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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76화 (376/916)

376화. 령왕원신(灵王元神)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은 요수들이 나타난 거지?”

청장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령왕이 불러낸 걸까?”

“아니, 이것들은 요수가 아니에요. 뿌리가 변신한 것입니다.”

적예자의 말에 석목이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을 꽉 쥐었다.

석목의 주먹에서 고리형 불빛이 날아갔고, 그것은 순식간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노란색 비익각망을 공격했다. 바로 방금 전 여경을 공격한 요수였다.

비익각망은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고리형 불빛의 속도가 너무 빨랐고, 불빛이 그의 몸을 스치자 불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비익각망은 머리를 치켜들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이어 요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공격받은 부위에서 노란색이 번쩍였고, 다시 구렁이로 돌아왔다.

“석 도우의 영동지체는 역시 대단하군요. 한눈에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다니요.”

청장천의 눈에는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 여경 혼자서만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입을 내밀고 있었다.

“다들 오는 동안 오행지력(五行之力)을 가진 뿌리들과 싸워본 적이 있나요?”

이전에 석목이 마옥 일행과 손을 잡고 쓰러뜨린 뿌리는 물 속성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정황으로 봤을 때 수령왕은 오행지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지난번처럼 뿌리 괴물로 변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경 내에 있는 다른 요수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높은 경지의 뿌리들은 오행지력으로 우리의 공법을 막아낼 것입니다. 쉽지 않을 거예요.”

석목의 말에 적예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을 했다.

그러나 여경은 몸에서 초록빛을 크게 뿜어내더니 앞을 향해 막무가내로 날아갔다.

“무슨 상관이야? 내가 가는 길을 막았으면 다 죽어야지!”

그가 두 손을 휘두르자 초록 안개가 길게 뿜어져 나갔고, 그것은 초록색의 구렁이로 변하더니 조금 전 그를 공격했던 비익각망을 향해 날아갔다.

비익각망도 지지 않고 돌진해오면서 두 마리의 큰 구렁이가 한데 엉켰고, 초록색 구렁이에 닿자마자 비익각망의 몸통이 부식되어 녹아버렸다. 이에 비익각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여경이 손을 흔들자 몸에서 푸른 비검이 날아가며 검에서는 사악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칙칙!

칼날은 열 개가 넘는 가느다란 초록빛으로 분리되어 비익각망의 몸에 꽂혔고, 곧 그 몸을 뚫고 지나갔다. 비익각망의 몸에는 여러 개의 사발만한 핏구멍이 뚫렸다.

구멍 주변으로 초록색의 빛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퍼졌다. 그러자 요수의 몸이 흔들리더니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여경이 두 손을 휘두르자 초록색 비검이 빛을 크게 발하더니 비익각망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둘로 나뉜 시체는 허공에서 길고 짧은 나무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초록 안개에 의해 걸쭉한 액체로 변해버렸다. 이 모든 일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것이었다.

쿵!

요수들로 둔갑한 다른 뿌리들이 이 광경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여경을 향해 공격했다.

여경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몸에서 초록색 빛을 더 크게 뿜어냈고, 빛은 수십 갈래로 나뉘어 뿌리 요수들을 촘촘하게 공격했다.

“여러분, 우리도 공격합시다. 빨리 끝내버리죠. 수령왕이 뿌리를 이곳으로 보낸 걸 보니 본체에 무슨 이변이라도 생겼나 봅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청잔천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앞쪽의 뿌리 요수들 위에 나타났고, 그의 손에 들린 작고 짧은 칼이 빛을 내면서, 이어 수십 갈래의 투명한 칼날이 날아갔다.

탱! 탱!

큰 소리가 울렸고, 수많은 요수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 요수들의 몸은 워낙 단단했다. 게다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곧바로 청장천을 행해 흉악하게 덤벼들었다.

“덤벼라!”

