 요핵, 그리고 남겨진 영패 속의 요핵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희 도우, 이곳은 아직 비경 밖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지계 요수가 나타난 걸까요? 이상합니다.”

붉은 옷을 입은 요족 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자 모두가 희강을 쳐다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계 중기의 토규왕까지 나오다니!”

“이 돌숲은 위험해보입니다. 이곳을 지나가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갑시다.”

“제 가문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런 토규는 외곽의 십방천지에서는 나타날 수가 없는 요수입니다.”

석목은 말없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석 오라버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석목의 옆에 앉아 있던 자릉이 물었다.

“나도 조금 이상하긴 해.”

석목은 그녀의 말에 대충 답했다.

“그렇다면 석 오라버니도 이곳을 지나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요?”

자릉이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하하, 청란성지에 가야 하는데 계속 위험을 피하기만 하는 건 안 될 일이지.”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석 오라버니 말이 맞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호랑이를 잡을 수 있나요!”

자릉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러분, 이 토규들이 나타난 건 확실히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토규가 이곳에 나타난 건 지하에서 황정광(黄精矿)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황정광은 토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희강은 싸움이 벌어진 곳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황정광? 그렇다면…….”

한 요족 청년이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운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그중 한 마리와 마주친 것이지요.”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신식으로 땅 아래를 탐색해보았다.

하지만 신식은 지하 수백 장 정도까지 내려가서는 이내 멈추어버렸다. 지하에는 수많은 원자(元磁)가 이리저리 엉켜 있어서 신식을 막았다. 희강이 말한 황정광은 볼 수 없었다.

석목은 희강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러분, 우리가 이번 선발에 참가한 것은 다들 각자의 포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위험으로 물러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희강이 고조된 억양으로 말했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 요족 청년들은 그 말을 듣더니 눈에서 다시 빛을 반ᄍᆞᆨ였다.

“방금 전 두 명의 도우가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비경을 탈출했습니다. 이건 저의 실수입니다. 앞으로는 제가 신중하게 행동해서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희강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 사람들은 전부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저 희강이라는 사람은 정말 말을 잘하네요. 마치 죽은 사람도 살릴 것 같아요.”

자릉이 웃으며 낮은 소리 말했다.

“자릉, 앞으로 갈수록 위험해질 거야. 피치 못할 상황이 생기면 꼭 옥패를 부수고 도망가도록 해. 어찌됐든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야.”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석 오라버니, 충고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다닐게요.”

자릉이 침묵하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이동했다.

앞쪽은 여전히 창망한 초원이었다. 다만 돌숲이 점점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틀 지났다.

그동안 만난 요수는 수나 실력 모두 예상되는 범주에 들어가는 듯했다. 간혹 지계의 요수가 출몰하긴 했으나, 기껏해야 한두 마리 정도였다.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실력을 뽐내며 묵묵히 전진했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초원의 지형에 이곳저곳 기복이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치 언덕 같았다.

‘곧 외곽을 벗어나겠군.’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언제쯤 혼자서 움직일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날 채아를 다시 영수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비경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날아다니는 요수들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안전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앞을 바라보던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석 오라버니, 왜 그러시죠?”

자릉이 옆에서 그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쪽에서 모래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곧 회오리바람이 되었는데 직경이 수십 장이나 됐다.

땅에 자라 있는 잡초들은 그 바람에 뿌리째 뽑혔고, 땅도 한 꺼풀 벗겨졌다. 많은 것이 그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가까워지는 거센 바람의 위력을 감지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순간 회오리바람의 기둥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바람은 여러 개로 분열되어 불어왔다.

한 개의 바람기둥이 세 개의 작은 회오리바람으로 분리되더니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쫓아갔다. 그중 한 개는 석목과 자릉, 몇 명의 요족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바람기둥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단번에 몇 명을 따라잡았다.

석목은 몸을 멈칫하더니 운철흑도를 손에 쥐었다. 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땡!

금속이 움직이는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운철흑도에서 십 장이 넘는 검은 빛이 번지더니 얼음장 같이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회오리바람은 소리를 내며 다가왔고, 마치 큰 입을 벌려서 석목을 삼켜버리려는 듯했다.

석목이 흑도를 휘두르자 한줄기의 커다란 흙빛이 나타나 바람기둥을 잘라냈다.

흙빛이 반짝이면서 바람기둥이 순식간에 두 개로 갈라지더니 거센 바람을 만들며 흩어졌다.

챙!

바람기둥의 중심에서 푸른 그림자가 날아올라서 검은 칼날과 부딪혔다.

석목은 큰 힘에 밀려 뒤로 몇 발짝 물러나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그 푸른 그림자는 저 멀리 십 장 정도까지 날아가더니 맘췄다. 자세히 보니 집채만 한 푸른 괴수가 서 있었다.

사자 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기도 한 이 요수의 머리에서는 한 뭉텅이의 털이 흩날리고 있었다. 몸뚱이는 유선형이었는데 꼬리가 유난히 길어서 상반신 보다 두 배 정도는 되어보였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푸른 괴수는 그가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흑도와 정면으로 부딪혔는데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풍령후(风灵犼)!”

얼굴이 붉은 요족 남자가 놀라며 소리쳤다.

