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더 깊은 비경 속으로
거대한 칼날이 허공에서 번쩍이더니 아홉 마리의 용수거복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렸고, 빛이 사라지자 잘려진 시체와 핏덩어리들이 땅 위로 떨어졌다.
그 빛은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그들의 길을 가로막고 있던 큰 막이 흩어져 사라졌다.
우르릉!
앞쪽의 작은 산봉우리가 그 힘에 의해 반 토막으로 잘렸고, 부셔진 돌들이 여기저기 튕겨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승부는 이미 결판이 난 상황이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도 한참 동안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월계술사! 천위 영총!”
석목은 자릉이 무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계 경지까지 수련한 술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천위에 달한 영총까지 불러내는, 그야말로 혼사(魂师)였다.
용수거복으로 변신한 희강의 일당은 이 광경을 보더니 몸을 사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대로 도망가려 했다.
“이제야 도망치다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 차갑게 웃었고, 손에 쥐여진 운철흑도를 희미하게 만들자 운철흑도의 표면에서 투명하고 깊은 흙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마치 사람들의 영혼을 전부 그 속으로 집어넣을 것처럼 보였다.
그가 칼 속의 사나운 영력(靈力)을 자극하자 등 뒤의 날개가 하얀 화염을 크게 내뿜었고, 석목이 한쪽 발로 허공을 밟자 그의 몸 전체가 사라졌다.
쓱!
어느새 운철흑도가 용수거복 한 마리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운철흑도는 용수거복의 딱딱한 외피를 두부를 자르듯 가볍게 베어냈다. 이어 그이 몸이 허공에서 곡선을 그리더니, 운철흑도가 가까이에 있는 다른 용수거복의 몸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두 용수거복이 허공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다른 한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남은 마지막 용수거복이 염소 머리를 가진 짐승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는 얼마 도망가지 못하고 낫에 의해 몇 개의 덩어리로 갈라지며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석목은 몸은 번쩍이며 자릉과 십 장 정도 거리에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그는 등 뒤의 날개를 거두고 복잡한 기색으로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자릉의 눈은 여전히 기이한 자색을 뿜고 있었고, 담담하게 석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쾅!
염소 머리의 짐승이 땅에 내려섰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낫으로 석목을 가리키며 자릉에게 물었다.
“이것도…… 죽여 버릴까?”
그 말을 듣자 석목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됐어. 이제 그만 돌아가!”
자릉은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복잡한 법결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염소 머리의 짐승 뒤로 거대한 자색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그의 몸을 빨아들였다.
석목은 자릉의 작은 몸집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넌 자릉이 아니지?”
그러자 자릉은 몸을 돌려 석목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자릉은 저의 동생이고 저는 자하(紫荷)라고 합니다. 석 도우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동생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우리 이 청산령들을 똑같이 나눠가지는 건 어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았지만, 말투는 아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배려해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후 석목은 마지막 청산령을 자신의 청산령에 넣었다. 푸른빛이 감돌면서 요핵이 석목의 영패 속으로 들어갔다.
“자하 도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석목은 청산령을 거둔 후 자릉에게 물었다.
그녀는 아마도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자릉에 대해서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오늘 석 도우가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청란성지의 제자가 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선발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강자와 천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저는 예상했던 것보다 먼저 각성해버렸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해야겠습니다. 여기서 이만 갈라서도록 하지요.”
자릉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리고 석목이 별다른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오색 비단을 노을빛으로 만들어서 비경의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자릉의 작은 몸이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머쓱한 듯 코를 한 번 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릉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진즉에 깨닫긴 했으나, 진짜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천위에 달하는 영총만으로도 십방천지의 절반 정도는 먹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석목도 먼저 이곳을 뜨기로 했다.
그는 앞에 있는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숨기 좋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한 손에 중급 영석을 들고 진기를 회복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청산령을 꺼내들고 탐지하기 시작했다. 청산령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신식이 침투하자 청산령의 표면에서 고리 형태 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몇 번의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다가 사라졌다.
곧이어 눈을 뜬 석목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그가 가진 갖고 있는 요핵의 총 점수는 삼만 육천 삼백 점이었다. 이는 참가자 삼만 명 중에서 삼천 이십일 번의 순위로, 고작 상위 십 분의 일에 속하는 정도였다. 선발 기준인 백팔 명 안에 들어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한편 며칠 사이에 참가자 중 이미 이만 삼천 명이 죽거나 중도 포기를 해서 시험에서 탈락한 상태였다. 석목은 시험의 잔혹함에 대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를 확인하고 나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이십일 동안 높은 경지의 요수들을 죽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번 시험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진기를 다 흡수한 영석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방향을 확인한 후 비경 안쪽을 향해 날아갔다.
* * *
반나절 후, 석목은 어디론가 날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귓가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두, 우리 이제 곧 잃어버린 초원을 벗어날 거야!”
이어서 석목의 눈앞에 작은 빛이 크게 번지더니 광활한 초원의 끝이 보였다. 채아가 시각을 공유해 보내온 장면이었다.
그 앞에는 청록색의 높은 벽이 천 리에 걸쳐 뻗어 있었다. 이 숲과는 아직 일이백 리 정도 떨어져 있는 듯했다.
