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서로 경계하다
“석두, 저 여자 정말 대단하다. 저 비술 하나으로도 천군만마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잖아.”
채아가 전음으로 말했다.
“그래. 매우 강한 상대인 건 분명해. 하지만 저런 비술은 너무 많은 원기를 소진해버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해서 쓸 수는 없을 거야.”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여러 사람을 통해 청란성지의 입문 대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강수수라는 여인이 놀라운 실력을 갖고 있는 걸 보고, 놀라긴 했어도 의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석목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 순간, 허공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갈래의 푸른 칼날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졌다.
쓱!
석목은 재빨리 한쪽으로 몸을 피했고, 푸른 칼날은 그가 숨어 있던 자리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냈다. 그곳에 있는 큰 돌마저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나버렸다.
어느새 푸른 머리를 한 강수수가 귀신같이 석목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손에 쥔 푸른 칼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길을 막아섰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수수의 피부는 원래 하얀 편이었는데, 좀 전에 진기를 많이 잃은 탓에 색다른 매력이 더해져 있었다. 다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고, 전혀 다가갈 틈을 주지 않는 냉랭함을 풍겼다.
“여기 숨어서 뭐하는 거지? 혹시 같은 패거리인가?”
강수수는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저, 오해입니다. 나는 그들과 상관없는 사람이고, 그저 이곳을 지나고 있었을 뿐이에요.”
석목은 한숨을 쉬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음? 당신은…… 전에 초원으로 함께 전송되었던 인족이잖아?”
강수수는 위아래로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무엇인가 생각난 듯, 그녀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
“저를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이곳에 오게 된 것이고, 방금 전의 상황을 의도치 않게 목격했습니다. 지금 막 이곳을 떠나려 하던 참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강수수는 다시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흔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가려고? 청산령을 내놓고 옥패를 부수도록 해.”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자 동공이 축소되며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강 소저, 그렇게 말하면 곤란합니다. 저를 그 정도로 얕잡아보시다니요.”
“분수를 모르는군. 그럼 죽어라.”
강수수는 더 말을 하지 않고 차갑게 웃더니, 손에 쥔 푸른 검을 들어서 빛을 뿜어냈다. 검에서 한 줄의 부문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날카로운 소리가 크게 울리는 순간, 이삼십 장 크기의 거대한 초록빛이 검에서 나왔고, 그 빛은 칼날 위에서 소리를 내며 석목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검의 기운이 너무 강한 나머지, 빛이 닿기도 전에 석목 주위에 있는 작은 돌들이 전부 가루가 되어 날렸다.
“흥!”
석목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빛은 왼팔에서 모여서 눈부신 붉은색을 자아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다시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크고 뚜렷해진 주먹은 초록빛을 향해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초록색 검의 빛과 부딪쳤다.
쾅!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리며 푸르고 붉은 바람이 주위를 향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고, 그 바람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전부 뿌리째 뽑혀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산만한 돌마저도 나뭇잎처럼 날아가서 깨졌다.
석목의 몸에서 나온 빛이 미친 듯이 파동을 일으켰고, 그는 그 힘에 의해 뒤로 몇 발짝 밀려났다. 강수수는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녀는 일고여덟 발자국이나 밀려나더니 검을 땅에 짚고서야 간신히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창백하던 강수수의 안색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가 곧 가라앉았다. 큰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좋아! 실력이 꽤 쓸 만하군. 한 수 더 받아라!”
강수수의 눈빛이 변했다. 그녀의 손에 쥐여진 검이 사오 장 정도로 커졌다. 검은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어 초록색 반달로 변해 석목을 공격했다.
반달은 번개 같은 속도로 석목의 머리 위에 도달했다.
강수수가 한 손으로 법결을 구사하자, 반달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고, 천지를 파괴할 듯한 검의 기운이 스치는 곳마다 초록색의 허영을 남겼다.
그러나 석목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깨져라!”
그의 왼팔에 금색 비늘이 순식간에 촘촘하게 생겨났다. 그리고 주먹으로 위쪽의 반달을 공격했다.
“죽고 싶은 것이로군!”
강수수는 차갑게 말을 내뱉은 뒤 검을 휘둘렀다. 반달의 빛이 더 크게 번지더니 기세도 한층 강해졌다.
그 순간 석목의 왼손 주먹에서 하얀 화염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푸른색의 거대한 검과 금색 주먹이 부딪쳤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주위의 대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한줄기의 푸른빛이 터지면서 수많은 푸른 검으로 갈라졌고, 비가 내리듯 산골짜기 주변으로 흩어졌고, 지면에는 수천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챙!
푸른 검은 빛 속에서 튕겨져 나오더니 십 장이나 멀리 날아가서야 멈추었다.
칼날이 흔들리면서 그 위의 푸른 부문이 연이어 번쩍였고, 한참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이제 강수수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작은 몸은 부들부들 떨렸으며,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아직 사라지지 않은 푸른빛을 보고 있었다.
