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뿌리 괴물
“빨리 와!”
마옥이 작은 소리로 말하더니 두 손으로 여러 개의 법결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녀 몸 앞의 붉은 고리가 몇 배나 더 커져서 마열을 그 범위 안으로 집어넣었다.
푸른 뿌리 괴물의 입에서 귀를 찢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만 아까부터 그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 푸른 구름을 만들어내는 비술 때문인 것 같았다.
뿌리 괴물이 내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고, 잠시 후 푸른빛들이 다시 모여서 파란 뿌리를 형성했다.
그 수는 십여 개나 됐는데, 뿌리가 지나간 곳마다 서리가 앉아서 주변을 얼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마옥과 마열은 눈앞에 나타난 푸른 뿌리를 보고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근처 산봉우리 밑단의 동굴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사람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의 몸은 붉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푸른 옷을 두른 어깨 위에는 아름다운 털을 가진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은 주위를 빠르게 훑더니 이내 안색이 변했다.
반나절 전, 석목은 근처에서 지계 후기 경지의 강한 요수와 싸웠다.
상대를 죽이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역시 원기를 적지 않게 소모한 탓에, 동굴에서 회복에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닥친 것이다.
석목은 푸른 구름에 파묻힌 마옥과 마열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앗! 얄미운 인간들이다!”
채아가 마열을 보더니 질색을 했다.
마열 일행은 석목이 나타나자 표정이 복잡해졌다.
쿵!
푸른 뿌리 괴물은 석목을 보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허공의 푸른 구름에서 얼음 일부를 분리시킨 뒤 석목을 공격했고, 차가운 기운이 석목을 엄습했다.
“여긴 위험하니까 영수주머니에 들어가 있어.”
석목은 손을 흔들어 채아를 영수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뒤, 몸에서 붉은 화염을 강하게 뿜어냈다. 이어 그의 등 뒤에서 붉은 원숭이 법상이 떠올랐다.
법상이 몸 앞으로 교차한 두 팔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순간 거대한 불의 벽이 되어 석목의 앞쪽을 막았다.
펑! 펑!
푸른 얼음들은 홍수가 되어 불의 벽에 부딪쳤다. 이에 붉은 빛은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박살나기 직전이었다.
석목은 왼손의 가죽 장갑을 찢어버리고 까맣게 탄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하얀 화염이 타오르더니 빛이 불의 벽에 스며들었다.
붉게 타오르던 불의 벽에 실오라기 같은 하얀 빛이 섞여들었고, 붉은 빛은 다시 푸른 얼음들을 막아냈다.
그때 주변에서 날아온 푸른 뿌리가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와서 석목을 둘러쌌고, 푸른빛이 뿌리에서 뿜어져 나와서 수백 장 크기의 막을 형성,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앞을 막아버렸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몸을 움직여 마옥과 마열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 푸른 뿌리는 대체 무슨 요수죠?”
“요수가 아니고 수령왕(树灵王)의 뿌리예요. 설명하자면 끝이 없으니 나중에 하죠. 일단 함께 싸우는 게 어떻습니까?”
마옥이 빠르게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옥이 말하는 수령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질문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는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한 뒤 머리를 끄덕였다.
마옥은 한시름 놓았다. 옆에 있는 마열의 표정은 다소 거북해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갇혀버리면 안 돼요. 죽을 게 뻔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차가운 얼음막을 파괴해야만 벗어날 수 있어요.”
마옥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다시 울렸고, 또 한 차례 푸른 얼음들이 쏟아졌다.
석목은 두 손을 흔들더니 법결을 사용했다. 그러자 붉은 원숭이 법상이 불의 벽을 만들어서 앞쪽의 얼음을 막았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의 몸에서 금색 비늘이 돋아나왔다. 토템 변신을 한 것이었다. 난폭하고 거대한 기운의 파동이 석목의 몸에서 퍼졌고, 지계 후기의 끝에 필적하는 기운을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본 마옥의 아름다운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반면 마열은 석목이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자 얼굴에 두려움의 기색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공격을 할 테니 옆에서 도와주십시오!”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등 뒤에서 빛을 반짝이며 한 쌍의 불의 날개를 펼친 그는 빠르게 날아올랐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는 두 사람의 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뿌리 괴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허공에서 빛을 크게 뿜어내서 얼음의 방향을 돌려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이미 얼음들의 위력을 파악한지라 곧바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 원숭이 법상이 그의 앞으로 나섰고, 법상은 입을 크게 벌려서 붉은 화염을 뿜어냈다.
하얀 연기가 섞인 혼원진화가 날아오는 얼음들과 부딪쳤다.
우르릉!
화염의 빛이 도처로 뿜어져 나갔고, 혼원진화는 얼음의 무시무시한 한기를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삼켜버렸고, 다시 화염의 기둥을 만들어내 푸른 구름을 공격했다.
쾅!
푸른 구름 속에서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눈부시게 하얀 불의 혀가 그 속에서 뽑혀 나왔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악!”
푸른 괴물이 분노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눈을 번쩍이더니 머리를 들어 귀가 찢어질 듯한 긴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가 워낙 날카로워서 마치 수많은 바늘로 고막과 머리를 찌르는 듯했다.
