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놀라운 변화
요족 남자는 눈 깜박할 사이에 쪼그라들었고, 순간 전신의 피가 말라버려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땅에 떨어진 요족 남자는 그대로 말라죽어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서 하얀 옷을 입은 푸른 피부의 남자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때 처참한 비명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푸른 피부의 남자는 머리를 돌린 순간, 심장이 서늘해지는 광경을 맞이했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요수의 몸을 뒤적이던 네 팔 달린 남자가 두 개의 뿌리에 의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그는 온 몸이 뿌리에 휘감긴 채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훅!
갈색 뿌리가 힘을 풀자 네 팔 달린 남자의 몸이 떨어졌다. 뚱뚱했던 몸이 마치 해골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앞서 요족 남자와 마찬가지로 피가 말라서 처참하게 죽은 것이었다.
쓱! 쓱!
두 개의 뿌리가 마지막으로 남은 푸른 피부의 남자를 공격했다. 한 개는 위에서, 다른 한 개는 아래에서 날아왔다.
푸른 피부의 남자는 놀라서 두 손에 쥔 기이한 법기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법기는 찬 기운을 내뿜으며 뿌리를 행해 날아갔고, 남자는 그 틈을 타서 입구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도망갔다.
파닥파닥!
그러나 강한 기운을 내뿜던 무기마저 뿌리에게는 옅은 칼자국만 남겼을 뿐이었지만, 다행히 두 뿌리를 잠시 허공에서 멈추게 해서 남자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남자는 쏜살같이 동굴의 입구 쪽을 향해 도망가며 수천옥패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가 동굴 입구에 막 도착하기 직전, 암벽이 부서지더니 그 속에서 또 두 개의 뿌리가 튀어 나왔다. 그것들은 구렁이처럼 몸을 돌돌 말면서 남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등 뒤에서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뿌리들이 동시에 공격해왔다.
푸른 피부의 남자는 이를 악물고 손에 든 수천옥패를 깨뜨렸다.
그러자 기이한 광경이 나타났다.
옥패가 깨지면서 물빛이 번졌지만, 그것은 그의 몸을 감싸지 않았다. 입구에 나타난 뿌리의 기이한 흡입력이 물빛을 빨아들였다.
시험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데 실패한 남자의 얼굴에 절망의 기색이 스쳤다.
* * *
숲 속의 어느 곳, 하늘을 찌르는 듯한 나무 위로 요족 청년들이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일고여덟 명이었는데, 몸집과 생김새가 각각 달랐다.
모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고 몸에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도망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 뒤로 십여 개의 굵은 갈색 뿌리가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미처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한 명씩 뿌리에 감겼고, 금세 말라비틀어지더니 시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혹 수천옥패를 부수어서 비경을 떠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옥패에서 뿜어져 나온 물빛마저 뿌리의 기이한 힘에 흡수되어버렸고, 그들 모두 그 자리에서 붙잡혀 죽고 말았다.
* * *
비경의 중앙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나지막한 산지가 있었다.
펑!
칠팔 장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건이 무겁게 땅에 떨어지면서 먼지를 날렸다.
먼지가 사라지자 그 속의 물체가 보였다. 암석처럼 거친 피부를 가진 거대한 요수였다.
요수의 몸은 수많은 갈색 뿌리에 의해 묶여 있었고, 그와 가까운 곳에는 마찬가지로 갈색 뿌리에 몸이 묶여 있는 사람 모양의 생물이 있었다.
요수와 사람은 바람 하나 샐 틈 없이 꽁꽁 묶여 있었는데,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의 표면에서 영문이 번쩍이자 거대한 짐승과 사람 모양의 생물은 빠르게 말라비틀어졌고, 눈 깜박할 사이에 생기를 잃고 죽어버렸다.
그들의 정혈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흡입해버린 뿌리는 그제야 시체를 놓아주었다. 이어 뿌리는 표면에서 영문이 반짝이더니 더 크고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리고 지렁이처럼 전부 땅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 * *
숲의 깊은 곳.
