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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81화 (381/916)

381화. 비경 속을 나가다

강수수는 다소 복잡한 눈길로 석목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눈길을 돌렸다.

석목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광장 앞쪽의 허공에 눈썹을 드리운 노인이 옷소매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바로 비골이었다.

“입문 시험은 끝났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끝까지 버텨낸 분인데, 모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칙대로 비경 내에서 차지한 모든 것은 청산령안에 있는 것 외에는 전부 다 가져가도 됩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백팔 명의 제자가 입문하게 될 것인데, 성적에 따라 선발됩니다. 그럼 이제 청산령을 반납하십시오.”

비골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푸른빛이 그의 몸에서 반짝이더니 몇 장 크기의 푸른 비석이 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석목의 허리춤에 있던 청산령이 빛을 번쩍면서 그 비석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조금 놀랐지만 손을 내밀어 붙잡지는 않았다. 주위의 모든 청산령이 그 비석을 향해 날아갔기 때문이다.

순간 하늘에서 수많은 푸른빛이 움직였다.

청산령이 안으로 들어가자 석비의 표면에서 물결이 일었다.

비골이 손을 흔들어 법결을 시전하자 푸른 비석이 번쩍거리다가 멈추었다.

곧이어 비석 위에 글씨가 한 줄씩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었는데, 전부 백팔 명이었다.

모두 자신의 순위를 알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목을 길게 빼고 글씨를 보려 애썼다.

석목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의 이름도 곧 나타났는데, 삼십오 등이었다. 상위 제자 등급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일 등은 조극(赵戟)이라는 사람이었다. 석목 외에도 몇몇 사람이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조극…….”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등은 청장천, 삼 등은 자하였다. 그리고 사 등은 적예자나 여경이 아닌 강수수였다.

석목은 의외라는 듯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강수수를 바라보았다.

강수수라는 여인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여경 같은 사람들에는 아직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석목은 그녀의 최종 순위가 이렇게 높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적예자, 여경, 오 씨 형제는 그 뒤를 이었다. 전부 십 등 안에 이름을 올렸다.

마옥의 이름도 비석에 나타났다. 비록 뒷부분에 있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청란성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호명된 백팔 명은 따라오세요. 물론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있습니다. 우리 청란성지에서 귀중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비골이 말했다.

석목을 포함한 백팔 명은 전부 비골을 따라갔고, 광장에 남은 사람들은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날아와서 남은 사람들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석 도우, 서른여섯 명에 포함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어디선가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마옥이 석목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마 도우, 감사합니다. 당신도 청란성지에 순조롭게 입성하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저를 감히 석 도우와 비교를 하겠습니까? 앞으로 청란성지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마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원래도 미모가 뛰어난데다 이렇게 꽃처럼 웃고 있으니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목은 마옥의 미모를 알아보지 못한 듯 말했다.

“그럼요. 우리 모두 새롭게 입문한 제자이니 서로 챙겨줘야지요.”

그녀는 석목이 대화를 길게 이어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깨닫고는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전부 석목이 마옥에게 한 말과 비슷했다. 대부분은 입문 후에 서로 잘 돕자는 것이었다.

조극과 청장전 등 십 등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석목은 그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앞에서 걸어가던 비골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던 비골이 청란성수 근처의 숲에서 멈춰 섰다.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아치형의 석문이었다. 숲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그것은 높이가 칠팔십 장은 되어 보였다. 전체는 푸른 재질로 이루어졌고 위에는 무늬가 줄줄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본 석목은 눈썹을 치켜떴다. 석문 위에 새겨진 무늬들은 그가 보아온 것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신식으로 자세히 훑어보려 했으나, 신식이 석문에 닿는 순간 다시 튕겨서 돌아왔다.

“자, 여기가 청란성지의 입구입니다.”

비골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아치형 석문 사이로 보이는 것은 숲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던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석 도우, 뭐가 보이나요?”

마옥이 석목의 표정을 살피더니 물었다.

“별 거 없어요. 들어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석목은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짧게 답했다.

비골이 푸른 영패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영패에서 뻗어나가더니 거대한 석문 위에서 떨어졌다.

이어서 석문 표면의 무늬가 밝아지더니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 비골이 옷을 휘날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석문 사이를 지나갔다. 석문 중간을 지나가는 순간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였고, 비골의 모습이 그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순서대로 석문을 통과해서 사라졌다.

석목도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고, 그 순간 눈앞이 하얗게 반짝이더니 시야가 가려졌다.

