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기괴한 나무줄기
푸른 나무줄기는 무게가 꽤 나갔다. 그리고 다른 나뭇가지와는 달리 표면에서 투명한 빛이 느껴졌다.
나무줄기의 투명한 표면에 꽃무늬가 있었는데, 그 모양새는 영문과 비슷했다. 하지만 석목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이 영문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무줄기는 어떤 영기도 발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식으로도 나무토막 안에 이런 것이 있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무줄기는 희미한 향기도 발산하고 있었는데, 마치 사찰에서 나는 은은한 향 같아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석목은 나무줄기를 바라보며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어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말랑말랑해보이던 나무줄기는 의외로 단단했고, 금속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좀 더 힘을 가했다. 하지만 나무줄기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재미있군…….”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줄기의 붉은 빛이 나무줄기를 향했다.
팍!
붉은 빛이 나무줄기 표면에서 터졌다. 그러나 나무줄기는 여전히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깨끗했다.
석목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이 나무줄기가 확실히 기이한 면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것이 어떤 쓰임이 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한동안 나무줄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일단 내려놓았고, 갈라진 나무토막도 함께 챙겼다. 나머지는 비경에서 나간 뒤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석목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서 동굴을 막고 있던 진법을 해제했다.
그는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나가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시험 기간은 아직 삼분의 일이나 남아 있었다.
석목은 청산령을 꺼내들어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길에서 영패를 주운 덕분에 간신히 백팔 명 안에 들 수 있었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렸고, 이 정도 순위라면 최소한 청란성지에 입문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 팔명 중에서도 등급이 나뉠 것이었다. 더 많은 자원을 얻어서 구전현공 수련을 위한 기초를 잘 다지려면, 최대한 서른여섯 명 안에는 들어야했다.
석목은 고민하다가 한 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영수주머니를 꺼내자, 채아가 그 안에서 날아오르더니 두 날개를 퍼덕이며 그의 어깨에 앉았다.
“후……. 석두, 영수주머니에 이렇게 오래 가둬두다니! 너무 힘들잖아!”
채아는 나오자마자 큰소리로 투덜거렸다.
“됐으니까 우선 조용히 해. 네가 도와줘야 할 게 있으니까. 최대한 많은 요수를 사냥해야 하니 네 눈이 필요해.”
“하하, 당연하지!”
채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목의 등이 붉게 번쩍이더니 화염의 날개가 나타났고, 그는 산맥의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석목이 있는 이 산맥은 영기가 짙었고, 오는 동안 이곳에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꼈었다. 마침 그는 요핵이 필요한 참이었다.
“석두, 삼십 리 정도 앞에 요수 소굴이 있는데, 그 안에 지계급 도마뱀 요수 몇 마리가 있어.”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채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목은 기뻐하며 채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석목은 산 위의 하늘에서 낮게 날고 있었다. 아래쪽 산기슭에는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계속 검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석목이 한손을 흔들자 눈부신 붉은빛이 날아가서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콰광!
굉음과 함께 붉은 빛이 터지며 산맥 전체가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쉰 목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동굴 속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몇 가닥의 알록달록한 그림자가 동굴 속에서 날아서 나왔고, 온 몸이 오색으로 된 도마뱀 요수였다. 몸길이는 칠팔 장은 되어보였고, 마치 오색 철갑을 몸에 두른 것 같은 생김새였다. 두 눈은 검붉은 색이었는데 매우 흉악하고 난폭해보였다.
다섯 마리의 도마뱀 요수가 내뿜는 기운은 지계 경지에 도달해 있었지만, 전부 지계 초기 수준이었다.
도마뱀들이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아, 잠깐 떨어져 있어.”
석목은 부드럽게 채아를 밀어서 멀리 날려 보냈고, 이어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붉은 원숭이 법상이 뒤에서 나타났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비경의 어느 숲 하늘에서 한줄기의 칠흑 같은 빛이 나타나더니 한데 뭉쳐져서 거대한 칼의 그림자가 되어 세차게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 처참한 울음소리가 들리며, 푸른빛과 검은빛이 부딪혀 주위에 강한 법력의 파동을 일으켰고, 거센 바람이 주변의 물과 진흙을 휩쓸었다.
폭풍이 사라지고 나서 그 안의 상황이 드러났다.
손에 운철흑도를 쥔 석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팔에는 두 갈래의 상처가 나 있었지만, 깊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앞에는 몸 크기가 무려 이십 장이나 되는 거대한 요수 한 마리가 피에 흠뻑 젖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 교룡 요수는 목이 부러져서 피를 내뿜고 있었는데, 주위 십 장 이내가 전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석목은 교룡의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서 머리를 가르고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요핵을 꺼냈는데 요핵에서 놀라운 영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이 교룡 요수의 경지는 이미 지계 후기까지 다다랐기에 요핵이 품고 있는 영력도 상당했다.