귀밑머리가 가슴까지 내려온 인족 청년이 담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순간 그는 땅을 가볍게 박차더니 삼 장 정도 높이의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가 발을 떼자마자 땅이 순간 갈라지더니 한 갈래의 갈색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청년은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색의 굵은 뿌리가 땅에서 뻗어 나와 구렁이처럼 몸통을 움직이고 있었다.
청년이 허공에서 손을 내밀자 푸른색의 긴 검이 나타났다. 순간 한줄기의 푸른빛이 칼날에서 발사됐고, 그는 그가 몸을 아래로 향하며 굵은 뿌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퍽!
푸른빛이 반짝이며 거대한 뿌리를 두 갈래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두 줄로 된 뿌리는 각각 몸을 뒤틀며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 뒤의 땅이 또다시 갈라지더니, 두 개의 갈색 뿌리가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앞서 나온 두 개의 뿌리와 함께 그 청년을 둘러쌌다.
그럼에도 청년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는 몸을 곧게 뻗어 허공을 날아서 기괴한 뿌리들의 포위에서 벗어났다.
네 개의 뿌리가 다시 물결치며 하늘의 청년을 공격했고, 뿌리들은 얼기설기 뭉쳐서 허공에서 큰 망을 만들더니, 밑으로 떨어지며 그대로 청년을 감싸려 했다.
그 순간 청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멈춰라.”
청년이 말하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이어서 그를 중심으로 주위에서 공간의 파동이 일렁였다.
그러자 숲 속에서 부는 바람이 멈추었고, 휘날리던 나뭇잎도 허공에 그대로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네 개의 굵은 뿌리 역시 망을 형성한 채로 허공에 못박혀 있었다.
마치 주변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청년은 손에서 푸른 장검을 꺼내들고, 뿌리들이 만들어낸 망 위에서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어 허공에 푸른 검의 꽃이 피어나더니 곧 멈추었다.
이 모든 과정은 물 흐르듯, 그리고 눈 깜박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청년이 다시 푸른 검을 손에 쥐자 뿌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곧 수많은 조각으로 잘려서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묘하게도 뿌리 괴물의 사체에는 요핵이 없었다.
청년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웃더니 이내 몸을 번쩍이며 먼 곳으로 사라졌다. 이어 허공에서 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령왕(树灵王), 아주 좋아! 십 년 동안 기다렸는데 드디어 당신의 본체가 확실하게 각성했군. 이렇게 되다니! 하하…….”
망고삼림의 동쪽 끝은 광활한 초원이었다.
숲과 연결되어 있는 그곳에는 적갈색의 산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산골짜기 전체를 아무리 봐도 푸른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선이 닿는 거리 내에는 전부 갈색의 암석뿐이었다.
그때 산골짜기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고, 먼지가 휘날렸다.
한 장 크기쯤 되는 갈색 벌레 수천 마리가 산골짜기 입구 밖으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이 기괴한 벌레들은 체형이 둥글고 길었으며, 복부에는 수백 쌍의 가느다란 발이 자라나 있었다. 몸의 양쪽 끝에는 원형 구멍이 있었고 구멍 양쪽으로 두 갈래의 긴 촉수가 있었으며, 귀와 입은 없었다.
산골짜기 입구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다. 가장 좁은 곳은 일고여덟 마리의 벌레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수없이 많은 기괴한 벌레가 몰려서 입구가 촘촘하게 막혀 있었는데, 그 수가 수만 마리는 되어보였다.
이 벌레들 위에서는 하늘과 땅을 잇는 누런 회오리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곳마다 근처의 허공이 비틀리더니 수천 마리의 벌레가 빨려 들어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사지가 찢긴 벌레의 잔해들이 그 속에서 튕겨 나와서 붉은 빛깔의 요핵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 요핵들도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반짝이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벌레들은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며 이 회오리바람을 피하려 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무형의 흡입력을 갖고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때 살 골짜기에서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러자 암벽에서 하얗게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곧 거대한 암석이 연기에 녹아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십 장 정도 되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속에서 여느 벌레보다 몸이 열 배 이상은 큰 벌레의 왕이 튀어나왔고, 몸의 절반은 구멍 속에 여전히 묻혀서 상체만 암벽 밖으로 내민 채였다. 대왕 벌레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회오리바람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대왕 벌레는 경지가 지계 후기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강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서 주위에 붉은색의 무늬 고리를 만들어냈고, 그 무늬들은 허리에서 머리까지 자라 있었다.