그 말에 석목도 깜짝 놀랐다. 그는 동성성(东圣星)에 도착한 후 전집(全集)을 여럿 샀는데, 이 별에 있는 대표적인 요수들을 소개해놓은 대목이 있었다. 거기에는 풍령후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풍령후는 바람과 흙의 두 가지 속성을 함께 가진 기이한 괴수였다. 성질이 난폭하고 수시로 거센 바람을 일으켜서 사냥을 하는 짐승으로, 동급의 무인들도 마주칠 경우 무서워서 멀리 피한다고 했다.

석목은 생각에 잠겼지만 두려운 기색은 내비치지 않으며, 흑도를 몸 앞으로 들었다.

동시에 다른 두 개의 바람기둥이 잘려나갔고, 그 안에서도 숨어 있던 두 마리의 풍령후가 나왔다.

세 마리의 풍령후들 중 일전에 만났던 토규왕보다 약한 요수는 없었다. 그런데 세 마리가 함께 나타나버렸으니, 석목 일행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고 희강마저 심각해보였다. 하지만 석목과 자릉은 오히려 그들에 비해 담담한 듯했다.

쿵!

앞쪽에 있던 풍령후가 눈에서 무서운 빛을 번쩍이며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몸에는 푸른빛이 한층 드리워져 있었다.

석목이 체내의 진기를 가동하자 운철흑도의 칼날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바로 그때, 멀리서부터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한줄기의 붉은 빛이 멀리서부터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빛은 긴 꼬리를 흔들며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와서 무리의 머리 위쪽 상공에 도착했다.

갑자기 나타난 붉은 빛은 그 기세가 엄청났다. 석목 일행과 세 마리의 풍령후 모두 깜짝 놀랐다.

“하앗!”

가벼운 기합이 붉은 빛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 빛 속에 있는 것은 한 바퀴를 돌더니 아래를 향해 내려왔다.

빛을 거두자 키가 한 장쯤 되고 대추색 피부를 가진 거대한 체구가 나타났다.

“저 사람은?”

석목이 눈을 반짝였다. 이전에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에 무리를 짓지 않고 이곳을 홀로 떠났던, 지계 경지의 끝에 도달한 남자였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그를 본 적이 있는 듯했다. 다들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을 느끼며 조금 긴장을 푸는 듯했다.

대추색의 남자는 사람들을 마치 하찮은 무리를 보는 듯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다시 시선을 세 마리의 풍령후 쪽으로 돌렸다. 그의 눈에서는 빛이 반짝였다.

“하하! 지계 후기의 풍령후 세 마리라니. 아주 좋아! 그렇다면 나 적예자가 해치우겠다!”

남자가 크게 웃는 순간 그의 몸에서 붉은 빛이 강렬하게 번졌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십 장 정도 되어 보이고 몸뚱이에 적금빛의 화염을 두르고 있는 흉악한 짐승 법상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 법상은 몸 전체가 붉은 비늘로 덮여 있는 거대한 사자로 보였는데, 기세가 매우 놀라웠다.

훅!

세 마리의 풍령후는 원래 성향이 난폭한 데다 적예자의 힘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듯,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은 곧바로 석목 무리는 버려둔 채 허공 위로 날아올라서 대추색의 남자를 덮쳤다.

풍령후들은 바람을 잘 일으키기 때문에 주위에는 거센 바람이 불어댔다. 그들은 세 개의 거대한 푸른 회오리바람으로 변해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적예자는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 그의 등 뒤에서 타오르는 사자 법상이 빛을 강하게 뿜어내더니 다시 빠르게 축소되어 그의 체내로 들어갔다.

쿵!

적예자의 몸에서 적금색의 빛이 타올랐고, 마치 그의 몸 전체가 적금빛의 불이 된 것 같았다.

화염은 온도가 빠르게 높아져서 주위의 공기를 일렁거리게 했다.

쓱!

적예자의 몸이 움직이더니 푸른 회오리바람으로 변신한 왼쪽의 풍령후를 빠르게 덮쳤다.

끼익!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푸른 칼바람이 회오리바람 속에서 빼곡하게 날아와서 푸른 홍수를 이루어 적예자를 공격했다.

화염으로 뒤덮인 적예자는 강한 공격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 뿐더러, 더 빠른 속도로 한줄기의 금색 별똥별로 변해서 받아쳤다.

희강 등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서 크게 숨만 들이쉬고 있었다. 석목의 눈가도 떨리고 있었다.

풍령후가 부리는 칼바람 공격의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석목이 똑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면 최대한 피하려 했을 것이다. 정면으로 부딪쳤다가는 큰코다칠 게 뻔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적예자의 몸에서 화염이 크게 번졌다. 그는 막무가내로 칼바람들이 모여 형성된 푸른 홍수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기세가 등등한 칼바람들이 적예자의 몸에 닿는 순간 그대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응?”

석목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공에 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방금 똑똑히 보았다. 칼바람들은 적예자의 몸에 닿는 순간 전부 적금 빛의 화염에 의해 깨끗이 삼켜졌고, 적예자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쿵!

적예자는 한줄기의 적색 빛으로 변하여 풍령후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어서 그는 다른 한쪽으로 빠져나오면서 풍령후의 몸에 큰 구멍을 만들어버렸다. 불에 타버린 풍령후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어 불빛이 반짝이더니 적예자의 몸이 두 번째 풍령후에게 향했고, 마찬가지로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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