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영웅들의 춤판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맷돌 크기만한 공 수십 개가 거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공은 전부 초록색의 빛이 감돌고 있었고, 칙칙거리는 소리를 냈다.
“을목신뢰다!”
석목과 여경은 서로 마주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각자의 공법으로 힘을 합쳐 막아냈다.
다른 한 마리의 금색 뿌리 거인은 청장천과 적예자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금색 뿌리 거인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수백 개의 나무 가시가 촘촘하게 나와서 두 사람을 공격했다.
청장천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몸에서 기이한 빛을 발산했다.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그의 몸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쓱!
그의 그림자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큰 거인을 적예자 혼자서 싸우게 내버려두고, 금색 뿌리 거인을 피해서 초록색 나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적예자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청장천! 너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소리를 질러봐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고, 그에게는 청장천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그렇다고 숨어버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는 크게 화를 내더니 몸 주위로 붉은 화염을 내뿜었고, 거북이 뚜껑 같은 붉은 방패를 만들어냈다. 이어 그는 부문이 어른거리는 뚜껑을 몸 앞으로 치켜들었다.
이어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백 개의 금색 나무가시 중 절반이 적예자의 방패에 꽂혔다. 방패의 표면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금색 나무가시가 전부 녹아버렸다.
하지만 가시와 함께 밀려온 힘에 의해 적예자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는 두 팔을 교차한 자세로 방패와 함께 백 장 정도 밀려난 뒤에야 간신히 멈췄다.
금색 뿌리 거인의 발걸음은 둔하고 무거워보였지만, 실제 움직임은 전혀 느리지 않았다. 거인이 빠른 속도로 적예자를 향해 달려가며 거대한 손바닥으로 또 한 번 내리쳤다.
한편 초록색 뿌리 거인의 몸에서는 굵은 덩굴이 자라나서 문어처럼 주위를 휩쓸고 있었고, 입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초록색 빛의 공을 날렸기 때문에 석목과 여경은 그걸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공격했지만 도망갈 틈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격을 피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하면서 다른 한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청잔청이 암영지술(暗影之术)을 저 정도까지 수련했다니…….”
여경은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그의 눈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경은 몸에 초록색 안개를 두르고 있었는데, 덩굴은 그것에 닿기만 해도 곧 짓물러버렸다. 뿌리 거인의 공격은 점점 잦아드는 것 같았지만, 그는 계속 날아오는 초록색 빛의 공에 행여나 닿을까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피해냈다.
다른 쪽을 바라보던 석목은 시선을 거두고, 등 뒤에서 화염으로 둘러싸인 날개를 펼쳤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덩굴과 공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그는 머릿속으로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도중 사람들에게 들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수령왕은 수많은 뿌리를 만들어냈고 그 뿌리들은 각자가 놀라운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본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지계 무인도 쉽사리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 순간, 등 뒤와 위쪽에서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고, 대여섯 개의 굵은 덩굴이 뱀 꼬리처럼 바닥을 쓸며 다가오고 있었다. 덩굴들 사이에서는 초록색 빛이 반짝였는데, 맷돌 크기의 초록색 공 십여 개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실눈을 뜬 석목의 동공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순간 그의 몸이 희미해지더니 붉은 그림자로 변신했고, 줄기줄기 엉켜있는 덩굴과 초록색 빛의 공 사이를 뚫고 나갔다. 그의 몸은 몇 번 반짝이더니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가 벗어나자 주위에서 또다시 덩굴과 빛의 공들이 촘촘하게 조여 왔다. 도망가려야 도망갈 수가 없었다.
석목과 여경은 온 힘을 다해 벗어나려 했지만 초록색 거인의 힘은 막강했고, 그는 덩굴을 이용해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주위를 막아버렸다.
한편 청장천이 변신한 그림자는 수령왕이 있는 거대한 나무 밑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모두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뿌리 거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하! 여러분, 천천히 오세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둡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청장천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한줄기의 좁고 긴 푸른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나무를 타고 수령왕이 있는 위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용모가 수려한 인족 청년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눈에서 푸른빛이 번지더니 두 갈래의 푸른 기둥이 나타났고,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뿌리 거인을 바라보았다.
푸른빛이 반짝이며 뿌리 거인 옆의 허공으로 스며들자 주위에서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청년은 입으로 무엇인가 외우는 듯하더니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공간의 파동이 노란 뿌리 거인을 덮어버렸고, 이어 거인의 동작이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청년이 손을 흔들자 몸에서 수백 가닥의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투명하고 단단한 그 하얀 빛줄기는 날아올라서 노란 거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주위의 파동이 흩어지면서 뿌리 거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란 뿌리 거인은 소리를 지르며 청년을 향해 공격했다.
청년은 차가운 눈빛으로 빠르게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뿌리 거인의 몸속에 들어간 하얀색의 빛줄기가 꽉 조여 들었고, 그것은 그대로 거인을 잘라버리려 했다.
뿌리 거인의 동작이 다시 한 번 멈추더니, 거대한 몸통이 산산조각나면서 터져버렸다. 천위 경지의 존재를 가볍게 죽여 버린 것이다.