대왕 벌레가 큰 입을 벌리더니 검붉은 색의 비린내 나는 액체를 뿜어냈다. 이어 그 액체는 화살같이 회오리바람을 향해 날아갔다.
칙! 칙!
검붉은 액체가 회오리바람 속으로 들어가자 그 속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회오리바람을 전부 부식시켜버리려는 듯했다.
그러나 검붉은 액체는 회오리바람 속으로 한 치 정도 들어가더니 무형의 힘에 의해 찢겨졌다. 이어 액체가 사방팔방으로 튕겨서 떨어졌고, 땅을 흥건하게 적셨다.
이때 땅 위의 암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곧 부식되었고, 큰 구멍을 만들어냈다.
누런 회오리바람은 무엇인가 느끼기라도 한 듯 방향을 돌리더니, 대왕 벌레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고, 그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회오리바람이 스치는 곳마다 수없이 많은 벌레가 빨려 들어갔고, 찢어진 사지와 요핵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대왕 벌레는 그 광경을 보더니 다시 한 번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액체가 아닌 희미한 붉은 빛을 뿜어냈다.
퍽! 퍽!
하늘을 찢는 소리와 함께 붉은 화살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것은 허공에 붉은 홍수를 만들어냈다.
그때 누런 회오리바람이 크게 부풀더니 하늘을 찢는 소리와 함께 칼날들을 뿜어냈다. 이어 붉은색과 누런색의 홍수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굉음이 울렸고, 빛들이 여기저기서 폭발했다.
촘촘하게 날아가던 바람의 칼날들은 순식간에 대왕 벌레의 몸뚱이를 찍어버렸고, 그 바람에 주변의 암석들도 터져나갔다.
대왕 벌레의 갑각은 단단했지만 수많은 바람의 칼날에 균열이 생겼고, 그의 몸 주변에서 자갈들이 튀어 올라 연기와 먼지를 날렸다.
대왕 벌레가 다른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누런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날아왔다.
대왕 벌레가 암벽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순간 거대한 흡입력이 몰려오자 벌레의 몸뚱이는 암벽 속에서 그대로 뽑혀나가서 누런 회오리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아……!”
대왕 벌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어서 대왕 벌레의 몸이 회오리바람 속에서 찢기고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잔해들이 튀어나왔다. 이어 붉은색의 거대한 요핵이 반짝이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대왕 벌레가 사라지자 누런 회오리바람은 파죽지세로 계곡을 휘젓고 다녔다..일부 거대한 벌레만 산골짜기를 간신히 빠져나갔을 뿐이고, 대부분의 벌레는 전부 회오리바람에 의해 짓이겨졌다.
한참 뒤 산골짜기의 마지막 벌레까지 소멸되자 회오리바람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호리호리한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은 인족과 별다른 점이 없었지만, 어깨 위에는 족제비의 머리가 있었다. 또 사지가 인족보다 훨씬 길었는데, 특히 두 팔은 인족보다 두 배는 길었고, 노출된 피부에는 짧은 갈색 털이 자라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몸은 기이할 정도로 말라서 보통사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했고, 멀리서 보면 마치 두 개의 대나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의 체형이나 외모가 거의 똑같다는 것이었다. 같은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은 난장판이 된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기괴한 벌레의 잔해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었고,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골짜기는 황량하게 변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큰형,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들어온 지 꽤 됐으니 그 물건의 본체도 이제 곧 각성할 때가 됐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답했다.
“그래, 때가 됐다. 비록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겠지만, 그 물건은 여러 차례에 걸쳐 청란성지 시험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해온 존재다. 진짜로 마주치게 되면 조심해야 할 것이야.”
“흐흐,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우리 형제의 동심지술(同心之术)을 사용하면 실력을 순간적으로 서네 배 정도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 괴물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번에는 우리 손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예요. 그 나무의 심장에 있는 성액(圣液)은 꼭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말이 끝나자 둘은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노란 빛이 감돌더니 다시 한 번 누런 회오리바람이 나타났고, 두 사람은 멀리 골짜기 밖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