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동부(洞府) (2)
일 각 후, 백팔 번째 제자가 머리를 푹 숙이고 무리 사이로 돌아왔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네다섯 군데밖에 없었는데, 자원과 시종이 적은 동부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의 동부 선택이 드디어 끝이 났다.
후 장로가 손을 흔들어서 허공에 떠 있던 지도를 거두었다. 그가 다시 한 손을 흔들자 손바닥에서 청회색 빛이 반짝였고, 그의 소매에서 서른여섯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두 줄의 빛이 뿜어져 나와서 사람들의 손에 한 줄기씩 떨어졌다.
“이것은 현령벽과 청란수첩(青蘭手帖)이다. 잘 챙겨두어라.”
빛이 흩어지자 석목의 손에는 네모난 상자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손바닥만 한 푸른색 옥패와 한 권의 청록색 옥간이 있었다.
“이 옥간은 청란수첩이다. 청란성지의 수많은 규범과 행동 수칙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층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이 수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옥간의 마지막에는 황계 구역의 전경이 나온 지도가 있다. 길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그것을 펼쳐보면 된다.”
후 장로가 말했다.
석목은 옥간을 몇 번 뒤집더니 다시 넣어두었다. 그리고 푸른 옥패를 들었다.
처음에 능풍이 이 영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자세히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앞으로 성지에서 수련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옥패를 이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현령벽의 외관은 평범한 옥패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화려한 꽃무늬나 빛도 없었고, 손으로 만져보니 꺼끌꺼끌했다. 아무튼 매우 평범해 보였다.
석목은 한줄기의 신식을 천천히 옥패 안으로 들여보냈지만, 그것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조금의 영력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돌이나 죽어 있는 물건 같았다.
석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깨닫고 모두 얼굴에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영벽에 자신의 정혈을 한 방울을 떨어뜨려야 그 물건과 혈계를 이루어 사용할 수 있다.”
후 장로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손끝에서 정혈 한 방울을 내서 푸른 옥패 위에 떨어뜨렸다.
붉은 정혈은 현령벽에 닿자 순식간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이어 한줄기의 붉은빛이 나타났다.
석목은 그 정혈이 옥패로 계속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옥패 속에 들어가자 천천히 확산되어 한 장의 붉은 나뭇잎이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노인의 말에 따라 손에 든 옥패에 자신의 정혈 한 방울을 떨구었다.
“혈계가 형성되어야 현령벽이 완벽하게 너희의 물건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영력을 옥패에 넣으면 옥패에 이름이 나타날 것이다.”
후 장로는 모두가 정혈을 떨군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석목의 손끝에서 한줄기의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옥패 속으로 들어갔다. 옥패의 중앙에 있던 나뭇잎에서 갑자기 빛이 나더니 석목의 이름이 그곳에 새겨졌다.
“자, 이제 다들 돌아가면 된다.”
이런저런 일을 마친 뒤 후 장로가 말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올렸다.
후 장로는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면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팔 명의 신입 제자는 근무당을 나와서 숲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각자의 비선비차를 불러내어 서쪽의 동부 방향으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만약원을 거쳐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극의 동부 위에 도착했다.
조극은 하얀 구름 모양의 비행 법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허공에서 멈추더니 곧 내려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조극 사형,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몇몇 이족 제자가 각자의 비행 법기를 타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조극이 차갑게 말했다.
“저희는 조 사형을 매우 존경합니다. 마침 서로의 동부 거리도 멀지 않으니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아, 저는 탐랑성(贪狼星)의 모랑(莫朗)이라 합니다…….”
“됐습니다. 저는 무능한 사람들과는 연을 맺지 않습니다.”
조극이 손을 흔들며 그 사람의 말을 차갑게 끊어버렸다. 그리고 하얀 구름에 박차를 가하더니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그 어색한 장면을 보더니 전부 뒤돌아서서 청장천에게 향했다.
청장천은 됨됨이가 서글서글해서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러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적예자 등 십 위 안에 든 상위 제자의 주위에는 전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만 그들 주위는 청장천만큼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 청장천은 자신의 동부에 도착했고, 석목 등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흥!”
적예자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가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비경에서 그가 한 행동에 대해 아직 앙금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경은 천과 함께 독 안개를 주위에 두르고 있었다. 그는 원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그 역시 상위 제자 십 등 안에 든 사람이지만 그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석목을 향해 심상치 않은 눈빛을 간간히 보내기만 했다.
석목 주위에는 사람이 두 명 밖에 없었다. 한 명은 마옥, 다른 한 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자하였다.
석목은 이 두 여자에 대해 늘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태도를 유지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녀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마옥과 자하는 서로 죽이 잘 맞는 듯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서로의 동부 위치를 알려주며 자주 보자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각자 손에 든 청란수첩의 지도를 보며 무리를 떠나 자신의 동부로 향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석목 한 사람만 남았다. 그는 곧바로 서남쪽의 외진 동부로 날아갔다.
