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땅을 뒤흔든 한방
귀가 뾰족한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푸른색의 긴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십 장 정도 길이의 칼이 날아가더니 허공에 있는 용머리 청년을 향했다.
훅!
용머리에 박쥐의 몸을 가진 청년이 두 날개를 펼치더니, 푸른 화염의 소용돌이를 뿜어내어 귀가 뾰족한 이족 여자를 그 안에 가두었다. 뜨거운 열기가 주위의 공기를 달구는 바람에 사람들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까악!”
그 청년은 까마귀 울음 같은 소리를 내더니 다시 날개를 거두었다. 그러자 아래쪽의 푸른 화염은 다시 밀물처럼 소용돌이치며 두 날개 속으로 들어갔다. 귀가 뾰족한 이족 여자는 이미 먼지가 되어버렸다.
희강은 한 손으로 여자가 가지고 있던 청산령과 저장반지를 서서히 위로 끌어올려서 쥐었다. 그의 등 뒤에서 푸른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어느새 용머리에 박쥐 몸의 청년들이 다시 뒤에 서 있었다.
희강 일행이 여자를 공격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까지는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한 명의 지계 초기 이족이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저들은 전부 지계 중기의 경지로로군.”
석목의 동공이 살짝 축소했다. 자릉은 신기한 듯 새롭게 나타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윽, 그만둬! 청산령을 내놓을 테니.”
호랑이 머리를 한 요족이 희강과 눈과 마주치자 다급하게 청산령을 내놓았다.
“눈치가 빠르군요. 그럼 어서 사라지도록 하십시오.”
희강은 그의 영패와 저장반지를 거두면서 말했다.
호랑이 머리의 요족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수천옥패를 부수더니, 곧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독수리 머리를 한 남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분노와 두려움의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주위는 막혀 있었고, 강한 적이 노려보고 있으니 방법이 없었다. 다들 서둘러 옥패를 부수고는 사라졌다.
청산령이 하나둘씩 그 자리에 남겨졌고, 희강은 그것을 전부 챙겼다.
어느새 그곳에는 석목과 자릉만 남겨졌다.
“하하, 당신들은 영패를 내놓지 않고 끝까지 싸울 작정인가요? 그렇다면 내 특별히 허락해드리지요!”
희강은 석목과 자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계속 침묵하고 있던 석목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계 중기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의 얼굴에는 전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석목은 청란성지에 꼭 입문해야 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몇 마디 지껄였다고 해서 쉽사리 시험을 포기하고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천위의 강자도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다. 지계 중기의 이족 정도야 보잘것없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석목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하자, 희강의 얼굴에 처음으로 심각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직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니 범상한 인물은 아닌 것 같군요. 방금 전의 쓸모없는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나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죠.”
말을 마친 희강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죽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서 용머리와 박쥐 몸을 가진 세 요족이 날개를 퍼덕이며 푸른 화염을 내뿜었다.
석목도 흑운철도를 손에 쥐었다. 그의 주위로 붉은 빛이 눈부시게 비추었다.
훅!
그의 등 뒤로 붉은 날개가 펼쳐졌고, 석목은 날개를 한 번 펄럭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진기를 두 팔에 불어넣고는 앞쪽을 향해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칼의 그림자가 층층이 겹치더니 산처럼 앞을 향해 날아갔다.
우르릉!
운철흑도의 그림자와 푸른 화염이 겹치며 폭발음을 냈다.
푸른 화염은 허공에서 석목의 공격을 받고 아래로 내려오지 못한 채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석목의 공법으로도 푸른 화염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양쪽은 그렇게 한참이나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희강은 석목이 혼자의 힘으로 세 명의 지계 중기 요족을 상대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릉에게 향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석목을 바라보더니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몸이 조용히 뛰어오르더니 용의 머리와 박쥐의 몸을 가진 원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석목의 머리 위를 넘어 그대로 자릉을 향해 날아갔다.
“거기 서!”
석목은 그 장면을 보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왼손을 내밀었다. 그가 수련을 통해 단련해놓은 몸으로는 가볍게 한 손을 내밀어도 허공을 파괴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웡!
소리를 울리며 날아간 주먹이 번쩍이더니 다시 눈부신 흰 빛으로 변했다.
자릉 쪽으로 날아가던 희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러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 힘은 허공에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하얀 흔적을 남긴 뒤에 땅 속으로 들어갔다.
쿵!
순간 마치 하늘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평평하던 지면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 가운데는 순간 반 묘 정도 크기의 손바닥 자국이 거무칙칙하게 찍혀 있었다. 손바닥의 윤곽은 마치 칼로 조각한 것처럼 선명했고, 얼마나 깊이 뚫렸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빠져나간 희강은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그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얼굴은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져서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
“내가 당신을 너무 얕봤군요. 그렇다면 진짜 실력을 보여주죠.”
희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화난 얼굴로 바뀌었다.
그가 몸을 흔들더니 용의 머리와 박쥐의 몸을 가진 용수거복(龙首巨蝠)으로 변신해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주먹을 날리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의 두 팔은 힘줄이 가득했고, 화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손에서는 운철흑도가 풍차가 돌듯 빠르게 회전했다.