청장천은 소리를 지르며 요수 무리 속으로 들어갔고, 다시 한 갈래의 허영이 만들어지더니 몇몇 요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푸른 칼날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며 요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요수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고, 각양각색의 빛이 여기저기서 터졌지만, 청장천은 조금도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석목과 적예자도 요수들을 공격했다. 적예자의 몸은 검붉은 화염으로 둘러싸여서 뜨거운 열을 마구 발산했고, 주위의 공기가 진동했다.

푹!

그의 손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어떤 무기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빛은 붉은 도마뱀 요수의 머리를 내리쳤다.

붉은 도마뱀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몇 장 크기의 불의 공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공들이 날아오는 화염들을 막아내면서, 양쪽의 불이 스치는 곳마다 높은 온도에 공기가 끓어올랐다.

쿵!

불빛이 번쩍이더니 불의 공을 갈라놓았고, 계속해서 날아가서 붉은 도마뱀의 몸을 향했다. 도마뱀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갈래로 갈라졌고, 곧바로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렸다.

석목은 토템 비술을 부려 순식간에 변신했다. 그의 몸 주위로 금색 비늘 이 자라났고, 기운이 점점 강해져서 주위로 퍼져나가며 그 기운에 의해 주위의 공기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운철흑도를 꺼내지 않은 채, 몇 장 크기의 푸른 호랑이 요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랑이 요수는 크게 포효하더니 발을 내밀어 석목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그리고 강철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바람소리를 냈다.

“하!”

석목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온 몸의 힘을 주먹으로 내보냈고, 그의 주먹에서 빛이 번지더니 앞을 향해 날아갔다.

쿵!

석목의 주먹은 호랑이의 발톱과 꼬리보다 먼저 호랑이의 머리를 내리쳤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푸른 호랑이의 몸은 강한 힘에 밀려 멀리까지 날아갔다.

석목이 몸을 움직여 다시 푸른 호랑이에게로 향했고, 호랑이는 허공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에 석목은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둘러서 호랑이의 목을 내리쳤다.

칵!

푸른 호랑이는 단번에 목이 부러지면서 숨이 멈추었다.

그가 두 주먹으로 지계 경지의 요수를 물리치자 주위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석목은 멈추지 않고 요수로 둔갑한 다른 한 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뿌리 요수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러나 석목 일행은 모두 만 명에 한 명이 나올 만큼 막강한 실력자였고. 네 명이 힘을 합치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뿌리 요수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후우! 드디어 해결했네요. 귀찮은 것들!”

청장천이 왼쪽 어깨를 흔들더니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많은 뿌리 요수를 상대하느라 그들도 적지 않은 체력을 소모했다.

“시간이 없어. 앞을 봐라.”

적예자가 앞을 가리키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앞쪽 금지구역의 중심에서 한줄기의 은색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은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뚜렷하게 보였다.

청장천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저 방향은……. 보아하니 수령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쉬어갈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가시죠!”

다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뿌리 요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순식간에 은색 빛기둥 근처에 도착했다.

기둥에 가까워지자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강한 법력의 파동도 느껴졌다.

“누군가 먼저 도착했어!”

네 사람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당황하지 마세요. 아직 싸우고 있는 것 같으니 늦지 않았습니다.”

청장천이 말했다.

네 사람은 더 빠른 속도로 은색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눈앞에 있는 백 장 높이의 나무를 바라보았고, 그의 눈가가 살짝 떨리는 듯했다.

나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들어버렸다. 푸른 잎은 반 이상은 떨어졌고, 아직 걸려 있는 몇 장도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석목은 위를 바라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무의 꼭대기에는 한 장 정도 되는 파릇파릇한 어린 나무가 자라 있었고, 그 어린 나무는 큰 나무에 뿌리를 내린 채 원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작은 묘목이 큰 나무 위에 꽂혀 있는 것처럼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그 어린 나무를 둘러싼 은색 기둥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나무 위에 꽂혀 있는 어린 나무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수령왕입니다!”

