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동부(洞府) (1)
반 나절이 지날 즈음 사람들은 원형 통로를 걷고 있었다. 통로의 주변은 깊은 바다였는데, 투명한 금제로 격리되어 있었다. 간혹 형태가 다양한 요수들이 헤엄쳐 지나갔지만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제 여러분, 이렇게 여러 곳을 구경했으니 이제 청란성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됐겠죠?”
능풍이 묻자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많은 곳을 돌아보고 나서야 청란성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청란성지에 들어오시긴 했지만 이곳에서의 수련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공법이나 단약 재료를 구하거나, 또는 천성전에 들어가서 수련을 하려면 제가 앞서 말씀드린 현령점이 필요합니다.”
능풍이 말했다.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조극이 갑자기 물었다.
“능 사형, 어떻게 하면 현령점을 얻을 수가 있는 건가요? 알려주십시오.”
다른 사람들도 궁금한 듯 능풍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현령점을 얻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희귀한 단약이나 또는 광석 등의 재료, 보물이나 영기 등을 갖고 있다면 팔아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만법각에서 다양한 임무를 맡을 수 있는데, 임무를 완수하면 현령점으로 보수를 지급받게 됩니다. 수련을 돌파하는 경우에도 종문에서 장려 차원에서 현령점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대량의 영석을 현령점으로 바꿀 수도 있지요.”
능풍이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자, 누군가가 크게 좋아하며 물었다.
“영석으로도 바꿀 수 있다니! 너무 잘됐군요. 거래할 수 있는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이곳에 온 사람들은 전부 평범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부분 대량의 영석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말을 듣자 능풍의 얼굴에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이 스쳐갔다.
“영석을 현령점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설명드리지요. 최상급 영석을 현령점 일 점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령탑에서는 최상급의 영석만 취급합니다. 상급 영석과 중급 영석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능풍이 담담하게 설명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웃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들 중 최상급 영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최상급 영성은 성역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물론 상급 영석이나 중급 영석이 충분하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령탑 안에는 영석을 교환하는 영석전(灵石殿)이 있는데, 그곳에서 상급 영석과 중급 영석을 최상급 영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상급 영석을 최상급 영석으로 바꿀 때의 비율은 백 대 일입니다.”
능풍의 이어지는 설명에 석목은 쓴웃음을 지었다.
석목은 몇 년간 여러 행성을 돌아다녔고, 입문 시험까지 치르느라 이미 영석을 다 써버렸다. 지금 그의 수중에 남아 있는 중급 영석으로는 눈곱만 한 최상급 영석도 구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 밖의 영기나 재료도 조금은 갖고 있었지만, 현령점으로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능 사형, 좀 전에 들렀던 천성전에서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현령점이 필요한가요?”
다들 조용히 듣고 있던 와중에, 듣기 좋은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강수수였다.
“하위 제자들의 경우 천성전에서 수련을 하려면 매일 현령점 삼 점이 필요합니다. 상위 제자의 경우에는 이 점입니다.”
능풍이 강수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강수수는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주위에 있는 여러 제자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곳의 천지 원기가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다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새로 입문한 청란제자들에게는 한 사람당 현령점 백 점을 무상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서른여섯 명의 상위 제자의 경우는 매달 일 점이 추가로 주어집니다. 이 정도면 한동안은 걱정 없이 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각자의 능력으로 벌어야 하지요.”
능풍의 말에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 듯 머리를 끄덕였다.
몇몇 상위 제자의 눈에서는 기쁨의 기색이 스쳤다. 매달 일 점만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면 영석으로 계산해도 최상급 영석 한 개와 맞먹는 것이었다.
저녁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능풍을 따라 현령탑과 멀지 않은 곳으로 갔다. 그곳은 숲 속에 있는 대전당(大殿堂)이었다.
“사제 여러분, 이곳은 청란제자들의 생활을 돕는 근무당(勤务堂)입니다. 이제 오늘의 일정도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따라오시지요.”
능풍이 말하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조극이 그 뒤를 따랐고, 이어서 나머지 사람들이 순서대로 들어갔다.
대전에 들어간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의 장식은 매우 간단했다. 양쪽에는 흑단으로 만들어진 서적꽂이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청회색 상자가 진열되어 있었다.
전당의 중앙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었으며, 양쪽에는 팔걸이 나무 의자가 한 개씩 놓여 있었다.
왼쪽 의자에는 푸른 옷을 입고 백발이 창창한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기운이 평온해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후(候) 장로님, 이번에 성지에 새로 백팔 명의 제자를 데려왔습니다.”
능풍이 옷자락을 매만지더니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능풍을 한 번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분은 근무당을 주관하고 있는 후 장로님입니다. 이제부터 사제들은 이 후 장로님의 지시를 따르십시오.”
능풍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후 장로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후 장로님, 이 제자가 해야 할 일은 끝마쳤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능풍은 백발의 노인을 향해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서 전당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능풍이 떠나자 후 장로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석목 일행을 담담하게 훑어보았다.
백발 노인의 시선이 스치자 사람들은 다들 불편함을 느꼈다. 청장천 같은 사람들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몇몇 사람은 감히 큰 숨을 내쉬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 순간 노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조극이 누구인가?”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청년에게 꽂혔다.
“제가 조극입니다.”
조극은 앞으로 한 발걸음 나가더니 침착하게 답했다.