붉은 화염의 물결이 주위로 퍼졌고, 그 물결에 의해 흉흉한 기세의 초록색 화염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희강의 일당인 세 청년은 그 광경을 보더니 속히 날개를 거두었고, 붉은 화염이 밀려오는 것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중 둘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향했고, 이제 막 도착한 희강과 함께 넷이서 석목의 주위를 포위했다. 그들의 몸뚱이에서 초록색 화염이 크게 부풀었다.
석목은 자신을 둘러싼 희강 무리가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자, 다시 두 손으로 운철흑도를 꽉 쥐었다. 그의 눈에서는 금빛이 이글거렸다.
순간 네 용수거복이 동시에 입을 크게 벌렸고, 무형의 파동이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네 개의 파동이 순식간에 허공에서 뭉치더니 투명한 물결 고리로 변하여 석목을 향해 밀려왔다.
석목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등 뒤의 붉은 날개를 거두고 허공에서 바퀴가 돌듯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의 몸 전체가 붉은 회오리바람이 되었고, 투명한 물결 고리는 그 회오리바람에 닿자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희강이 눈에서 교활한 빛을 번뜩이더니 말했다.
“포진하라! 천나지염(天罗地焰)!”
그러자 용수거복들은 몸에서 초록색 화염을 몇 배나 부풀렸다. 그것은 나선형 화염 기둥으로 분리되어 석목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석목은 여전히 붉은 회오리바람 안에 있었고, 주위의 온도가 몇 배나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 하늘을 덮을 듯한 화염의 기둥들이 주위로 얼기설기 엉켜서 푸른 공처럼 석목을 꽉 붙잡았다.
희강 무리는 계속해서 화염의 기둥을 뿜으면서 점점 석목을 향해 좁혀 들어왔고, 그대로 그를 태워버릴 작정이었다. 이 모든 일이 생긴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때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오색 비단이 날아와서 펼쳐지더니 몇 장 정도 되는 구름으로 변하였다. 그 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바로 자릉이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두 손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번개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지자 구름 속의 번개는 석목을 향해 조여 오는 초록색 화염 쪽을 향하며 눈부시고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화염 기둥이 조여 오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이런! 너희는 좀 더 버티고 있어!”
희강은 이를 보자 크게 화를 내더니, 두 날개를 퍼덕이며 밑에 있던 자릉을 향해 날아갔다.
허공에서 내려오는 화염 기둥을 본 자릉은 크게 놀라 법결을 중단하고 한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에서 단도가 날아갔다. 단도는 강한 빛을 내뿜더니 외뿔의 자색 교룡으로 변해 희강을 향해 날아갔다.
쾅!
자색 교룡과 초록 기둥이 부딪쳤고, 두 색이 섞이더니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희강은 자릉의 머리 위에서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
“풍화구변(风火九变)!”
희강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더니 날개를 빠르게 퍼덕였다. 그러자 그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그와 똑같이 생긴 초록색 그림자 나타났고, 그들은 동시에 자릉을 공격하려 했다.
살기를 느낀 자릉은 겁을 먹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희강은 자릉의 모습을 보자 크게 웃으며 살기를 더욱 강하게 내뿜었다. 그는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희강은 이 꼬마의 실력을 이미 완벽히 파악한 상태였고, 그는 자릉이 경계 공법만 있을 뿐 실전 경험은 전혀 없는 온실 속의 화초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그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자릉은 두려움에 떨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려 앉았다.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본 희강은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이어 아홉 개의 그림자가 날개를 퍼덕이며 자릉을 향해 날아갔다.
“흥!”
그 순간,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소리가 작은 몸집에서 흘러나왔다.
웅크리고 있던 자릉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흑백이 뚜렷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호박 같은 자색으로 변해 있었다. 몸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동그란 자색 달의 허영이 자릉의 뒤통수에서 나타났고, 그것은 격렬한 공간 파동과 함께 빙글빙글 돌더니 거대한 자색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하늘과 땅을 삼킬 듯한 기운이 그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어서 몸집이 십 장이 넘는 사람 모양의 거대한 짐승이 나타났다.
짐승의 머리와 다리는 염소처럼 생겼고 등에는 독수리 날개가 한 쌍 자라 있었고, 손에는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다.
자릉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파불(巴弗), 저들을 죽여 버려!”
희강은 깜짝 놀랐다. 초록색 화염이 아홉 개의 그림자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염소처럼 생긴 거대한 짐승은 머리를 들더니, 하늘에 자욱한 초록화염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그것들을 전부 입으로 흡수해버렸다.
그때 큰 소리가 울리면서 수백 장 내의 천지 기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석목을 감싸고 있던 초록색 화염이 한참 돌더니 터져버린 것이었다.
이어서 빨갛고 하얀 화염이 거센 바람과 함께 주변으로 흩어졌고, 세 용수거복이 멀리까지 날아갔다.
그 속에서 튀어나온 석목의 등 뒤에 펼쳐진 날개는 이미 혈맥처럼 하얀 빛을 뿜고 있었다.
석목은 자릉이 걱정되어 왼손에 품고 있던 구전현공의 힘을 마지못해 조금 빌렸고, 그제야 희강의 천나지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이미 빛나간 뒤였다. 놀라운 기색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염소 머리를 한 거대한 짐승이 팔을 휘둘렀고, 그의 손에 들린 낫이 희강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퍽!
마치 하늘을 찢을 듯한 소리였다.
이십 장 크기의 거대한 반월형 빛이 낫에서 뿜어져 나왔다. 자릉은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초록 그림자들을 공격했다.
“안 돼!”
허공에서 희강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