가는 동안은 대체로 지세가 평탄하고 무성한 나무들이 곳곳에 자라 있었다. 제자들의 동부 영지는 그 푸른 나무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서쪽으로 갈수록 지형의 기복이 점점 심해지고 그 사이에 지어진 동부의 건물도 점점 뜸해졌다. 다른 곳의 경치와 비교했을 때는 다소 황량했다.
석목은 청익비차 위에서 푸른 옷을 휘날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나름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는 반 시진이나 날아간 뒤에 동부 영지의 소재 구역에 도착했다.
그곳은 낮은 산 뒤편에 위치한, 푸른 벽돌에 회색 기와로 지어진 소박한 건물이었다. 방은 백여 칸이 있었고 주실(主屋)은 마당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으며, 낮은 산과 붙어 있었다.
석목은 비차를 주실이 위치한 빈 땅에 세웠다. 시종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관사(管事)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부주(府主)님, 오셨습니까?”
석목이 내려오자 사람들이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부주님?”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부주님은 이 동부 영지의 주인이십니다. 저희는 주인의 시종이니 당연히 부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관사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비대한 중년 남자가 답했다.
석목은 눈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부주님, 저는 제풍(齐风)이라고 합니다. 저와 이 사람들은 전부 이 땅의 관사입니다. 분부하실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저를 부르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비대한 중년 남자가 말했다.
“알았다.”
석목은 그렇게 대답하며 그를 훑어보았다. 생긴 건 인족과 비슷했지만 몸집이 크고 체형이 공처럼 비대했으며, 머리 위에 작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익살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수련 경지는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선천 중기나 후기 이상이었다. 관사 중에는 지계 초기의 무인도 있었다.
지계 초기의 강자는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시녀 복장을 하고 가냘픈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얼굴도 예쁘장했다.
“네 이름은 뭐지?”
석목은 손을 들어 미모의 시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취환입니다.”
여자는 머리를 살짝 숙이더니 조용하게 답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공손한 태도와는 달리 뭔가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사람들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그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이 허리춤에 있는 영수주머니를 꺼내 들어 손가락을 대자 그 안에서 한줄기의 금색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석두, 영수주머니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채아는 나오자마자 큰 소리로 말하다가 석목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날개를 거두고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머리를 갸우뚱하며 사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석목은 몇몇 관사를 이끌고 곳곳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곳의 구조와 방의 위치 등을 대략적으로 확인했다.
그 중 몇몇 관사는 굽신거리며 석목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였지만, 취환이라는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뒤를 따라다닐 뿐이었다.
간혹 석목은 그 시녀의 눈빛에서 유난히 차가운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채아는 이곳이 석목의 영지라는 것을 파악했고, 주위 사람들이 그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재잘대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주실로 돌아간 후 석목은 관사들에게 분부했다.
“모든 일은 원래대로 진행하면 된다. 아무것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거주하는 주실 쪽은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중요한 일이 있거든 내 영총인 채아에게 알려서 전하도록.”
“맞아! 이 동부의 모든 일은 앞으로 다 나에게 말해! 내가 다시 석두에게 알려줄 거야. 규칙을 잊지 마!”
관사들이 답을 하기도 전에 채아가 가슴을 펴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큰 소리쳤다. 관사들은 감히 답을 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석목을 향해 확인하는 눈길을 보냈다.
석목은 채아가 시무룩한 것을 보고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자 모든 사람들이 대답했다.
“좋아, 다들 물러가도록 해라.”
석목이 손을 흔들며 사람들을 물렸다.
관사들이 나간 후, 석목은 전에 동부를 선택할 때 얻은 정보에 따라 채아를 데리고 주실 뒤의 은폐된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낮은 산 밑에 있는 은밀한 석실로 들어갔다.
“석두, 이곳은 왜 전부 산 아니면 나무인 거야? 사람도 몇 명 없고 너무 재미가 없잖아! 청란성보다도 재미가 없어.”
채아가 석목의 어깨 위에서 불만을 내뱉었다. 석목은 웃으며 붉은 영석 몇 개를 던져주었다.
채아는 입으로 영석을 차례로 받아서 전부 삼켜버렸다. 그는 다 먹은 후에도 입맛을 다시며 음미했다.
“앞으로 나는 수련에만 집중할 거야. 너를 돌볼 시간도 없을 수 있어. 이 동부를 돌볼 시간도 없고. 심심하면 앞으로 이 동부의 시종 삼백 명은 전부 네가 관리해.”
석목이 말했다.
“삼백 명? 석두, 그러니까 내가 삼백 명을 관리하고, 이 삼백 명은 전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지? 정말이야?”
채아가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석목의 어깨에서 뛰어내려왔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며 물었다.
“그래. 왜? 싫어?”
석목이 말했다.
“아니, 아니! 싫을 리가! 좋아! 나 너무 좋아! 석두 너는 마음 편히 수련하고 이 사람들은 전부 나한테 맡겨!”
채아가 좋아하며 말했다.
“나는 할 일이 있으니까 너는 나가서 돌아다니며 이곳의 환경이나 좀 알아둬. 다른 사람의 영지에서는 날아다니지 말고.”
석목이 당부했다.
“알았어!”
채아는 그의 말을 듣더니 재빨리 비밀 석실에서 밖으로 나갔다.