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73화 (373/916)

373화. 나무 심장 성액

그때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마옥과 마열이 괴물의 근처에 나타났다.

마옥의 등 뒤로 거인법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칠팔 장 정도의 크기였는데. 매끈한 몸에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손에는 망치 같은 무기의 허영이 들려 있었다.

마열도 법상을 불러냈다. 마옥과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그녀의 것에 비해 훨씬 작았다.

그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도 석목의 얼굴에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이 도망간다 해도 뿌리 괴물이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뿌리 괴물이 그들을 쫓아간다면 오히려 석목에게 도망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

“베어라!”

마옥은 손가락으로 앞쪽 허공을 짚으며 소리쳤다.

허공의 붉은 칼이 크게 빛을 내더니 세 개의 똑같은 칼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은 곧바로 아래의 화염을 잘라냈다.

“가라!”

마열도 법상을 불러냈다. 그의 법상은 화염으로 둘러싸인 망치를 꺼내들어 세 개의 칼이 가는 방향을 쫓아갔다.

쿵!

그때 눈부신 푸른빛이 화염 속에서 터지면서 차갑기 그지없는 기운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 기세는 붉은 화염을 가볍게 식혀버릴 듯했다.

세 개의 붉은 칼과 그 뒤를 따르는 망치는 잠시 버티는 듯했으나, 푸른빛에 의해 멀찌감치 날아갔다. 그중에서 두 개의 붉은 칼과 망치가 사라졌다.

붉은 칼의 표면에서 빛이 진동하더니 본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위로 푸른 얼음이 한층 드리워져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 영성의 손실이 큰 듯했다.

마옥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 빠르게 법상을 불러들여 날아오는 푸른빛을 막아냈다.

마열의 등 뒤에 있는 법상은 이미 푸른빛에 휘감겨 터져버렸다. 그는 허수아비처럼 날아가서 마옥의 옆에 떨어져 몇 차례 구른 뒤에야 멈췄다.

한편 석목이 날린 수많은 금색 주먹도 거대한 빛에 의해 삼켜졌다. 석목 역시 강한 힘에 밀려서 십 장 정도의 거리까지 날아가서야 멈춰 섰다.

무한한 푸른빛 속에서 괴물이 천천히 몸을 드러냈다. 몸에는 상처가 한 개도 없었을 뿐더러, 형태가 크게 변해서 몸에 네 개의 팔이 더해져 있었다. 머리가 세 개, 팔이 여섯 개의 초대형 괴물이 된 것이었다.

그의 머리가 마옥과 마열을 향했다. 그리고 푸른 그림자로 변해서 그들을 공격하려 했다.

“조심해!”

석목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등 뒤에서 불의 날개를 펼쳐서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 두 사람의 몸으로는 아마도 한 주먹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마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붉은 고리가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뿌리 괴물이 변한 푸른빛이 순식간에 멈추더니 갑자기 마옥의 고리에 의해 묶여버렸다.

그녀의 붉은 고리에는 마치 기이한 힘이라도 있는 듯했고, 괴물의 힘으로도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쾅!

괴물이 또다시 소리를 지르자 몸에서 푸른빛이 미친 듯이 번쩍였고, 놀랍도록 차가운 기운이었다.

그러자 괴물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붉은 고리가 순식간에 푸른 얼음으로 변하더니 주위로 퍼졌다. 고리의 빛은 순식간에 약해져서 곧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등 뒤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그 위로 한 층의 하얀빛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크기가 수 배나 늘어났다.

석목의 몸통이 희미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괴물의 앞에 나타났다. 칠흑같이 까만 그의 왼팔에서 하얀색 화염이 타올랐고, 석목은 괴물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뿌리 괴물의 몸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여섯 개의 팔을 몸 앞으로 교차해서 석목의 주먹을 막아내려 했다.

쾅!

석목의 주먹이 여섯 개의 팔을 강타했다.

칵!

괴물의 굵은 팔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괴물은 몸에 묶여 있던 붉은 고리와 함께 멀리 날아갔다.

이어 허공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리더니 괴물이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차가운 기운을 터뜨렸다.

그러자 주위 십 장 이내의 범위가 순식간에 얼음 천지가 되어버렸고, 온도도 급격하게 하락해서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했다.

괴물의 몸을 묶고 있던 붉은 고리가 차가운 기운에 의해 드디어 빛을 잃었다. 고리는 여러 갈래로 부서지며 괴물의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멀리서 마옥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얼굴이 더 하얗게 변했다. 그녀의 보물 두 개가 전부 부서졌고, 그녀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괴물은 푸른빛으로 몸을 감싼 채 석목을 피해 멀리 도망가 버렸다.

석목은 다시 날개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내 괴물의 뒤에 나타났다. 이어 그의 왼손이 하얀 번개로 변해 다시 한 번 괴물을 거세게 공격했다.

괴물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수많은 뿌리가 자라나서 몸을 휘감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누에고치 같았다.

쾅!

