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79화 (379/916)

379화. 나무를 빼앗다

이를 악문 석목은 왼손의 가죽 장갑을 벗어던졌고, 왼손에서 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한편 여경은 석목을 묶어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나무토막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에서 탐욕스러운 빛이 스쳤다

“어딜 감히!”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줄기의 거대한 자색 도끼 그림자가 나타나서 여경의 옆을 힘차게 내리쳤다.

자색 도끼가 스쳐지나간 곳의 공기가 일그러지면서 무시무시한 압력이 그 사이에서 밀려왔고, 그것은 여경과 반 토막 난 나무를 그대로 가두어버렸다.

여경은 위압감으로 숨이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고, 강력한 힘이 사방에서 밀려와서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결국 여경은 반 토막 난 나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에서 초록빛이 감돌았다. 그 모습은 마치 푸르스름한 안개 공 같았다. 그는 공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밀려났고, 아슬아슬하게 자색 도끼를 피했다.

자색 도끼가 스쳐간 순간 하얀색의 무엇인가가 번쩍이면서 청년이 그곳에 나타났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경을 바라보며 한 손을 흔들자 한줄기의 빛이 반 토막 난 나무를 끌어당겼다.

쿵!

허공에서 큰 소리가 울리면서, 여경이 내뿜은 오색의 안개는 강한 빛을 내며 터져버렸다.

오색 안개가 도처에서 소용돌이쳤고, 그것은 다 흩어지기도 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불빛이 오색의 안개에 닿자 기이한 화염으로 변해버렸다.

이어 안개가 터지면서 밀려온 충격에 의해 반 토막 난 나뭇가지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붉은빛이 반짝였고, 희미한 그림자가 그 속에서 번쩍이더니 사라져버렸다.

붉은 그림자는 다시 번개처럼 허공에 나타나서 눈 깜박할 사이에 청년 옆으로 다가왔고, 그 그림자는 오른손을 빛 속으로 뻗었다.

그의 왼손에는 하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고 등 뒤에는 화염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붉은 빛 사이에서 하얀 화염줄기가 섞여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청년은 그 광경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눈에 핏대가 섰다.

그가 머리를 돌리자 충혈된 눈에서 푸른빛이 번지며 청년의 이마 쪽 피부가 갈라지더니 은색의 눈이 나타났고, 하얀빛이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멈춰!”

청년이 소리쳤다.

석목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조여 드는 걸 느꼈다. 그의 주위에서 기묘한 파동이 일렁였다.

‘큰일이다!’

석목은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등 뒤의 날개를 움직여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날개는 천근만근의 돌에 눌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석목 주위의 공기도 어느새 굳어버렸다. 마치 실체가 있는 물건이 몸을 조여 오는 듯했고, 허공의 바람마저 움직이지 않았다. 숲 속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그의 눈앞에 멈춰 있었다.

날개에서 타오르던 화염도 이상한 형태로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고, 마치 극도의 한기에 의해 순식간에 얼음조각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이다.

석목은 놀라서 두 눈으로 금빛을 뿜어내며 날개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허공에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하얀 선들이 나타났고, 공간 파동에 의해 날개 위로 밀려나 휘감긴 채 허공에 고정되어버렸다.

석목의 몸 위에도 하얗고 투명한 실들이 떠다녔다.

투명한 실들은 그의 몸통을 휘감거나, 뿌리라도 내리려는 듯 그의 피부를 뚫고 있었다.

이 투명한 실들은 모든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 주위 한 장 정도의 범위에서만 떠돌아다녔다. 그것들은 줄기줄기 허공으로 뻗으며 석목을 묶어버렸고, 두 장 크기 정도의 공 모양을 만들었다.

석목은 마음이 다급해지며 눈에서 금빛을 뿜어냈고, 하얗고 투명한 실이 떠다니지 않는 곳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여경의 몸도 움직이고 있었다. 즉,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하얗고 투명한 실에 의해 나뉜 한 장의 간격을 두고, 한쪽은 움직이고 다른 한쪽은 멈춘 상태였다. 말하자면 두 세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마치 석목과 연결된 시공간만 순식간에 절단된 것 같았다.

“부숴라!”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크게 번졌다. 그는 소리를 지르더니 한쪽 팔을 무겁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한쪽 손에 운철흑도를 쥐고 앞의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탱!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석목의 칼이 거대한 무엇인가에 튕겨서 다시 날아왔다. 투명한 실들은 몇 가닥만 끊어졌을 뿐이고 석목의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흥, 주제를 모르는군. 내 보물을 빼앗다니. 죽어라!”

청년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자색 도끼를 쥐었고, 도끼에서 폭풍이 몰려와서 석목을 향해 내리꽂히려 했다.

그러나 자색 도끼가 다가올 즈음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강하게 빛났다.

“핫!”

석목이 크게 기합을 넣자 그의 주변에서 하얀 기운의 파동이 들끓었다.

그가 왼손으로 주먹을 쥐자 팔 전체가 까맣게 타올랐다. 팔 표면에 적흑색 무늬가 구부러진 모양으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하얀 화염이 되어 번졌다.

석목이 왼쪽 주먹을 들자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몸에 붙어 있던 투명한 실들이 그 기운의 충격으로 끊어지기 시작했다.

쿵!

석목이 주먹을 날렸다.

팔에 새겨진 무늬가 밝게 빛났고, 주먹 위에서 들끓는 하얀 화염이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이어서 강한 힘이 뿜어져 나와서 주먹의 끝에 다다랐다.

주위의 공기가 진동하더니 공간 속의 힘이 점점 커지며 흩어졌다.

펑!

커다란 굉음과 함께 허공에 거미줄 같은 검은 균열이 생겼다. 수없이 많은 공간의 난류가 그 안에서 퍼져 나왔다.

