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뱀 같은 머리카락
사마귀의 눈에서 득의양양한 기색이 번졌다. 회색 그림자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붉은 원숭이 법상의 앞으로 다가가서 낫 모양의 앞발을 다시 휘둘렀다.
바로 그때, 붉은 원숭이 법상이 입을 크게 벌렸고, 그 속에서 화염이 발사되면서 주위에 숨이 막힐 듯한 뜨거움이 번졌다.
혼원진화(混元真火)였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마귀는 당황했다. 둘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사마귀는 피할 새도 없이 공격을 당했고, 멀리 날아가서 나무 몇 그루에 연이어 부딪힌 뒤 바닥에 떨어졌다.
사마귀가 공격을 받은 부위는 까맣게 타버렸고, 두 앞발도 혼원진화에 의해 먼지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사마귀는 눈에서 흉흉한 기색을 뿜어내더니 몸을 곧게 펴고, 다시 공격을 가하려 했다.
사마귀는 심한 화상을 입긴 했지만 내장은 멀쩡했고, 두 다리만 타서 없어진 상태였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회색 사마귀가 뛰어오르기도 전에 등에 불의 날개를 펼친 금색 그림자가 공격을 가했다.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의 몸에는 금색 비늘이 덮여 있었고,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은 지계 후기에 도달한 듯했다. 석목의 눈에 흐르는 금빛이 차갑게 변했다.
“죽어라!”
허공에 떠 있던 석목이 운철흑도의 빛을 날렸다. 한 줄의 칼날이 화상을 입은 회색 사마귀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기가 흔들렸고, 그 기운은 방금 전보다 두 배 이상은 더 강한 것 같았다.
사마귀는 당황해서 거대한 낫 모양의 앞발을 들어 몸 앞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공격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입을 벌려 하얀 거미줄을 뱉어내서 석목을 덮어버렸다.
동시에 다른 낫 모양의 앞발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석목의 머리를 그대로 잘라내려 했다.
흥!
순간 석목은 왼손에 낀 붉은 가죽 장갑을 벗어던졌다. 그의 거무칙칙한 손이 드러나서 사마귀의 앞발을 막아냈다.
쿵!
그의 손바닥에서 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왼쪽 팔 전체로 번졌고, 그 바람에 그의 왼쪽 소맷자락이 순식간에 타버렸다. 화염이 먹물처럼 까만 팔 주위를 하얗게 감쌌다.
하얀 거미줄이 그의 팔에 닿았지만, 곧 타버려서 구멍이 났다.
석목은 빠르게 몸을 돌려서 다른 한쪽의 낫 모양 앞발을 피했고, 이어 석목의 몸이 번쩍이더니 다시 회색 사마귀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하!”
석목이 기합과 함께 하얀 화염이 번진 왼쪽 주먹으로 사마귀의 배를 찔렀다.
푹!
팔은 가볍게 사마귀의 몸을 뚫고 들어갔고, 사마귀의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곧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어서 그의 거대한 몸이 터지면서 찢어진 시체의 조각과 피의 비가 흩날렸다.
석목은 몸을 번쩍이더니 왼쪽 팔을 거두었고,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번지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핏덩어리를 막아냈다.
석목은 주위에 떨어진 사마귀의 잔해를 보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이 지계 경지의 회색 사마귀가 강한 존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실력을 발휘한 석목의 상대는 아니었다.
다만 왼손의 하얀 화염을 사용한 탓인지 체내의 진기가 적지 않게 소모돼 있었다.
몇 년간 성역에서 길을 찾아 헤매느라 수련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지계 중기와 간발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실력이었다. 마땅히 수련할 곳이 없어서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 체내에 진기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그에 걸맞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석목은 그 자리에서 잠시 서서 신식으로 주변을 훑었다. 다른 요수나 시험 참가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사마귀의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석목은 단칼에 사마귀의 머리를 잘라냈고, 한참을 뒤져서 주먹만 한 요핵을 찾아냈다. 요핵에서는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지계의 경지 끝에 다다른 요수의 요핵은 확실히 다르구나. 내재된 영기가 강력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한 채아가 다시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요핵을 청산령에 담았다.
그리고 회색 사마귀의 낫 모양 앞발도 챙겼다. 그것은 상당히 단단해서 영기를 만드는 재료로 좋을 것 같았다.
이어서 석목은 요족 청년들이 떨어뜨린 청산령을 찾아서 자신의 영패에 담았다.
석목은 푸른 비늘 청년의 시체를 한참 뒤적거리더니 일부 저장 법기를 꺼내서 챙겼다.
두 사람이 모은 요핵과 지계의 사마귀 요핵을 갖게 되자 석목의 점수는 꽤 많이 올라갔고, 드디어 천 명 안쪽에 들어서게 되었다.
“석두, 힘들게 요수를 죽일 필요 없이 사람을 죽이고 요핵을 빼앗는 것이 훨씬 빠르겠는데? 내가 길을 살필 테니 너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더 빨리 점수를 올리는 길인 것 같아. 네 실력이라면 아마도 충분한 점수를 모을 수 있을 거야!”
채아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나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채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잊지 마. 이 숲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 미양성역의 곳곳에서 온 천재야. 그 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어.”
석목은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비경의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반나절 정도 달린 그는 숲의 깊은 곳에 위치한 골짜기 근처에 도착했다.
