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청란의 곳곳
“십 년밖에 시간이 없다니!”
능풍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정확하게 들렸다.
그의 말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차가운 물을 퍼부은 것 같았다. 이제 막 청란성지에 입성하여 찬란한 미래를 그리고 있던 이들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능풍의 말한 것의 뜻은 아주 명확했다. 수천청산 비경에서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그중에서 최소 칠십이 명보다 실력이 뛰어나야 상위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위 제자도 일시적인 자리에 불과했다.
즉, 청란성지에 들어선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진정한 시작을 의미했다.
청란제자의 신분을 유지하려면 십 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십 년 뒤의 대결에서 순위 안에 들어야만 이 쉽지 않은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었다.
석목 등 서른여섯 명 앞에 놓인 미래는 더욱 잔혹할 게 분명했다. 성지의 일 층에 있는 제자들은 모두 상위 제자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남겨진 백팔 명의 상위 제자 역시 전부 실력이 만만치 않았기에, 그 위치까지 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울 게 분명했다.
석목 무리는 이곳저곳의 연무대를 구경하며 능풍의 설명을 들었다. 그들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연무대 근처에 있던 기존의 제자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저기를 봐. 능풍 사형이 데려온 저들이 이번에 새로 입성한 제자들인가 봐. 쯧쯧, 말라비틀어진 대추 잎처럼 생긴 것들이……. 별 거 없어 보이는데?”
“허, 인족들도 있네! 흥, 저런 하급 종족들도 청란성지에 들어온다고?”
“보아하니 이번 애들은 글렀다. 십 년 뒤면 다들 나갈 게 뻔해.”
“예쁜 여자들은 몇몇 있구먼, 히히. 어린아이도 있어.
그들은 석목 등 신입들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했고, 심지어 막말까지 해댔다.
또 일부는 눈에 불을 켜고 마옥과 강수수 등 미모가 뛰어난 몇몇 여자의 몸으로 눈길을 돌렸다.
속내를 조금도 숨기지 않는 그들의 말을 듣고, 신입 제자 중 성격이 급한 몇몇이 화가 나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존심이 센 적예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나름 자신의 출신지에서 인정받아온 천재로, 이런 비웃음은 처음 들어보는 탓에 전부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만약 이곳이 청란성지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싸움이 일어났을 게 뻔했다.
심지어 점잖은 청년 조극마저 안색이 어두워져서 화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석목도 인족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했다.
오래 전 석목은 풍성에서 제일가는 무공자였다가 석후폐맥으로 몰락하며 사람들에게 온갖 비웃음을 당했다. 그 바람에 모든 것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남해성의 동주대륙 등 열악한 지방에서 한 걸음씩 전진해 이곳까지 왔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떠받들어져온 천재들보다는 훨씬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고, 빈정대는 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석목은 진정한 실력만이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점은 남해성이나 미양성역에서도, 심지어 삼대 수련 성지인 청란성지에서도 모두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수련은 무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련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마음의 수련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분노 등 잡념으로 심경을 흐려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마음에 마(魔)가 침입하면 앞으로 실력을 기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능풍이 경고했다.
그 말을 듣자 적예자 등 화가 나서 기존의 제자들을 노려보던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능픙을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능풍 사형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석목도 그 순간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사제 여러분, 갑시다.”
능풍은 오래 머물지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잠시 후, 그는 사람들과 함께 현령제를 나갔고, 돌숲을 지나 거대한 푸른 돌문 앞에 도착했다.
그 돌문은 이십 장 높이에 십여 장 넓이의 돌문이었는데, 윗부분에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편액이 있었고, 그 위에는 성전각(圣典阁)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돌문의 중간에는 물결 같은 신비한 푸른빛 막 한줄기가 수시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성지 제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 빛의 막을 수시로 드나드는 중이었다.
석목은 돌로 만든 편액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는 이 수미공간이 어떤 곳인지 대충 알아차린 듯했다.
“아마도 이 편액을 보고 다들 짐작하셨을 것입니다만, 맞습니다. 이곳은 저희 청란성지의 공법 전집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이곳 또한 여러분이 앞으로 수련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능풍이 말하며 앞장서서 들어갔다.
사람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의 뒤를 따랐고, 석목도 사람들을 따라 빛의 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지더니 곧 넓은 공간에 도착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석목의 안색이 이내 변했다.
그 공간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곳곳에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백옥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수많은 사각형 석판이 허공에서 떠다녔는데, 난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석판들은 전부 면적이 넓었는데, 큰 것은 광장만 했고, 작은 것은 한쪽 길이가 칠팔 장 정도였다. 그 위에는 큰 서적꽂이가 있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서적이 꽂혀 있었다.
서적꽂이 한 개당 수천 권의 서적이 있는 듯했고, 옥간이나 죽간(竹简)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리고 서적꽃이는 금제의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공간에 있는 석판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고, 그 위에는 또 셀 수 없이 많은 서적꽂이가 있었다. 그러니 서적의 수는 더 많을 것이었다.