“석두, 네가 이렇게 큰 요핵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나의 공로를 무시하지 못하는 거 알지? 나가면 맛있는 거 잔뜩 줘야 해!”
어느새 날아왔는지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익숙하게 내려앉으며 말했다.
“알았어.”
석목은 중급 영석 한 개를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청산령을 꺼내들어 푸른 요핵을 그 안에 넣었다.
그는 점수가 상당히 많이 오른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곳에 더 머물지 않으려는 듯 초록색 피풍을 꺼내 걸치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석목은 몸을 흔들어서 한줄기의 희미한 초록색 그림자가 되어 멀리 날아갔다.
며칠 동안 석목은 비경의 곳곳에서 요수를 사냥했다. 그리고 청장천과 청년의 눈을 피해 다니느라 대부분 이 초록색 피풍으로 몸을 감추고 다녔다.
생각 외로 비경 속은 조용했고, 수령왕의 출몰이 엄청난 파동을 일으킨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수령왕의 존재를 알고, 또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일부 강한 세력의 제자들뿐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석목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자유롭게 요수를 사냥하여 더 많은 요핵을 모을 수 있었다.
하루 뒤, 석목은 작은 산 속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중급 영석이 들려 있었다.
“석두,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시험이 끝날 때가 얼마 안 남았지?”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에서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은 밤낮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날짜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계산에 따르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이제 끝날 때가 됐는데 너는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요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수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른여섯 명에 포함되기만 하면 돼.”
채아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석목이 대꾸했다.
수령왕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이후, 석목은 채아의 뛰어난 시력의 도움을 받아서 효율적으로 요수를 사냥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순위는 계속 올라가서 이제 상위 서른여섯 명 이내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지금 석목의 순위는 삼십 오위였다. 그는 일부러 이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석목의 목적은 상위 서른여섯 명 안에 들어가서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것이었다. 너무 높은 순위를 차지해봤자 불필요하게 사람들의 시선만 끌게 될 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석목은 많은 비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곤란해질 게 뻔했다.
그 순간 석목이 몸에 지니고 있던 옥패가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그 빛에 뒤덮이듯 둘러싸였다.
석목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무슨 일인지 깨달았다.
“이것은……. 시간이 다 되었나보군.”
비경에서의 시험이 드디어 끝난 것이었다.
그는 두말없이 채아를 허리춤의 영수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몸에서 하얀 빛을 반짝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비경의 곳곳에서 하얀빛이 반짝였고,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석목은 눈앞이 희미해지는 걸 느꼈고, 그 뒤 다시 눈앞이 밝아지자 공터가 시아에 들어왔다. 비경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던 그곳이었다.
공터에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 있었는데, 천 명 정도 되어보였다. 많은 사람의 눈에는 망연자실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고, 누군가는 겁에 질려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또 누군가는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번 입문 선발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경에 들어갈 때는 만 명은 족히 되었던 것 같은데, 돌아와 보니 결국 남은 사람은 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도중에 비경을 떠난 사람 중 일부는 옥패를 부수고 밖으로 전송됐고, 그들은 자격은 상실했지만 목숨은 건진 것이었다. 연령 조건만 충족되면 그들에게는 이후에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비경 안에서 영원히 몸을 묻은 사람들도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버텨낸 천재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석목과도 마주쳐서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청년, 청장천, 여경, 적예자, 오 씨 형제, 자하 등이 모두 있었다. 마옥과 마열도 끝끝내 마지막까지 버틴 모양이었다.
수령왕을 차지하려고 싸웠던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었다.
용모가 준수한 청년은 위협하듯 칼 같은 눈으로 석목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석목은 얼굴에 미소를 띠기만 할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경 역시 못마땅한 눈빛을 석목에게 보냈다.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청장천만이 온화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석목을 향해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석목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표정은 다양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수령왕에 관한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마치 그런 건 처음부터 나타난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무언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비경에 나타난 기이한 뿌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청장천에게서 눈길을 돌리는 순간, 옆에 있던 적예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청장천을 노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석목은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청장천은 적예자 혼자 뿌리 거인과 싸우도록 버려두고 수령왕을 독차지하려 했다. 적예자는 그 일에 대해 앙심을 품은 듯했다.
그때 청장천과 적예자, 그리고 오 씨 형제가 수령왕을 두고 싸우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 씨 형제는 한쪽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석목은 갑자기 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머리를 돌렸다.
십 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초록색 소녀가 꼿꼿이 서 있었다. 그녀는 강수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