숲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강한 요수들이 나타났다. 그는 반나절 동안 적지 않은 요수와 싸웠는데, 실력이 지계 후기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다행히 그의 실력과 채아의 뛰어난 시력 덕분에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오는 내내 싸움을 거듭한 석목은 피로를 느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골짜기는 요수의 흔적이 없이 조용한 게 휴식하기 좋을 듯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자리에 앉지 않고 골짜기의 깊은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몇 리 정도 들어간 석목은 큰 돌 뒤에 숨었고, 곧 채아도 그의 어깨 위에 앉았다. 둘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 장 정도 되는 거리에서 폭발음이 들려왔고, 몇몇 사람이 격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다섯 명이었고, 회색 머리에 푸른 눈,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푸른빛이 크게 번졌는데, 하얀 옷을 입을 여자를 가운데에 둔 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찬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주위의 땅에는 하얀 서리가 깔려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지계 중기의 경지인 듯했고, 몸에서 요기를 풍기고 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다른 이족인 것 같았다.
석목은 그들을 몇 번 번갈아보다가 하얀 옷을 입을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출발점에서 보았던, 홀로 떠난 지계 초기의 푸른 머리 여자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를 꺼렸기에, 석목은 그 여자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섯 명의 지계 중기 강자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실력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듯 보였다.
석목은 그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석두, 저 여자 엄청 세다!”
채아도 전음으로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끄덕였지만, 눈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번쩍이는 순간 손에 푸른 검이 나타났다. 그녀는 투명하고 검푸른 빛의 칼날을 휘두르며 정교한 검법을 선보였고, 푸른 칼로 자신의 주변에 원을 그리며 다섯 사람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저 여자의 실력은 지계 초기에 불과해. 하지만 손에 든 검이 큰 역할을 하고 있어. 아마도 엄청난 보물일 거야.”
석목이 말했다.
“그렇구나!”
채아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들의 싸움은 점차 흐름이 바뀌는 듯했다.
푸른 머리를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손에 쥐여진 검이 강한 빛을 발했다. 검은 다섯 갈래의 길고 굵은 초록빛을 내뿜으며 적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남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들은 몸에서 빛을 내며 커다란 얼음 방패를 만들어냈다.
쾅!
칼날이 얼음 방패에 부딪히면서 빛이 폭발했고, 그 사이로 푸른 불빛이 나타나서 칙칙거리는 소리를 냈다.
“을목신뢰(乙木神雷)!”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치직!
얼음 방패는 균열이 생기더니 곧바로 부서져버렸다.
여자의 상대편은 크게 당황했다. 다행히 방패가 공격을 막아내 그들에게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무서운 칼날에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선배님, 저 여자의 칼이 너무 흉악합니다. 이렇게 있다가는 시간만 낭비할 것이 뻔하니 흩어지는 게 어떨까요?”
푸른 옷을 입은 한 청년이 키가 큰 중년 남자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중년의 남자는 달갑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러자 푸른 머리 여자가 몸에서 빛을 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강수수(江水水)에게 이런 무례를 범하고 도망가려고? 쉽지 않을 거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여자의 팔과 이마에서 푸른 비늘이 촘촘하게 자라났고, 눈도 연두색으로 변했다. 두 눈 사이에서 한줄기의 가느다란 새끼 뱀이 나타나더니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이어서 강수수라는 여자의 뒤로 눈부신 푸른빛이 크게 번지더니, 마치 살아서 숨 쉬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이 여자는 백타성(白驼星) 강(江)가의 후손이야!”
다섯 명 중 가장 앞에 있던 중년 남자가 놀라서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수수의 푸른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났다. 이어 사이사이로 푸른빛을 뿜어내는 머리카락은 다섯 명을 향해 뻗어갔고, 점점 굵고 길게 자라났다.
머리카락의 앞쪽 끝이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푸른 얼굴과 뾰족한 이를 드러낸 구렁이의 머리로 변했고, 그 표면에 영문이 나타났다.
강수수의 머리카락은 전부 푸른 구렁이로 변했다.
순간 하늘을 나는 수많은 구렁이가 전부 입을 크게 벌리고, 흉악한 표정으로 다섯 사람을 공격했다.
구렁이들은 전부 선천 후기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중 몇 마리는 곧 지계 경지에 도달할 듯했다.
다섯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물론 구렁이의 수가 적었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수천 마리가 꿀렁이며 덤벼들자 싸울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
“큰일이다. 도망쳐라!”
중년 남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몸에 푸른 찬 기운을 두르고 도망가려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놀란 표정으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찬 기운을 휘감으며 구렁이들이 공격하기 전에 도망치려 했다.
“이미 늦었어!”
강수수가 차갑게 웃자 그녀의 두 눈에서 초록빛이 번졌다.
그러자 푸른 구렁이들이 갑자기 빨라지면서 거센 파도를 형성하여 다섯 명을 향해 밀려갔다. 그리고 눈 깜박할 사이에 그들을 따라잡았다.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구렁이들은 그들을 삼켜버리려는 듯 꿈틀대고 있었다.
다섯 사람은 다급하게 푸른빛을 뿜어내며 차가운 기운을 더 키웠고, 꽤 많은 구렁이가 그 빛에 의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았기에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구렁이들은 다시 파도를 일으켜서 다섯 명을 그대로 층층이 휘감아버렸다.
“아!”
겨우 들릴 정도로 희미한 비명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오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큰 돌 뒤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놀라서 찬바람만 들이켰다.
강수수의 눈이 반짝이더니 안색이 더 심각해졌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수많은 구렁이가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작아졌고, 다시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강수수의 이마에 붙어 있던 푸른 비늘과 청록색 두 눈도 사라졌고, 그녀의 안색이 곧 창백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그곳에는 다섯 개의 청산령만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