석목도 지금껏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며 견식을 쌓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놀라서 입이 크게 벌어졌다. 눈에도 온통 놀란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넓은 공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몇몇 제자가 석판들 사이에서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무엇인가 잘못 건드릴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렇게 많은 서적이 있다니, 역시 미양성역의 삼대 수련성지로군…….’
석목은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깊은 숨을 내쉬며 속으로 감탄했다.
“청란성지의 모든 서적은 다 이곳에 있습니다. 이 성전각에는 모든 성역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각종 공법에 대한 서적이 있죠. 술법밀권(术法密卷), 심지어 조잡한 토납(吐纳) 수련법, 권법이나 도검 등의 무기에 관한 것 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밖에 성역 세계에 관한 인문과 지리 등의 자료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조 이후 수많은 선배들이 백만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모아온 결정체입니다.”
능풍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성역 세계의 모든 수련 공법이 전부 이곳에 있다니…….’
능풍은 웃으면서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아마도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종문이 소장하고 있는 서적의 방대함으로 치자면, 청란성지는 미양성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웅성거렸다.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곳에서 그런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청란성지의 수련 서적은 정교합니다. 삼대 조화신통(造化神通)은 물론이고, 십대 독문 진종공법(镇宗功法) 또한 성계 경계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전설에 나오는 신경(神境)에까지 도달할 수 있지요.”
능풍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상기되었다. 삼대 조화신통, 십대 진종공법……. 이 단어들만으로도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조극, 청장천, 자하 등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석목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는 이미 삼대 조화신통의 하나인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능풍 사형, 이 서적꽂이들은 전부 금제가 걸려 있군요. 서적을 보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겁니까?”
청장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능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이곳의 서적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현영점(玄灵点)입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썹을 치켜떴다.
능풍이 한 손을 뒤집자 손바닥만 하고 푸르스름한 옥패가 나타났다. 그는 옥패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잠시 후 여러분에게 한 개씩 나누어드릴 현령벽(玄灵璧)입니다. 이것에 현령점을 저장해두면 됩니다. 현령벽은 자신의 혈계(血契)로만 연결되어 본인만 사용할 수 있고, 사적으로 거래하거나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성전각 뿐만 아니라 현령탑의 곳곳에서 이것이 쓰일 것입니다. 단약이나 각종 천재지보(天材地宝)를 구입하려면 이 현령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능풍의 손바닥 위에 놓인 현령벽을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조극, 적예자, 청장천 등 규모 있는 세력에서 온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또 성전각은 현령탑의 핵심적인 장소입니다. 청란성지 공간 다섯 층 중에서 누구나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하게 곳입니다. 나중에 이곳에 오게 되면 꼭 조심해야 하며, 누구와도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됩니다. 높은 층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으니까요.”
능풍이 엄숙하게 말했다.
“능풍 사형,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능풍의 설명을 듣고 서둘러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능풍은 이곳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을 바로 데리고 나갔고, 잠시 후 또 다른 공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목제 가구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적이 아니라 칼과 검, 모양이 기괴한 무기 등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청란성지의 신병각(神兵阁)입니다. 영기나 무기 등 보물을 만들고 파는 곳입니다.”
석목은 그 장소를 쭉 훑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곳에 놓인 것은 영기였고, 법기는 거의 없었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진열대에는 금제가 드리워져 있어서 빛이 은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운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은……. 보물이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놀라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는 남해성에 있을 때 이미 무진 도인의 진정한 보물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내놓고 파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작은 소리고 속닥이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능풍은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고 곧이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는 신병각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천성전(天星殿)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얼핏 보면 별하늘 같은 장소였다. 별빛이 반짝이는 곳곳에 거대한 법진의 허영들이 돌고 있었고, 별빛이 법진에 반사되어 모여 있었다.
천성전은 천지의 영기가 매우 짙은 곳이었다. 석목이 조금의 공법을 부려보았을 뿐인데 주위의 영기와 별빛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 바람에 그의 경지가 조금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곳이 기이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듯, 모두 좋아했다.
“이곳은 수많은 별빛 원기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청란성지의 대단한 분이 특별한 금제를 설치해서, 성역 세계의 근본인 천지 혼돈의 힘이 끊임없이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 그 속도가 백 배는 빨라집니다.”
능풍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많은 사람이 이 흔하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법을 사용했고, 주위의 별빛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능풍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에 이곳에 들어오려면 아마도 적지 않은 현령점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너무 오래 머물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잠시 구경만 한 뒤 능풍을 따라서 이동했다.
이어서 일행은 종문에서 각종 임무를 부여하는 만법각(万法阁), 단약을 판매하는 선약재(仙药斋), 희귀한 영석을 판매하는 백진곡(百珍谷) 등을 구경했다. 그러면서 석목 일행은 청란성지가 어째서 미양성역의 삼대 수련성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석목의 눈에서 흥분의 기색이 스쳤다. 그가 전에 겪었던 흑마문 같은 작은 종문은 말할 것도 없고, 통천선교나 천오상회 등 남해성에서 제일가는 커다란 세력도 청란성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의 성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