곧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고, 석목은 말로 설명 못할 상쾌함을 느꼈다. 곧이어 눈앞이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 주변은 수 리나 뻗어 있는 커다란 광장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 모두 표정이 다양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마치 극락 같았다. 구름을 찌르는 듯한 산봉우리가 여기저기 솟아 있었고 구름이 둥둥 떠다녔으며, 계곡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온통 푸른 산과 물로 이루어진 실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학들이 산봉우리 사이를 날아다니며 맑은 울음소리를 남겼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간혹 노을빛이 뿜어져 나와서 주위의 산과 물을 오색영롱하게 물들여놓았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공간의 영력 농도는 동성성의 세 배나 되었다.

“접인 사자는 어디 있는가?”

비골 장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기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푸른 옷을 두른 잘생긴 청년이 두 손을 앞으로 공손이 모으며 다가왔다.

“이들 백팔 명의 제자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모시고 성지의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게나.”

비골 장로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잘생긴 청년이 공손하게 답했다.

제자들의 인계를 마친 비골은 몸에서 빛을 내더니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사제(师弟) 여러분, 저는 능풍(凌风)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들으신 것처럼 장로님의 지시에 따라 여러분을 청란성지로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잘생긴 청년이 몸을 돌려 사람들에게 말했다.

“능풍 사형(师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장천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을 각자 앞으로 나와서 능풍에게 인사를 했다.

“여러분, 늦었으니 우선 저를 따라오세요.”

능풍이라는 청년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더니, 몸을 돌려서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갔다.

석목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수백 장 거리의 광장 끝에 수십 리까지 뻗어나간 칠색 무지개 문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아치형 문처럼 우뚝 서 있었는데, 그 위 수십 장 높이의 하늘을 화려하게 비추었다.

아치형 무지개 문을 지나자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십여 장 넓이의 통로였고, 성지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석목은 통로 위에서 몰래 영목신통을 사용해서 앞쪽을 바라보았다. 청란성지에는 도처에 청록색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는데, 외부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통로의 양쪽에도 나무들이 무성해서 울창한 원시림이 이어졌고, 숲 사이로는 커다란 건물들의 푸른 기와와 회색의 처마가 희미하게 보였다.

보아하니 그 숲 속에는 여러 채의 궁전이 지어져 있고, 그것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제 여러분, 저희가 지금 위치한 곳은 청란의 일 층입니다. 청란성지는 총 다섯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위층에서부터 각각 성, 천, 지, 현, 황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제일 아래층인 황층 구역입니다.”

능풍이 소맷자락을 휘젓더니 눈앞의 구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능풍 사형, 백년 제자는 무엇입니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청장천이 질문했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내내 능풍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전부 능풍을 바라보았다.

“하하, 입문한지 백 년이 안 된 제자들을 말합니다. 저 또한 거기에 속하지요. 물론 청란성지에는 천년 제자와 만년 제자도 있습니다.”

능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만년제자라면 입문한 뒤로 만 년 동안 수련을 했다는 뜻인가요?”

뾰족한 귀에 토끼 입술을 가진, 붉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저희 청란성지는 백만 년 동안 계승되어 왔으니까요. 공력이 깊은 대단한 분들, 그리고 또 어떤 종족에 비하면 만 년이라는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능풍이 말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이곳에 있는 많은 청년 제자에게 만 년이라는 세월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천년 제자와 만년 제자들은 각각 지계 구역과 현계 구역에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장로와 성계까지 도달한 제자들은 천계 구역에서 머무르고 있지요. 가장 높은 곳인 성계 구역은 청란성지의 존상(尊上)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청란성지에서 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하층 구역을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층 구역에 있는 사람들은 초대를 받거나 특별한 신물이 있어야만 상층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반한 자에게는 규칙에 따라 엄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능풍은 한 번에 긴 설명을 하더니 마지막에 강조하듯 말했다.

그때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황계 구역이 넓어서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는 않겠네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원래의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온 자릉이었다.

“사매는 이 황계 구역이 청란성지에서 가장 넓다고 생각하나요?”

“음……. 아닌가요?”

능풍이 묻자 자릉이 머리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하하하, 남은 네 개의 구역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황계 구역과 같이 전부 단독으로 분리된 공간입니다. 그 구역은 우리의 육안으로 판단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깔려 있는 천지의 원기도 점점 짙어질 것입니다.”

능풍이 웃으며 설명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들썩였다.

그러나 시험에서 일 등을 차지한 인족 청년만은 뒷짐을 진 채 먼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는데, 아마도 능풍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도 능풍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층이 높아질수록 원기가 짙어진다고 했는데, 지금 있는 곳의 원기만 해도 동성성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동성성 자체의 영기도 남해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어느새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렇군요.”

자릉이 능풍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끄덕였다.

“자, 사제 여러분. 구역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저를 따라서 만약원(万药园)으로 가봅시다.”

능풍이 그렇게 말을 하며 몸에서 자색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한줄기의 빛이 번쩍이더니 청익비차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각양각색의 빛이 번쩍이더니 다양한 모양의 비선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오색영롱한 빛들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황계 구역의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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