마옥과 마열은 두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부려 보호막을 형성했고, 석목도 두 손으로 귀를 꽉 막고 빛을 반짝이며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석목 주변에 있는 뿌리들이 뿜어내는 빛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그들 주변으로 드리워졌던 푸른 막도 사라졌다.
허공에서도 푸른 구름이 흩어지며 안개로 변했고, 다시 뿌리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푸른 뿌리들 역시 괴물을 향해 날아가서 순식간에 빨려 들었다.
잠시 후, 수많은 뿌리와 괴물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괴물의 몸통은 두 배나 더 커졌고 얼굴의 이목구비도 점점 뚜렷해졌다. 짧게 튀어나와서 익살스러운 손발도 더 자라서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제 괴물은 거의 사람의 모양과 비슷해지고 있었다. 그의 몸 전체가 푸른빛을 내뿜었고, 무시무시하게 차가운 기운은 천위의 경지에 달한 듯했다.
마옥과 마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그들의 실력으로는 기껏해야 지계의 절정과 맞붙을 수 있는 정도인데, 천위의 강자와 싸운다면 죽을 것이 뻔했다.
석목은 눈을 가늘게 뜨고 뿌리 괴물을 바라보다가 숨을 내뱉었다. 이어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등 뒤의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그는 이미 천위의 존재와 여러 번 싸운 적이 있었고, 눈앞의 뿌리 괴물이 내뿜는 기운은 천위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충분히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괴물이 움직이기도 전에 석목의 등 뒤에 있는 법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흰 줄기가 섞인 불의 날개로 변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석목은 갑자기 뿌리 괴물의 등 뒤에 나타났고, 그가 손에 쥔 운철흑도가 깊고 투명한 검은 빛을 내뿜었다.
운철흑도가 공기를 가르며 괴물의 몸을 내리쳤다. 석목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석목의 표정은 다시 섬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뿌리 괴물이 날아드는 운철흑도를 피하지 않은 것이다.
퍽!
흑도가 괴물의 몸을 내리치자 그의 몸 위에서 푸른빛이 나타나더니 흑도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괴물의 몸에는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괴물은 낮게 소리 지르며 석목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마치 굵은 무쇠 기둥이 귀를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아오는 듯했다. 석목이 흑도를 휘두르는 것과 거의 동일한 속도였다.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때 나무 괴물의 굵은 팔이 빠르게 눈앞까지 다가왔고,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석목의 오른쪽 주먹이 금빛을 강하게 뿜어내면서 괴물의 푸른 팔과 부딪쳤다.
쾅!
강한 힘이 푸른 팔에서부터 전해지면서 석목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의 몸은 그대로 멀리 날아가서 산 속에 처박혔다.
뿌리 괴물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석목의 뒤를 쫓아가서 그가 떨어진 산의 상공에 나타났다.
괴물이 팔을 휘두르자 푸른빛의 얼음칼이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과 괴물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부딪쳤고, 그 사이 마열과 마옥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마열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마옥을 살짝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옥 누님. 괴물이 저 자와 싸우고 있는 동안 도망갑시다.”
마옥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머리를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괴물의 속도를 보지 못했어? 우리는 도망가지 못해.”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죽기만 기다릴 건가요?”
마열이 다급하게 말했다.
마옥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때 폭발하는 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오더니 금색 그림자가 산 속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석목이었다.
보아하니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고, 몸의 금빛은 더욱 밝아져 있었다.
석목은 깊은 눈으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는 이 괴물을 너무 하찮게 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천위의 존재인 만큼 예상보다 강했다.
괴물의 눈에 흉악한 빛이 어렸고, 몇 장 크기의 푸른빛으로 변해서 석목의 머리를 공격했다.
괴물이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자 이내 큰 소리가 났다.
우르릉!
수많은 푸른 주먹이 나타나서 빗방울처럼 석목을 향해 날아갔는데, 그 소리가 엄청났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의 양쪽 팔에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순식간에 굵어졌고, 마치 태양 같은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는 그의 두 손이 희미해지더니 금색 주먹이 나타나서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괴물은 천위의 경지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다. 석목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강경하게 맞섰다.
우르릉!
하늘에서 푸른 주먹과 금색 주먹이 부딪치며 우레 같은 소리를 냈다.
두 주먹은 계속 부딪치고 폭발하기를 반복했다. 하늘에는 잔영이 드리워졌는데, 그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답기까지 했다.
석목의 금색 주먹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두세 번 공격해야 푸른 주먹 한 개를 터드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맞서며 괴물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하!”
석목이 기합을 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석목이 두 팔을 휘두르는 속도를 더 높였고, 이제는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다.
금색 주먹은 두 배나 빨라졌고, 파도처럼 괴물을 공격해서 곧 푸른 주먹을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괴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을 정신없이 휘두르며 입을 벌렸다. 입속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게 대단한 비술을 부리려는 듯 보였다.
그때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괴물의 머리 위로 붉은색의 커다란 칼이 나타났다고, 그것은 번쩍이며 십여 장 크기까지 커져서 괴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펑!
검붉은 화염이 그 칼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괴물을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