그때 석목은 실눈을 떴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금빛이 그의 눈을 스쳤다.
장로가 조극을 훑어보고 있을 때, 석목은 그의 두 눈에서 한줄기 신식의 강력한 압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힘은 매우 교묘해서, 조극을 바라볼 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신식이 뛰어난데다 영목신통도 소유하고 있는 석목도 이 은밀한 탐색을 눈치 챌 수 없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금방 사라져버렸다.
그 과정에서 조극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노인의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눈썹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그래, 좋다.”
후 장로가 짧게 한마디를 했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웃음마저 잠깐 나타났을 뿐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이어서 후 장로가 손바닥을 흔들자 푸른 옥간이 허공에 나타났다.
후 장로는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붙이더니 몸 앞에서 천천히 움직였고, 무언가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앞쪽을 향해 찍자 한줄기의 푸른빛이 나오더니 옥간에 쏟아졌다.
푸른빛을 받은 옥간이 천천히 돌면서 펼쳐졌다. 그 위에서 하얀 빛이 발산되어 허공에 거대한 빛의 막을 만들어냈다.
석목은 그 빛의 막을 바라보았고, 하얀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한 폭의 지도였다.
석목이 의아했던 이유는 사람들 앞에 펼쳐진 지도가 화가의 손을 거친 수목도권(水墨图卷)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세가 울퉁불퉁하고 숲이 밀집해서 분포되어 있으며 집들의 음영까지 표현되어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였다.
지도에 있는 산과 하천, 나무와 궁전은 모두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하얀색의 현령탑까지도 그 지도 위에 나타나 있었다. 마치 황계 구역 전체를 수천 분의 일로 축소시켜서 사람들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신기하고 놀랍기도 해서 모두 눈을 크게 뜨고는 그 지도를 여기저기 바라보았다.
“이것은 황계 구역의 전체 지형도다. 만약원 서쪽이 너희가 앞으로 거주할 구역이다. 그림 위의 노란색 빛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동부이고, 초록색 빛이 비어 있는 동부다. 너희는 이 초록 동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후 장로가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빛이 천여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노란색이었고, 초록색은 백여 곳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 구역에 분포되어 있는 동부는 천여 곳이었지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백여 곳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천수청산 비경 시험의 결과에 따라 앞 순위부터 순차적으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동부를 선택하면 된다. 신식을 이 초록색 빛 위로 덮으면 해당 동부에 소속되는 시종의 수와 통괄하는 영지의 면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특별한 영물도 상세하게 표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결정하기만 하면 동부의 빛이 초록빛에서 노란빛으로 바뀔 것이고, 다만 결정을 번복하지는 못한다. 다들 알아들었는가?”
후 장로가 설명을 끝내고 다시 물었다.
“알겠습니다.”
제자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조극, 네가 일 번이니 먼저 선택하도록.”
후 장로가 말했다.
조극은 대답을 하고 빛의 막 앞으로 다가가서 지도를 보았다. 그리고 신식을 사용해서 꼼꼼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만약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부의 빛이 노란색으로 변했다.
그 동부의 시종은 총 육백여 명이고, 영지는 아주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 대신 영력이 충분한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세 개의 영천(靈泉)이 있고, 수많은 영재와 영약이 생산됐다. 또 이 구역에서 물자가 가장 풍부한 곳이기도 했다.
조극의 신속한 행동과 정확한 안목을 본 후 장로의 얼굴에 칭찬의 기색이 어렸다.
이어 청장천이 앞으로 나서서 신식을 사용했다. 그는 조극의 두 배는 되는 시간을 할애해서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조극이 고른 곳과 멀지 않은 곳의 동부를 선택했다. 그곳에 속하는 시종은 이천여 명이나 되었고 영지 면적 또한 만 경이나 되었다. 이 구역에서 인원이 가장 많고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었다.
그 뒤 순위가 앞에 있는 상위 제자들이 한 명씩 차례로 자신의 동부를 선택했다.
석목이 선택하려고 할 즈음에는 지도의 초록색 빛이 삼분의 일 정도나 사라진 뒤였다.
석목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신식을 사용해 지도를 훑어보았다. 곧이어 한 곳의 동부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그의 선택 속도는 너무 빨랐다. 게다가 그가 고른 곳은 모든 면에서 평범했다. 다들 석목이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대충 아무 곳이나 한 곳 고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석목은 반각 전에 이미 어느 곳을 자신의 동부로 선택할지 결정한 참이었다.
우선 석목은 만약원과 거리가 먼 외진 곳을 선택했다. 소속된 시종은 삼백 명 정도 되었고 영지 면적 또한 백 리 밖에 되지 않았다. 그곳에는 영천이 한 군데밖에 없었고, 생산되는 영약 또한 몇 종류밖에 없었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그곳은 위치나 자원 측면에서 아주 평범한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석목의 조건에 충분히 들어맞았다.
마옥은 석목의 선택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가 상위 제자의 신분을 남용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석목에게 의문의 눈길을 보냈고, 자하 또한 그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석목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석목이 여경의 옆을 지날 때, 얼굴을 가린 초록색 천 속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섰다.
그런데 석목은 조극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석목을 불안하게 하였다.
석목은 비경의 중앙에서 조극과 한 번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는 비경을 떠난 뒤로도 석목을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