순간 청년의 얼굴이 약간 하얗게 변했고, 그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지자 곧바로 거대한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는 순식간에 삼사십 장이나 건너뛰는 빠른 걸음걸이로 청장천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청년의 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편이었지만 청장천에 비하면 빠른 편이 아니었다.
청장천은 이미 나무 꼭대기에 있는 수령왕 앞에 도착해 있었고, 이때 그의 눈에 희열이 어렸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청장천이 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지더니 푸르스름한 색의 커다란 손이 되어 수령왕의 원신에게 향했다.
하지만 원신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고, 계속해서 은색 빛기둥을 삼키고 있었다. 마치 다가오는 푸른 손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거대한 손이 수령왕의 원신과 한 장 정도 앞까지 다가갔을 때, 파릇파릇한 어린 나무 주위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느닷없이 수많은 뿌리가 나타났다. 마치 머리카락처럼 자라난 뿌리들은 전부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뿌리들은 얽히고설키더니 매듭을 만들어서 어린 나무와 나무 꼭대기의 원신을 보호했다.
펑!
커다란 손은 매듭에 부딪히자 금빛이 반짝이며 부셔져버렸지만 뿌리 매듭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청장천은 휘청거리며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가 두 손을 뒤집자 짧은 칼이 나타났다.
그는 두 손으로 연이어 공격했고, 투명한 빛줄기들이 짧은 칼 위에서 반짝였다.
윙!
투명하고 눈부신 빛이 짧은 칼에서 터져 나오며 큰 소리를 냈다. 작은 칼이 순식간에 몇 십 배 크기로 부풀어서 십 장 정도 되는 거대한 은색 칼날로 변했다.
칼날에서 희미한 은색 기운이 나와서 수십 장까지 뻗었고, 그것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강렬했다.
이때 허공이 갈라지더니 한줄기의 검은색 균열이 생겼고, 청장천은 큰 소리를 지르며 보이지 않은 무기를 두 손에 든 것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은색의 거대한 칼날이 잔영을 만들며 허공에 긴 균열을 만들었고, 이어 금색 매듭을 향해 강하게 내리꽂혔다.
윙!
칼날이 순식간에 빛을 강하게 뿜어내자 금색 매듭은 그 속에 묻혀버려서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나무 밑에서 뿌리 거인과 싸우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란 표정으로 위쪽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봤지만 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가죽 장갑 안의 왼손 주먹을 꽉 쥐고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위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청장천이 뿜어낸 은빛이 사라지면서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금색 매듭은 작은 상처 하나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있었다.
은색 칼날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번쩍번쩍 빛을 내며 안간힘을 썼지만 매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청장천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고, 눈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순간 그의 옆에 그림자 한 개가 나타났다. 용모가 수려한 청년이 도착한 것이었다.
“꺼져라!”
청년이 청장천을 멸시하는 투로 말하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자색 빛이 반짝이더니 거대한 도끼가 나타나서 청장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 자색 도끼는 얼핏 보기에는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었다. 표면에 단순한 자색의 꽃무늬가 새겨진 것 외에는, 농가에서 사용하는 도끼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도끼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사람의 간까지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퍽!
자색 도끼가 청장천을 향해 날아가자 도끼날이 스친 허공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청장천은 깜짝 놀라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휘둘렀던 회색 칼이 다시 그의 머리 위로 돌아와서 도끼의 공격을 막아냈다.
펑!
이어 자색 도끼와 은색 칼날이 부딪쳤다.
카강!
파열음과 함께 은색 칼날에 균열이 생겼다.
청장천은 그가 들고 있던 칼과 함께 엄청난 힘에 밀려 날아갔고, 그는 십 여장 정도를 날아간 뒤에야 간신히 멈춰 섰다.
칼날의 균열을 바라보는 청장천은 속이 쓰린 표정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법결 하나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커다란 은색 칼날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작은 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투명한 칼날 위에 생긴 균열은 여전이 선명했다. 짧은 칼의 빛이 어두워지면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
청장천은 입을 벌려서 작은 칼을 삼켜버렸고, 청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원망과 함께 독한 기운이 꽉 차 있었다.
단번에 청장천을 날려버린 청년은 더는 그를 쫓아가지 않았다. 도끼의 표면에서 다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영력의 파동이 용솟음치며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미 천위 경지에 근접한 듯했다.
도끼 몸통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곧 투명한 색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청년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팔을 흔들어 금색 매듭을 향해 내리쳤다.
칙칙!
문짝 크기만 한 도끼가 놀라운 기세로 날아갔다.
이어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더니 두 개의 도끼를 연달아 만들어냈다.
두 개의 도끼 그림자는 날아가서 순식간에 첫 번째 도끼를 따라잡았고, 세 개의 도끼는 일고여덟 장 크기의 자색 반달 빛을 만들어냈다.
자색 빛 속에는 수많은 부문이 있었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뿜어냈고, 그 때문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였다.
거센 바람이 불며 천지의 영기가 흉흉하게 밀려오더니 자색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끼는 다시 한 번 크게 부풀었고, 천지의 원기가 스며들자 순식간에 두 배나 커졌다. 표면에서는 번개 빛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건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쿵!
이어 반달 도끼가 금색 뿌리 매듭 위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