석목의 주먹을 맞자 수십 개의 뿌리가 부서지고 괴물의 본체도 하얗게 타올랐다. 하지만 뿌리의 방어 덕분에 본체의 타격은 크지 않았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등 뒤에서 불의 날개를 퍼덕였다. 그리고 괴물 옆으로 다가가서 본체를 향해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몸은 아무런 힘도 없이 허공에서 이곳저곳 공격을 당했다. 몸을 휘감고 있던 푸른 뿌리들도 떨어져나갔고, 몸 구석구석이 까맣게 타버려서 처참해보였다.

석목의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괴물은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이어 석목은 또 다시 괴물의 뒤에 나타나서 왼팔로 본체를 공격했다.

퍽!

이미 상당히 손상된 괴물의 몸통이 드디어 터졌다. 석목의 팔은 괴물의 몸통에 큼지막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뿌리 괴물은 입에서 푸른 액체를 뿜어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상처 주위에서 굵은 덩굴이 뻗어 나와 뱀처럼 석목의 팔을 휘감았다.

휙!

괴물이 낮은 소리를 내며 석목을 멀리까지 날려버렸다. 그리고 본체는 한줄기의 푸른빛이 되어 땅을 향해 날아갔다. 땅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석목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다시 부활할 수도 있었다.

그때 굵은 푸른빛이 옆에서 날아올라 괴물을 강하게 내리쳤다.

푸른빛 속에는 한 장의 푸른 부문이 있었다.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기는 놀라울 정도였고,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푸른 부문은 뿌리 괴물의 몸에 닿자 그대로 폭발했다. 그것은 곧바로 수많은 푸른 끈이 되어 괴물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괴물은 허공에서 그대로 결박되어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다시 한 번 괴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차갑고 담담한 표정으로 왼손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죽어라.”

석목의 왼손이 괴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괴물의 머리가 터지면서 수많은 푸른 조각이 돌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석목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가 왼손을 흔들자 하얀 화염이 다시 한 번 크게 번지더니 거대한 칼날로 변했다. 그 빛은 반짝이며 괴물의 몸을 몇 조각으로 잘라버렸다.

그런데 나무 괴물의 몸에는 의외로 요핵이 없었다.

석목은 그제야 왼팔의 화염과 등 뒤의 날개를 거둔 뒤 땅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중급 영석을 꺼내들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남은 두 사람도 몰골이 엉망이었다. 원기를 크게 소진한 마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마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옷이 전부 찢어지고 뼈까지 드러날 정도의 깊은 상처가 여러 개 나 있었다. 상처에는 여전히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어서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찬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세 사람은 족히 반시진이나 걸려서 기력을 회복했다.

“두 분, 이제 수령왕에 대해 이야기해주십시오.”

석목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마열과 마옥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옥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셨으니 수령왕에 대한 진실을 알려드리지요. 실은 대단한 비밀도 아닙니다. 수령왕은 다른 요수들과는 달리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해와 달의 정기만 흡수하면서 자라난 초목 요수죠. 수령왕의 체내에는 나무 심장 성액이 있는데, 그건 십만 년에 한 개만 만들어져서 매우 귀합니다. 듣기로는 그것은 천지의 힘을 가진 결정체로, 그걸 삼키면 단번에 수련의 경지가 크게 상승한다고 합니다.”

마옥은 읊조리듯 설명했다.

“오는 내내 여러 종족 사람들이 이곳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것을 봤는데, 전부 이 수령왕 때문에 온 것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맞습니다.”

마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수천청산 비경은 십 년 만에 한 번 열리고, 매번 수많은 제자가 들어오죠. 그런데 수령왕이 이곳에 존재했다면 이미 발견되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십만 년 만에 한 번 나타난다는 나무 심장 성액이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수령왕은 매우 교활하여 선발 때마다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그래서 본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신비한 나무 심장 성액은 십만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세간의 추측에 의하면 이 수령왕의 본체가 이번에는 모종의 이유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이 출중한 수많은 천재가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그렇군요.”

석목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옥은 유혹적인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 도우, 저희가 이번에 비경에 들어온 것도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함입니다. 석 도우가 관심이 있다면 함께 찾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석 도우의 실력과 저희 실력이 합쳐지면 찾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 뒤에 똑같이 나눠가지는 건 어떻습니까? 나무 심장 성액은 그 양이 많지 않지만, 한 방울만 흡수해도 효력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석목이 그 말을 듣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왜요? 석 도우는 저희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마열이 언짢은 듯 말했다.

“하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 방울의 성액을 위해 이렇게 많은 세력이 몰려들고 있는데, 그에 비해 차지할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운이 좋아서 어찌어찌 가지게 된다 한들, 무슨 화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석목이 웃으며 되물었다.

“석 도우,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령왕의 몸 곳곳은 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나무 심장 성액만큼 귀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물건들입니다. 역대 시험에 참가한 자들은 그의 분신을 죽여서 엄청난 보물들을 나눠가졌습니다. 하물며 이번에는 본체가 나타난다고 하니까요.”

마옥이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흔들리는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도우, 부귀영화는 어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했지요.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마열은 석목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채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두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럼 저도 운을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가는 동안 수령왕에 대해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석목이 드디어 머리를 끄덕였다.

“하하, 물론이죠.”

마옥과 마열은 그의 말을 듣고 좋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