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강적이 나타나다
반 시진 후, 세 사람의 그림자가 이야기를 하며 다급하게 걷고 있었다.
“수령왕이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군요.”
석목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수령왕은 온 몸에 보물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석 도우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마옥이 석목을 향해 손을 굽히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참, 그 영총 앵무새가 안 보이네요?”
석목이 대답하기도 전에 마열이 물었다.
“네, 그런데 도우는 어째서 저의 영총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시나요? 그저 평범한 새일 뿐입니다.”
석목이 마열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허허, 그 새는 영성이 있어서 자꾸 눈이 갑니다. 실은 저도 비슷한 영총이 있었습니다. 다만 몇 년 전 저를 구하려다 불행하게 죽어버렸지요. 석 도우의 새를 볼 때마다 눈에 익은 듯하여 저도 모르게…….”
마열이 슬픈 표정을 하고 말했다.
“보아하니 마 도우는 정이 깊은 사람 같군요. 하지만 저도 마 도우와 마찬가지로 정이 깊은 사람입니다. 제가 몇 년간 데리고 다닌 영총이라 절대 파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석목이 마열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게…… 전혀 의논해볼 여지가 없습니까?”
마열이 말했다.
“없습니다. 영총에 관한 일은 더는 묻지 마세요. 절대로 팔 일은 없습니다. 많이 쉬었으니 빨리 비경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수령왕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마옥을 바라보았다.
“석 도우,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옥이 손바닥을 뒤집으며 말했다. 손바닥에서 붉은 빛이 감돌면서 뱀 무늬가 그려져 있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건 뭐죠?”
석목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건 이문동어(璃纹铜鱼)입니다. 우리 가문의 선배가 비경의 중심지에서 가져온 광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비경 중심과 연결되어 있어서 저희가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줄 것입니다.”
마옥이 설명했다. 그리고 어려운 주문을 외우자 동어의 표면에 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어의 두 눈알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멈춰 섰다. 그것의 머리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동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는 여러 종족 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시체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전부 말라 비틀어져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얼굴은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처참했다. 기이한 뿌리의 습격으로 죽어버린 것 같았다.
세 사람은 경계를 풀지 않았고, 다행히 뿌리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수많은 시체 옆에는 무기와 청산령이 고스란히 놓여 있어서, 그들의 얼굴에 다시 기쁨이 어렸다. 일행은 저장 반지와 청산령을 주웠고, 보물과 영패 속의 요핵을 전부 나눠가졌다.
사흘 뒤, 석목의 점수는 삼십 만 점까지 올라갔다. 순위도 많이 상승해서 백팔 명에 드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보아하니 운이 좋은 건 세 사람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청산령을 주워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시험 참가자들은 약 이천삼백 명 정도가 남았을 뿐이었다.
* * *
또 하루가 흘렀다.
어둑한 원시림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무들의 높이는 백 장이 넘어 보였고, 그 위에는 축축해보이는 검푸른 이끼가 붙어 있었다.
“앞으로 오백 리 정도만 더 가면 됩니다.”
마옥이 손바닥 위의 동어를 거두고는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마옥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 전부 검푸른 색의 높은 나무들뿐이었다. 수령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우르릉!
그때, 앞쪽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옆에 있는 나무들도 흔들렸다.
석목은 어두운 표정으로 앞쪽을 향해 걸어갔다. 나머지 두 남녀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백 리 정도 더 들어가자 석목의 눈앞에 공터가 나타났다.
사실 그것은 공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땅 위에는 수십 그루의 나무가 쓰러져 있었는데, 가지들이 끊어져서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무너진 나무 위에는 키가 큰 사람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그는 석목 일행을 등진 채 그들이 지나가야 할 길목에 있었다.
그는 푸른 옷에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등 뒤에는 한 쌍의 푸른 날개가 자연스레 접혀 있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석목 일행이 다가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석목은 경계심이 발동했지만, 참지 못하고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우르릉!
다시 한 번 큰 소리가 울렸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초록색 안개가 거대한 불의 공과 부딪혔다가 다시 흩어졌다.
초록색 안개 속에는 초록빛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고, 바깥쪽의 빛은 어둡고 옅었다. 안개가 불의 공과 부딪히는 순간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의 공에서는 붉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공은 표면에 초록색 안개가 묻자 그 부위만 작게 뭉쳐져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그중 한 덩어리가 석목과 가까운 곳에 떨어지면서 그곳의 땅이 타버려서 큰 웅덩이가 생겼다.
석목은 그쪽을 바라보았고, 웅덩이는 불에 타면서 점점 깊어졌다.
석목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 거대한 불의 공에서 무언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르릉!
허공의 불의 공은 빛을 더 크게 발했고, 중앙에서부터 수백 개의 주먹만 한 불의 공을 뿜어내는 모습이 마치 별똥별 같았다. 이어서 불의 공들은 초록색 안개를 행해 날아갔다.
그러자 그 초록색 안개 역시 질세라 빛을 뿜어냈다. 줄줄이 뭉쳐진 초록빛이 조각달로 변해 별똥별을 막아냈다.
펑! 펑! 펑!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늘에 초록색 안개가 자욱하게 흩어지며 허공에서 수십 개의 불의 공이 우르르 떨어졌다. 그것들이 땅 위의 나무들에 닿자 전부 끊어져 버렸다.