이 숲은 외곽의 십방천지 구역을 벗어난, 비경의 중심과 더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의 요수들은 더욱 흉악했기에, 이곳까지 들어온 사람들은 외곽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명문가나 규모가 큰 종파 출신의 사람들이라, 이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었다.
다만 석목도 그곳이 ‘망고삼림(*莽古森林: 우거진 옛 숲)’이라 불리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는 채아가 알려준 방향에 따라 망고삼림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두 장 높이의 갈대숲을 지날 때, 어떤 그림자가 소리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은 발에서 빛을 뿜으며 석목을 공격했다.
그것은 외형은 쥐처럼 생겼는데 직립보행을 하는 괴상한 요수였다.
한 장 정도 되어 보이는 몸에는 딱딱한 갈색 비늘이 자라나 있었다. 전부 펼쳐진 앞발의 발가락은 단도처럼 예리해보였다.
“토원손(土元狲)!”
토원손은 석목이 반나절 동안에 마주친 일곱 번째 요수였는데, 지계 경지에 올라 있었다. 요핵이 굴러 들어온 셈이다.
석목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숙여서 땅 위를 한 바퀴 굴렀다.
쓱!
다섯 줄기의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면서 그의 등 뒤에 있는 갈대들이 잘려나갔다.
석목은 몸을 일으켜 운철흑도를 손에 쥐었고, 그가 손목을 꺾자 한줄기의 흙빛이 칼날에서 뿜어져 나왔다.
챙!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토원손은 강한 힘에 의해 멀리 십여 장을 날아갔다.
“웅……!”
토원손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에는 하얀 칼자국이 생겨 있었다. 큰 상처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적지 않게 불편해보였다.
훅!
그의 몸에서 황토색 빛이 번지더니 두 눈이 붉은 핏빛으로 바뀌었다.
“칵칵!”
울음소리와 함께 요수의 몸집이 몇 배나 늘어났고, 두 앞발에는 마름모꼴 비늘이 빳빳하게 돋아났다. 멀리서 보면 굵은 늑대 이빨처럼 보였다.
토원손은 두 앞발을 휘두르며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실눈을 뜨고 몸의 기운을 크게 부풀렸다. 붉은 원숭이 법상이 그의 등에 나타났다. 법상은 두 갈래의 화염 주먹으로 토원손의 앞발을 내리쳤다.
쿵!
굉음과 함께 토원손의 두 앞발 뼈가 망치에 맞은 듯 산산이 부서졌고, 비늘이 붙어 있던 살점들이 허공에 휘날렸다.
석목은 법상을 거두고 다시 칼을 들었다. 그리고 죽어가는 토원손을 향해 다가가서 단칼에 숨을 끊었다.
* * *
이튿날 초저녁,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석목은 쉴 새 없이 초원을 가로질렀고, 그는 하루 종일 앞을 향해 날아가며 계속 요수를 사냥했다.
비록 도중에 만난 요수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요수의 경지가 점점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석목이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도 처음보다는 훨씬 느려졌다.
“석두, 앞으로 십 리만 더 가면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조금 이상해. 도착하면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런데 뭐가 이상한데?”
석목이 물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풀도 자라지 않고 텅텅 빈 곳인데, 흙덩이만 조금 보일 뿐이야. 요수도 없는데 주위에 요수의 뼈는 적지 않게 있어. 그곳을 지나면 ‘망고삼림’이 나와.”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너는 숲에서 나를 기다려. 곧 따라갈게.”
잠시 후, 석목은 그 공터에 도착했다.
채아가 말한 것처럼 그곳의 땅 위에는 풀도 자라 있지 않았고, 여덟아홉 개의 타원형 흙덩어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위에는 높은 경지의 요수 뼈가 열 몇 구 놓여 있는 모습이 마치 무덤 같았다.
요수의 뼈 중에는 말라비틀어진 것도 있었고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붉게 물들어 있는 것도 있었는데, 무언가에 뜯어 먹혔는지 살점이 깨끗하게 발라져 있었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흑도를 쥐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 * *
잠시 후, 하늘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이삼십 장은 되어 보이는 붉은 구름이 몰려왔다. 이어 구름 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붉은 빛이 계속 번쩍였다.
그 아래의 땅에는 어느새 온몸이 검푸른 색을 띤 개미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가운데만 여전히 비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열 몇 마리의 개미 시체가 쌓여 있었다.
석목은 몸 주위에서 붉은 화염을 뿜어내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가 공터를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주위의 흙덩어리들이 꿈틀거렸다. 그 안에서 한 치 정도 크기의 푸른 개미 요수가 수천 마리나 나와서 그를 촘촘히 둘러쌌다.
이 개미 요수는 사지가 두텁고, 두 줄의 굵고 긴 촉각을 유연한 채찍처럼 이마 앞으로 떨어뜨리고 있었으며, 턱은 마치 톱 같았다.
개미 요수들은 등불 같은 큰 눈으로 석목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물어뜯으려는 기세였으나, 석목 주위에서 타오르는 화염이 두려운 듯했다.
“물러나라!”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의 머리 뒤에서 떠오른 은색의 조각달 허영이 빛을 발하며 허공의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