날아오던 도끼는 난류의 충격에 의해 곧바로 흩어졌다.

석목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지더니 기류가 한참 동안이나 난잡하게 흘렀다.

하얗고 투명한 실들은 난류에 의해 잘려나갔고, 수많은 조각이 되어 허공에서 떠다녔다.

한 번의 주먹질로 속박에서 벗어나자, 석목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등 뒤의 날개를 세차게 퍼덕였고, 공기 중에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별똥별처럼 멀리 날아가서 하늘 저쪽 끝으로 사라져버렸고, 그 속도는 이전보다 열 배 정도는 빨라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은 한 순간에 일어났다.

청년은 크게 놀라더니 다급하게 한 손을 휘두르며 빛을 거두었다.

그는 흩어진 빛들을 거두다가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나무토막이 또다시 반 토막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짧은 시간에 석목이 나머지 반 토막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청년은 석목이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빛에서 괴팍한 성질이 스쳤다.

그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빠르게 모으더니 입으로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몸이 눈부신 흰 빛으로 변했다.

쓱!

하늘을 찢는 소리가 들리면서 흰 빛으로 변한 청년이 사라진 석목의 뒤를 쫓았다. 그는 하늘에 하얀 줄을 그으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한편 잠시 실신했던 여경도 다시 깨어났다. 그 역시 한줄기 초록빛으로 변해서 청년과 석목의 뒤를 쫓아갔다.

* * *

머나먼 어느 숲의 하늘 위.

석목이 등 뒤에 하얀 화염의 날개를 펼친 채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움직일 때마다 백 장이나 되는 거리를 날아갔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잠시 후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푸른 부적을 꺼내들었다. 거기에서 나온 한줄기 푸른빛이 그의 몸을 감싸자 비행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쓱!

그는 순식간에 하얀 그림자가 되어 몇 번 번쩍이더니 하늘 저 끝까지 날아갔고, 이윽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잠시 뒤에 석목이 사라진 곳에 하얀 빛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그를 뒤쫓아온 청년이었다. 청년은 이를 악물더니 석목이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이번에는 한줄기의 초록빛이 멀리서 날아왔다. 그것은 석목이나 청년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다가와서 멈춰 섰다. 여경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고, 안색도 어두웠다.

청년은 머리를 돌려 여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경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면서 눈에서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몸에서 초록색 안개를 내뿜었다. 그의 손바닥에도 옅은 초록빛이 나타났다.

청년이 못마땅한 듯 신음소리를 내더니 머리를 돌려 가볍게 숨을 내뱉었고, 그의 표정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청년을 몸을 움직여 한줄기의 잔영만 남긴 채 다시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여경은 그 광경을 보고는 잠깐 멈칫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석목과 청년이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보았다. 뭔가 내키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자리에 잠깐 멈춰 있던 여경은 초록색 안개로 몸을 감싼 뒤,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산맥이 이어져 있는 하늘 위로 한줄기의 하얀 그림자가 빠르게 날아왔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하얀빛이 사라지며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뒤를 한 번 바라보더니 눈에서 금빛을 반짝였다.

석목은 등 뒤에 있는 화염의 날개와 풍영부(风影符)를 가지고 단번에 수천 리를 날아왔다. 그 덕분에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석목이 잠시 긴장을 풀자 등 뒤의 날개에서 하얀 빛이 사라졌고, 크기도 작아졌다. 그는 날개에서 다시 붉은 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산맥을 한 바퀴 돌아본 석목은 어느 매끄러운 암벽 앞에서 멈추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몇 갈래의 붉은 빛이 나와서 암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 식으로 두세 번을 반복하자 암벽에 동굴이 만들어졌다.

석목은 동굴에 들어가서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흔들자 푸른빛이 동굴 주위로 뻗어나갔다. 그는 진법을 펼쳐서 동굴 전체를 그 빛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제야 석목은 한숨을 돌렸다. 계속 전속력으로 날아오느라 몸속의 진기가 바닥이 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공격을 피해서 쉴 수 있었다.

석목은 두 개의 단약을 꺼내 삼켰고, 손을 흔들어서 불 속성의 중급 영석 두 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이어 그의 몸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갔다.

하루 밤낮이 꼬박 지난 후에야 석목은 천천히 눈을 떴다. 두 갈래의 빛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몸속의 진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석목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초록색의 나무토막을 꺼내들었다. 그가 탈취해온 수령왕의 몸 일부분이었다.

석목은 손을 뻗어 나무토막을 매만지며 흡족한 기색을 드러냈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며 드디어 성과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나무토막을 살피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영력의 파동만 조금 발산하고 있을 뿐이고, 별다른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마옥이 말한 나무 심장 성액 같은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청장천 무리가 고작 이런 걸 차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운 것일가? 아니면 나무 심장 성액은 다른 나무토막에 있는 걸까?

순간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어루만졌다.

“음…….”

그는 나무토막의 한쪽에 아주 가느다란 초록색 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시력이 매우 뛰어나지 않았다면 발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석목은 잠시 멈칫하더니 금전검을 을 꺼내들었고, 초록색 줄기를 따라 살짝 그었다. 검은 가볍게 들어갔다.

석목은 눈썹 끝을 치켜세우며 금전검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퍽!

상당히 딱딱했던 나무토막이 두 갈래로 갈라졌고, 한 치 정도 되는 푸른 나무줄기 한 가닥이 중간에서 떨어져 나왔다.

석목은 재빨리 푸른 나무줄기를 손으로 잡았다. 갈라진 나무토막 사이를 보니 중심부에 패인 곳이 보였고, 나무줄기는 그곳에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석목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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