초록색 안개도 아래쪽을 향해 떨어지더니 거대한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검푸른 나무들이 순식간에 수분을 빼앗긴 듯 누렇게 변했고, 다시 회백색으로 변했다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 일행은 너무 놀라서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때 일행을 등지고 서 있던 키 큰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꽤 젊은 얼굴이었다. 양쪽 볼은 앙상하게 꺼져 있었고 광대는 튀어나왔으며, 눈은 깊게 패여 있었다. 높게 구부러진 매부리코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매부리코 청년은 석목 일행을 보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흐려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동공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등 뒤의 운철흑도를 꺼내들어 힘껏 휘둘렀다.
쓱!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매부리코 청년은 석목이 휘두르는 칼날 사이에 나타났다.
청년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버들나무 잎 같은 파랗고 짧은 칼을 끼우고 있었다. 그리고 칼들 사이에서 버드나무의 가지처럼 가볍게 날아다녔다. 열세 갈래의 빛이 나타났지만 그에게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했다.
청년은 칼날들 사이에서 번쩍이면서 석목이 휘두르는 칼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석목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매부리코 청년의 몸이 잠깐 사라졌다가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석목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상대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허허, 저의 무영신법(无影身法)을 알아보다니. 이 일에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매부리코 청년은 석목을 바라보며 흡족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철흑도를 꽉 쥐었다. 그의 왼쪽 옷자락 속에는 주먹이 쥐어져 있었고 두 눈은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 뒤에 있는 둘은 내 공격을 한 번도 막아내지 못했으니 왔던 곳으로 다시 꺼져! 수령왕이 온 몸에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가질 수는 없지.”
매부리코 청년은 석목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의 뒤에 서 있는 둘을 향해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몸을 돌렸다. 마열과 마옥을 본 그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다.
마열은 왼쪽 어깨를 움켜쥐고 놀란 얼굴로 매부리코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른쪽 팔을 잡고 있는 마옥은 얼굴이 창백했다. 그들의 옷자락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이미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석목도 성역의 세계를 몇 년간 떠돌아다니며 세상 구경을 많이 한 편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매부리코 청년은 석목을 공격하는 동시에 여유 있게 마열과 마옥까지 공격했다. 이런 실력과 속도는 살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석목이 뛰어난 시력으로 간신히 그의 움직임을 파악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다가는 그도 타격을 입을 뻔했다.
“무영신법……. 당신, 흑월성(黑月星)의 청장천입니까?”
마옥은 무영신법이라는 말을 듣자 흠칫 놀라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당신이 청장천이라고?”
마열도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며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버렸다.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빨리 꺼져! 내가 직접 움직여야 정신을 차리겠나?”
남자의 깊게 꺼진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쩍였고, 그는 입에서 무례한 말을 뱉어냈다.
마열과 마옥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에서 허탈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이곳에서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청장천은 그들의 청산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들이 옥패를 부수고 비경을 떠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지금 이 구역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석목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마옥과 마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물러나는 것을 보니, 청장천이라는 이 매부리코 청년의 실력은 절대 보통은 아닐 것이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허공에서는 두 갈래의 빛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초록 안개 속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중간에 뭉쳐진 초록빛이 더욱 단단해졌고, 그 속에서는 빛이 마치 거대한 새 모양으로 흐르고 있었다.
붉은 불의 공은 두 배나 더 부풀었고, 그 중심에 놓인 불은 이제 붉은 색이 아닌 금색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빠르게 돌고 있는 소용돌이 같았다.
금빛이 더 크게 번지더니 소용돌이의 회전도 빨라졌다. 그리고 그 중심부는 마치 폭풍의 눈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속은 광기 가득한 기운으로 넘쳐흘렀다.
훅!
양쪽의 거대한 날개가 펄럭였다. 초록 안개들이 뒤로 길게 늘어져서 마치 기러기처럼 불의 공을 향해 공격했다.
그 순간, 불의 공은 힘을 끌어 모아서 빠르게 회전하며 초록 안개쪽으로 향했다.
우르릉!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 모양의 눈부신 빛이 터져버렸다. 초록색의 짙은 안개와 금색 공은 한데 뭉쳐지는 듯하다가 다시 터졌고, 이내 주위로 흩어져버렸다.
왼쪽 하늘에 자욱하게 껴 있던 안개는 아래를 향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석목은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발가락을 세웠다. 그리고 백 보 정도 뒤로 물러나서 그 구역을 벗어났다.
눈앞에서 수백 그루의 나무가 불의 공에 의해 쓰러졌고, 그 위에서 불이 활활 타올라서 주변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공터의 중앙에 서 있던 청장천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석목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위에 다시 나타났다. 그의 눈은 불바다의 다른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칙! 칙! 칙!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고, 불바다의 맞은편에 있는 나무들이 수분을 뺏기며 죽어갔다. 빠르게 쪼그라든 나무들은 흙탕물처럼 땅 위로 늘어지더니 이내 녹색의 진득한 액체로 변해버렸다.
그 진액은 땅 위에서 천천히 흐르다가 순식간에 땅 아래로 침투해서 흙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공기 중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자욱했고, 검푸르던 땅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