푸른빛이 흩어지자 석목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천천히 금색 비늘이 가득한 왼손을 거두었다. 표정은 온화했으며, 왼손은 옅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강수수가 한 손을 흔들자 푸른 검이 다시 그녀의 손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고, 심각한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볼일이 없다면 나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석목은 금색 비늘이 사라진 왼손으로 손짓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떠나갔다.
허공에서 채아가 두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서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그는 한 쪽 날개로 머리를 가리고는 강수수가 있는 쪽을 살짝 쳐다봤다.
그녀의 차가운 눈과 마주치자 채아는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렸다. 당황해서 날개를 퍼덕이는 바람에 석목의 어깨에서 떨어질 뻔했다.
“석두, 저 얼음마녀가 저런 짓을 했는데 그냥 두려고?”
채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서 나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어. 그냥 가는 게 나아.”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강수수는 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떠나가는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긴 했지만, 절대 바보는 아니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 손속에 여유를 두고 제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았다. 더 날뛰었다가는 자신만 손해를 볼 것이 뻔했다.
강수수는 눈길을 거두더니 푸른 옷을 입은 사람 다섯 명이 남긴 청산령을 챙겨 몸을 돌렸다.
순간 그녀는 예쁜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몸이 희미해졌다. 그녀는 눈 깜박할 사이에 십 장이 넘는 곳으로 밀려났다.
펑! 펑!
그녀가 서 있던 땅이 굵게 갈라지더니 돌들이 튕겨 올라왔다. 그곳에는 두 개의 거대한 갈색 뿌리가 구렁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갈색 뿌리의 표면은 울퉁불퉁했고 수많은 영문과 초록색 이끼 같은 것이 있었는데, 식물의 뿌리로 보였다.
잠시 후, 두 뿌리는 눈이 달리기라도 한 듯 강수수가 있는 자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빨랐다.
강수수는 그 거대한 뿌리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고,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이 천천히 나풀거렸다.
* * *
숲 속 깊은 곳의 굴곡진 동굴 안.
동굴의 깊은 곳에는 꽤 넓은 공터가 있었다. 주변의 암벽에는 푸른빛이 반짝여서 동굴 속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공터의 중앙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 있었는데, 그 왼쪽과 오른쪽에는 다락방만 한 크기의 짐승이 엎드려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십 장 남짓이었다.
두 마리의 거대한 요수는 사자 머리를 가지고 몸에는 붉은 털이 자라 있었으며,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꼬리는 이 삼 장 길이의 전갈의 꼬리였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요수들의 몸에는 줄기줄기 상처가 나 있었고, 털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요수의 머리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 안의 요핵은 이미 사라진 채였다.
요수 시체 주위에는 세 명의 청년이 앉거나 서 있었다. 그들의 몸에도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들의 피인지 앞에 있는 요수의 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전갈사자왕을 잡았군요.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청란성지에 입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닥에 앉아 있는, 하얀 옷을 입고 옅은 푸른 피부를 가진 남자가 말했다.
“구 도우,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시험에 참가한 사람의 수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데다, 범상치 않은 세력이나 가문에서 온 천재가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백팔 명 이내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른 요족 남자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다들 말만 하지 마시고 이쪽을 보십시오. 이 두 마리의 전갈사자왕은 보물덩어리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다 가지도록 하지요.”
마지막 한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이었는데, 팔이 네 개나 있었다. 그는 왼쪽에 있는 요수의 몸을 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흥, 청란성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얀 옷을 입고 푸른 피부를 가진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미 왼쪽의 요수를 향하고 있었다.
그가 막 요수의 앞에 도착했을 때, 전갈사자왕의 거대한 몸이 갑자기 움직였다.
“으음? 이 요수는 아직 살아 있는 건가?”
하얀 옷을 두른 남자가 깜짝 놀라더니 기이하게 생긴 무기를 두 손에 꺼내들고는 경계하는 자세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자 다른 요족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눈이 침침해졌습니까?”
그 남자는 왼쪽의 요수에게 다가가서 살펴보려고 했다.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쿵!
땅 위에 누워 있던 거대한 요수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더니, 영문과 초록색 이끼가 빼곡한 갈색 뿌리가 그 속에서 비집고 나왔다. 그 뿌리는 빛의 속도로 요족 남자에게 향했다.
“이건 또 뭐야!”
요족 남자는 빠르게 움직였고, 그의 팔이 순식간에 가재 같은 한 쌍의 집게발로 변신했다. 은색 번개가 집게 사이에서 번쩍이더니 갈색 뿌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몸에서도 붉은 빛이 감돌더니 날카롭고 뾰족한 갑옷이 생겨났고, 갑옷의 표면에서도 빛이 번지고 있었다.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색 빛이 거대한 갈색 뿌리를 덮쳤고, 그것은 눈부신 번개를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뿌리를 감싸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뒤에서 굉음과 함께 땅이 갈라졌다. 곧이어 그 틈에서 또 한 줄의 거대한 갈색 뿌리가 올라와서 요족 남자를 묶어버렸다.
요족 남자의 몸을 휘감고 있던 뾰족한 갑옷은 뿌리가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뿌리는 점점 꽉 조여 들었고 표면에 있는 영문들은 미친 듯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