청장천은 기뻐하며 말했다. 적예자와 여경도 얼굴에 탐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네 사람은 더 이상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나무 근처에서 두 무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 석목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쪽은 천위 경지의 뿌리 거인이었는데 몸통은 노란색이며, 강한 흙 속성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른 한쪽은 눈부신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고 화염의 힘이 흉흉한 불 속성 천위 경지의 뿌리 거인이었다.

두 마리의 뿌리 거인은 마옥 일행과 힘을 합쳐 싸웠던 푸른 물 속성의 뿌리 거인과 비교해도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노란 뿌리 거인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용모가 수려하고 달빛과 같은 흰색 옷을 입은 인족 남자였다.

석목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석목과 같은 곳으로 전송된 인족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노란 뿌리 거인은 입에서 노란 빛을 뿜어내며 두 개의 거대한 손으로 폭풍처럼 청년을 공격했다. 하지만 청년은 그것을 전부 막아내며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저렇게 강한 사람이었다니!”

석목은 용모가 수려한 청년의 실력에 놀랐다.

한편 붉은 뿌리 거인과 싸우고 있는 대상은 노란 회오리 기둥이었다. 그 회오리 기둥은 미친 듯이 바람을 날려 보내며 다양한 방식으로 붉은 뿌리를 공격했다. 회오리 기둥 사이에서 사람 형체 두 개가 희마하게 보였다.

“오 씨 형제다! 흥, 이미 와 있었군!”

적예자가 차갑게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또 누구야? 실력이 약해보이지 않는데. 석목, 저 사람과 동족인 듯한데, 아는 사이인가?”

여경이 석목을 보더니 의심하는 듯 물었다.

“이 비경에 들어온 인족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들이 다 저와 관련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석목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여경이 차갑게 말했다.

“여경, 그만 시비 걸어.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적예자가 여경을 한번 흘겨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온 몸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공격하려 했다.

그 순간 초록색 나무 주위의 은색 빛기둥이 갑자기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작아져서 눈 깜박할 사이에 그릇만한 굵기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눈부신 은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 일행은 동작을 멈추었다.

한 그루의 초록색 나무가 은색 기둥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꼭대기 위에 초록색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영체(灵体) 비슷하게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목구비도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형체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사발 굵기의 은색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은 한줄기의 은색 빛이 되어 초록색 사람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은색 빛을 흡입하자 그 사람의 형상은 점점 뚜렷해졌다.

“저건…… 수령왕의 원신일거야! 큰일이다. 천지의 정화를 흡수하여 경지를 높이려고 하고 있어. 저걸 흡수하면 실력이 더욱 강해지고 새로운 신통력이 생겨서 비경의 통제에서 벗어날 거야. 빨리 막아!”

청장천이 소리를 질렀다.

나머지 세 사람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그 꼭대기를 향해 날아갔다.

오 씨 형제는 네 사람이 꼭대기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막으려 했다.

그 순간 나무 꼭대기의 사람 그림자가 갑자기 머리를 돌렸다.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초록빛을 크게 뿜어내더니 희미한 두 팔을 흔들었다.

금빛과 초록색의 기둥이 그의 손에서부터 날아와서 땅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땅 위에서 소용돌이치더니 두 갈래로 갈라졌다. 굵은 뿌리들이 땅 위에서 날뛰었고, 반은 금색, 반은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뿌리들은 얽히고설키더니 거인이 되었다. 한 마리는 눈부신 금빛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짙은 초록빛이고,. 두 마리 모두 천위의 기운을 풍기며 석목의 무리를 가로막았다.

초록색 나무 꼭대기의 희미한 사람 그림자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지를 높이는데 다소 영향을 받은 듯했다.

갑자기 초록색 거인이 집채만 한 손바닥을 내밀더니 네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 마치 파리를 잡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엄청난 공격에 미련하게 정면으로 부딪힐 수 없었던 네 사람은 양쪽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 번의 공격으로 무리들을 잡지 못하게 되자 뿌리 거인은 입에서 소리를 내며 큰 발자국으로 석목과 여경을 향해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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